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68
#닥터 플레이어 468화 – 외전 16
[라이틸 시약을 이용해 신비의 노끈의 생산 해당 부위를 커팅하여, 합성 키메라 연금술로 대장균에…….]복잡한 설명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스킬이 알려준 제조법은 대장균을 이용한 클로닝 방법이었다.
대규모 인터페론 생산이 가능하지만, 단백질 분리가 어려워 현대 지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연금 스킬은 레이펜타이나에만 존재하는 시약으로 단백질 정제법까지 알려주었다.
‘스킬 사용비가 비싸지만, 돈값은 하니.’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외의 금전 출혈은 반드시 뱀파이어들에게서 뜯어내기로 다짐하며 인터페론을 생산하던 중이었다.
“그만! 멈추도록 하십시오, 인간의 황제여!”
왈칵, 문이 열리며 거친 음성이 들렸다.
창백한 인상의 젊은 미남자였다.
“당신은?”
“전 뱀파이어들의 왕자, 프린스 콜린스라고 합니다.”
“…….”
레이몬드는 잠시 침묵했다.
‘프린스’라.
생각해 보니 인구도 몇백 명밖에 안 되는 조그만 마을인데, 스스로 자기를 프린스, 프린세스라고 하는 게 민망해 보였다.
‘촌장 아들, 딸이라 부르는 게 맞지 않나.’
어쨌든 레이몬드는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일족은 뉴브위라 님의 제안을 따를 테니, 당장 치료를 멈추어주십시오.”
레이몬드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치료제를 제조하는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믿을 수 없습니다.”
“……!”
콜린스가 차갑게 말했다.
“물론 폐하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껏 노력해 주었던 것은 일족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노력하심에도 일족들은 속절없이 죽어만 가고 있습니다. 일족의 프린스로서 더는 일족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어쩌지?’
치료를 강제할 수는 없다.
만약 뱀파이어들이 치료를 거부하면 그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잠깐만, 오라버니! 기다려 주세요!”
“……루디안.”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가난의 황제 폐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실 거라고!”
“……도대체 언제?”
콜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 당장 뉴브위라 님께 충성을 맹세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목숨을 잃으실 거야!”
장내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부터 이 마을의 지도자, 뱀파이어 로드 블랑크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하였다.
콜린스가 지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의 아버지, 뱀파이어 로드의 상세가 위독해졌기 때문이다.
루디안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레이몬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치료제를 사용 후에도 반응이 없다면 짐도 그대의 말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 약을 사용하면 치료할 수 있는 겁니까?”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효과가 없을 수도 있지요.”
“그러면!”
“하지만.”
레이몬드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 효과가 있을 거로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당신의 일족을 구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콜린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레이몬드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낀 걸까? 콜린스는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페론이 투약되기 시작했다.
로드 블랑크부터 다른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에게 모두.
‘다행히 외부 물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없어. 문제는 효과인데.’
투약되자마자 당장 드라마틱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면역 기능이 돌아왔다고, 감염증의 상태가 바로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불이 난 곳에 이제 막 소방관을 투입한 것과 같았다.
‘만약 내 가설대로 인터페론에 문제가 생긴 게 맞는다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악화만 되던 환자들이 조금씩 호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염증 수치가 소폭 호전되었어요! 열 피크도 조금 떨어졌고요!”
린든이 놀라 소리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반응이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느려도 확실히 환자들의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건 패혈성 쇼크에 빠졌던 환자들도 호전을 보였다는 것이다. 혈압이 오르고, 미칠 듯이 뛰던 맥박이 조금씩 떨어졌다.
‘됐어! 이대로라면, 모두 천천히 회복하게 될 거야!’
일족의 상태가 좋아지는 모습을 본 루디안이 왈칵 감동하여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폐하께서 저희에게 기적을 이루어주셨어요!”
레이몬드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위기를 넘겼으니, 이미지 메이킹을 할 타임이었다.
“아닙니다. 그저 힐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환자들이 좋아져서 다행입니다.”
도대체 몇백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는 입바른 말이었다.
이런 눈에 빤히 보이는 말이 먹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먹혔다.
그것도 격하게 먹힌다.
“아아!”
루디안은 커다랗게 감동하였고, 심지어 레이몬드에게 부정적이었던 콜린스의 눈동자도 파도를 만난 듯 흔들렸다.
모두 레이몬드의 ‘빛’에 감화된 것이다.
‘넘어왔군. 훗.’
마정석 광산 지분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레이몬드는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지려는 걸 참으며 애써 표정 관리를 하였다.
‘흐흐, 좋아. 슈퍼 리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이대로 황금의 황제가 되는 거야!’
꿈에 부풀어 신이 나서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마치 날아다니는 듯한 레이몬드의 모습에 제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늘 한결같은(?) 레이몬드의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우면서도 기가 질리기도 하였다.
‘난 언제 폐하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폐하, 그만 빛나세요! 저 힘들어요!’
제자들도 레이몬드를 따라 분투하였다.
그렇게 모두의 노력 덕에 환자들이 호전을 보일 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뉴브위라 님의 화신이 왔습니다!”
