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51
#닥터 플레이어 451화
‘으아아! 이런 게 어디 있어! 왜 내가 전대 황제들이 진 빚까지 떠안아야 하냐고?!’
그러니까.
사업체를 대표하는 월급쟁이 ‘대표’와 사업체를 소유한 ‘오너’의 차이였다.
사업체의 빚과 자신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월급쟁이 ‘대표’와 소유주인 ‘오너’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으니까.
‘빚은 왜 이리 많이 진 거야!’
지금껏 수백 년 동안 황실이 진 빚은 무려 10억 페나에 육박했다.
특히 그중 상당수가 로즈가 소유한 폴른 그룹에 진 빚으로, 레이몬드는 로즈에게 천문학적인 빚을 지게 된 상황이었다.
‘이건 아니야. 뭔가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해!’
레이몬드는 굳게 다짐했다.
원하지 않게 재산을 상속했는데, 빚만 가득한 상속을 받은 셈이었다.
어떻게든 이 빚을 물려받지 않을 방법을 마련해 내리라 다짐하고 있는데, 로즈가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황제가 되셨다고, 황실이 진 빚을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돼요.”
“네?”
“이전 대의 황실이 진 빚이니까. 황실의 소유권이 폐하께 넘어가긴 했어도, 폐하께 변제 의무를 지게 하지는 않을게요.”
즉, 빚을 갚을 의무는 여전히 황실에 두고, 레이몬드에게는 떠넘기지 않겠다는 거였다.
‘로, 로즈 영애.’
레이몬드는 너무 고마워 왈칵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로즈 영애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로즈 영애는 사실 악마가 아니라, 천사였던 것 아닐까?’
너무 고마워서인지, 로즈가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원래 로즈는 항상 예쁘고 귀여웠지만, 레이몬드의 눈에 예뻐 보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뭐. 우리 은행 입장에서도 무리한 상환을 요구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이자를 받아내는 게 이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로즈는 홀로 중얼거렸다.
“이런 식의 족쇄는 반칙이니까. 내가 직접 묶은 족쇄만 의미가 있으니…….”
“네?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에요.”
로즈가 활짝 웃었다.
“어쨌든 제가 온 건 황실의 채무 때문이 아니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말씀만 하십시오.”
레이몬드는 바짝 얼어 답했다.
“선물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왔는데,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뭐든지 주십시오!”
레이몬드는 강하게 말했다.
로즈가 주는 거라면, 독약이라도 마셔야 할 처지의 레이몬드였다.
“여기, 반지예요.”
“……네?”
정체 모를 마정석이 박힌 반지였다.
정성스럽게 세공된 마정석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설마, 이거…… 프러포즈?’
레이몬드는 당황했다.
반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선물이다.
로즈는 평소에도 레이몬드를 향한 애정을 거침없이 드러내지 않았는가?
레이몬드도 완벽한 바보는 아니니, 로즈의 마음이 남녀 간의 마음인 것은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어, 어쩌지?’
로즈가 싫은가? 좋은가?
모른다.
로즈를 보면, 무서워서인지 계속 가슴이 두근거리기만 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황실의 빚 부담을 덜어주어서 오늘따라 예뻐 보이긴 하지만…….
‘그, 그래도 결혼 결정은 너무 빠르잖아! 난 아직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그런데 로즈가 쿡쿡 웃음을 지었다.
“그런 의미 선물 아니에요.”
“네?”
“프러포즈하는 것 아니라고요.”
로즈가 눈을 매혹적으로 곱게 접었다.
“프러포즈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그럴 여유가 없어서. 나중에 프러포즈는 당당히 폐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할게요.”
로즈는 철의 제국을 되찾을 계획을 갖고 있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프러포즈는 나중으로 미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반지는?”
“제 마음을 담은 행운의 반지예요. 곧 루드비히와 대면하게 될 때, 꼭 끼고 있으세요.”
“……?”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선물한 행운이 폐하를 지켜줄 거예요.”
로즈는 의미 모를 말을 남긴 후 사라졌고, 곧 저 하늘 너머로 한 떼의 무리가 나타났다.
기어스 왕국군의 비행기사단으로 노르기언이 선두에서 전설의 패왕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신, 노르기언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기어스 왕국의 비행기사단의 기수들이 예를 올렸다.
앞서 결정한 대로 철저히 레이몬드를 따르기로 한 기어스 왕국이라 이런 과례를 보이는 것이다.
“……고개를 드세요. 루드비히는 어떻게 되었나요?”
“여기 있습니다.”
노르기언은 툭, 밑으로 포대에 쌓인 무언가를 던져버렸다.
쿠웅!
꽤나 높은 위치의 하늘이었던 지라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은 건 아니겠지?’
레이몬드는 패왕답게 거침없는 노르기언의 행동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두 번 상대를 던져본 게 아닌 듯한 행동이었다.
“……포대에서 죄인을 꺼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황궁의 기사들이 촤르륵 움직였다.
