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74
#닥터 플레이어 174화
‘원래는 병의 정체를 밝혀내면 자연스레 전염 경로도 알게 되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니.’
갑상선 폭풍은 사람 간에 옮는 병이 아니다.
그러니 어째서 집단 발병하게 된 것인지 역학 조사를 통해 알아내야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집단 발병한 거지? 설마 갑상선을 자극하는 신종 바이러라도?’
지구에는 이런 갑상선 폭풍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없다.
하지만 이곳 레이펜타이나는 지구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몬스터와 아인종의 존재 때문에 훨씬 다양하고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존재한다.
‘특히 마물과 인간의 중간 단계인 ‘휴먼형 몬스터’ 때문에 지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전염병이 출몰하기도 해. 마물에게나 유행할 병이 휴먼형 몬스터의 몸을 거쳐 사람에 대한 전염력을 획득하기도 하니까.’
레이몬드는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정말 신종 바이러스인 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성이 떨어져 보였다.
일단 환자들 모두 호흡기 증상이 없었다.
공기를 통해 전파되었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분비물에 의해 전파되는 바이러스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지는 못해. 그렇다면 뭘까?’
레이몬드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병이 발병한 세 영지 간의 공통점을 찾아야 했다.
‘각자 다른 환경의 영지야. 랜슨 영지는 평지에서 밀 농사를 주로 짓고, 크란 영지는 산에서 특수 작물을 주로 재배하는 영지야. 마지막 보일 영지는 작은 광산이 있는 영지이고.’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고민하던 레이몬드는 수정구로 루인 성으로 연락을 취했다.
혹시나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이다.
“혹시 새롭게 병이 생긴 영지는 없나요?”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메빈슨이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병이 생긴 영지는 없는데, 이런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라이폰 영지의 가축들이 단체로 패사했다고 하더군요.
“……!”
레이몬드는 흠칫 눈을 크게 떴다.
‘가축이? 어째서?’
인간에게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동물에게 대부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가끔 인수공통감염병이 있지만, 드물었다.
‘도대체 뭐지?’
레이몬드는 지도를 보며 고심했다.
‘크란 영지, 랜슨 영지, 보일 영지, 라이폰 영지.’
병이 출현한 영지들의 지도를 뚫어지라 보던 중이었다.
레이몬드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선?’
네 영지를 쭈욱 이으면 하나의 선 모양이었다.
그것도 질병이 발병하기 시작한 순서대로!
‘아니, 선이 아니야! 저 영지들을 따라 헤일 강이 흐르고 있어!’
헤일 강.
케널 산맥에서 기원하는 작은 강으로 네 영지의 식수원이었다.
레이몬드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하였다.
‘설마? 저 강에 질병을 일으키는 물질이?’
갑상선 폭풍을 일으키는 물질이라니!
의학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의학 지식에도 그런 물질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몬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아니야. 한 가지 가능한 경우가 있어. 바로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야!’
내분비계 교란 물질, 즉, 환경 호르몬이다!
환경 호르몬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은 아니다. 화학 합성물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독성 물질이며 체내에 들어오면 호르몬 계통을 교란시킨다.
대표적으로 다이옥신, DDT 등이 있다.
‘물론 이렇게 갑상선 폭풍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교란 물질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몰라. 이곳은 레이펜타이나이니까.’
레이펜타이나에서도 내분비계 교란 물질은 만들어진다.
바로 마법에 의해!
‘연금술, 여러 시약을 사용한 고위험 마법 사용, 마법 물품 제작, 마나 정련 등 여러 일에서 유독 물질이 나오곤 해.’
마법은 마나를 이용해 현실을 비트는 거다.
따라서 부산물로 유독 물질이 흔하게 발생한다.
마법에 따라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어떤 경우 굉장히 유독한 경우도 많아 이런 갑상선 폭풍을 일으키는 물질이 생길 수도 있다.
‘확인해 봐야 해!’
그가 지금 있는 랜슨 영지에도 헤일 강이 흐르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당장 헤일 강으로 향했다.
하지만 육안으로 봐서는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마탑에 보내 분석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 세월에?’
결과를 기다릴 때까지 최소 7일은 걸릴 건데 그럴 시간 따위 없었다.
‘지금 내가 확인해 보겠어! 스킬 구입!’
[마법 스킬, ‘디텍션 마나’를 구입하였습니다!] [스킬 포인트가 150점 소모됩니다!] [디텍션 마나]분류 : 보조 스킬(마법)
마법 등급 : 스탠다드
숙련도 : D
-마나를 디텍션 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더욱 능숙한 탐색이 가능합니다!
‘레이펜타이나의 내분비계 교란 물질은 대부분 마법의 부산물이야. 따라서 마나를 함유하고 있을 거야!’
레이몬드는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특수 안경을 낀 듯 시야가 변했다.
세상이 무색으로 변했고, 마나를 포함하고 있는 물질만이 형형하게 빛나 보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악했다.
번뜩.
강물 곳곳에서 마치 칼날의 혈광이 비치듯 무겁고 짙은 빛깔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나를 함유한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었다.
