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5
#닥터 플레이어 45화
“어떤 이득도 바라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계속 절 근거도 없는 편견으로 안 좋게 보실 겁니까?”
라오는 그 말을 듣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레이몬드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병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걸까?
지금은 헷갈렸다.
맑은 에메랄드빛은 오로지 자신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절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 단지 환자를 위한 마음으로 행동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
“솔직히 전 관리관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서는 것인 줄 아십니까?”
“……어째서입니까?”
“당신이 지금 환자이기 때문에!”
“……!”
언변 스킬 덕분에 문장에 감정이 절절히 실렸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환자라는 것 외에 제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는 치료사로서 당신을 치료해 주고 싶습니다.”
‘당신을 치료해 주고 싶습니다.’
그 말이 병석에 누워 있는 라오의 가슴을 찌르르 울렸다.
‘……내가 오해를 했던 건가?’
라오의 눈매가 파르르 흔들렸다.
모르겠다.
솔직히 아직도 믿음은 안 갔다.
천재의 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자를 순순히 믿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느껴지는 건 있었다.
이 순간 자신을 치료해 주고 싶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만약 거짓이라면, 저런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지 못할 테니까.
저런 눈빛은 꾸민다고 꾸밀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만약 저 눈빛마저 꾸민 것이라면, 눈앞의 치료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자나, 사기꾼일 것이다.
“……절 치료할 방법은 있는 것입니까?”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의 지식에 따르면 이 전염병은 혈소판이라는 몸 안 혈액의 성분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겁니다.”
전염병의 정체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전염병이 어떤 원리로 문제를 일으키는 건지 병리 기전(Pathogenesis)은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치료법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간단했다.
“그러니 부족해진 성분을 채워줘야 합니다.”
“그 말씀은……?”
“다른 사람의 혈액을 채워 넣어주면 됩니다.”
순간,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머리가 받아들이길 거부한 걸까? 모두 레이몬드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오는 버럭 화를 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악마나 사용할 법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시종 한도 반대라는 표정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지.’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수혈.
현대 지구에서는 일반적인 치료법이지만, 이곳에서는 아니다.
“놀라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당신을 치료할 방법은 없습니다.”
“가십시오! 절대 그런 방법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라오가 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역시! 저놈은 사기꾼이었다!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더니, 똑바로 라오를 바라보았다.
‘이런 반응 예상하고 있었지.’
당연히 대비책도 생각해두고 있었다.
“겁쟁이군요.”
“……!”
“결국, 두려운 것 아닙니까? 새로운 치료법을 받아들이기가. 왕립 아카데미의 천재라는 라오 경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군요.”
도발이었다.
그리고 왕립 아카데미 수석 정도의 천재라면 도발에 절대 그냥 물러서지 않는 법!
라오가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레이몬드는 쐐기를 박듯 자리에서 휙하고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요.”
“……!”
“전 분명히 말했습니다. 당신을 치료해 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겁이 난다면…… 어쩔 수 없지요.”
‘겁이 난다면’에 엑센트를 주었다.
결국, 라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말한 치료법. 받아들이겠습니다.”
“도련님?!”
“하지만 만약 당신이 말한 치료법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때는 죽어서라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관리관님도 제게 한 가지 보상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무얼 바랍니까? 돈이라면 최대한 노력해서…….”
“아니, 돈 따위 바라지 않습니다.”
늘 돈이 1순위인 레이몬드이지만, 이번에 바라는 건 다른 것이었다.
“무사히 살아난다면, 절 형님으로 모십시오.”
“……!”
레이몬드는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도 슬슬 고위 관리를 뒷배로 얻을 때가 되었지.’
라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황당한……?”
“지금껏 근거 없이 절 안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까?”
레이몬드는 깨소금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 절 오해하고 폄훼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앞으로 절 평생 형님으로 모십시오. 그게 제가 바라는 대가입니다.”
* * *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레이몬드는 바로 수혈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제 피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놈들의 더러운 피를 도련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시종, 한이 결연하게 외쳤다.
간단히 교차 반응을 검사해 보니 수혈할 수 있는 혈액이었다.
혈소판 수혈은 꼭 혈액형이 맞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확인해 보는 게 좋았다.
“그런데 혈액을 제 몸에 어떻게 투입하는 겁니까? 설마 흡혈귀처럼 목을 물어야 하는 건 아닙니까?”
“도련님이라면 제 목을 기꺼이 내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사양하겠어. 중년 아저씨의 목을 무는 취미는 없다고. 하여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런 방법은 아니었다.
“생피를 투입하는 게 아니라, 먼저 혈액 내에서 혈소판 성분을 분리해 낼 겁니다.”
“…….”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어쨌든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전혈(Wzhole blood) 수혈.
피를 통째로 수혈하는 방법인데, 효과도 떨어지고, 부작용도 많다.
‘현대 지구에서는 어지간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수혈법이지.’
따라서 레이몬드는 다른 수혈 법을 쓸 생각이었다.
바로 성분 수혈!
혈소판만 분리해서 수혈하면 부작용도 최소화하고,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문제는 원심분리기가 필요하다는 건데. 이곳에 그런 최첨단 기계가 있을 리가 없으니.’
