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70
차원상인 070화
“야, 저 늙은이 차에다 태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를 태운 봉고차가 골목에 멈춰 선다 싶더니 막무가내로 서우 아버지를 태워간다. 거리에 사람도 없는 데다가 입이 막혀 있어 구원의 손길을 요청할 길도 없다.
“으…… 으으! 으…….”
“얌전히 있어!”
그를 봉고차 안에 쑤셔 넣은 사내들 또한 오르자 차는 어딘가로 향하였다.
끼이익!
흉물스럽게 반쯤 뜯겨져 나간 창고 문 사이로 나서는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비원 차림의 그는 주위를 살피다 슬쩍 뒤를 향해 말을 건넸다.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순간 창고 문 안에서 두 명의 사내가 밖으로 나섰다. 누군가 봤다면 영화 촬영 하나 하는 의문을 품었을 법한 시대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고대 중세 가죽옷 차림의 한 사내와 상의를 핏물로 진하게 물들인 또 한 사람. 차원을 넘어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 우현과 임동수, 레이젠이었다.
“날씨가 매우 춥군.”
“대륙과는 달리 여긴 겨울이니까요.”
알겠다는 듯 끄덕이던 레이젠의 시야에 바닥을 물들인 핏자국이 보였다.
“뭘 보시는 겁니까?”
“이곳에서 싸운 것이냐?”
“그렇습니다.”
상의를 물들인 핏물을 보고 있자니 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그 당시 그가 당했을 아픔과 고통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마음속 깊이 불길이 치솟던 그때 한편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이 다가섰다.
“아따! 행님이 여그서 기다리믄 다시 올 거라 해싸더니만 아주 정확하구만!”
씨름 선수처럼 풍채가 아주 듬직한 그들의 뒤에서 쇠파이프와 회칼이 나온다.
잠시 눈매를 좁히던 레이젠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기분 풀 곳이 필요하던 중인데 잘됐군!”
이들 중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 불곰의 미간이 사정없이 좁혀든다.
방금 한 말이 심기를 매우 거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시방 뭐라고 씨부렁대는 거여? 우릴 패불것다 한 거여?”
“싸우는데 뭔 말이 많지?”
“우라질! 말하는 본새 좀 보소. 겁대가리를 상실타 못혀 아주…… 거 뭐시냐? 그려, 안드로메다에다가 날려보냈구만. 아야, 뭐 하냐? 저것들 아주 요절 내부리지 않고!”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벼 파던 그는 주위를 보며 외쳤다. 한 차례 주억대던 사내들은 곧바로 달려 나갔다. 피식 웃는 레이젠 뒤에서 임동수가 땅을 박차고 뛰쳐나간다.
부우웅!
휘둘러지는 쇠파이프를 피해 몸을 비틀던 그에게서 거칠게 팔이 뻗어진다.
순간 시뻘건 핏물이 허공에 뿌려지며 공격하던 사내가 힘없이 무너진다.
틈이 벌어지기 무섭게 또 다른 이가 그 사이를 메꿔 간다.
까깡! 깡깡!
쇠파이프들에 마주친 왼팔에서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임동수는 넘어오기 전 혹시 몰라 왼쪽 손에서 어깨까지를 건틀렛과 철갑으로 둘렀는데 그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근처에 있는 사내의 턱을 후려쳐 쓰러트린 그는 쇠파이프 중 하나를 낚아채 잡아당김과 동시에 있는 힘껏 상대 안면에 팔꿈치를 찔러 넣었다.
“커어헉!”
짧은 신음과 함께 눌어붙은 듯 주저앉은 코를 부여잡으며 쓰러져간다.
뒤이어 또 다른 이가 나서보지만 무릎을 걷어차여 바닥에 넘어진다.
“죽어, 이 자식아!”
버럭 소릴 지르며 치켜든 회칼을 찍어 내렸다.
하나, 채 닿기도 전에 임동수가 손으로 칼날을 잡고는 발로 정강이를 차갔다.
한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대는 틈을 타 상대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무릎에 부딪쳐갔다.
