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1
#닥터 플레이어 21화
“무, 무슨……! 지금 제정신입니까? 우리 라울 치료원입니다! 수도 최고의 치료원이라고요!”
직원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방방 뛰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거절을?”
“제 치료원을 차릴 것이거든요.”
“……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라울 치료원의 직원을 향해 레이몬드는 다시금 또렷하게 말했다.
“제 치료원을 만들 겁니다.”
“……!”
직원은 비웃음을 지었다.
“치료원을 직접 차린다고요?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요. 쉽지 않을 텐데요? 차라리 우리 라울 치료원에 와서 경력을 쌓은 후 차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이미 결정한 일입니다.”
직원은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껏 좋은 기회를 주었더니 어리석기는. 쯧.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십시오.”
그러고 사라진 스카우트 직원을 보고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처음 치료원을 차리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방금 사라진 직원의 말처럼 명문 치료원에 들어가 경력을 쌓은 후 독립하는 게 훨씬 현명했다.
‘일반적 경우는 말이야. 하지만 내 경우에는 아니야.’
레이몬드는 냉철하게 생각했다.
‘최대한 많은 환자를 봐야 해. 그러려면 라울 치료원에 가면 안 돼.’
레이몬드는 스스로의 수준을 알고 있었다.
‘초보 레지던트’.
그 직업 등급처럼 한없이 모자랐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환자를 봐야 했고, 그러려면 라울 치료원에 가면 안 됐다.
‘분명 다른 상급 치료사들에게 치여 환자를 볼 기회가 줄어들 거야. 특히나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의술이니 더더욱 그렇겠지. 그러니 남들 눈치 보지 않고 환자를 볼 수 있게 독립해야 해.’
그때, 곁에 있던 한슨이 걱정스레 물었다.
“독립이라니. 괜찮겠습니까?”
“응. 생각해 둔 게 있어.”
“하지만 이 근방에는 치료원을 차릴 만한 자리가…….”
“아니, 한 군데 있어.”
레이몬드는 짧게 답했다.
“베이 구역. 그곳에 치료원을 차릴 생각이야.”
한슨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베이 구역은 빈민가였으니까!
“설마, 선배?”
“응, 빈민가에 치료원을 차릴 거야.”
빈민가.
그 어떤 치료사도 가지 않으려는 곳이다.
‘그러니 환자도 수도 없이 볼 수 있겠지.’
물론 굉장히 고생스러울 거다. 돈도 얼마 못 벌 거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돈을 버는 것보다 실력을 키우는 게 먼저야. 최고의 치료사가 되겠어. 최고의 치료사가 되면 부귀영화와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올 테니까.’
레이몬드는 느끼고 있었다.
힐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의술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고작 그저 그런 치료사로 끝낼 생각 따위 없었다.
반드시 최고의 치료사가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굉장히 어렵고 고생스럽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해낼 거다.
그래서 최고의 치료사가 되고, 부귀영화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고 말 거다.
그렇게 레이몬드는 굳게 다짐했다.
* * *
웅장한 왕성.
2왕자 카이른 말고, 레이몬드를 주목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3왕자 리머튼!
2왕자와 더불어, 강력한 왕위 후계자로 꼽히는 이였다.
“레이몬드가 라울 치료원의 제안을 거절하고 새로운 치료원을 차리기로 했다고?”
“네, 전하.”
3왕자 리머튼은 이지적인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냉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두뇌를 장점으로 꼽는 3왕자는 지적인 이미지였다.
“의외군. 당연히 라울 치료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기껏 전하께서 신경 써주셨는데.”
수하가 언짢다는 듯 말했다.
사실 라울 치료원이 레이몬드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한 건 이유가 있었다.
3왕자 리머튼이 넌지시 권했던 것이다.
‘어거스트 백작의 일이 고마워 좋은 기회를 주려고 했던 건데. 어쩔 수 없군.’
리머튼은 고개를 저었다.
기껏 배려해 주었는데, 굴러온 복을 차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라울 치료원의 가르침을 받고 그럭저럭 쓸 만해지면, 훗날 치료사로 곁에 두어 쓸까도 했는데, 그럴 일은 없겠군.’
리머튼은 레이몬드의 ‘의술’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평가했다.
최고의 치료사들이 모여 있는 라울 치료원에서 가르침을 받으면, 제법 쓸 만한 치료사가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차버리다니.
리머튼은 레이몬드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어디에 개업한다지?”
“수도입니다.”
“그렇군. 수도 어디지?”
리머튼은 흥미가 사라진 음성으로 물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레이몬드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흐려졌다.
작은 치료원을 개업한 힐러의 삶은 거기서 거기였다.
별것 없는 환자를 보며, 별것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매사 자로 잰 듯 냉철한 리머튼은 그런 별 볼 일 없는 치료사에게 낭비할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 구역입니다.”
“……!”
수하의 입에서 튀어나온 장소를 듣는 순간, 리머튼의 눈이 커졌다.
“……뭐?”
“저도 잘못 들었나 했지만, 맞습니다. 베이 구역에 치료원을 차린다고 합니다.”
리머튼은 잠시 침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베이 구역이라고?’
베이 구역!
수도 북서부 외곽 쪽 자리한 빈민가였다.
