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13
#닥터 플레이어 113화
하지만 베라드 대공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다.
‘지난 작전이야 놈의 천재성으로 간파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할 거야.’
베라드 대공은 레이몬드를 놀랍게도 ‘천재’라 평가하였다.
베라드 대공이 자신 외에 다른 이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경악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평가였다.
그의 모든 계략을 모조리 간파하고 막아내고 있으니, 어찌 천재가 아닐 수 있으랴!
레이몬드는 분명한 천재였다.
그것도 하늘이 내린.
베라드 대공은 하늘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기 위해 레이몬드를 내렸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물론 무릎을 꿇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진정한 패웅의 탄생에는 걸림돌이 있는 법. 레이몬드, 네놈은 내 영웅성을 빛나게 해주는 제물이 되리라.’
이어서 베라드 대공은 작전에 대해 생각했다.
‘어쨌든, 놈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번 작전은 절대로 막아내지 못할 터. 그래 봐야 결국 치료사에 불과하니까.’
아무리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놈의 근본은 치료사였다.
즉, 병법적으로 한계가 있을 거다.
이번 작전은 어떤 기상천외한 변칙 없이 철저히 ‘회전 전술’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니, 놈은 어떤 수도 내지 못하리라.
‘반드시 사로잡아 목을 직접 쳐주마.’
베라드 대공은 차가운 얼굴로 생각하였다.
* * *
하지만 베라드 대공에게는 불행하게도, 레이몬드는 이런 퀘스트를 받고 있었다.
[대량 전상자 발생의 위기를 막아라!](인술 퀘스트)
선행도 : 중의(中醫) 급
난이도 : 중
퀘스트 설명 : 적군이 비장의 회전 전술을 준비한 상태입니다! 이대로라면 셀 수 없는 전상자가 발생할 터! 군의관으로서 환자 발생을 막도록 최대한 노력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희생자 최소화
보상 : 업적에 따라 다름
특전 : 큰 공로
[클리어 업적]A-아군의 승리
: 레벨 업×3, 스킬 포인트 50점
B-아군의 패배 최소화 (5천 명 이하 사상)
: 레벨 업, 스킬 포인트 30점
C-아군의 큰 패배(5천 명 이상 사상)
: 실패. 보상 없음
‘뭐야, 이 퀘스트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5천 명 이하, 이상 사상이라니?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심상치 않았다.
‘도대체 이번 총공세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때, 날카로운 음성이 그를 불렀다.
“페닌 남작?”
“…….”
“페닌 남작?”
“아, 아, 넵!”
라이프 공작이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린 채 싸늘하게 레이몬드를 쏘아보았다.
“한가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회의 중이다. 집중하도록.”
“……죄송합니다.”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군 수뇌부 중 질투로 그를 무시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 중 하나, 리머튼이 으스대듯 나섰다.
“아무래도 힐러인 페닌 남작에게 이런 전략 회의 자리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물론 지난번에는 기지를 발휘해 공을 세우긴 했지만, 이번 회전은 그런 작은 기지가 통할 구석이 없는 총공세의 자리이니까요.”
세이틸도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제게 이번 회전 때 선두의 자리를 맡게 해주십시오! 드로튼 놈들을 단숨에 궤멸시키겠습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제가 앞에 나서겠습니다!”
“우익은 제가 맡겠습니다!”
강한 열기가 막사를 뒤덮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 모두가 앞장서 나서며 공을 다투었다.
어차피 이겨가는 전쟁.
모두 패배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단 한 명.
레이몬드만이 찝찝한 마음으로 전술 지도를 바라보았다.
‘뭐지? 별달리 불리할 게 없어 보이는데. 아니, 전황만 보면 엄청 유리하잖아.’
병력의 숫자도, 사기도. 모두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불길한 퀘스트가?’
레이몬드는 골몰히 고민에 잠겼다.
‘으으. 난 힐러인데, 왜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냐고. 이런 건 군대의 높은 분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엄밀히 말해 병법, 전략 따위 그의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자코 뒷짐 지고 있기도 곤란했다.
만약 퀘스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덧없는 희생은 막아야 했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도 적의 의도를 간파하면, 또다시 큰 공로를 세우는 셈이니까. 나중에 최고 노른자위 영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레이몬드는 그런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생각해 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뭔지!’
하지만 영 떠오르는 게 없었다.
기사 전력, 일반 병력 모두 우세했고, 사기도 높았고, 심지어 지형도 유리했다.
어리석게도 적들은 운신이 어려운 수풀 지대에 본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그때, 라이프 공작이 말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페닌 남작?”
“그…….”
레이몬드는 눈을 데구루루 굴렀다.
지금 당장은 딱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적들의 의외의 수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별것 없는 발언에 몇몇 이가 비웃음을 던졌다.
하지만 뜻밖에 라이프 공작이 재차 물었다.
“정확히 어떤 의외의 수를 대비해야 한다는 거지?”
그냥 묻는 말이 아니었다.
라이프 공작 또한 비슷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군이 절대로 유리한 싸움이다. 베라드 대공은 어째서 실패할 것이 뻔한 총공세를 시도하는 것이지?’
