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
#닥터 플레이어 4화
다행히 구호소로 파견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더럽지, 힘들지, 피곤하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마침 결원이 있어 그 자리로 갈 수 있었다.
‘잘하자.’
구호소 앞에 선 레이몬드는 숨을 들이켰다.
‘꼭 최고의 치료사가 되겠어!’
앞서 이야기했지만,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최고의 치료사가 되는 것.
그래서 세상의 모든 명예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말 것이다.
더러운 사생아로 받았던 설움을 떨치고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반드시 해내겠어!’
굳게 다짐한 레이몬드는 구호소에 들어가 꾸벅 인사했다.
“잘 부탁합니다! 이번에 새로 구호소에 나온 레이몬드입니다!”
하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저놈은 왜 구호소까지 기웃거리는 거야?”
“주제도 모르는 놈이. 와봤자 걸리적거리기만 할 텐데.”
“내쫓기로 한 것 아니었어?”
구호소에서 일하고 있던 치료사들은 혀를 차며 짜증을 냈다.
따가운 시선이 전신을 찔렀지만, 레이몬드는 모른 척 웃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래 뵈어도 구박살이 23년.
고작(?) 저 정도 핀잔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그냥 속으로 이렇게 뒤끝 있게 담아두기만 했다.
‘두고 봐라. 내가 나중에 최고의 치료사로 성장하면 오늘 일은 몇 배로 갚아줄 테니. 네놈들 얼굴 다 기억해 뒀어.’
이 ‘외과의사’의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모두의 존경을 받는 치료사가 되어 저놈들에게 몇 배로 갑질해 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구호소에서 최대한 환자를 봐서 레벨 업을 해야 했다.
‘아자, 힘내자!’
하지만 환자를 볼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아무도 레이몬드에게 환자를 보게 해주지 않았다.
“걸리적거리니까 저리 가 있어.”
“F급도 안 되는 치유력 주제에 환자는 무슨.”
다들 더러운 오물 피하듯 레이몬드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했다.
특히 가장 레이몬드에게 못되게 군 건 수석 치료사인 랑스였다.
“정말 하늘이 도운 건지, 감염증 환자가 치료되어 있더군요. 참 운도 좋으신 것 같습니다.”
랑스는 절대 레이몬드가 스스로의 힘으로 엉덩이 농양 환자를 치료했다고 믿지 않았다. 그냥 우연이 겹쳤다고 여겼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 기회를 조금 더 드리도록 하죠. 대신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랑스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마침 구호소로 가겠다니 잘됐군요. 보름. 그 안에 구호소에서 스스로의 재능을 입증해 보이십시오. 안 그러면 이전에 했던 이야기대로 선배의 도제 자격을 박탈하겠습니다.”
‘환자를 볼 기회를 주어야 재능을 입증하든지, 말든지 하지!’
레이몬드는 이를 악물었다.
‘뭔가 수를 내야 해.’
이대로는 보름은커녕, 1년이 지나도 환자를 볼 기회가 없을 거다.
나무 옆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릴 게 아니라, 감을 포획하러 가야 했다.
“한슨, 힘들지 않니?”
“아, 선배.”
한슨.
대략 열아홉쯤 되어 보이는 이로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이였다.
구호소에서 일하는 도제 중 그나마 착한 놈.
C급의 재능을 가진, 뛰어나지도, 형편없지도 않은 애매한 능력의 도제였다.
“무슨 일이신지?”
한슨은 꺼림칙한 눈으로 경계하듯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착한 놈이지만, 저런 반응이었다.
레이몬드는 누구도 상대하기 싫어하는 더러운 오물 같은 존재였으니까.
친부의 신분이 워낙 고귀해서일까?
역설적으로 사생아인 레이몬드의 비천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완전무결한 친부의 고귀함을 더럽힌 오물로 말이다.
거기에 F급 이하의 한심한 재능이 합쳐지니 치료원의 누구도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많이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괜찮니?”
“그거야…….”
한슨은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막내라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데. 구호소 청소는 내가 해도 되겠니?”
“정말입니까?”
한슨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구호소 청소!
그를 가장 괴롭게 하는 일이다.
“그래, 너 많이 힘들잖아.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미안해서 말이야. 괜찮겠니?”
“저야 고맙지만…….”
한슨의 경계가 풀리자, 레이몬드는 은근슬쩍 본론을 말했다.
“그것 말고도 고생이 많던데, 네가 많이 힘들 때는 내가 대신 환자의 뒤처리를 해도 될까?”
“네? 그건…….”
한슨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도제인 그는 정식 치료사들이 치료를 마치면 뒤처리를 하는 역할이었다.
정식 치료사들이 힐을 쓰고 나면, 붕대를 감아준다든지, 약초를 발라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말이야. 네가 많이 힘든 것 같아서 그냥 해본 말이야.”
레이몬드는 속마음을 숨기고 짐짓 한슨을 걱정하는 척 말하였다.
협상의 제일 원칙인, 자신은 아쉽지 않다는 기색을 보이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자 애가 타는 건 한슨이었다.
