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85
#닥터 플레이어 485화 – 외전 33
“어떤?”
레이몬드는 놀란 눈을 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성왕에게 심장을 이식…… 그러니까, 융합하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융합.
다른 종의 신체를 이식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키메라를 연구하는 생체 마법사들이 쓰는 마법학적 용어였다.
부마탑주는 웃음을 지었다.
“생체 키메라 마법사들은 이전부터 다른 몬스터 종들끼리의 융합을 꿈꾸어왔지요. 하지만 거부반응 때문에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같은 종끼리 이식을 해도 면역이 생기며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런데 다른 종의 몸을 이식하면 어떤 꼴이 될지 뻔했다.
이식 시도 후 단 한 번도 생존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거부반응 없이 융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마왕의 신체를 이식하는 겁니다.”
“……마왕이라요?”
레이몬드는 당황한 얼굴을 했다.
마왕이라니?
소설 속에 나오는 그 마왕?
“제가 말하는 마왕은 마족들의 지배자를 뜻합니다.”
“……마족은 또 뭡니까?”
“외대륙 요르문드의 종족입니다. 성격이 악마처럼 사악하기 그지없어서 마족이라고 부릅니다. 가끔 마왕급 존재가 철의 제국으로 날아와 분탕질하지요.”
레이몬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외대륙 요르문드와 가까워서인지 온갖 이상한 종족이 설치고 다니는 철의 제국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거부반응 없이 이식이 가능하다는 겁니까?”
“마족은 정신체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체.
또 처음 듣는 단어가 나왔다.
“실례지만, 정신체를 모르십니까?”
“……처음 듣는군요.”
“……분명 폐하께서는 고위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정신체를 모를 수가?”
“……딱히 마법을 공부한 적이 없는지라.”
당황한 프라딘 공작이 라이나를 바라보았다.
라이나는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폐하께서는 단 한 번도 마법학적 지식을 공부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분명 폐하께 느껴지는 힘은 아크 메이지 이상인데?”
“폐하께서는 위대한 선천 마법사니까요.”
“……!”
프라딘 공작이 눈을 크게 떴다.
레이몬드가 선천 마법사란 사실은 철의 제국 마탑에도 유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고 진짜인 걸 깨달은 것이다.
“오오, 미라클. 진정 선천 마법사셨다니. 그러면 폐하께서는 어쩌면 우리 2마탑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실 수도 있겠군요.”
오랜 숙원.
레이몬드는 그 단어를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쓸데없는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정신체나 설명해 주십시오.”
“크흠, 정신체는 실제 생명체가 아니면서 물질로 형상화한 존재를 말합니다. 고위 정령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레이몬드는 이해했다.
고위 정령은 생명체가 아닌데도 실제로 사람처럼 형상화해 물질계에 나타날 수 있다.
“마족은 탐욕, 증오, 살심 같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뭉쳐 형상화된 종족이죠. 고위 마족일수록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되고, 마왕의 경우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신체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마족의 신체를 이식하면 거부반응이 없다는 겁니까?”
“이건 가설이긴 한데, 마족의 육신은 실제 물질이 아닌데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종에 융합을 시도해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학설입니다.”
레이몬드는 아리송한 얼굴을 하였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긴 한 것 같은데.’
대충 이해해 보니, 정신체인 마족은 사람들의 사념이 물질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니 실제적인 물질이 아니면서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면역 반응이 유도되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이론적으로 가능해. 마족의 신체를 면역 체계에서 인식하지 못하면, 면역 반응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거부반응도 없을 거야. 그나저나 천족에게 마왕의 심장을 이식해도 되는 건가.’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뭐, 지금 그런 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긴 했다.
“그런데 마족의 심장을 구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마족은 외대륙 요르문드의 존재다.
어디서 마족을 구해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프라딘 공작이 빙긋 웃었다.
“여기 2마탑에 있습니다.”
“네?”
“이곳 2마탑 가장 깊숙한 곳에 봉인하고 있는 마왕이 있습니다. 그 마왕의 심장을 꺼내 가면 됩니다.”
레이몬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면 큰 문제 없겠군요. 당장 심장을 꺼내 가야겠습니다.”
“아, 그런데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마왕이 깨어 있습니다.”
“……네?”
“마왕은 잠들어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저 지하에 갇혀만 있는 것이지요. 이전에 비해 다소 약화한 상태긴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말은?”
프라딘 공작이 해맑게 말했다.
