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75
#닥터 플레이어 175화
원래 보리슨 영지를 받기로 했던 건 레이몬드였다. 그런데 제후 후보가 되며 바뀌게 된 것이다.
만약 원래 예정대로 보리슨 영지를 받았으면, 폭삭 망할 뻔했다.
‘어쨌든 지금 당장 마정석 채취를 중단시켜야 해!’
레이몬드는 급히 보리슨 영지의 영주에게 연락을 취했다.
보리슨 영지의 영주는 트렌비 백작이었다.
그런데 트렌비 백작이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채취 중단? 웃기는 소리 하지 말도록.
레이몬드의 지시를 거절한 것이다.
* * *
트렌비 백작.
레이몬드에게 반기를 들었던 영주 중 우두머리격의 인물이었다.
차후 레이몬드를 몰아내고 제후가 되려는 야망을 꿈꾸던 인물.
그런 만큼 레이몬드의 지시에 강한 반발을 보였다.
-본 영지의 마정석 광산에서 그런 독극 물질이 나왔다는 증거가 어디 있지?
“여러 정황상 귀 영지의 마정석 광산이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증거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트렌비 백작은 흉흉하게 말했다.
-어떤 증거도 없으면서 본 영지의 생명줄인 마정석 광산을 폐쇄하라니. 경솔하기가 그지없군.
지금 트렌비 백작이 이러는 건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레이몬드에 대한 반발감.
또한, 그것 말고도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마정석 광산을 폐쇄하면 보리슨 영지는 완전히 망할 테니.’
보리슨 영지는 마정석 광산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영지이다.
일개 작은 장원만도 못했다.
‘더구나 마정석 채취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자한 돈도 있을 테니, 절대 물러날 수 없겠지.’
마정석 채취는 그냥 삽으로 돌을 캐내는 게 아니다.
대규모 마법 설비가 필요했다.
마탑의 성격상 설치 비용으로 어마어마한 비용을 물렸을 게 분명한 터, 마정석 채취를 중단하면 트렌비 백작은 폭삭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 조금 불쌍하네.’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자신이 저런 처지가 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오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놔둘 수는 없어.’
가만히 놔두면 계속해서 유독 물질이 헤일 강을 오염시킬 거다.
최악에는 강이 완전히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
‘아직은 괜찮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을 복구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면 헤일 강이 흐르는 영지들은 그야말로 죽은 땅이 되어버린다. 저 멀리 하류까지 생각하면 총 6개의 영지나 되었다.
“질병이 발병한 시점, 위치 등을 고려할 때 귀하의 마정석 광산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마정석 채취를 멈춘 후…….”
하지만 트렌비 백작은 단호히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증거를 가져오도록. 근거 없는 권고는 따르지 않겠다.
레이몬드는 결국 딱딱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트렌비 백작, 본인은 지금 국왕 전하의 권한을 대행하는 위임관입니다. 그런 본인의 말을 거역하는 건, 국왕 전하의 권위를 무시하겠다는 겁니까?”
-…….
그 엄포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던지 트레비 백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렇다면, 좋다. 마탑에 연락하겠다.
“……뭐라고요?”
-난 네놈을 믿을 수 없는 터. 마탑에 정식으로 요청해 검수를 받겠다. 그때 이상이 확인되면 광산을 폐쇄하겠다.
그러며 통신이 꺼져버렸다.
‘마탑에 검수를 받겠다고?’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너무 오래 걸리잖아?’
최소 보름.
마탑의 마법사가 도착하는데 예상되는 시간이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해당 분야의 전문 마법사가 먼 곳에서 와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빨리 와도 열흘은 넘게 걸리리라.
그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 전에 증거를 찾아야 해. 마정석 광산이 원인이라는.’
하지만 트렌비 백작이 저런 식으로 나오면 마정석 광산을 직접 조사하는 건 어려웠다.
‘다른 방법으로 증거를 확보해야 해.’
