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72
72화
조금 전 건축사 사무실을 나와 부동산 사무실로 향하는 두 사람.
사뿐사뿐 내디뎌 가는 용하의 발걸음이 여느 때보다 눈에 띄게 경쾌했다.
그 뒤를 어기적어기적 팔자걸음으로 따라 걷는 인공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의 눈길이 줄곧 용하의 걸음걸이에 머물고는 했다.
‘저 걸음걸이! 녀석이 저렇게 걸으면 꼭 무슨 일인가 터지던데…….’
대리운전 기사였던 용하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러했다. 그날 용하의 첫인상은 다소 들뜬 목소리에, 가벼운 몸으로 차를 향해 달려오던 모습으로 인공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날 생애 가장 큰 일이 벌어진 거잖아. 차원이동…….’
그게 다가 아니었다. 소희 낭자를 만나던 날도, 개방에 도착해 용두방주를 만났을 때도.
다행스럽게도 21세기로 돌아오던 날은 용하의 발걸음이 그리 경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광대무변한 중국을 횡단하는 긴 여정 그러니까, 드넓은 광야를 지나고 기나긴 사막을 건너, 티베트의 고원을 지났으니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었다. 게다가 에베레스트의 빙벽까지.
‘그렇다면 녀석이 승승장구하려면, 안타깝지만 매 순간 시련이 동반돼야 한단 말인가.’
착잡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형님, 뭐 하고 계십니까? 오늘따라 왜 그리 걸음이 늦는 거예요?”
인공의 눈이 일순 커졌다.
‘저 목소리!’
부동산 사무실이 지척에 있었다. 그런데도 용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하는 인공은 어찌해야 좋을지 망설여졌다.
‘부동산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녀석은 더욱 들떠서 스스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막 버스 정거장 앞을 지날 때였다. 인공은 날랜 몸으로 쉘터 뒤에 몸을 숨겼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용하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형님, 속도 좀 내시죠. 바로 코앞에 부동산 사무실인데.”
아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인공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를 이상히 여긴 용하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엥!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인공.
인공이 보이지 않자, 조금 전까지 들뜬 기색이 역력했던 용하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형님…….”
용하는 조금 전까지 가벼운 걸음으로 지나온 길을 이번에는 경직된 걸음으로 두루 살피며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형님!”
인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인공이 들어갈 만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엔 인공으로 조성된 산책길과 도로 그리고 버스 정류장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버스 정거장에 몸을 숨겼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가 된 버스 정류장은 규모가 제법 큰 편이었다. 대여섯 개의 광역버스 노선, 십여 개의 좌석버스 노선, 그리고 수십여 개의 지선 간선 버스 노선의 쉘터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형님!”
쉘터 뒤에 몸을 숨긴 인공은 용하를 몰래 훔쳐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지금처럼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돌아갈 때, 예전이었다면 분명 기고만장해서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용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간절하게 자기를 찾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서였다.
‘녀석이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어. 아니, 어쩌면 보는 사람에 따라 젊은 혈기가 한풀 꺾이는 거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야.’
인공을 찾아 헤매는 용하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의 표정에서 더는 들뜬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거라고는 인공이 사라진 것에 대한 두려움뿐.
‘혹시 주금산으로 돌아가 버린 건 아닐까?’
용하의 눈에 핑 눈물이 고였다.
‘인공사를 지키겠다던 형님을 모셔 와서 내가 너무 소홀했어.’
인공을 대함에 부족함을 느낀 용하. 그의 머릿속은 온통 인공에 대한 염려뿐이었다.
한편, 이쯤에서 모습을 나타낼 만도 한 인공. 그는 무슨 이유로 여전히 쉘터 뒤에 숨어서 용하를 지켜보고만 있는 것인가.
* * *
다음 날, 오전 수련 시간에 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수련에 임하는 용하의 육신에서 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의아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 웅성거렸다.
“분위기가 좀 그렇지?”
“밤새 무슨 일 있었나 봐.”
“그러게, 사범님도 안 보이시고.”
“오늘 새벽까지 스무스카페에 출석하셔서 인사도 하시고 근황도 올리셨는데.”
“아, 그랬어? 난 집에 일이 좀 있어서 카페 못 들어가 봤어.”
“일단 사범님 안부는 확인됐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고. 문제는 관장님인데, 관장님을 기운 차리게 할 무슨 방법이 없을까?”
수련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떼굴떼굴 굴렸다. 잠시 후 그들 가운데 하나의 눈동자가 반짝 빛나는가 싶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중에 오늘 생일인 사람 있어?”
“생일! 생일은 왜?”
“글쎄, 이게 먹힐지는 모르겠는데, 좋은 생각이 있어서.”
“좋은 생각?”
또 다른 수련생이 솔깃해서 묻자 대답했다.
“그렇게 좋은 생각은 아니고, 급한 대로.”
그때 잠자코 있던 수련생 하나가 불쑥 한마디 한다.
“나 오늘 생일인데, 왜? 생파라도 해주게?”
“빙고! 오늘 생파 하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생파를 제안한 수련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를 본 용하는 시큰둥해서 입을 뗐다.
“질문 있어요?”
“질문 아니고 제안입니다.”
“제안? 무슨…….”
“오늘 생일을 맞은 수련생이 있어서요.”
“그런데요?”
“생파를 제안합니다.”
“생파?”
“네, 생일파티요.”
“생일파티? 음, 좋아요. 제가 뭘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관장님은 시간만 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럼요. 참, 그리고 장소 제공도요.”
“장소?”
“네, 체육관 좀 쓰겠습니다.”
“뭐,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용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련생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보세요? 대치동 검도관…….”
상대가 이미 알아차리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수련생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 오늘은 다른 곳으로 좀 와주셔야 합니다.”
