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37
#닥터 플레이어 237화
소피아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레이몬드의 말이 옳다고 여긴 것이다.
‘카이른 오라버니가 귀족 대회의 때 마지막 발악을 하려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걸 대비하려고.’
하지만 소피아는 과한 걱정이라는 듯 말했다.
“오라버니도 아시다시피 귀족 대회의장에는 병력 동원이 불가해요.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여러 안전장치로 귀족 대회의 때 무력 소요를 일으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인 겁니다. 제가 경계하고 있는 ‘그들’은 무력 소요 따위를 일으키지 않을 테니까요.”
“……!”
소피아는 흠칫하였다.
레이몬드는 차기 국왕이 될 소피아에게도 당연히 ‘그들’의 존재에 대해 말해주었다.
“대신, 모종의 끔찍한 수작을 부리려 할 게 분명합니다. 그걸 대비해야 합니다.”
레이몬드는 엄숙히 말하였다.
다행히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그렇다면 오라버니께 대비를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네?”
“귀족 대회의의 주인공이 될 영광을 포기해야 하잖아요.”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영광 따위 네가 다 가지렴.’
“전 그저 환자와 백성을 위할 뿐입니다.”
그 말에는 얼음 공주 소피아조차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받을 영광을 포기하면서까지 남들을 위하고자 하다니. 역시 오라버니는 빛인 건가?’
사실 그녀는 요즘 헷갈리고 있었다.
레이몬드가 빛인 건 알고 있었는데, 최근 가깝게 지내면서 의문이 생겼던 거다.
‘왜 이렇게 웃음이 짙은 것 같지?’
거기서부터 시작된 의문이었다.
뭔가 다들 속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역시 빛이었다.
‘……그래도 역시 거짓말처럼 보이는 표정인데.’
소피아는 여전히 짙게 웃고 있는 레이몬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동생이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진짜인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의도한 바를 이룬 레이몬드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좋았어. 이렇게 소피아가 귀족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본격적으로 왕위 계승자로 데뷔하는 거야.’
그때,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철두철미한 대비에 퀘스트가 발생합니다!]‘응?’
[대회의의 수호자](인술 퀘스트)
선행도 : 대의(大醫) 급
난이도 : 상
퀘스트 설명 : 악마 새끼를 처단할 때가 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 혹시 모를 상황에 철두철미하게 대비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십시오!
클리어 조건 : 대회의 무사히 종료
보상 : 보너스 레벨 업×4, 스킬 포인트 200점
특전 : 찬란한 영광
“…….”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이 퀘스트는.
‘보상이 왜 이렇게 후해?’
무려 4단계 레벨 업이다.
지금껏 숱한 퀘스트를 수행했지만, 이 정도의 보상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찬란한 영광’이라니?
난이도 ‘상’도 걸렸다.
‘……왜 상이지?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상. 이런 난이도일 때는 항상 극심히 어려웠다.
레이몬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뭐야, 이거.’
* * *
그때, 카이른.
그는 감옥에 갇힌 채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간수는 곧 질린 얼굴을 하였다.
‘아직도 저런 눈빛이라니. 곧 사형당할 걸 알고 있을 텐데. 역시 악마는 다른 건가?’
사실 카이른의 눈빛이 살아 있는 건 희망을 잃지 않아서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연락했어. 귀족 대회의 때 조처할 거라고. 레이몬드가 대비할 게 걱정이지만.’
레이몬드는 격외의 천재.
귀족 대회의 때 모종의 사건이 일어날 걸 대비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예상하고 있었다.
‘레이몬드 놈이 어떤 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들은 레이몬드 놈의 약점을 정확히 찌를 테니까. 놈이 어떤 대비를 했든 다 무산으로 돌아갈 거다.’
약점.
뜻밖의 말이었다.
레이몬드에게 약점이 있다니?
‘기다려라. 네놈은 귀족 대회의 날 나락에 떨어질 테니.’
카이른은 시커멓게 눈을 가라앉혔다.
이윽고 귀족 대회의 날이 다가왔다.
* * *
귀족 대회의장은 수도 인근에 있었다.
건국 왕이 자신의 동료들과 결의를 맺은 곳이다.
당시의 동료들이 지금의 명문 귀족 가문의 선조가 되었고, 그때의 결의처럼 귀족과 왕가의 협력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대회의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출발하기 전, 레이몬드는 국왕 오든에게 들렀다.
대회의장에 가기 전 상태를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도대체 왜 안 일어나는 거야?’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바이탈은 이미 좋아졌다.
그런데 의식에 차도가 없었다.
‘원래 이 정도쯤 회복되면 섬망도 다 좋아져야 하는데.’
레이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왕 오든은 무언가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린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여튼 끝까지 밉상이라니까. 빨리 안 일어나니까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거잖아.’
생각해 보니 화가 났다.
‘얼른 일어나야 400만 페나도 뜯어낼 텐데.’
그런 마음에 불퉁스럽게 말했다.
“그만 자고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서 저한테 사과해야 할 것 아닙니까?”
레이몬드는 말을 하고 실소를 흘렸다.
사과라. 과연 오든이 깨어난다고 해도 진심으로 자신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질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밖으로 나갔다.