무언가 놓치는 게 있었지만, 도통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라면.
다방면에서 불세출의 능력을 보이는 저 불가해한 힐러라면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라이프 공작은 그런 마음으로 레이몬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
총사령관을 비롯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으으. 진짜 모르겠는데.’
레이몬드는 발상을 전환했다.
힐러인 그는 아무리 해도 전문 군략가답게 병법을 떠올릴 수 없다.
전장의 수호 의사 효과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힐러로서 생각했다.
‘힐러로서 생각해 보자. 어디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날까? 중앙의 본군?’
그렇게 생각하며 지도를 보던 중이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적군은 수풀 지대에 중앙 본군의 진을 친 거지? 저기는 싸움에 적합한 장소가 전혀 아닌데.’
의아한 배치였다.
참고로, 회진 때 일반적인 배치는 이러하다.
좌익-본군-우익
따라서 중앙의 본대끼리 싸움에서 승패가 결정 난다.
‘병법의 기본만 알아도 저런 데 본대를 배치하지 않을 텐데.’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이상했다. 뭔가 아주 이상했다.
‘마치 본대끼리의 싸움에서 이길 생각이 없다는 듯이. 적군의 배치가 저렇게 되면,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날 곳은 중앙이 아니라…….’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레이몬드는 벼락을 맞은 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전장의 수호 의사’ 효과로 지력 스탯이 54로 훌쩍 상승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사실이었다.
‘설마…… 중앙을 포기하고 양익에서 승부를 볼 생각인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이동이 불편한 수풀 지대를 이용해 아군기사 병력을 묶어둘 생각인 거야!’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수풀 지대를 이용해 아군 기사들의 발을 묶을 방법은 많았다.
레이펜타이나에는 ‘마법’이란 수단이 있었으니까.
대지계 마법 등으로 수풀 지대를 최대한 활용하면 기사들의 움직임을 묶어놓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군 기사들의 발이 중앙에 묶인 사이, 드로튼 왕국은 자신들의 기사 전력을 양익에 집중시킬 생각인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의 양옆은 완전히 무너져 버려! 수적 우위가 있어도 끝장이야!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이른바, ‘양익 포위 섬멸 작전’인 것이다!
‘알려야 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양익의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어째서지?”
“적들이 아군의 양익을 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라이프 공작이 날카롭게 물었다.
“첫째는 지형 때문입니다.”
레이몬드는 ‘언변’ 스킬의 도움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펼쳤다.
점차 말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이 진중하게 변했다.
레이몬드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적으로 병법을 익힌 참모들은 경악해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저런 수풀 지대에 본대를 배치할 이유가 없어.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거야.’
‘어떻게 저런 사실을 간파한 것이지? 고작 힐러가?’
하지만 레이몬드의 주장에는 하나 문제가 있었으니.
“네 말에 따라 양익의 대비를 강화하면 그만큼 중앙 돌파력이 약해진다. 그 문제는 어떻게 할 거지?”
레이몬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걱정하던 사항이었다.
물론 해결책이 있긴 했다.
‘이거 이야기해도 되나? 에라, 모르겠다.’
“소드 마스터이신 각하께서 직접 나서면 해결됩니다.”
“……뭐?”
“지휘소에서 전황을 살피다가 중앙이 밀리는 양상을 보이면 직접 참전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겁니다.”
막사 안이 침묵에 잠겼다.
그것도 잠시.
“위, 위험합니다!”
“총사령관이신 각하께 직접 참전하라니!”
하지만 레이몬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지금 몇 명이 죽을지 모르는 판국인데 총사령관이라고 몸을 사릴 때야?’
라이프 공작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직접 나서면 수많은 병사의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거다.
레이몬드는 오히려 도발하듯 말했다.
“각하께서 직접 나서시면, 병사들도 더욱 용기를 내어 싸울 터. 반드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
라이프 공작은 잠시 레이몬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드 마스터의 차가운 눈빛이 자신을 향하자 레이몬드는 움찔하였지만, C등급으로 상승한 ‘강철의 심장’의 도움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라이프 공작이 입꼬리를 비튼 것이다.
비틀리긴 했지만, 분명한 미소였다!
“재미있군. 좋다. 내일 총공세 때는 본 공작이 직접 나서도록 하겠다.”
“……!”
막사 안에 놀람이 퍼졌다.
라이프 공작은 레이몬드에게 물었다.
“페닌 남작, 그대는 내일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이지?”
물어볼 것도 없는 말이었다.
“환자들의 생명을 맡겠습니다.”
그는 치료사였으니까.
그는 기사들과 또 다른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 * *
이윽고, 대회전이 펼쳐졌다.
전쟁 발발 후 가장 큰 규모의 회전이었다.
드로튼 왕국군은 양익에 기사 전력을 집중했다.
중앙의 수풀 지형을 이용해 상대의 발을 묶어두는 사이 양옆을 무너뜨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의 계획대로만 됐으면, 휴스톤 왕국군은 양옆이 붕괴하며 커다란 패배를 당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