익숙한 얼굴의 루드비히가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무릎을 꿇어라!”
루드비히가 레이몬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큭큭,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대단하군. 네놈이 모든 걸 망쳤어.”
레이몬드는 루드비히의 말을 보니 울분이 치솟았다.
‘망치긴. 망한 건 내 인생이지!’
저놈 때문에 그의 인생이 망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자연스레 스킬이 발동되며 레이몬드는 카리스마 있게 말하였다.
“큭큭, 할 말이라…… 당연히 있지. 넌 내가 왜 이곳으로 끌려왔다고 생각하지?”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가?
‘잘못했으니 끌려왔지.’
그런데 루드비히는 연신 미친 웃음을 흘리며 뜻 모를 이야기를 하였다.
“아니, 질문을 바꾸지. 넌 내가…… 언제부터 이 일을 계획했다고 생각하지?”
“무슨 말인 거냐?”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내가 노르기언을 완벽히 속여 넘겼어도, 노르기언의 시선을 피해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게.”
그러고 보니 레이몬드도 그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루드비히는 어떻게 이만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걸까?
“난 이 일을 아주 오래 준비하였지. 이 루드비히란 놈의 몸을 차지하기 전부터 수십 년 이상이나 이 일을 준비했으니까.”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루드비히의 몸을 차지하다니? 그러면 놈은 원래 루드비히가 아니었다고?’
노르기언이 버럭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이냐! 루드비히의 몸을 차지했다니? 그러면 네놈은?!”
“큭큭, 그래. 난 원래의 루드비히가 아니다. 루드비히 놈을 죽이고 몸을 대신 차지한 거지. 순진하게 날 믿는 네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우스웠는데, 인제 그것도 끝낼 때가 되었군.”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루드비히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뿐이 아니었다.
전신이 뒤틀렸다. 마치 다른 무언가로 변이하기라도 하듯.
동시에 시커먼 기운이 루드비히의 몸에 내려앉았다.
“호, 혼돈의 기운!”
옆에 자리한 라이나가 놀라 외쳤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혼돈의 기운을?’
레이펜타이나 대륙에서 혼돈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이는 딱 두 부류였다.
페닌슐라 왕국의 왕족, 그리고 성국의 성족.
하지만 페닌슐라 왕국의 왕족은 저런 식으로 혼돈의 기운을 발현하지 못한다.
성국의 성족도 찬란한 빛의 혼돈을 지니고 있지, 저런 탁한 혼돈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 말은?’
한 가지 섬뜩한 가정에 레이몬드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윽고 변이가 끝났고, 장내에 끔찍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큭큭, 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다니.]3미터가 넘는 거신.
이마에 자리한 뿔.
탁한 잿빛 날개.
정체를 알아본 마법사들이 외쳤다.
“외대륙 요르문드의 혼돈의 존재!”
혼돈의 존재!
그게 루드비히의 진정한 정체였다!
‘어, 어떻게?’
레이몬드는 뻣뻣이 얼어붙었다.
혼돈의 존재는 말로만 들었지, 직접 목격하는 건 처음이었다.
외대륙 요르문드의 지배자들.
라이나가 루드비히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혼돈의 존재 중에서도 타천족이에요.”
“그게 정확히 뭡니까?”
“타락한 성족이에요.”
레이몬드는 놀란 얼굴을 했다.
혼돈의 존재라고 무조건 악한 건 아니었다.
그러면 요르문드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지옥이었을 테니까.
질서에 속하는 이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성족(聖族)이었다.
‘성족의 일부가 레이펜타이나로 건너와 건국한 게 또 다른 대륙 사패 중 하나인 성국이지.’
지금도 성국은 성족의 피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면, 저놈은?”
“네, 아마 성족이었다가 타락해 요르문드에서 배척당해 레이펜타이나로 도주해온 존재일 가능성이 높아요.”
타천족은 질서 진영에서도, 악의 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배척받는 존재라고 한다.
라이나는 그렇게 놈의 정체를 추측했고, 놈은 큭큭 웃음만 흘렸다.
[제법 아는 게 많은 마법사이군. 그래봤자 의미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놈은 말을 이었다.
[레이몬드, 네놈은 이 자리에서 나 타락의 군주, 해리알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해리알.
이게 놈의 진명인 듯했다.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다.
“그런데 저놈 강합니까?”
라이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군주급의 존재인 듯해요.”
“군주급이면?”
“고위 드래곤 이상의 존재예요.”
레이몬드는 경악했다.
‘엄청 강하잖아!’
일전 유적에서 레서 드래곤을 상대할 때도 진땀을 뺐다.
그런데 고위 드래곤이라니?
이 자리의 모두가 모여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아니, 괜찮나?’
레이몬드는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 이곳은 황도다.
십자연맹제국의 온갖 강자가 모여 있다.
