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평지에 닿자 유월이 용하를 올려다보며 잦은 짖음을 보였다.
“우리 유월이 뭐가 불만일까?”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유월은 계속해서 용하의 다리와 등에 업힌 장설을 번갈아 쳐다보며 점점 더 크게 짖었다.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광야를 얼마나 걸었을까. 아까부터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유월을 이상히 여긴 용하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장설을 내려놓았다. 바로 그때였다.
―멍멍! 멍멍!
유월은 장설을 향해 등을 내놓으며 힘차게 짖어댔다. 어떤 신호를 보내기 위한 짖음은 결코 아니었다. 오랜 갈증을 해소하는 듯한 짖음이었다.
그 순간 용하는 깨달았다. 깨달음의 기쁨보다 웬일인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유월아…….”
―끄응~
유월은 꼬리를 흔들며 용하가 장설을 제 등에 업혀 주기를 기다렸다.
“유월~ 오빠, 하나도 힘 안 들었는데.”
―멍멍!
“그래도 유월이 해야겠으면 그렇게 해. 대신 힘들면 언제든지 얘기해.”
―멍멍!
그제야 용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유월의 등에 장설을 올려주었다.
―끄응!
바로 그 순간 장설이 인기척을 보였다.
“형님!”
용하는 소스라치며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장설은 더는 어떤 인기척도 내비치지 않았다. 용하는 유월의 등에 널브러진 장설의 안녕을 두루 살펴보았다.
“고맙습니다, 형님! 이렇게라도 형님이 무사하다는 걸 알려주셔서요.”
―멍멍!
유월이 용하의 심경을 헤아리기라도 했던지 꼬리를 흔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유월의 반응을 바로 알아차린 용하는 경쾌하게 유월을 독려했다.
“유월! 인공 형님이 가까이 계시는 거 맞지?”
좀 복잡한 신호였다. 유월은 뭐가 뭔지 모르겠던지, 그냥 끙끙거릴 따름이었다.
“아, 말이 좀 어려웠지? 노인네 알아서 올 것이니, 우리라도 먼저 국밥집으로!”
분명 조금 전보다 더 복잡한 신호체계였다. 하지만 유월은 용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월이 인공을 앞질렀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용하가 인공의 옆을 지나며 메롱! 혀를 내밀고는 저만치 멀어져갔다.
“아니! 저, 저것이…….”
자업자득이었다. 사실 인공은 먼저 국밥집으로 가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톡 쏘는 탁배기 한잔으로 아미파 여인들과 대치하여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볼 요량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시간이 몇 시나 됐으려나…….”
달빛이 내려다보는 어두운 광야를 터덜터덜 걷고 있는 인공은 무슨 방랑 시인이라도 된 듯 중얼거렸다.
“달의 기울기로 보아 자시(子時)를 지나고 있는 건 알겠는데,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구나.”
인공은 보란 듯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을 내디디며 분에 넘치는 여유를 보였다.
“어차피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탁배기 한 사발은 물 건너갔고, 천천히 걸어서 자정쯤에나 도착하면 되지 뭐. …용하 녀석, 언제는 뭐 도움 된 적 있었나? …뭘 기대해! 항상 제멋대로인 녀석한테.”
염치도 좋지. 인공은 자기 먼저 가서 실속 채우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괜한 사람을 탓하며 투덜거렸다.
한편 국밥집에 먼저 도착한 용하와 유월은, 주모에게 그날 밤 안전하게 묵을 수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사실 용하는 하루 정도는 국밥집에서 묵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중이었다. 반면 주모는 죽은 듯 축 늘어진 장설을 내려다보며 웬일인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주모! 왜 그러시오? 무전취식이라도 할까 봐 그러는 것이오?”
“아이고, 아닙니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얼굴색이 왜 그래요?”
“제 얼굴색이 어때서요?”
“아니, 뭐…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이 났으니 말이지, 불편하긴 좀 불편하죠. 제가 장설 어른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건 좀…….”
“주모! 좀 불편하더라도 하루만 신세 집시다. 숙박비는 섭섭지 않게 치루리다.”
용하의 말에 웬일인지 주모는 장설 쪽을 핼끔거리며 쭈뼛쭈뼛 용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리 좀 와보세요.”
용하는 장설을 한번 흘깃 보고는 주모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왜 그러시오?”
“장설 어른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솔직히 영업집에서 송장 치르기는 싫소이다.”
주모의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용하는 못 알아들은 듯 능청을 떠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주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쫓겨날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보시오, 주모!”