“아악!”
얼굴을 부여 쥔 채 물러서는 사내를 쫓듯 이번엔 주먹을 날려갔다.
무너져가는 그를 밟고 허공에 날아오른 임동수는 뒤에 서있던 사내의 얼굴에 이마를 찍어갔다.
“크아아악!”
귓가에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를 뒤로한 채 다가오는 사내의 발목을 쓰러트린 레이젠은 뒤춤의 은빛 쇠단봉을 꺼내 들었다. 전신에 기이한 문양이 그려진 이것은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시절 자주 애용했던 것 중 하나로 검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에 대신 가져온 것이었다.
레이젠은 그것을 들어 휘둘러 일어서는 사내의 얼굴을 후려쳤다. 다행히 손속에 인정을 두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금쯤 이승을 하직했을지 모른다.
“자, 그럼 놀아볼까?”
임동수 뒤를 쫓아 달려가는 레이젠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은빛 물결이 허공에 수놓아진다. 그때마다 여지없이 비명이 들리며 사내들이 쓰러져 갔다. 개중에는 용케 빗맞고 꿈틀대는 이도 있었지만 뒤이어 날아든 쇠단봉에 이내 정신줄을 놓고 만다.
“뭐…… 뭐여? 지금 이 상황은?”
당혹스러워하는 그때 허벅지에 맞고 엎어진 사내의 얼굴을 발을 밟고 선 레이젠이 보인다.
피식 웃던 그는 손에 든 쇠단봉을 휘둘러 밑에 있는 사내의 정강이를 부러트려갔다.
“크아아악!”
진저리를 쳐대는가 싶더니 이내 축 늘어지고 만다.
그걸 본 레이젠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슬쩍 훑어간다.
순간 시선이 마주친 불곰은 부르르 몸을 떨어대다 이내 발길을 돌린다.
“기다려!”
귓가에 울리는 사신의 목소리에 한줄기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터벅터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그에 불곰은 서둘러 주위를 살폈다.
“뭐…… 뭐 혀? 어서 안 가고?”
나가라고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 중엔 쉬이 나서는 이가 없다.
오히려 도망치려는 듯 물러서는 사내들이 더 많다. 결국 붙잡아 밀쳐내고 나서야 겨우 레이젠에게 맞설 수 있었다. 하나, 채 일 합도 겨루기 전에 쇠단봉에 맞아 바닥에 몸을 눕히고 만다.
“크으악!”
꿈틀대는 사내의 등짝을 후려쳐 잠재운 레이젠은 불곰을 보았다.
일순 전신에 물드는 공포에 떠는 그를 보며 웃다 슬쩍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잠재운 채 시뻘건 핏물에 젖은 건틀렛을 털어대는 임동수가 눈에 들어왔다.
“가르치면 제법 쓸 만은 하겠어.”
앞으로의 일이 즐겁겠다(?) 싶다는 듯 내뱉던 그는 곁으로 다가온 사내의 회칼을 피해갔다.
빙그르르 몸을 돌려 뒤로 가서는 상대의 허벅지를 쳐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는 재차 휘둘러 면상을 후려갈겼다.
퍼어억!
힘없이 엎어진 사내 위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쇠단봉이 보인다.
“근데 생각 외로 마나가 빨리 소모되는군.”
확인도 할 겸 마나를 주입해 싸웠는데 너무도 빠르게 소비가 되었다.
대륙과는 배는 차이가 나는 듯싶어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할 듯싶었다.
슬며시 돌아선 레이젠은 불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놀란 불곰이 주위를 살피지만 그 누구도 보이질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겁을 먹고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우라질!”
육두문자를 날리던 불곰은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든다.
너무도 가볍게 공격을 피한 레이젠은 쇠단봉을 휘둘러 상대의 허벅지를 쳤다.
“크악!”
절로 꿇려지는 양 무릎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이번엔 양팔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재차 비명을 질러대던 그는 힘없이 바닥에 얼굴을 파묻어 갔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그때 임동수가 곁으로 다가갔다.