‘어쩌지? 레이몬드 선배가 뒤처리했다는 걸 치료사님들이 알면 엄청 화를 내실 텐데.’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보상이 너무 달콤했다.
구호소 청소!
그것만 안 할 수 있어도 몇 배는 편할 것이다.
그때, 레이몬드가 밑밥을 문 물고기를 잡아 올리듯 결정타를 날렸다.
“어쩔 수 없지. 난 네가 부담될까 봐 다른 치료사님들이 안 계실 때만 환자들 뒤처리를 하려고 한 거였는데. 지금 내 이야기는 그냥 못 들은 걸로…….”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국, 한슨은 백기를 들었다.
“대신 구호소 청소는 정말 선배가 해주시는 거죠?”
“물론.”
레이몬드는 속으로 씨익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는 레벨 업이다.’
물론 청소는 레이몬드도 썩 반갑지 않지만 말이다.
레벨 업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 *
“다 됐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치료사님.”
[경험치가 올라갑니다!]“감사하기는요. 아, 환자분. 이 약초 받아가십시오!”
[경험치가 올라갑니다!] [경험치가 올라갑니다!]워낙 간단한 처치여서일까? 뒤처리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는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1포인트가 다였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구호소에 온 지 3일째.
드디어 레벨이 올라 레벨 4가 되었다.
‘여분 스탯. 감각에 사용.’
레이몬드는 흐뭇한 얼굴로 감각 스탯을 올렸다. 감각 스탯이 올라갈수록 그는 뛰어난 ‘서젼’이 되리라.
‘더. 더 경험치가 필요해.’
레이몬드는 그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환자를 보았다.
다행히 다른 치료사들의 눈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치료사들이 구호소에 24시간 내내 상주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환자가 올 때만 잠깐 들러 힐을 썼다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가는 게 보통이었다.
“여기 다 됐습니다. 다음엔 꼭 조심하십시오.”
[경험치가 올라갑니다!]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메시지였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최고의 치료사가 될 수 있겠지. 그러면 내게도 장밋빛 미래가 다가올 거야!’
레이몬드는 최고의 치료사가 되어 명예를 얻고, 또한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그건 그가 극심히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귀한 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모진 구박을 받으며 밑바닥 하인보다 못한 궁핍하게 살았다.
가장 화려한 곳에서 남들을 부러워하며 누구보다 궁핍하게 사는 서글픔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돈에 한이 맺히게 됐다.
‘최고의 치료사가 되면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야.’
참고로, 치료사는 돈을 많이 번다.
상급 치료사들의 경우 말할 것도 없고.
최고의 치료사가 되면 상상도 못 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다.
대리석이 깔린 5층짜리 저택, 끼니마다 육질 좋은 스테이크, 잠들기 전에는 최고급 와인까지.
레이몬드는 머릿속으로 장밋빛 상상을 하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고 말 것이다.
……물론 아직 레벨 10도 안 되는 ‘초보 레지던트’ 등급 주제에, 야무진 꿈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파이팅!’
레이몬드가 더더욱 힘을 내서 환자를 볼 때였다.
그는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고, 잘생긴 치료사님이 참 친절하기도 하구려. 내가 지금껏 치료원에 많이 다녔지만, 당신처럼 친절한 치료사는 처음이오.”
한 환자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듯 말했다.
“아닙니다.”
레이몬드는 머쓱한 얼굴을 하였다.
‘딱히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한 건 아닌데. 다른 치료사들이 워낙 불친절하니까.’
힐을 쓸 줄 아는 치료사는 귀하다.
그러니 치료사는 항상 갑의 위치였고,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치료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다른 치료사들과 조금 생각이 달랐다.
‘치료사면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야지.’
아픈 몸을 이끌고 왔는데, 냉랭한 대우를 받으면 마음이 참으로 서럽다.
레이몬드는 어머니가 아플 때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환자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참, 오늘 고맙구려. 그 랑스인가, 그 치료사님은 실력은 좋은데 너무 불친절해서 쩝. 잘생긴 치료사님 덕분에 위로받고 가오.”
늙은 환자의 감사에 레이몬드는 가슴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답하는 순간이었다. 띠링 하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환자를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업적 : ‘친절한 치료사’를 달성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스킬 포인트가 5포인트 주어집니다!]반가운 메시지였다.
아직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지만, 스킬 포인트도 분명 외과의사의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상치 못한 업적 보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커다란 업적 보상을 받게 되었다.
바로 ‘청소’ 부분에서였다.
‘음, 구호소 청소는 솔직히 나도 하기 싫은데. 약속이니 어쩔 수 없지.’
일반적인 청소와 달랐다.
피와 오물, 체액 등이 잔뜩 묻은 바닥을 닦고 있으면 메스꺼움이 들며 피로감이 확 올라왔다.
‘대충할까?’
레이몬드는 순간 그런 유혹이 들었다.
솔직히 한슨도 별달리 청소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위생이 안 좋으면, 환자에게 안 좋아. 이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어.’
레이펜타이나의 사람들은 청결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다. 치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의학 지식을 가지고 있는 레이몬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비위생적인 환경이 환자에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아니까,
아무리 힘들다고 해서 청소를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양심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