하지만 방법이 있었다.
현대 지구가 과학의 세계라면, 레이펜타이나는 검과 마법의 세계이니까.
마법을 쓰면 된다.
‘마켓 열람. 보조 스킬.’
촤르륵!
구입 가능한 스킬 목록이 떠올랐다.
레벨도 오르고, 스킬 포인트도 제법 모아서 살 수 있는 스킬이 많았다.
‘구입, 풍계 마법!’
[기초(D급) 풍계 마법을 구입하였습니다!] [스킬 포인트가 80포인트 소모되었습니다!] [풍계 마법]분류 : 보조(마법) 스킬
마법 등급 : 베이직
숙련도 : D
-풍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더욱 능숙하고 강렬한 풍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풍계 마법의 구현 원리가 휘리릭 머릿속에 들어왔다.
시종 한의 혈액을 채취 후 시약으로 특별 처리한 유리통에 담았다.
이후 바람에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든 바람개비 같은 특수 기구에 혈액 통을 끼웠다.
‘급하게 주문 제작하느라 돈깨나 깨졌지. 흑.’
레이몬드는 조악한 바람개비 모양의 특수 도구를 보며 눈물을 삼켰다.
전염병의 정체가 출혈열인 걸 짐작하고 곧바로 드워프 공방에 의뢰해 만든 거다.
별로 대단한 기술이 들어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급하게 의뢰한 거라 거금이 깨졌다.
‘돈만 밝히는 사악한 난쟁이 놈들. 반드시 부자가 되고 말겠어.’
쓸데없는 생각은 여기까지.
곧바로 원심 분리를 시작했다.
“윈드.”
바람 마법이 펼쳐지며 혈액이 담긴 통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마법 수준에 비교해 지력이 높습니다!] [마법을 더욱 정교하고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늘 떠오르는 메시지였다.
참고로 현재 레이몬드의 지력 스탯은 23.
이 정도면 D등급 마법을 쓰는 ‘견습 마법사(Learner magician)’들보다는 훌쩍 높은 지력 수준인 것 같았다.
‘최대한 오래 지속해야 해.’
드워프제라 그런지, 바람의 세기가 약해도 휙휙 잘 돌아갔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마법을 지속할 수 없잖아? 일부러 좁은 범위에 집중해 낭비 없이 마법을 쓰고 있는데도 마나가 부족해.’
레이몬드는 낭패한 얼굴을 하였다.
‘마나를 올릴 방법은 없을까?’
레이몬드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왜 마나 스탯을 올리는 방법은 없는 거야? 마법만 익히게 하면 뭐해? 마나도 올릴 수 있게 해주어야지! 벌써 마법을 4개나 익혔으니, 견습 마법사 수준은 되는 건데!’
그때였다.
대답이라도 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총 4개의 마법 스킬을 획득한 상태입니다.] [추가 스탯 개방의 ‘기준’을 충족하였습니다!] [추가 스탯이 개방됩니다.] [스탯]체력 : 15
감각 : 20
지력 : 23
? → 마나 : 1
“……!”
레이몬드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늘 ‘?’으로만 표시되던 항목이 ‘마나’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메시지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상단전(마나 채널)의 그릇이 매우 작습니다!] [중단전(마나 하트)의 토양이 매우 척박합니다!] [하단전(마나 홀)이 완전히 말라 있습니다!]뭔가 싸한 메시지였다.
상단전(채널).
중단전(하트).
하단전(홀).
각각 힐러, 마법사, 기사들이 마나를 축적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그중 어떤 곳에도 마나를 축적할 수가 없다니?
‘뭐야? 그래서? 마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제4의 장소, 혈맥에 마나를 축적합니다!] [마나 베인(Mana vein)이 활성화됩니다!]“……!”
레이몬드는 다시금 놀란 얼굴을 하였다.
‘혈맥에 마나를? 무슨 말도 안 되는?’
혈맥.
피가 흐르는 길로, 즉, 혈관이다.
혈관에 마나를 축적한다니!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사였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더 따지지 못했다.
곧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레이몬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혈맥이든, 뭐든 중요한 게 아니야. 어쨌든 이제 마나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레이몬드는 곧바로 스탯 포인트를 마나로 전환했다.
[마나 : 1 → 6]10포인트를 썼는데, 절반인 5포인트만 올랐다.
다른 스탯과 다르게 포인트 요구량이 두 배인 듯했다.
마나가 1에서 6으로 오르자, 갑자기 온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충만감이 차올랐다.
“윈드!”
말라 비틀어가던 바람에 다시 힘이 실렸다.
‘최대한 좁은 영역에 집중해서. 너무 지나친 강풍이 되지 않도록.’
D급 윈드는 일순간 주변에 강렬한 강풍이 몰아치는 위력의 마법이다.
그걸 최대한 좁은 영역에 집중해서 적절한 힘으로 펼쳤다.
덕분에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었고, 원심분리에 성공할 수 있었다.
‘됐어!’
혈액이 중량에 따라 3개의 층으로 나누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