문제는 이 구역이 보통 평범한 빈민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완전히 무법천지라 어지간한 귀족들은 발걸음조차 하지 않는 곳인데?’
약 100년 전쯤, 휴스톤 왕국은 숙적인 드로튼 왕국과의 전쟁에 패하며 남부의 상당한 영토를 빼앗겼다.
그때 고향을 잃은 대규모의 난민이 수도 외곽으로 유입되었고, 거대 빈민가를 형성하였다. 그곳이 바로 베이 구역이었다.
전쟁에 패해 나라 전체가 휘청이던 상황이라 왕국은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100년이 흐른 작금에 와서는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악성 종기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온갖 흉흉한 일이 일어나는 곳에 치료원을 차리겠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식인지, 만용인지.”
수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레이몬드도 무언가 뜻이 있겠지. 너무 그렇게 비웃지 말도록.”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결정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실 리머튼도 수하와 생각이 같은 건 마찬가지였다.
‘베이 구역에 치료원이라니. 절대 무리지.’
베이 구역은 단순한 빈민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어쩌면 왕권 다툼의 추가 기울 수도 있는 중요한 장소였다.
과거, 국왕 오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베이 구역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자가 있다면, 그자에게 어떤 보상이든 내리겠다.’
오로지 휴스톤 왕국을 부흥시키는 데 온 일평생을 바친 오든에게 베이 구역은 해결하지 못한 난제와도 같았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왕자들은 단번에 깨달았다.
베이 구역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우면 국왕의 환심을 살 수 있음을.
누구도 못했던 일을 해내는 거니, 단번에 왕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고, 차기 왕권에도 훌쩍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앞다투어 베이 구역을 공략하러 나섰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지. 형님도, 막내도, 나도.’
리머튼은 씁쓸히 생각했다.
카리스마의 2왕자 카이른도, 냉철하고 지적인 3왕자 리머튼도, 강력한 검술이 장점이 4왕자 세이틸도.
누구도 베이 구역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리머튼의 경우는 배후를 알 수 없는 이에게 암살 위험까지 당했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
리머튼은 당시의 일이 떠올라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리머튼은 베이 구역을 안정시키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했다.
‘안정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차라리 깨끗이 없애버려야 해.’
그게 리머튼이 내린 결론이었고, 국왕 오든에게 그 사실을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조언을 들은 오든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들도 휴스톤 왕국의 신민들이다.’
리머튼은 그날 자신을 바라보는 왕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국왕 오든은 베이 구역을 없애라는 리머튼을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리머튼이 중요한 무언가를 모르고 있다는 듯 혀를 차는 듯한 기색이었다.
어쨌든 국왕 오든은 베이 구역의 빈민들에게 특별한 집착을 보였다.
‘베이 구역을 안정시키는 공만 세울 수 있다면, 차기 왕권에 훌쩍 다가갈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이지.’
3명의 왕자는 이미 옛적에 포기했다.
어쨌든 최악의 빈민가가 베이 구역이었다.
그런 곳에 치료원을 개업하겠다니.
‘어리석군.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가?’
리머튼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레이몬드를 더 눈여겨볼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고 했다.
리머튼은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한 레이몬드가 훗날에도 크게 성장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분명 빈민가에서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리라.
* * *
그런 생각은 리머튼만이 아니었다.
레이몬드를 아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였다.
“베이 구역이라고? 왜 하필 그런 곳을?”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심지어 이렇게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잘 어울리긴 하네.”
“그러게. 더러운 사생아이니, 빈민가만큼 편한 곳이 없겠지. 딱 잘 맞을 것 같은데?”
하지만 레이몬드를 걱정해 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바로 레이몬드에게 치료받았던 환자들이었다.
“아이고, 치료사님. 빈민가에 가신다고요? 안 됩니다. 위험해요!”
“가서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요!”
구호소에서 일하며 적지 않은 환자가 레이몬드의 치료를 받았다.
기존의 치료사와 차원이 다른 친절한 진료에 환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레이몬드의 열렬한 팬(?)이 된 상태였다.
‘워낙 다른 치료사들이 불친절하니까. 기본만 해도 환자들이 너무 좋아하네.’
레이몬드는 얼떨떨하게 생각했다.
그는 철칙이 있었다.
아무리 속물이라도 치료사로서 기본은 하자는 것이다.
세상에 워낙 못된 치료사투성이라서인지, 그 정도만 해도 환자들은 감동하기 일쑤였다.
‘이 근처에 개업하면 대박 나는 거 아니야?’
순간, 레이몬드의 가슴속에 욕심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대박이 날 리가 없지. 분명 쫄딱 망할 거야.’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생소한 ‘의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세계 사람들에게 ‘의술’은 사이비나 다름없는 기이한 치료였다.
지금이야 저런 반응이지만, 막상 실제로 개업하면 누가 선뜻 치료를 받으러 오겠는가?
‘더구나 아직 실력도 부족해. 이제 고작 ‘초보 레지던트’ 수준이니. 실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야.’
일단 명성을 쌓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
힐을 사용하는 치료사들을 압도할 수 있는 실력과 명성을 가지지 않으면 환자들은 ‘낯선’ 의술에 선뜻 몸을 맡기지 않을 거다.
‘그저 그런 치료사로 살 생각은 없어.’
레이몬드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최고의 치료사가 되어 최고의 명예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