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73
#닥터 플레이어 173화
‘이게 내 한계인 건가?’
레이몬드는 무력감에 입술을 짓깨물었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의학의 본고장 현대 지구에서도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는 병이 수두룩하다.
의학의 최고 거장들도 그러한데, 이제 그는 갓 전문의 수준일 뿐이다.
그러니 얼마든지 해결 못 하는 질병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마스터,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제자님.”
크리스틴이었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그냥 바람이나 쐬고 있었습니다.”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려다가 참았다.
다들 그에게 잔뜩 기대하고 있을 터. 낙담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런 그의 모습에 크리스틴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환자가 한 명 더 사망했어요. 추가로 어레스트가 임박한 환자들도 있고요.”
가슴이 콱 막히는 소식이었다.
레이몬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 때, 크리스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먼저 영지민들을 피난시키는 건 어떨까요?”
“……!”
레이몬드의 눈동자가 굳었다.
일단 사람들 먼저 피난시키자는 거다.
‘틀린 대책은 아니야. 하지만 지금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들은 모두 죽을 거다.
또한, 피난한다고 해서 전염병이 안 퍼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크리스틴도 그러한 문제점들을 알았지만, 그런 의견을 꺼낸 건 지금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레이몬드는 필사적으로 고민을 거듭했다.
‘생각해내, 레이몬드! 내가 해결하지 못하면 저 환자들은 모두 죽어. 약해 있을 때가 아니야! 어떻게든 생각해 내야 해.’
그런 레이몬드를 보며 크리스틴은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해내. 어쩌면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어.’
하지만 레이몬드도, 그녀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심지어 레이몬드는 ‘전문의의 판단’ 스킬을 써서 지력이 5점 상승한 상태인데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길, 현대 지구의 검사 도구들을 쓰면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의 머릿속에 최첨단 진단 도구들이 촤르륵 떠올랐다.
CT, MRI, PET, 그 외 수 없는 진단 검사 도구들.
모두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 그는 오로지 환자들의 증상과 기초적인 신체 검진만으로 모든 걸 알아내야만 하니 더욱더 막막했다.
‘단서로 삼을 내용이 너무 없어. 어떻게 더 검사할 수단이?’
레이몬드는 혹시나 해서 마켓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실망만 하였다.
이런저런 마법이 있었으나, 딱히 지금 상황에 도움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 마켓을 닫으려는 순간.
그의 눈에 한 스킬이 들어왔다.
‘이건?’
[법의학]분류 : 학문 스킬
숙련도 : D
-사체를 통해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는 학문입니다.
-기초적인 부검을 익히게 됩니다! 숙련도가 상승 시 더욱더 깊은 법의학 지식을 갖게 됩니다!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부검.
원인 미상의 사망 시 사체를 해부해 원인을 밝혀내는 일이다.
‘……이게 도움이 될까?’
모른다.
일반적인 질병은 사체에 특별한 흔적이 안 남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부검이 도움되는 경우는 보통 외상이나 타살이지, 이런 전염병이 아니었다.
‘섣불리 부검했다가는 괜히 시체만 모욕했다고 비난받을 수 있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레이펜타이나에서 시체 해부는 금기시되었다.
거기에는 치유의 탑이 역할이 컸는데, 치유의 탑은 시체 해부를 사자의 영혼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금지했다.
따라서 만약 부검했는데 소득이 없으면 거센 비난을 받을 것이다.
특히 그의 흠집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치유의 탑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환자들은 다 죽어.’
결국, 레이몬드는 결단을 내렸다.
“부검을 해보겠습니다.”
“……부…… 뭐요?”
“시체를 해부해 보겠습니다.”
“……!”
크리스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체를 해부한다니!
일반적인 관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사망한 환자 보호자한테 제가 설명하겠어요.”
“……꺼려지면 저 혼자 해도 괜찮습니다.”
레이몬드는 그녀를 배려해 말했다.
누구라도 시체를 해부하는 일은 싫을 테니까.
하지만 크리스틴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일이잖아요. 싫은 게 어디 있어요. 당연히 해야죠.”
그녀의 말에 레이몬드는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둘은 부검을 진행했다.
* * *
일단 보호자들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었다.
‘물론 내 권한을 이용하면 강제로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최대한 보호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시체를 부검하는 건, 가족을 두 번 잃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호자들은 부검을 거절하지 않았다.
레이몬드가 지금껏 보인 모습 덕분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제 아들의 시체를 바치겠으니, 제발 이 전염병을 해결해 주십시오!”
레이몬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시체를 넘기며 하는 부탁이다.
저 음성에 얼마나 큰 슬픔이 들어 있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슬픔에 그가 표할 수 있는 위로는 단 하나.
이 전염병을 해결하는 것뿐이다.
“네, 알겠습니다.”
레이몬드는 굳건히 약속했다.
“반드시 해결해 내겠습니다.”
* * *
부검은 레이몬드와 크리스틴이 진행했다.
한슨도 함께하길 원했으나, 누군가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어야 했다.
레이몬드는 시체들을 향해 짧게 묵념 후 메스를 들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부검은 사체를 해부해 사망의 원인을 추정하는 거다.
이런 경우, 뚜렷이 짐작 가는 원인이 없었기에 부검의 범위가 넓어졌다.
‘최소 뇌, 심장, 복부, 흉강 내 장기 등을 모두 살펴야 해.’