대회의장에 가야 했다.
그때, 레이몬드가 나간 직후.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오든의 감긴 눈에서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혼몽 속 독백일까?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미…… 안하다.”
* * *
셔트폰에 오르려는데 뜻밖의 인물이 그를 붙들었다.
“잠깐.”
라이프 공작이었다!
“아, 스승님.”
레이몬드는 어색한 얼굴을 하였다.
그간 계속 피해왔는데, 딱 걸린 것이다.
“가르침은 언제 받을 거지?”
“그게…… 바빠서…….”
라이프 공작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레이몬드는 진땀을 흘렸다.
‘하긴. 내가 조금 심하긴 했지. 제자가 된 후 한 번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피했다.
라이프 공작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됐다.
‘재촉하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려준 게 대단한 거였지.’
의외로 라이프 공작은 신사처럼 레이몬드를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인 모양이다.
“대회의가 끝난 후 꼭 가르침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곧 대회의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가서 돌발 사태에 대비하려면 지금 바로 출발해야 했다.
그런데 라이프 공작이 의외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니, 지금 받아야 한다.”
“네?”
“공주 전하께 들었다. 대회의 때 혹시 모를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그러면, 자신을 지킬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레이몬드는 놀란 얼굴을 하였다.
지금 라이프 공작은 제자를 걱정하는 마음에 다급히 찾아온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잠깐이면 된다. 그대는 천무지체. 어차피 긴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을 테지.”
레이몬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를 위한 걱정으로 저러는 건데 마냥 거절하기도 곤란했다. 지금껏 계속 피했던 것도 조금 양심에 찔렸고.
“그런데 어떤 가르침을 주실 겁니까?”
“마나를 이용해 신체의 능력을 강화하는 법이다.”
“……!”
레이몬드는 놀란 눈을 하였다.
마나를 이용해 신체 강화!
기사와 마나 유저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신체에 마나를 실을 수 있으면 마나 유저.
마나를 검의 형태로 만들 수 있으면(마나 블레이드) 소드 익스퍼트.
마나를 넘어 검강(오러)을 만들 수 있으면 소드 마스터로 칭하였다.
‘소드 마스터 안에도 오러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느냐에 따라 일검(一劍)급, 이검(二劍)급, 삼검(三劍)급으로 나누지만. 저 기준에 따르면 난 아직 마나 유저도 안 되는구나.’
참고로 라이프 공작과 국왕 오든은 일검(一劍)급 소드 마스터였다.
그들뿐 아니라, 대륙 대부분의 소드 마스터는 일검 급이었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 소드 마스터는 200명 남짓. 그중 이검 급이 50여 명, 삼검 급이 20명 이내라고 하였나? 소드 마스터를 초월한 그랜드 마스터, 소드 오너가 8명이고.’
200명이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아니었다.
드넓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니까.
대륙의 국가가 40개 정도 되는 걸 고려하면 약소국은 보통 1~3명, 어느 정도 국력이 되어야 5명 남짓 보유할 수 있었다.
‘물론 강대국들은 훨씬 많은 수의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고. 3강(剛)의 국가들은 각각 10명이 넘는 소드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다지? 철의 제국은 합쳐서 50명이 넘는 숫자고.’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어쨌든 마나를 싣는 법을 배워서 나쁠 건 없겠지. 당장 대회의 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호신에 도움이 될 거다.
“경청하겠습니다.”
“그전에, 마나는 다룰 줄 아나?”
“음…….”
레이몬드는 고민했다.
대답하기 모호했다.
‘마법이나 힐은 쓸 수 있지만, 몸에 싣는 법은 모르니까.’
힐과 마법, 그리고 몸에 마나를 싣는 건 모두 방법이 달랐다.
힐은 마음속 기원, ‘바람’이 상단전을 움직여 발현된다.
마법은 정해진 술식에 맞춰 마나를 배열해 발현한다.
반면, 몸에 마나를 싣는 건…….
‘모르겠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때, 라이프 공작이 말해주었다.
“마나를 움직일 수는 있겠지?”
“네, 그거야…….”
“네 움직임에 맞춰 마나를 집중하면 된다.”
그걸 끝으로 라이프는 입을 다물었다.
레이몬드는 라이프 공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스승님?”
“그러면 된다.”
“……네?”
“그렇게 하면 신체에 마나를 실을 수 있다.”
레이몬드는 당황했다.
‘아니, 이게 설명 끝이야?’
그런 것 같았다.
라이프 공작이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겠지? 란 눈빛을 보내온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줘야지!’
하지만 라이프는 레이몬드가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물론 자잘한 요령 등이 있지만, 그대는 천무지체. 굳이 쓸데없이 세부적인 설명까지는 필요 없겠지. 이런, 대회의가 곧 시작했겠군.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난 이만 가보겠다.”
라이프 공작은 사라졌고, 레이몬드는 황망한 얼굴을 하였다.
‘나 천무지체 아닌데.’
레이몬드는 그 순간 깨달았다.
라이프 공작은 가르침에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어쨌든 나도 가자.’
퀘스트에 따르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가서 대비해야 했다.
그런 마음으로 셔트폰에 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