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65
#닥터 플레이어 265화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주를 완벽하게 해결해야 해. 사람들이 완전히 내게 넘어오도록.’
레이몬드는 다짐했다.
* * *
치료를 도울 동료로 린든이 석방되었다.
엘무드, 크리스틴, 룬, 렌은 위험하단 이유로 석방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린든, 쥬드의 도움만으로 저주를 해결해야 했다.
쥬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그녀는 방금 레이몬드가 화형대에서 보인 모습을 모조리 옆에서 목격하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죽을 위기에 처해서도 오직 다른 사람들만을 생각하시다니. 스승님은 정말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레이몬드의 마음은 일체의 탐욕이 거세된 채 오로지 남들만을 위하는 이타심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어떻게 환자를 위할지 고민하고 계신 거겠지.’
쥬드는 레이몬드의 심각한 얼굴을 보며 숨을 죽였다.
옆에서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레이몬드의 위대함이 더욱 커다랗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위대하신’ 레이몬드는 지금 속으로,
‘이번 일만 끝나면 돈 되는 일만 할 거야!’
분연히 외치고 있었다.
‘난 그냥 부귀영화만 누리고 싶을 뿐이라고! 그런데 이런 일까지 겪다니! 드래곤 하트만 구하고 나면, 다시는 이딴 일 안 해.’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환자를 위한 다짐을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쥬드는 또다시 감동하고는 결연히 다짐하였다.
‘나도 한슨 경처럼 발버둥 치겠어! 어떻게든 저분을 필사적으로 따라가고 말 거야!’
저 거대한 위대함의 티끌만큼만 닮아도 그녀는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국왕이 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레이몬드가 부탁했을 때도 결연히 답했다.
“저기…… 제자 왕세녀님. 죄송하지만, 조금 일이 고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든 맡겨주십시오!”
쥬드는 강렬한 의지를 담아 다시금 외쳤다.
“뭐든 스승님을 돕게 해주십시오!”
반면 린든은 횡설수설 겁에 질려 있었다.
“아, 아니. 이 기회에 우리라도 도망을……! 아니, 남은 분들을 놔두자는 게 아니라, 그게!”
“……얼른 저주에 걸린 환자나 보러 가자.”
레이몬드는 린든을 질질 끌고 저주에 걸린 환자들을 만나러 갔다.
저주에 걸린 환자들은 서랜스 성 외곽 건물에 모여 있었다.
미리 챙겨 온 방호복을 입은 채 건물 앞에 섰다.
‘죽음의 저주에 걸린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했지.’
검은 어둠이 록타르 지방에 내린 저주는 세 종류였다.
광기의 저주!
죽음의 저주!
비통의 저주!
그중 가장 시급한 건 단연코 죽음의 저주였다.
‘죽음’이란 저주의 이름처럼 실시간으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있었다.
‘수개월 동안 무려 4천 명에 달하는 이가 죽었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록타르 지방의 인구는 2만 명 정도였으니, 무려 2할이 넘는 이가 죽은 것이다.
‘이 저주 먼저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
굳게 다짐하고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목격했다.
끔찍한 지옥의 광경을.
“끄어어.”
“흐윽. 사, 살려줘!”
“하아, 하아. 커억.”
수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서 신음 흘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죽어 썩어가고 있는 시체들. 그 옆에서 죽어가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
수북이 쌓인 토사물, 배설물.
참혹하고 끔찍한 장면이었다.
‘우읍.’
쥬드는 구역질을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레이몬드도, 심지어 엄살을 부리던 린든도 모두 눈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둘 다 굳은 얼굴로 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린든, 환자들의 바이탈과 기본적인 사항을 체크 해줘.”
“네, 마스터!”
참고로, 린든은 환자를 볼 때는 레이몬드를 마스터로 호칭했다.
린든이 재빨리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였다.
그사이, 레이몬드는 묵묵히 환자들의 증상을 하나하나 살폈다.
곧 린든이 돌아와 말했다.
“대부분 심각한 쇼크 상태예요. 저혈압과 빈맥이 심하고, 탈수 상태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 말에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상대로야.’
쥬드가 물었다.
“뭔가를 알아내신 건가요?”
“이건 주술적 저주가 아닙니다.”
“네?”
쥬드는 눈을 크게 떴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돌려 환자들을 쭈욱 살폈다.
만약, 이게 주술로 영혼에 작용하는 저주였다면, 환자들의 상태는 지금과 다소 달랐을 거다.
하지만 쇼크, 탈수. 그리고 환자들 대부분이 호소하는 심각한 설사, 구토.
무엇보다 환자들의 사망 원인.
레이몬드는 삐쩍 말라 비틀어진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죽은 환자들 모두 심각한 설사로 탈수 및 산 염기, 전해질 불균형이 와서 사망했어.’
이러한 사실들은 환자들이 주술적 저주가 아닌, 명확한 어떠한 하나의 질병에 걸렸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전염병입니다. 정확히는 콜레라로 추정됩니다.”
“……!”
콜레라!
오염된 물을 섭취해 걸리는 끔찍한 전염병이었다.
‘치료하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치사율을 자랑하는 전염병이야.’
사망률이 무려 50%가 넘었다.
지구에서도 한번 유행할 때마다 수만 단위의 사망자를 낸 끔찍한 전염병이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상태를 봤을 때 록타르 지방에 퍼진 죽음의 저주는 이 콜레라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죽음의 저주가 모종의 전염병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었지.’
단순한 저주로 그토록 많은 이를 죽게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분명 검은 어둠이 남긴 어떠한 이유로 식수원이 오염되어 콜레라가 창궐한 게 분명해.’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법은 간단했다.