다행인 건 꼭 마정석 광산을 조사하지 않아도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있다는 점이었다.
레이몬드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케널 산맥.
그중 마정석 광산이 있는 보리슨 영지 주위를 역학 조사하면 증거를 얻을 수 있을 거다.
* * *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케널 산맥은 위험했다.
괜히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아니었다.
광산이 있는 보리슨 영지 주위에만 사람이 모여 살고, 나머지는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마경이었다.
‘역학 조사 갔다가 몬스터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
레이몬드는 소심쟁이답게 겁이 덜컥 났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겁을 더욱 부추겼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주군! 케널 산맥의 깊은 곳은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마경! 주군께서 다치시기라도 하면 이 늙은이, 가슴이 무너질 테니! 크흑, 눈물이!”
메빈슨은 레이몬드가 죽을 곳을 찾아가기라도 하는 듯 눈물을 흘렸고,
“제가 목숨을 걸고 모시겠습니다, 주군! 이 한목숨 바쳐서라도 주군의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겠습니다!”
엘무드는 죽을 전장에 나가듯 결연하게 외쳤다.
‘시끄러워! 더 무섭잖아!’
레이몬드는 속으로 빼액 외쳤다.
‘으……. 다른 방법은 없나?’
하지만 크리스틴, 한슨이 이렇게 말하였다.
“엘무드 경, 꼭 마스터를 잘 부탁드려요. 말리고 싶지만…… 듣지 않으실 테니.”
“맞습니다. 마스터는 환자를 위해서라면 지옥 불에라도 걸어 들어갈 분. 엘무드 경께서 잘 지켜주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마스터는 환자 바보님이세요!”
레이몬드에게 묻지도 않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제자들이었다.
‘아니거든, 이 바보들아?!’
레이몬드는 울상을 지었지만, 그들은 알아서 탐사 준비를 하였다.
엘무드는 호위기사단을 꾸렸고, 크리스틴은 필요한 조사 장비를 준비했다. 한슨은 탐사 도중 먹을 소고기 도시락을 쌌다.
그렇게 어어, 하는 사이에 레이몬드는 케널 산맥의 입구에 서 있게 되었다.
‘……진짜 올라가야 하는 거야?’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시커먼 나무들이 산맥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마물이 튀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젠장, 위험한 거 싫은데. 난 언제 이런 고생을 안 할 수 있는 거야?’
팍팍 한숨을 내쉬고는 다짐했다.
반드시 제후가 되어 고생한 보답을 받자고!
‘이렇게 고생하는 만큼 반드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려주겠어!’
* * *
크리스틴, 한슨, 린든은 환자 치료를 위해 남아 있기로 했다. 대신 다른 제자들과 호위기사가 그를 따랐다.
탐사를 시작한 레이몬드는 최대한 서둘렀다.
‘마물을 만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탐사를 끝내자.’
호위 기사는 10명 정도였다. 너무 많은 인원을 동행할 경우 오히려 몬스터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어서였다.
대신 최대한 정예로 꾸렸다. 최정예 기사 10명이니 어지간한 몬스터는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겁쟁이 레이몬드는 마경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불안했다.
‘얼른 서두르자.’
다행히 체력 스탯이 올라가 산맥을 오르는 데 지장은 없었다.
레이몬드는 스탯창을 바라보았다.
[스탯]체력 : 78
감각 : 70
여기서 10점은 평화유지단 클래스의 스탯 보너스를 받은 것이긴 하지만 무려 70이 넘었다!
‘다행이야. 최대한 빨리 올라갔다가 오자!’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재촉했고, 엘무드를 비롯한 호위 기사들은 감동했다.
‘역시, 주군. 영지민들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남들을 위해서 지옥 불에라도 뛰어들 분이라는 말이 진짜였어. 우리가 저 바보같이 위대한 분을 지키자!’
그런 레이몬드의 간절한(?) 노력 덕분일까? 금방 단서를 반견할 수 있었다.