용하는 저잣거리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이고, 깜짝이야. 갑자기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시오?”
“아니, 지금 소리 안 지르게 되었소? 멀쩡한 사람을 두고, 송장이라니! 당장 시정하시오.”
용하의 호통이 어찌나 서슬이 퍼렇던지, 주모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아니, 손님도 참…, 너무 그렇게 호통만 칠 게 아니라, 제 입장도 좀 생각해 주셔야지.”
“어허,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게요? 내가 그만한 대가를 치를 것이고, 인공 형님이나 나나, 죽을 각오로 장설 형님을 아미파의 소굴에서 구해낸 것은 살리기 위한 것이었소.”
“살리기 위한 거라니,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모는 세상일 다 알아야 사람으로서 제구실하겠단 말이오?”
용하는 얼마가 들었을지 모를 구리동전 주머니를 주모의 손에 툭 던져주었다.
“절대 송장 치르는 일 없을 것이니, 내 말 믿고 방 하나 내주시오. 기왕이면 여기 사람들이 모르는 안전한 방으로 말이오.”
주모의 눈길이 얼핏 구리동전 주머니에 머물렀다. 표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열흘은 묵어도 좋을 만큼 큰돈 앞에서 돈 욕심이 나면서도 혹시 모를 일들이 발목을 잡아 썩 내키지 않았던지 입을 옴씰거렸다.
주모는 장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얼굴에 핏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하루 정도는 버틸 것도 같아 보였다. 주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사람 목숨이 어디 그리 쉽게 떨어진다더냐. 저 정도면 며칠은 충분히 버틸 거야. 재작년에 죽은 시아버지도 저보다 더 못한 몰골을 하고도 보름을 버티다 갔잖아.’
마침내 주모는 결정을 내렸다.
“정말 딱 오늘 하루만이오. 만약 내일도 오늘처럼 구는 날엔 저잣거리를 지키는 무사들에게 이 사실을 고할 것이오.”
“아, 좋소이다. 대신 오늘 하루는 안전해야 하니, 그리 알고 신중하게 방을 내주시오.”
“아, 그건 염려하지 말고, 저 방으로 들어가시오.”
“저 방이라니, 어느 방을 말하는 것이오?”
“저기 내 방으로 들어가란 말이오. 모르긴 해도 그 방이 우리 주막에선 가장 안전한 곳일 것이오.”
처음엔 좀 짜증이 났다. 그 많은 돈을 치르고서 고작 늙은 과부가 쓰던 방이라니.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수십 년의 세월 그 방을 써온 주모가 아직 무사한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좋소이다. 그리하겠소. 대신 방을 좀 치워주는 건 할 수 있지 않겠소?”
“염려 붙들어 매시오. 손님들에게 내주는 다른 방보다 훨씬 더 깨끗할 것이니.”
주모의 말이 조금은 의아했지만, 달리 방법도 없으니,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고맙소. 그리고 조금 있으면 인공 형님도 오실 것이니, 국밥과 탁배기 좀 들여주시오.”
“아, 네…….”
주모는 넙죽 대답하려다 말고 얼핏 셈을 해보는 기색이었다. 그런 주모의 태도를 먼저 눈치챈 용하가 구리동전이 든 주머니 하나를 또 던져주며 점잖게 으스댔다.
“그 정도면 내일 아침은 물론, 우리 유월이 방도 하나 내주어도 될 것이오.”
주모의 눈동자가 떼굴떼굴 굴렀다. 그리고는 곧 헤픈 웃음을 남발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요, 손님! 어디 아침뿐이겠습니까? 점심과 저녁까지 드시고 가셔도 좋습죠.”
“그럼 부탁 좀 하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서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셔서 혹시 모르니 검은 그늘막으로 방문을 가려두십시오.”
주모의 말을 용하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아니, 그 말에 조금 전보다 훨씬 안심할 수 있었다.
한편 인공은, 밤이슬을 맞아가며 얼마나 오랫동안 걸었을까, 마침내 국밥집 앞에 도착했다.
“쳇, 영영 못 올 것 같더니만 결국 이곳에 당도했네! 그려. 대략 자정쯤 됐으려나…….”
인공은 어스름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국밥집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이리 오너라!”
정말이지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은 탁하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그때였다. 저 안쪽의 조금 전 어스름한 불빛이 새어 나오던 방에서 주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리 가거라!”
주모의 생뚱맞은 반응에 인공은 짐짓 놀란 기색으로 다시 불러 보았다.