“메데인 호수의 물을 섭취하는 걸 중단해 주십시오.”
“뭐라고?”
스탱이 눈썹을 꿈틀하였다.
메데인 호수는 록타르 지방 상류에 위치한 호수로, 이곳 록타르 지방의 사람들은 대부분 메데인 호수에서 기원하는 지류의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죽음의 저주가 분포한 양상을 봤을 때 메데인 호수가 콜레라의 발원지일 가능성이 커.’
반면, 스탱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잘 됐군. 스스로 무덤을 파다니.’
물이 원인이라니.
레이펜타이나의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스탱은 검은 어둠의 수족이었지만, 죽음의 저주가 어떤 원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검은 어둠이 발현한 권능이라 여기고 있었다.
‘놈의 말을 따르고 곧 제물로 바치면 되겠군. 고작 호수의 물을 끊는다고 환자들이 좋아질 리가 없으니까.’
“알겠다. 물은 빗물을 받아먹도록 하지.”
그렇게 가장 중요한 원인을 차단했다.
스탱과 헤어진 후, 린든이 투덜거렸다.
“저놈, 전하께 저딴 태도라니. 전하께서 너무 사람이 좋으시니 참으시는 거지.”
‘아니, 그냥 무서워서 참는 건데.’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목에 칼을 겨눈 놈이니 무서웠다.
‘이제 슬슬 놈이 쥔 칼을 빼앗아야지.’
레이몬드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만약 죽음의 저주를 해결하면, 스탱이 순순히 물러갈까?
절대로.
그때는 또다시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그와 쥬드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사람들을 모두 내 편으로 만들어놓아야 해.’
스탱이 무서운 건, 서랜스 성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만 그의 편으로 만들 게 된다면, 스탱 따위 무서울 것 없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늘 하던 대로 환자를 치료하면 되었다.
“린든, 거기 수액을!”
“그 환자한테는 에피네프린을 걸어줘!”
다행히 처치에 필요한 물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미리 마차로 잔뜩 실어 보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환자들은 금세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대로만 치료하면 콜레라의 치사율은 1% 미만으로 감소하니까.’
좋아진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였다.
“내, 내가 좋아지다니?”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검은 어둠이 남긴 죽음의 저주에 걸렸었는데?”
레이몬드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당신들의 저주는 제가 풀었습니다.”
“……!”
사람들은 놀라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특기, 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최대한 감동적인 발언을 위해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등급 업한 ‘언변’이 빛을 발했다.
[당신의 언변에 환자를 위한 마음이 강하게 실립니다!]“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회복할 때까지 제가 모두 책임지고 치료해 드릴 테니까요.”
“……!”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이십니까?”
레이몬드는 짧지만, 깊은 울림이 담긴 음성으로 답했다.
“여러분을 치료하고자 하는 힐러입니다.”
그렇게 레이몬드는 환자 모두에게 최선을 다했다.
원래도 친절한 레이몬드이지만, 이번엔 더욱 온 힘을 쏟았다.
‘다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
마치 내 가족처럼 최선을 다한 처치는 기본!
치료할 때마다 환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일일이 잡아주며 위로하였다.
“많이 괴로우시죠?”
“조금만 힘내십시오. 금방 좋아질 겁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따뜻한 눈빛과 정성 어린 손길.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들까지.
레이몬드의 치료를 받은 이들을 울컥 감동하였다.
“이런 분이 세상에 계시다니.”
“성자님이셔. 성자님이니 저주가 물러간 거야.”
“오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거야.”
그런 그들의 반응에 레이몬드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모두 그의 의도대로였다.
그런데 뜻밖의 도움이 하나 더 있었다.
쥬드였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어. 스승님을 본받겠어!’
이런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환자들을 돌보았다!
‘스승님도 저렇게 애쓰시는데. 나는 몇 배로 더 환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해.’
물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천재라도 배움이 너무 짧았으니까.
어려운 의학적 처치는 당연히 무리였고,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위생 관리와 환자 간병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위생 관리.
말이 좋아 위생이지, 환자들의 몸에 묻은 오물을 닦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을 맡았단 거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레이몬드는 걱정하였지만 쥬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이들은 내 백성. 이들을 가족처럼 위해야 해. 스승님이 하시는 것처럼.’
그녀는 레이몬드가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그야말로 따뜻함의 결정체!
그녀는 그 모습을 똑똑히 머릿속에 새기고 그대로 환자에게 똑같이 따라 하려 노력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이 감동한 건 당연했다.
‘못나고 이기적인 왕세녀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분이었다니.’
덕분에 환자들을 포섭하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윽고 모든 환자가 열렬히 레이몬드와 쥬드를 신봉하고, 서랜스 성의 사람들이 레이몬드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되었을 때.
상황은 역전되었다.
레이몬드는 환자들의 도움을 받아 일행을 풀어주는 데 성공했고,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무, 무슨 짓이냐!”
스탱은 무릎 꿇려 레이몬드 앞에 끌려왔다.
스탱뿐이 아니었다. 자경대를 이끌던 정체불명의 기사급 실력자들도 함께 무릎 꿇렸다.
“주군께 예를 표해라!”
엘무드는 평소와 다르게 잔뜩 화가 나 외쳤다.
크리스틴, 룬, 렌도 마찬가지였다.
스탱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너, 너희는 무엇 하느냐! 저놈들을 쳐라!”
하지만 서랜스 성의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단단히 넘어간 것이다.
‘저런 성자님을 죽이라니.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