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63
#닥터 플레이어 363화
기어스 왕국은 십자연맹제국을 원했다.
지금처럼 허울뿐인 맹주가 아니라, 실제적인 지배자가 되길 원한 것이다.
물론 기어스 왕국은 지금도 십자연맹제국의 맹주였다.
하지만 단순히 동맹국을 이끄는 맹주가 아니라, 다른 9개의 나라를 속국으로 굴복시키고 위에서 지배하는 ‘종주국’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어스 왕국이 최강 대국이라고 해도 다른 아홉 개의 왕국을 홀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기어스 왕국의 국력은 지극히 강력하다.
홀로 같은 3강인 성 로제트 왕국과 알펜서 왕국을 동시에 상대 가능한 국력이었지만, 불행히도 그 이상은 무리였다.
이룰 수 없는 숙원을 갈망하던 차, 기어스 왕국은 모종의 경로를 통해 놀라운 지식을 얻게 되었다.
고대에 전해졌다는 위대한 비술, ‘의술’이었다.
기어스 왕국은 의술의 잠재력을 곧바로 간파했다.
이 의술을 공개하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어스 왕국은 그러지 않았다.
철저히 기밀로 숨겼다.
대신, 그들은 의술의 또 다른 측면에 주목했다.
의술은 사용하기에 따라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의술을 자신들의 숙원을 이루기 위한 ‘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기어스 왕국은 오랜 시간에 걸쳐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의술을 이용해 암중에서 다른 국가를 손에 넣기로.
물론 쉽지 않은 계획이었다.
드러날 경우, 역풍도 어마어마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적합한 대리인을 세웠다.
페닌슐라 왕국.
3강에 준하는 힘을 지닌 강력한 왕국의 비운의 후계자를 내세운 것이다.
물론 로렌스의 개인 역량만 믿고 있지 않았다.
로드 로렌스가 지금껏 이만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모두 기어스 왕국의 은밀한 도움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치밀한 노력 끝에 거의 성공 직전까지 왔는데, 이런 변수라니.
“계획의 절반은 거의 이루어졌어. 곧 광휘의 성자가 성 로제트 왕국의 카트린느 여제를 밀어내고 황제로 선출될 테니.”
광휘의 성자.
기어스 왕국의 왕족으로 위대한 성자였다.
기어스 왕국은 처음부터 그를 십자연맹제국의 황제로 만들려고 성자로 ‘키워냈다’.
광휘의 성자를 통해 황위를.
그리고 로드 로렌스를 통해 여러 왕국을 암중에서 지배하는 게 기어스 왕국의 계획이었다.
그 계획들이 이루어지면, 십자연맹제국의 5할 이상을 그들의 뜻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될 테니까.
이후, 군사력을 동원해 이빨 빠진 호랑이인 성 로제트 왕국을 굴복시키면 십자연맹제국은 완전히 기어스 왕국의 손에 넘어오리라.
기어스 왕국은 진정한 ‘제국’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거의 이루어진 계획이었는데, 이런 문제라니. 레이몬드라고? 곤란하군.’
재상 루드비히는 계속해서 탁자를 손가락을 두드렸다.
“하필 왕족이라니. 그것도 두 왕국의 피를 동시에 이은.”
루드비히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날파리가 나타났는데, 보통 날파리가 아니었다.
로드 로렌스가 고전하고 있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왕족이니 섣불리 손을 쓸 수도 없어. 암살도 불가능하고.”
은밀히 제거하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불가능했다.
놈은 믿을 수 없게 천무지체, 선천 마법사라 불리고 있었다.
정보를 확인한바, 사실로 보였다.
그런 인물을 은밀히 제거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고, 만약 제거 시도가 발각되면 역풍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회유…… 는 불가능하겠지. 가난의 성자로 불리고 있다니까.”
루드비히는 짜증 난단 얼굴을 하였다.
“놈이 광휘의 성자랑 같은 성격이면, 얼마든지 회유가 가능할 텐데.”
광휘의 성자.
위대한 성자로 불리지만,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평판 관리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놈의 이명은 무려 ‘가난의 성자’였다.
회유가 먹힐 리가 없었다.
‘부귀영화 따위는 관심도 없겠지. 이런 놈들이 제일 성가신데.’
고요 속에서 한참이나 침묵하던 그는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아무래도 그 방법을 써야겠군.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기어스 왕국이 은밀히 준비 중인 무기 중 하나였다.
“준비를 해야겠어.”
서늘한 음성이 퍼졌다.
* * *
미스헬트 대공과 헤어진 후, 퀘스트가 떠올랐다.
당연히 마약 관련 퀘스트였다.
[악마의 약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라!](인술 퀘스트)
선행도 : 대의(大醫)급
난이도 : 상
퀘스트 설명 : 당신의 능력으로 악마의 약에 고통받는 자유 도시 연합 사람들을 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마약 업자들 소탕
보상 : 보너스 레벨 업×4, 스킬 포인트 400점.
특전 : 자유 도시 연합의 빛
‘……빛이 될 필요는 없는데.’
특전을 본 레이몬드는 투덜거렸다.
‘이런 쓸모없는 보상보다 돈을 달라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자유 도시 연합의 빛이 되면, 돈을 벌 때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일에 착수했는데, 레이몬드는 곧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마약 수사를 어떻게 하지?’
생각해 보니 그는 힐러였다.