이번에도 수련생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네,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비싼 거로 30인분하고, 축하주로 쓰게 술도 좀 부탁드려요. 순한 거로요.”
수련생이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대체 뭐길래 30인분입니까? 자장면입니까? 아님, 짬뽕?”
“에이 참, 관장님도. 그래도 우리 스무스카페 회원이자 검도 체육관 동기 수련생 생일인데, 자장 짬뽕은 좀 그렇지 않겠어요?”
“그게 아님, 대체 뭡니까?”
“출장 뷔페입니다.”
“출장 뷔페?”
“네, 호텔요리 전문으로 하는 케이터링이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용하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낸다거나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다들 인공 형님만큼이나 통이 크구나.’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와 함께 인공과 그의 카페 회원들의 돈독함에 감동의 뜻을 전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관장님은요?”
“저는 지금 즐거운 시간을 가질 만큼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용하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고백하고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수련생이 황급히 뒤따르며 말을 이었다.
“관장님, 실은 생일파티는 핑계였습니다.”
수련생의 말에 용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흘깃 뒤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실은 관장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여서 작은 정성이나마 모아 즐겁게 해드리려고.”
수련생은 더는 말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 때문이었단 말이시오?”
“…….”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저히…….”
“말씀해 주십시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도 돕겠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단호했다. 더는 버틸 재간이 없을 만큼.
“알겠습니다. 일단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에 연연하지는 마십시오.”
“어떻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제 스승이신 관장님께서 이렇게 근심이 가득한데.”
“알겠습니다. 실은, 나에게는 물론 수련생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스승이자 무술 사부나 다름없는 인공 사범님께서 어제 신도시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밤새 찾아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관장님! 수련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우울한 표정이셨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난 또 뭐라고.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페지기님께선 오늘 새벽, 자신의 카페에 출석하셔서 인사도 하시고 근황도 알리셨습니다.”
“네에?”
어이가 없었다. 그토록 찾아 헤맸건만.
“잠깐만요.”
수련생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런 말 없이 기다리는 걸 보니 신호음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최강땡추인공 님?”
수련생의 전화를 받은 인공은 무언이 그리도 반가운지 세상이 떠나갈 듯 웃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옆에 있는 용하의 귀에도 적나라하게 들릴 정도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인공의 웃음소리에 욱하고 치밀었다.
“형님!”
용하는 목에 핏대가 새끼손가락만큼 성을 낼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아이 깜짝이야…….
수련생의 휴대전화 속에서 새 나온 인공의 목소리였다.
수련생은 황급히 말했다.
“카페지기님, 빨리 오십시오. 오늘 은평구 관장님 생일이라고 해서 출장 뷔페 불렀습니다.”
―뭣이라! 출, 출. 장. 뷔. 페?
무엇이 그리도 그를 반갑게 했는지, 인공은 펄쩍 뛰며 좋아했다.
―알았어. 바로 달려갈 테니까 개봉하지 말고 기다려.
허탈했다. 그토록 찾아 헤맸는데.
용하는 인공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달래지 못하고 있을 때보다 더 기운이 빠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인공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체육관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를 보는 순간 용하는 알 수 없는 울화가 치밀었다.
“형님!”
“작게 얘기하세요, 관장님.”
남의 속을 그렇게 태운 사람치고는 너무나 당당했다. 아니, 오히려 생일파티에 참석한 것을 기뻐하며 적잖이 들떠 있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너무 티 납니다.”
용하는 이를 꽉꽉 깨물어가며 말했다.
“관장님, 밤사이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말씀하시는 게 어째 좀 불편해 보이십니다.”
인공의 능청은 하늘을 찔렀다.
“사범님,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용하는 제 할 말만 던지고는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인공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용하의 뒤를 따랐다. 이제 막 사무실로 들어가는 용하는 바로 뒤에 인공이 따라 들어올 것을 알면서도 야멸차게 문을 닫아 버렸다.
‘이럴 때 보면 아직 어린아이 같단 말이야.’
용하의 이런 면면에, 인공은 간혹 미덥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공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용하는 다그치듯 물었다.
“형님, 생일파티가 그렇게 좋으세요?”
“그러는 넌 싫은 게야?”
“누가 싫데요?”
“그런데 왜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냐?”
“형님은 말이죠.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나잇값도 못하고.”
“그것이 보이느냐?”
“그럼 안 보여요? 그렇게 티를 내는데.”
“나잇값 못하고 들떠 있는 게 어떻게 보이느냐?”
“꼴불견이죠. 지켜보는 사람 입장 한번 생각해 보셨어요? 왠지 무슨 일 저지를 것 같아서 얼마나 불안한지 아세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호사다마(好事多魔)!”
“내가 경거망동하는 것을 보고 그런 소회를 느꼈느냐?”
“네?”
용하의 말에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했다.
“그럼 됐다. 그 소회를 평생 잊지 말도록 하거라. 어제 일은 내가 사과하마.”
“엥! 사과요?”
“미안해. 그렇게 사라지면 안 되는 건데. 실은 회원들에게 공지할 게 있어서 급히 피시방에 좀 갔다가, 일 보고 나오려는데 옆자리 꼬맹이가 게임에 반쯤 미쳐있더라고. 뭔가 싶어서 좀 자세히 봤더니, 아 그게! 새로 나온 게임이더라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네에! 게임이요?”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게임에 미쳐 밤을 지새웠다니, 기도 차지 않을 노릇이었다.
“그럼 밤새 피시방에 계셨던 겁니까?”
“미안해. 앞으로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어제 일은 잊어버려. 그리고 생일파티 끝나면 어제 못 한 유치원 부지 말이야. 그거 계약하러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