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72
#닥터 플레이어 172화
그런데 그는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다.
봉기군을 마주한 것이다.
산발적으로 일어난 영지민 봉기군이 아니었다.
바로 라팔드 지방의 전(前) 기사단인 비텐 기사단의 전직 기사단장이 이끄는 봉기군이었다.
전염병의 혼란을 이용해 영지민들을 준동한 것이다.
* * *
비텐 기사단!
위세를 자랑하던 라팔드 지방의 기사단이었다.
얼마 전 전쟁 당시에만 해도 휴스톤 왕국군을 상대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라팔드 지방이 휴스톤 왕국에 할양됨에 따라 강제로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대부분 기사는 드로튼 왕국 본토로 떠났지만, 은퇴해 라팔드 지방에 남은 이들도 일부 있었다.
지금 봉기군을 이끄는 케이슨이 그중 하나였다.
“못 갑니다. 휴스톤 왕국군의 빛이여.”
케이슨은 딱딱한 얼굴로 레이몬드 일행을 막아섰다.
‘이런. 하필 저자가 막아서다니.’
레이몬드는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비텐 기사단은 강제로 해체되었다. 즉, 레이몬드 때문에 사라진 거다.
레이몬드를 철천지원수로 여길 게 당연한 일!
실제로 그는 흉흉한 눈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전염병은 분명 그대들 휴스톤 왕국 때문에 일어난 일일 터. 당장 휴스톤 왕국으로 돌아가십시오. 그것만이 하늘의 진노를 멈출 길입니다.”
레이몬드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럴 수는 없어.’
전염병은 하늘의 진노 따위가 아니다.
그가 물러나면 수많은 환자가 죽게 될 거다.
‘무력으로 제압해야 할까?’
위임관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병사들이 있다. 그 군사력이면 저 봉기군은 제압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될 거고, 쓸데없는 희생이 발생할 거다.
“저는 전염병을 해결하러 가는 겁니다. 길을 비켜주십시오.”
“전염병을 해결할 길은 하나입니다. 당신들이 휴스톤 왕국으로 돌아가는 것뿐!”
레이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염병 해결은 무슨.
그의 눈에는 상대의 꿍꿍이가 훤히 보였다.
‘저자는 이번 전염병을 기회로 커다랗게 봉기를 일으켜 라팔드 지방의 독립을 획책하고 있어. 그래야 다시 이전처럼 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레이몬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요주의 분탕 분자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라팔드 지방은 이제 갓 휴스톤 왕국의 땅이 된 상태이니, 여러 반체제 인사들이 있었다.
바로 기존에 권력을 누리던 기득권층들이었다.
백성 위에서 군림하다가 한 번에 몰락한 그들은 속으로 커다란 불만을 품고 있었고, 레이몬드 입장에서는 상당한 위협 요소였다.
‘기회를 보고 있다가, 이번 전염병을 이용해 수작을 부리려 작정하고 일어선 거야.’
레이몬드가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뜻밖의 도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다! 우리 영주님은 전염병을 해결하러 가는 거다!”
“너희야말로 꺼져라! 우리 영주님만 가면 다 해결될 테니! 길을 비켜!”
바로 레이몬드를 따르는 루인 영지 출신 병사들이었다!
“뭐?”
“감히?”
단장 케이슨을 비롯한 분탕 분자들은 흠칫 눈매를 올렸다.
하지만 이미 레이몬드에게 철저히 감화한 영지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칭호, ‘영지민들의 경외를 받는 영주’의 효과가 발현됩니다!] [영지민들이 당신에게 커다란 충성을 바칩니다!]“지금껏 너희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너희 따위 필요 없으니 꺼져!”
“우리에게는 영주님만 있으면 된다!”
그 외침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같은 영지민들이 레이몬드를 옹호하자, 반동분자들을 따라나섰던 봉기군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다른 영주면 몰라도, 저분이면 전염병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맞아. 저분이 전쟁 때 생긴 피해를 복구하려고 그렇게 애쓰신다는데.”
“나도 들었어. 세상에 저분처럼 존경할 만한 분은 없다고.”
그런 분위기에 케이슨을 비롯한 분탕 분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영지민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레이몬드가 라팔드 지방에서 보여준 헌신을 많은 영지민이 알고 있는 탓이었다.
“너, 너희는 조용히 해라!”
다급히 버럭 외쳤지만, 소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레이몬드는 분위기가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깨닫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잘됐어. 이 기회에 저놈들을 싸그리 정리하자. 어차피 백성을 생각하는 놈들도 아니니.’
내버려 두어봤자, 계속 분란만 일으킬 자들이다.
이 기회를 이용해 일망타진하기로 작정했다.
[전염병의 혼란을 더욱 악화시키는 ‘진상’을 퇴치하고자 합니다!] [스킬, ‘강철의 심장’이 발현됩니다!] [스킬, ‘강철의 심장’이 발현됩니다!] [스킬, ‘진상 특수기 : 엄단’이 발현됩니다!]레이몬드는 스킬의 도움으로 위풍당당하게 나섰다.
“비텐 전(前) 기사단장 케이슨 경. 그 외 다른 이들. 지금 당신들의 행동이 드로튼 왕국과 휴스톤 왕국의 협약을 어기는 짓임을 모르지 않을 겁니다. 이는 엄연한 중죄.”