마약에 중독된 환자 치료를 할 뿐, 마약 수사는 의사의 담당 영역이 아니었다!
‘……법의학으로 범인을 짐작하는 것 정도면 모르겠지만, 완전히 마약 수사를 하는 건 힐러의 영역이 아니야.’
그 고민에 소른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마약상들을 잡아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건 힐러인 전하께서 하실 일이 아니지요.”
“그러면?”
“우리 게이볼그 가문이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로드리고 후작과 결탁한 군주들은 본인들도 마약을 상습적으로 남용한다고 하더군요. 힐러로서 그들이 마약을 사용했다는 증거만 확보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 게이볼그 가문이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레이몬드는 말뜻을 알아들었다.
지금 게이볼그 가문이 나서지 못하는 건 각 도시가 자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이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
문제의 군주들이 마약과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확보하면, 게이볼그가에서 그들 도시의 개입할 명분이 생기게 된다.
힐러로서 그 증거를 확보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각 군주의 혈액을 채취해야 해.’
의술로 마약 사용을 입증할 방법은 간단했다.
혈액을 채취해 마약 성분을 검출하면 된다. 마탑에 공증을 맡기면 되니, 증거로 삼기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수로 군주들의 피를 채취한단 말인가?
‘피를 달란다고 순순히 줄 리도 없고.’
레이몬드의 고민을 들은 엘무드와 미엔이 나섰다.
그들은 오랜만에 도움될 일이 생겨 흥분한 눈치였다.
“주군, 우리가 해결하겠습니다! 은밀히 잠입해 각 군주의 피를 뽑아오겠습니다!”
“냐옹냐옹! 냐아옹!”
“이 한 몸, 주군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냐옹!”
둘은 잔뜩 사기충천해 외쳤지만, 몰래 잠입해 피를 뽑아오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암살범으로 잡혀 처형당할 일 있어?!’
레이몬드가 고개를 젓자, 둘은 다시 시무룩해졌다.
‘도움이 되고 싶은데. 나는 언제나 주군의 힘이 될 수 있을까?
‘냐오옹.’
둘은 어깨가 축 처진 채 나가 서로를 위로하였다.
늘 도움 안 된다는 자괴감에 기가 죽어 서로를 위로하는 둘이었다.
물론 레이몬드는 항상 그렇듯, 실의에 빠진 둘을 별반 신경 쓰지 않고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군주들의 피를 채취할 수 있을까? 마약 중독을 확인하기 위해 검사해 보자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거고.’
그렇다고, 다른 이유로 피를 뽑을 건더기도 없었다.
‘만약 어디 아픈 곳이 있으면, 치료해 준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피를 뽑아 검사해 볼 수 있겠지만, 무리야.’
불행히도 의심 가는 4명의 군주 모두 건강했다.
또한, 설사 불편한 곳이 있다고 해도 레이몬드에게 쉽게 치료를 받으려 할지도 의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소른도 난감한 얼굴을 하였다.
“마약 투약을 입증하려면 군주들의 피를 얻어야 한다라. 확실히 쉽지 않겠군요. 우리 측에서도 한번 방법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네, 저도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른은 돌아가기 전,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참, 전하.”
“네?”
“혹시 전하의 의술. 철의 제국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레이몬드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아니, 전혀요? 왜 그러시죠?”
“아, 그러고 보니 철의 제국 힐러들이 전하가 했던 수술과 비슷한 치료를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수술이요?”
레이몬드는 놀란 얼굴을 했다.
철의 제국에서 수술이라니?
전혀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철의 제국 소식은 십자연맹제국에 잘 전해지지 않으니까.’
철의 제국은 십자연맹제국의 적대국이었다. 단순히 사이가 나쁜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심심치 않게 국경에서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철의 제국 소식은 십자연맹제국에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치유의 탑이 철의 제국에서 완전히 영향력을 잃어 치료계 소식은 거의 끊기다시피 한 상태라 레이몬드도 철의 제국 치료계 동향을 잘 모르고 있었다.
‘치유의 탑을 내쫓고, 자신들만의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의술과 비슷한 치료를 연구하고 있는 건가?’
레이몬드는 뜻밖이라는 얼굴을 했다.
‘하긴, 철의 제국민들의 기질을 생각하면 충분히 의술과 비슷한 치료술이 발달할 수 있지.’
철의 제국은 지극히 실용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들은 합리성과 논리적인 사고를 중시한다. 오죽하면 나라 이름이 ‘철’의 제국이겠는가?
국명을 ‘철’로 정한 건 그들의 실용성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상징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십자연맹제국과 다르게 여러 과학을 폭넓게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십자연맹제국과 다르게, 총을 대량 생산해 병종으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니까.’
그런 만큼 의술과 비슷한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철의 제국 수술이 어떤 수준인지는 아시는지요?”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소른이 어색한 얼굴을 했다.
“최악으로 들었습니다.”
“네?”
“자국 힐러들에게 치료받기 무서워서 자유 도시 연합으로 도망쳐 오는 환자들이 종종 있을 정도니까요. 그들은 자신 나라들의 힐러들을 악마라고 표현하더군요.”
“…….”
“두통을 낫게 하려고 머리에 구멍을 뚫기도 하고, 그…… 전하께서 하신 수술과 비슷한 배를 여는 치료는 성공률이 극악하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전하와 다르게, 깨어 있는 상태로 배를 열어서 환자가 미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아직 초창기 의학 수준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