산맥 초입에서 곧바로 이변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백작님, 저건?”
“산짐승들이 죽어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계곡 주위로 여러 짐승이 죽어 누워 있었다!
‘같은 병이 발병한 거야! 이런 독성 물질은 인간, 동물 가릴 것 없이 해를 끼치니까.’
레이몬드는 조사 방향을 정했다.
“동물들이 죽어 있는 계곡 방향을 따라 계속 올라가겠습니다.”
이 넓은 산맥을 다 뒤지는 건 불가능했다.
동물들의 사체를 역으로 따라 올라가다 보면 원인 지점이 나올 거다.
레이몬드는 이 흔적이 보리슨 영지로 이어질 거라 짐작했다.
그 짐작대로 동물들의 사체를 점점 따라 올라갈수록 보리슨 영지가 가까워졌다.
심증이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마정석 광산 밑을 흐르는 계곡물을 분석해 보자. 그러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거야.’
마정석 광산을 중심으로 상류 계곡과 하류 계곡의 물을 확인하면 됐다.
만약 상류가 깨끗한데, 마정석 광산을 지나는 시점부터 교란 물질이 검출되면 명확한 증거가 될 것이다.
‘빨리 확인하고 내려가자. 으으. 무서워.’
다행히 지금까지는 마물을 안 만났지만, 불안불안했다.
하늘 높이 검게 자라난 수목이 뒷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기 상황입니다!] [‘치료사의 호신술’이 발현됩니다!]레이몬드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설마 마물?’
하지만 별달리 나타난 마물은 없었다.
‘뭐지?’
곧 메시지의 뜻을 알 수 있었다.
파앙!
거친 파공음이 들렸다! 화살이었다!
“……!”
“주군, 위험합니다!”
깜짝 놀라, 몸이 굳는 사이 엘무드가 한 걸음 빠르게 움직였다.
싹둑! 검으로 화살을 잘라내 버렸다.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호위 기사들이 뒤늦게 검을 빼 들었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레이몬드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뭐지? 마물이 아니라, 화살이라니? 설마 트렌비 백작이 내게 앙심을 품고 습격을 시도한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레이몬드는 두려운 마음을 숨기며 외쳤다.
“트렌비 백작? 감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모습을 드러내십시오!”
하지만 전혀 다른 음성이 나무 사이로 들려왔다.
“트렌비 백작?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군.”
“일족의 원수 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모습을 드러내다니! 죽여주마!”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하나둘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묘인족?’
나타난 이들을 보고 레이몬드는 깜짝 놀랐다.
인간형 신체, 고양이 귀, 꼬리.
수인족, 그중에서도 묘인족이었다!
‘묘인족이 왜 갑자기?’
레이몬드는 덜컥한 얼굴을 하였다.
‘케널 산맥에 수인족이 산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수인족은 몬스터와는 다르다.
명확한 이성을 지니고 있고, 인간형의 신체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그들은 몬스터로 분류되지 않는다.
아인종.
유사 인류라 분류되었다.
다른 아인종이 그렇듯, 수인족들은 보통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서 살아갔다.
거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데, 갑자기 저런 적대적인 습격이라니?
‘묘인족은 온건한 편이라 인간을 습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왜 저러는 거지?’
그때, 엘무드가 말했다.
“주군. 적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몸을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엘무드는 평소와 다르게 무겁고 진중한 얼굴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나타난 묘인족의 수는 무려 50명!
수인족이 개체마다 강한 전투력을 지닌 걸 고려하면, 레이몬드가 데려온 전력만으로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적의 수가 많습니다. 저희가 목숨을 바쳐 막을 테니, 주군께서는 몸을 피하십시오.”
엘무드는 비장한 얼굴로 유언을 남겼다.
“짧지만, 모실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다음 생애에는 더욱더 주군을 가깝게 섬길 수 있길 바라며…….”
“……너 자꾸 불안하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