당장 저 하늘에 떠 있는 기어스 왕국의 비행 기사단에만 해도 소드 마스터가 5명이 넘는다.
황도에 있는 소드 마스터와 아크 메이지를 모두 합치면 무려 20명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군주급이라도 상대할 수 있을지도? 군주급이라도 무적은 아닐 테니.’
실제로 철의 제국은 주기적으로 동쪽 연안을 침범하는 요르문드의 마물들과 전쟁을 벌인다.
그런 걸 생각하면, 혼돈의 존재라고 인간의 힘으로 상대하지 못할 적은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안도의 마음이 들어 강약약강의 신조대로 강하게 음성을 높였다.
“감히,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이다니. 오늘, 네놈을 처단하겠다!”
황도에 있던 기사들, 마법사들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루드비히, 아니, 해리알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물론, 아무리 나라도 너희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지. 하지만 내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이 자리에 나타났겠는가?]“뭐?”
[난 레이몬드, 네놈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네놈만 죽이면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해리알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레이몬드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주군! 피해야!”
“냐옹냐옹!”
바로 옆에 있던 엘무드, 미엔이 레이몬드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놈이 노린 건 레이몬드가 아니었다.
[절규하고, 비통해해라! 마나의 저주가 너희에게 내릴지니!]놈의 몸에서 화악 혼돈의 힘이 뻗어 나갔다.
마치 빛의 파동이 번지듯 혼돈이 장내의 모두를 휩쓸었고, 곧 경악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커어억!”
마나를 지닌 모두가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 쓰러진 것이다!
레이몬드를 제외하고, 모두가.
‘이, 이건?’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아카네의 돌?’
놈이 웃음을 흘렸다.
[아카네의 돌 자체가 우리 혼돈의 존재의 능력을 본떠 만든 것이지. 물론, 이 마나 교란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지만.]놈이 섬뜩한 눈빛을 흘렸다.
[그 정도면 네놈을 죽이기 충분하겠지. 네놈을 죽이고, 이 전염체를 대륙에 퍼뜨리겠다.해리알의 몸 주위로 희미한 빛의 입자들이 떠올랐다.
[이 전염체는 혼돈의 능력으로 재조합한 전염체. 최악의 전염률을 지니고 있지. 의술을 통해서는 치료할 수 있지만, 네놈만 없어지면 이 전염체를 치료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
[원래는 기어스 왕국의 힘으로 온전한 대륙을 손에 넣을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상관없다. 전염체로 대륙을 초토화한 이후, 누구도 저항 못 하게 해 내 손에 넣어주겠다.]그 이야기를 들은 레이몬드는 몸을 떨었다.
끔찍한 계획이었다.
‘어, 어쩌지?’
판단은 빨랐다.
‘도망가야 해!’
겁쟁이다운 판단이었다.
하지만 비난할 수 없는 게, 지금은 그게 가장 현명한 일이었다.
그가 죽으면 저 정체 미상의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아무도 없으니까.
‘몇 분만 도망가면 마나 교란에서 사람들이 회복할 거야! 그때까지만 몸을 피하면 돼!’
하지만 이미 예상했는지, 놈이 수를 썼다.
파창!
장내의 주위로 붉은 막이 나타났다.
결계였다!
[시간을 끌면 곤란하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 주마.]루드비히가 레이몬드에게 다가왔다.
3미터에 달하는 거신의 악마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레이몬드는 두려움에 심장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도 살아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내가 저런 놈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고작 스킬발로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레이몬드는 맨날 하늘을 원망했던 것도 잊고 간절히 바랐다.
‘제발 살려! 살려만 주면 다시는 원망하지 않고, 황제 노릇 열심히 할 테니……!’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레이몬드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온 것이다.
정확히는 손.
로즈가 준 반지에서였다.
‘뭐, 뭐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레이몬드는 당황해 눈을 끔뻑였다.
놀랍게도 놈은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빛에 크게 괴로워하는 얼굴이었다.
놈이 경악한 외침을 내었다.
[크, 크윽……! 어떻게 네놈이 비르문드 황가의 신물을?!]“……!”
비르문드 황가!
철의 제국을 수백 년 동안 지배해 온 황가를 말한다.
‘이게 황가의 신물이라고?’
레이몬드는 놀라 눈을 끔뻑거렸다.
‘설마, 로즈 영애는 이 상황을 예상하고?’
로즈는 아까 말했다.
루드비히와 만날 때 꼭 이 반지를 끼고 있으라고.
‘로즈 영애는 루드비히가 혼돈의 존재인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 반지는 혼돈의 존재를 제약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닌 신물인 듯했다.
철의 제국은 수백 년 동안 혼돈의 존재와 싸워 왔으니 이런 신물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레이몬드는 쫄아 있던 게 언제라는 듯 당당하게 외쳤다.
“감히, 이런 악독한 짓을 저지르려고 하다니! 제국의 황제로서 네놈을 처단하겠다!”
동시에 우수수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