“이봐! 너희, 누가 보냈지?”
“으윽! 내…… 내가 말할 것…….”
채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옆에 회칼이 꽂힌다.
“3초 준다. 빨리 말하는 것이 좋을 거야. 네 눈 잃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레이젠은 박아 놓은 회칼을 잡아 점점 불곰의 눈으로 끌고 갔다.
“으…… 으…….”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지만 손으로 머리를 짓누르고 있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느새 회칼은 바로 눈앞까지 이르렀고 신음만 토해내던 불곰의 입이 활짝 열렸다.
“헤…… 헤리엇 론 사…… 사장이 보냈습니다.”
‘헤리엇 론?’
뒤에서 지켜보던 우현이 앞으로 나섰다.
“혹시 대부업체 헤리엇 론 말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순간 임동수와 우현의 시선이 맞부딪친다. 교차하는 눈빛들 사이로 당혹감이 깃든다.
설마하니 이번 일에 대부업체가 끼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내젓던 그때 임동수가 말을 건네 왔다.
“사장님! 이쪽으로 오기 전에 그랬죠. 대부업체에 빚이 있는데 5개월 만에 4억을 갚으셨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랬었죠. 설마…….”
이제야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감이 오기 시작한다.
‘하긴 육 개월 만에 6억을, 그것도 전직 영업사원이 갚았다면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겠지.’
허탈하기 짝이 없다. 돈 갚는 데 열중한 나머지 그런 사소한 것조차 잊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도 어리석고 한심하다. 조금만 생각을 깊게 했더라면 오늘날의 일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어이가 없는 듯 멍하니 있는 그에게 이제껏 묵묵히 있던 레이젠이 물어왔다.
“대부업체는 뭐지?”
“아! 대부업체는 돈을 빌려주고 고이자로 이득을 갈취하는 자들을 말입니다.”
“귀족들의 이자놀이를 말하는 거군.”
“뭐, 비슷할 겁니다.”
알았다는 듯 주억대던 그때 우현이 불곰에게 말을 걸었다.
“헤리엇 론 사장,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사…… 사무실에 있는 걸로…….”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웬 벨소리 하나가 들려온다.
우현이 눈짓을 하자 불곰은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백인철 형님입니다.”
“그래? 이리 줘!”
우현은 건네받은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이 자식! 내가 거기 없다고 기강이 해이해졌냐? 씨파, 뭔 전화를 이리 늦게 받는 거야?”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상대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우현이 답을 해갔다.
“그럴 거야. 휴대전화 주인이 좀 바쁘거든!”
“…….”
한순간 적막이 깃든다.
전화기가 끊겼나 싶던 그때 다시 한 번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뭐야? 뭔데 이 전화를 받는 거야?”
“나? 우현! 네가 사람 보내서 죽이려던 사람.”
“우현? 금괴 운송하는 놈?”
“역시 백인철, 네 짓이 맞나 보네.”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자기도 모르게 나온 금괴란 말에 졸지에 자백을 한 꼴이 된 백인철은 짜증 섞인 소릴 질러댄다.
“너, 이 자식! 감히 내 사무실로 쳐들어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그렇게 만든 건 너야!”
“이놈이…….”
바드득 갈아대는 이빨 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틀던 우현이 말을 건넸다.
“그러지 말고 우리 한번 보지?”
“좋아! 보지! 어차피 네놈에게 줄 것도 있으니 말이야.”
말꼬리에 비웃음이 깃든 것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뭘 준다는 말이지?”
“크크크! 뭐긴. 네가 거래하는 금은방 사장님이시지.”
“금……은방? 설마 아버님을?”
“긴말 안 한다. 지금 불러 주는 주소로 와라! 아, 올 때 금괴 가져오는 거 잊지 말고 말이야.”
“이 자식…….”
한바탕 퍼부으려던 우현은 곧이어 들려온 주소에 서둘러 바닥에 구르는 볼펜을 집어 손바닥에 적어갔다. 혹시나 잘못 적을까 친절하게 되풀이 읊어주기까지 하던 백인철은 이따가 보자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