‘중죄’를 언급하자 케이슨을 비롯한 이들은 흠칫하였다.
“우, 우리가 나선 것은 전염병 때문이었소. 그대들 휴스톤 왕국이 전염병을 일으켰으니……!”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만약 제가 전염병을 해결해 낸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
레이몬드는 말을 이었다.
여러 스킬의 도움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음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제 어머니의 성, ‘페닌’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나 레이몬드가 이 전염병을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겠으니.”
레이몬드는 분탕 분자들에게 선고했다.
“이 전염병을 해결하면, 당신들에게 근거 없이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후 라팔드 지방에서 영원히 추방당할 겁니다.”
* * *
레이몬드는 케이슨을 비롯한 분탕 분자들을 모조리 감옥에 투옥했다.
그들은 믿고 있던 영지민들이 흐지부지 해산한 터라, 제대로 대항도 못 했다.
‘이렇게 분탕 분자들을 해결하게 되었네. 어떻게 해야 할지 골치였는데.’
놈들이 스스로 무덤을 파준 덕에 쉽게 해결하게 된 셈이지만,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레이몬드 일행은 방호복을 입은 후 전염병의 첫 발병지인 랜슨 영지에 들어갔다.
“환자들이 모인 곳은 이곳입니다, 위임관님.”
마찬가지로 방호복을 입은 랜슨 영지의 영주가 레이몬드를 이끌었다.
“……!”
레이몬드 일행은 흠칫 멈추어섰다.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던 거다.
“끄어억.”
“허억, 허억, 으아악! 악마다! 악마다!”
환자들 모두 하나같이 고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40도 이상의 고열!
또한, 특이점은 착란 증상을 겪는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섬망(Delirium)?’
섬망!
신체가 상하며 정신에 혼돈이 오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섬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았다.
상당수의 환자가 착란 증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병 자체에 착란을 일으키는 증상이 있는 거야.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병인 건가?’
뇌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면 저런 착란 증상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환자들 모두 마비 등 신경계가 상한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정신 착란이 오다니?’
더욱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졌다.
그때, 한슨 등이 다가왔다.
“바이탈 확인했습니다. 대부분 쇼크 상태입니다.”
“맥박은?”
“빠릅니다. 그런데 불규칙한 맥박을 보이고 있습니다.”
‘불규칙?’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쇼크 때 맥박은 빨라진다.
하지만 규칙적인 맥박을 보이지 불규칙한 리듬을 보이진 않는다.
심전도를 확인하니 부정맥이 와 있었다.
‘심장 쪽에도 문제가 생긴 거야. 고열을 일으키면서 정신 착란 증상과 심장 쪽에 문제를 일으킨다니? 도대체 무슨 병인 거지?’
또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었다.
바로 힐을 받으면 상태가 악화한다는 점이다.
“더블 A급의 힐러 도리안 자작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수도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갔다고요?”
“네, 대책을 마련해 오겠다고.”
레이몬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도망간 거다.
‘그런 자를 왕국 두 번째 힐러라고.’
한심한 마음이 들었으나, 이미 떠난 자를 불러올 수는 없었다.
결국, 다른 힐러들을 불러 힐을 썼을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힐을 받으면 확실히 상태가 악화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힐의 등급이 높을수록 더욱 심하게 증상이 악화하였습니다.”
“힐의 등급이 높을수록요?”
“네. B급 이상의 힐을 받으면 확연히 악화하는 게 보였고, 반면, C, D등급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습니다.”
힐러들은 두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악마의 저주가 분명합니다. 모두 죽고 말 겁니다.”
힐러들은 진술 후 도망치듯 사라졌고 레이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힐의 등급이 높을수록 더 악화한다고? 분명, 여기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 텐데.’
레이몬드는 인정했다.
지금 이 전염병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병이란 것을.
하지만 결국 모든 병은 신체에 ‘어떠한 문제’가 일어나며 생기는 거다.
즉, 어떤 문제인지 그걸 알아내야 했다.
‘모두 동떨어진 증상이 아니야. 몸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겨 이런 증상이 연쇄적으로 생긴 걸 거야. 신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런 증상들이 생기지?’
그때, 한구석에서 놀란 외침이 들렸다.
“매, 맥이 늘어집니다, 마스터!”
“……!”
다급히 가보니 심정지가 오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사망했다.
“…….”
장내에 죽음 같은 침묵이 깔렸다.
모두가 레이몬드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레이몬드도 당장은 뚜렷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제길.’
레이몬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최대한 빨리 병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 그래야 이 환자들을 살릴 수 있어.’
지금 이 영지만 해도 70명이 넘는 환자가 있었다.
다른 영지까지 합치면 200명에 가까운 숫자였고, 그 숫자는 지금도 시시각각 증가하고 있었다.
“일단 바이탈을 잡고 있어주십시오. 수액 급속 주입하고, 에피네프린도 달아주세요. 경험적으로 페니실린도 투약해 주시고요.”
레이몬드가 내린 지시의 뜻은 이러했다.
어떻게든 생명을 붙잡아 시간을 벌어달라고.
“그사이.”
레이몬드는 굳센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이 병의 정체를 알아내겠습니다.”
* * *
하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고열.’
‘정신 착란.’
‘심장 문제.’
‘쇼크.’
아무리 머릿속 지식을 뒤져도 이런 증상을 동반하는 전염병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