드디어 괴질의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 * *
정확히 어떤 성분인지는 분석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갑상선 수용체를 자극하는 물질일 거야. 마나가 함유되어 극소량만으로도 폭발적으로 수용체를 자극했을 테고. 그래서 갑상선 폭풍이 일어난 것일 거야.’
레이몬드는 교란 물질의 성분을 짐작했다.
어쨌든 원인을 확인했으니 대처법은 간단했다.
“당장 헤일 강의 물을 마시는 걸 중단하십시오!”
사람들은 그 지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대의 상식상 강물을 마시고 병이 생기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전염병이 공기나, 불순한 기운, 하늘의 저주, 죄악 등으로 발생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시를 거절하지 않았다.
레이몬드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레이몬드 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올바른 지시를 내려주셨겠지.’
‘레이몬드 님은 우리 라팔드의 빛이니까!’
어느덧 레이몬드를 자신들의 빛이라고 부르는 라팔드 지방의 사람들이었다.
“보일 영지의 영주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 주십시오.”
전염병이 생긴 3개의 영지 중 레이몬드에게 끝까지 협조 요청을 하지 않은 영지가 있었다.
보일 영지였다.
리머튼에게 열렬한 충성을 바치는 귀족으로 끝까지 레이몬드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다.
그래서 레이몬드는 보일 영지의 경우, 환자들만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와 치료했다. 보일 영지의 영주도 환자들을 데려가 치료하는 것까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보일 영지의 영주는 며칠 전 사망했습니다.”
“네?”
“병이 발병했다고 합니다. 급속도로 악화해 백작님께 올 새도 없이 사망했다고. 일가족 모두 다 같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
뜻밖의 비보에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일가족 모두가 사망해 영지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으니, 앞으로 보일 영지의 권한은 위임관님, 아니, 각하께 있습니다.”
랜슨 영지의 영주는 레이몬드에게 ‘각하’란 단어를 썼다.
각하(Your grace).
귀족 중에서도 최고위 직위를 지닌 이들에게 붙이는 존칭이었다.
군의 사령관, 재상, 제후, 변경백 등이 이에 속한다.
즉, 랜슨 영지의 영주는 레이몬드를 제후로 칭한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전염병을 해결한 공을 세웠으니, 페닌 백작님이 제후가 되는 건 명명백백한 일이야. 앞으로 잘 보여야 해.’
랜슨 영지의 영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그는 150만 페나의 목줄 때문에 레이몬드에게 거역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이렇게 된 이상, 철저히 레이몬드에게 복종하는 게 나았다.
‘앞으로 내 미래는 페닌 백작님께 달렸어. 최대한 잘하자!’
한편, 레이몬드는 그런 랜슨 영지의 영주를 흘겨보았다.
‘하여튼. 날 무시할 때는 언제이고. 저런 모습을 보니…….’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나쁘진 않네.’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이전까지 자신을 무시하던 상대가 아부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는 속탈한 성인(聖人)이 아니니까.
‘이게 제후가 되어 누릴 권력이겠지? 흐흐.’
지금껏 경멸의 시선만 받다가 저런 아부(?)를 들으니 내가 드디어 이만큼이나 성공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이미지 메이킹을 잊지 않았다.
힐러로서도, 제후로서도 더욱 성공하려면 사람들에게 항상 좋은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
‘약간의 성공에 도취해 자만하면 안 돼. 내 목표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니까.’
레이몬드는 짐짓 엄격한 얼굴을 하였다.
“각하라니. 너무 이른 말씀인 것 같군요. 사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닌데.”
“배, 백작님.”
“지금은 그런 이야기보다 환자와 백성을 위하는 게 우선입니다. 명심해 주세요.”
그 호령에 랜슨 영주를 비롯한 이들이 크게 감탄한 건 당연한 일!
어쨌든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건 맞았다.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알아내 추가적인 발생을 차단해야 했다.
‘한 가지 짐작되는 곳이 있어.’
레이몬드는 지도를 바라봤다.
헤일 강이 기원하는 케널 산맥이 보였다.
‘케널 산맥은 깊고 넓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야. 하지만 딱 한 곳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어.’
레이몬드의 눈이 무거워졌다.
‘바로 보리슨 영지야.’
보리슨 영지!
마정석 광산이 발견된 곳이었다!
‘내분비계 교란 물질은 마법과 관련한 부산물이야. 보리슨 영지에 있는 마정석 광산에서 유독 물질이 생겨 강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있어.’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휴스톤 왕국의 사례는 아니었고, ‘철(鐵)의 제국’에서 마정석을 채취하다가 무언가 처리를 잘못해 주변 영지에 끔찍한 괴질이 집단 발병했던 것이다.
마침 시기도 딱 맞았다.
보리슨 영지에서 마정석을 채취하기 시작한 후 집단 발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가지 더 의심 가는 사안이 있었다.
‘보리슨 영지의 마정석, 하얀 수정에는 이상하게 불순물이 많이 섞인 것 같습니다.’
과거 레이몬드는 전공 포상으로 보리슨 영지를 받으려고 했다. 그때 들은 내용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순물.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 나온 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한 레이몬드는 순간 든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잠깐. 만약 보리슨 영지의 마정석 광산 때문에 이런 사달이 일어난 게 맞으면, 나 망할 뻔했던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