레이몬드는 ‘부검학’의 지식에 따라 손을 움직였다.
첫째로, 양쪽 어깨에서 치골까지 Y자 형태로 길게 절개해 복강을 열었다.
이후 늑골을 절단해 흉강을 열었다.
‘이제 장기 하나하나를 다 살펴야 해.’
심장, 폐, 간, 비장, 위, 신장, 췌장을 모두 적출해 살펴야 한다.
‘허투루 보면 안 돼. 중요한 단서를 놓칠 수도 있어.’
레이몬드는 그런 마음으로 적출된 장기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크리스틴이 그런 레이몬드를 보조했다.
“……괜찮으십니까, 제자님?”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솔직히 완전히 괜찮지는 않았지만, 크리스틴은 일부러 당차게 답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집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부검에 집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복강과 흉강에서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은 거다.
‘심장이 커져 있지만, 이걸 원인으로 보기는 어려워.’
그렇다면 이제 다른 부위를 살필 때다.
“두개골을 열겠습니다.”
“……!”
두개골. 머리를 열겠다는 거다.
크리스틴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레이몬드도 끔찍한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야 했다.
레이몬드와 크리스틴은 숨을 들이켜고는 손을 움직였다.
톱으로 두개골을 잘랐고, 뇌가 드러났다.
‘착란 증상이 있었으니, 뇌에 단서가 있을 수도 있어.’
그런 마음으로 조심조심 뇌를 꺼내었다.
뇌는 강도가 굉장히 약한 장기이다. 두부와 거의 비슷한 정도. 조금만 힘을 주어도 파삭 부서져 버린다.
최대한 신경을 써서 뇌의 각 부위를 해부하였으나, 역시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아무런 이상 없었다.
‘……뭐지? 이 병의 정체는?’
레이몬드는 초조한 얼굴을 하였다.
복강, 흉강, 심지어 뇌까지 열었는데 아무런 단서가 없는 것이다.
‘부검으로도 밝혀내지 못하는 건가?’
크리스틴도 어두운 얼굴을 하였다.
레이몬드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밝혀내지 못하다니.
‘정말 답이 없는 걸까?’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레이몬드는 시체의 다른 부위를 보고 있었다.
아직 부검하지 않은 유일한 부위.
목이었다!
‘하지만 목에는 딱히 지금과 같은 증상을 일으킬 만한 장기가…….’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레이몬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깐. 하나 있잖아. 목에도 중요한 생체 장기가!’
목은 이른바 머리와 신체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따라서 혈관, 근육, 식도, 기도, 신경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따로 생체 기능을 조절하는 장기는 없었다.
단 하나, 갑상선을 제외하면.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갑상선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레이몬드는 조심스럽게 목을 절개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커다랗게 부어 있는 갑상선의 모습을!
“마스터, 이건? 원래 이렇게 커다란가요?”
크리스틴이 놀라 물었다.
“아닙니다. 정상보다 훨씬 커다랗습니다.”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그의 머릿속에 지금껏 환자들의 증상이 촤르륵 스쳐 지나갔다.
‘고열. 심장 이상. 착란 증상. 힐을 받고 악화하는 증상.’
퍼즐이 맞혀지듯, 그 증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는 현미경에 갑상선 조직을 올렸고, 침음을 흘렸다.
갑상선 조직이 온통 염증 세포로 뒤덮인 채 증식되어 있었다!
그의 입에서 하나의 진단명이 흘러나왔다.
“갑상선 폭풍……!”
드디어 괴질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 *
이번 괴질이 모두의 두려움을 샀던 이유는 하나다.
힐을 받고 오히려 악화한다는 점.
레이몬드도 그 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생명력이 넘쳐서 사망하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모든 병은 결국 사람의 생명력을 꺼트려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단 하나.
생명력이 넘쳐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었다.
바로, 갑상선 호르몬이 폭발하듯 넘치는 ‘갑상선 폭풍(Thyroid storm)’이었다.
갑상선 호르몬.
우리 몸의 연료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부족하면 기운이 처지게 되며 여러 문제가 생기고, 반대로 과다해지면 기운이 넘치며 반대의 문제가 생긴다.
갑상선 폭풍은 이 갑성선 호르몬이 제방이 터진 듯 넘쳐 흐르는 상태를 뜻한다.
‘지금과 딱 똑같은 증상이 와! 고열, 착란, 쇼크, 심장 문제!’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힐을 받고 사망한 것도 갑상선의 문제이기 때문이었어.’
힐은 생명력을 강화하는 힘이다.
따라서, 몸의 내연 기관 역할을 하는 갑상선의 기능을 촉진하게 되니, 환자들이 악화한 것도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왜 갑상선 폭풍이? 갑상선 폭풍은 전염병이 아니잖아?’
레이몬드는 당황한 얼굴을 하였다.
갑상선 폭풍은 전염성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집단 발병이라니? 말이 되지 않았다.
‘일단 환자들을 치료하자.’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갑상선 기능을 억제하는 요오드를 투약한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떤 수단을 써도 효과가 없던 환자들이 호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역시 레이몬드 님이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영지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레이몬드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왜 이런 집단 발병이 생겼는지 알아내야 해.’
치료법을 알아냈을 뿐, 질병을 근절한 건 아니었다.
아직도 새로운 환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어떤 경로로 질병이 퍼진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이 사태를 종결시킬 수 있었다.
역학 조사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