“어허, 무엄하구나. 어서 썩 나와 손님을 맞이하지 않고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주모의 목소리가 어둠을 뚫었다.
“어허, 괘씸하구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오갈 데 없는 노인이 야심한 밤에 큰소리를 치는 것이냐? 재수 없으니 썩 물러가거라!”
뜻밖의 상황에 인공은, 마치 악마의 시간 속에 갇혀버리기라도 한 듯,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주모의 말꼬리에서 얼핏 키득거리는 듯한 웃음이 들렸던 것 같았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린 인공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 쪽으로 몇 걸음 이동해 조금 전보다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외쳤다.
“이보시오, 주모! 영업 안 하시오? 빈방이 없다면 내가 배로 주겠소.”
배로 준다는 말 따위 씨알도 먹힐 리 없었다.
“어허, 참으로 답답한 양반이구려.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고, 웃돈을 준다 해도 방이 없으니 이를 어쩐단 말이오.”
바로 그 순간 인공은 주모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역시 짐작한 대로였다. 주모의 말끝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뒤섞여서 들렸다.
“쳇, 이 여편네가 죽을 때 됐으면 조용히 갈 것이지, 죽여달라고 생떼를 쓰는구먼.”
인공은 눈을 들어 어둠에 휩싸인 국밥집을 크게 둘러보았다.
“대략 저쪽이 입구였으니, 여기가 주모가 들락거리던 방이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이리도 어두운 것인가. 그리고 먼저 온 용하 녀석과 장설 형님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게 모든 게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였다.
―멍멍!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 유월이 짖는 소리였다.
“유월! 유월이 맞지? 너 지금 어디 있는 것이냐?”
비록 은밀하게 한 말이었지만, 그 소리를 아까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모가 못 들었을 리 없었다. 어스름한 불빛이 새어 나오던 방문이 벌컥 열리며 주모가 기지개를 켜며 나왔다.
“아니, 대체 누군데 남의 영업 끝난 집에 늦은 시각에 찾아와서 잠을 깨우는 것이오?”
“아, 주모! 나요, 나. 나 모르겠소?”
“그 짝이 누군지 내가 어찌 안단 말이오. 그나저나 방 구하려는 거면 꿈 깨시오.”
“방 구하려면 꿈을 깨라니, 그게 다 무슨 말이오?”
“무슨 말이긴 무슨 말이겠소? 지금 이 국밥집엔 빈방이 없다는 소리지.”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밤이슬을 맞으며 걸은 사람을 또 거리로 내몰려 들다니. 비굴의 코미디라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부탁이오, 제발…….”
“아니, 갑자기 왜 그러시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리 오라니, 저리 가라니 하며 제멋대로 떠들어대지 않았소?”
“아, 그건 여기 무림의 예를 지키느라 그런 것이니, 괘념치 않으셨으면 좋겠소.”
“무림의 예라, 그 짝은 시건방을 떠는 게 무림의 예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시건방! 아니 또 무슨 말을 그렇게…….”
“왜, 아니란 말이오? 아니면 뭐 방은 없는 것이니, 이만 나가보시오.”
바로 그 순간 인공은 주모 앞에 무릎을 조아리며 통사정했다.
“제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주모는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떠보듯 말했다.
“빈방은 없고 뒤쪽에 손님이 데리고 온 개가 지내는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개와 함께 하룻밤 묵겠다면 그리하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나더러 개집에서 자라는 것이오?”
“개집이 아니라, 개 방이오. 그리고 이것저것 가릴 거면, 당장 나가시오. 저잣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다 까마귀밥이 되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말이오.”
“까마귀밥?”
인공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그리고 주모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뭘 그리 놀라시오. 어둠이 깔린 저잣거리에선 일상다반인걸.”
바로 그 순간 조금 전보다는 좀 큰 소리로 유월이 짖었다.
―멍멍! 멍멍!
‘이 소리는 분명 유월이 맞는데.’
이번엔 좀 확신이 섰던지, 조금 전과는 다른, 그러니까 비굴함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보게, 주모! 혹시 손님과 함께 왔다는 개의 이름이 유월이오?”
“남의 개 이름이 유월인지 뭔지, 그것까지 제가 어찌 압니까?”
바로 그때였다.
“유월아!”
인공은 다짜고짜 유월을 외쳐 불렀다.
―멍멍! 멍멍!
바로 유월이 반응을 보였다. 인공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모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주모 말대로 하겠소. 아까 말한 그 개와 같은 방을 쓰게 해주시오.”
“정말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하시오.”
주모는 적잖이 빈정거리며 어스름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