레이몬드를 비롯한 이들의 얼굴이 굳었다.
적이 다시 나타났다.
* * *
루디안과 콜린스가 앞에 나섰다. 레이몬드는 지난번처럼 겁먹은 개미인 양 뒤에 서서 동태를 살폈다.
“뉴브위라 님을 뵙습니다.”
[흐음?]뉴브위라의 화신은 눈썹을 꿈틀했다.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다.
[너희?]루디안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네, 우리는 당신의 저주를 극복하였습니다. 바로, 가난의 황제가 내리신 기적을 통해서요.”
[……!]화신의 눈이 커졌고, 뒤에서 몰래 숨어 듣고 있던 레이몬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내 이야기를 뭐 하러 해?’
상대는 강대한 혼돈의 존재다.
괜히 찍힐(?)까 무서웠다.
걱정대로 화신은 서늘한 눈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과연, 가난의 황제인가. 해리알의 계획을 무너뜨린 위인답군.]선명한 적의에 검성을 비롯한 이들이 레이몬드를 감쌌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이 검성이 지켜 드리겠습니다!”
“빛을 지키자!”
“냐옹!”
‘……너희 하나도 안 믿음직스러워.’
레이몬드는 떨떠름한 얼굴을 하였다. 몇 번 데고 난 다음, 검성을 향한 신뢰를 모두 잃은 레이몬드였다.
다행히 뉴브위라의 화신은 레이몬드를 해코지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뱀파이어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냐? 너희의 시조인 이 뉴브위라의 말을?]루디안은 당차게 답했다.
“당신께서 우리의 시조라고 하나, 그릇된 일에 힘을 보탤 수는 없습니다! 이만 물러가 주십시오!”
[나 뉴브위라를 너무 얕보는구나. 난 위대한 혼돈의 군주. 내 보잘것없는 줄기에 불과한 너희 따위야 얼마든지 없앨 수 있거늘.]뉴브위라의 몸에서 섬뜩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루디안을 비롯한 뱀파이어들은 놀랍게도 겁먹지 않았다.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허세를 부리시는군요.”
[……뭐?]“저희도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전의 힘을 잃었다는 것을.”
[……!]“그래서 직접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화신을 통해서만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까?”
화신이 일순 당황한 얼굴을 하였다.
사실이었던 것이다.
화신, 아니, 뉴브위라는 이를 악물었다.
원래 그녀는 요르문드에서 손꼽게 강대한 혼돈의 군주였다.
하지만 다른 혼돈의 군주와 다툼 후 상당수의 힘을 잃고 이곳 레이펜타이나로 쫓겨왔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민 존재가 있었다.
현재 철의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암중에 음모를 꾸미고 있는 존재.
그 존재는 그녀에게 힘을 되찾게 해줄 테니 자신에게 협력하라고 하였고, 뉴브위라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이곳 뱀파이어들을 자신의 전력으로 삼기 위해 이번 일을 벌인 것이다.
대부분의 힘을 잃기는 했지만, 그녀는 모든 뱀파이어의 시조.
‘권능’을 이용해 자신의 씨앗들에게 강력한 저주를 내릴 수 있었다.
그녀가 숱한 뱀파이어들을 자신의 발밑에 무릎 꿇릴 수 있었던 권능이었다.
저주를 받은 뱀파이어는 얼마나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든 상관없이 여러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았다.
단 한 번도 이 저주를 극복한 이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저 가난의 황제 때문에!’
뉴브위라가 형형한 눈빛으로 레이몬드를 노려보았다.
레이몬드는 찔끔하였다가, 곧 생각을 바꾸었다.
‘잠깐, 겁먹을 것 없잖아. 어차피 힘 잃었다며?’
레이몬드는 강약약강의 신봉자답게 급격히 당당해져 외쳤다.
“악의 족속이여! 나 정의를 숭상하는 황제로서 선언하니 정의의 심판이 네놈에게 임할 것이다!”
물론 그 심판은 다른 사람들이 내려줄 것이다.
검성이 앞으로 나섰다.
“드디어 이 늙은이가 나설 때가 되었군요. 보잘것없는 명성이지만, 그래도 검성이라 불리는 몸. 저 어둠의 족속의 목을 베어 폐하께 영광을 바치겠습니다!”
레이몬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믿어줄 테니 이번에는 제대로 활약해 보십시오, 검성 할아범!’
매번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저래 보여도 십자 연맹 제국…… 아니, 대륙 최강의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었다.
힘을 잃은 혼돈의 군주 따위야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뉴브위라가 묘한 느낌의 웃음을 흘렸다.
[후후…… 어리석구나. 나 뉴브위라가 고작 권능 하나만을 믿고 있을 것 같으냐?]루디안이 이를 악물었다.
“허세 부리지 마십시오! 당신이 힘을 잃었음은 이미 모두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래, 내가 이전의 힘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그녀의 눈동자가 뱀처럼 찢어지며 불길한 기운으로 빛났다.
[하지만 내 권능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 보아라, 내가 일으키는 이적을.]뉴브위라가 손을 들며 언령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