“네, 심장을 가져가려면 마왕을 쓰러뜨려야 합니다.”
* * *
레이몬드는 프라딘 공작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봉인되어 있다며? 그런데 멀쩡히 깨어 있다는 말은 뭐야?’
프라딘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왕이 철의 제국에 침공한 건 30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갓 아크 메이지가 되었을 때의 일이지요. 그때, 2마탑의 부탑주님은 마왕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봉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
“하지만 그 봉인도 불안정해 마왕을 특정한 공간에 가두는 것에 불과했지요. 이곳 2마탑으로 봉인 공간을 옮겨놔 주기적으로 봉인을 강화하며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여기 지하 깊은 곳에 마왕이 생생히 깨어 있는 채 탈출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뭐야, 철의 제국 왜 이래. 뭐가 다 이따위야.’
레이몬드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뱀파이어가 소 목장을 운영하고 마왕이 황도 한복판 밑에서 탈옥을 노리고 있다.
‘로즈 님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황제를 하고 있는 거지.’
새삼스레 로즈의 위대함이 다시 느껴졌다.
“어쩔 수 없군요. 그래도 성왕을 살리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니, 마왕을 쓰러뜨려야겠습니다.”
성왕을 살려야 재앙을 막을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성왕의 목숨에 걸린 돈을 생각하면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싸울 것도 아니니까. 철의 제국의 무시무시한 소드 마스터들과 아크 메이지들이 대신 싸워주겠지.’
아무리 마왕이 강해도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프라딘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네?”
“그게…… 마왕을 봉인하기 위해 아카네의 돌을 사용했습니다.”
레이몬드는 멈칫하였다.
아카네의 돌.
익숙한 추억의 단어였다.
“그…… 마나를 진탕시키는?”
“네, 그렇습니다. 봉인 공간 안에 들어가면 소드 마스터와 아크 메이지들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껏 마왕을 죽이지 못하고 가둬만 두고 있는 것이지요.”
“…….”
“덕분에 저 마왕을 처리하는 건 우리 2마탑의 오랜 숙원이 되었습니다.”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불안했다.
‘자, 잠깐.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
역시나 프라딘 공작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저 봉인 공간 안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건 단 하나입니다. 바로 전설의 선천 마법사나 천무지체.”
“……!”
“이 둘 말고는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레이몬드에게 쏠렸다.
선천 마법사이자, 천무지체인 존재.
레이몬드였다.
즉, 그가 마왕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 * *
레이몬드는 남들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뭔 멍멍이 소리야? 내가 왜 마왕이랑 싸워?! 안 해!’
다가올 재앙을 막기 위해?
알 게 뭐냐. 자기 몸이 제일 중요한 레이몬드였다.
‘성왕을 살려서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내가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지! 내가 용사도 아니고 마왕이랑 어떻게 싸워?!’
고민해 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단박에 고개를 저으려고 할 때였다.
크리스틴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절대 안 됩니다, 폐하.”
“네?”
“폐하께서는 또 모두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고 할 생각이시잖아요.”
“네? 네?”
린든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녀님, 아직도 폐하를 그렇게 모르세요?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폐하께서는 분명 또 마왕을 무찌르러 가실 거예요. 남들을 위해서라면 기름을 짊어지고 지옥 불에라도 가실 분이니까.”
린든은 ‘난 제발 빼주었으면……’이라고 깨알같이 얄밉게 말하였다.
크리스틴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긴. 말려봐야…….”
‘아니, 말려봐야 뭐? 제자님, 그 한숨의 의미는 뭡니까?’
레이몬드가 당황할 때 한슨이 중후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들 어리석군요.”
“한슨 경?”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폐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게 아닌, 폐하를 믿어드리는 겁니다.”
한슨이 안타까운 눈동자로 레이몬드 쪽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 역시 폐하께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숭고한 결심이 가득 찬 폐하의 저 얼굴을!”
“…….”
참고로, 레이몬드는 당황해서 어버버 입을 벌리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한슨의 눈에는 그런 레이몬드의 모습조차 숭고해 보이는지 격정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이미 폐하께서는 마음의 결심을 내리셨으니, 우리로서는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 믿습니다. 마왕이라도 폐하의 빛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아니, 마왕조차 폐하의 빛에 무릎을 꿇게 될 겁니다.”
“……그래도 폐하께서 마왕을 상대하는 건…….”
“어허, 공녀님. 폐하를 향한 믿음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까?”
그 물음에 크리스틴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틴도 레이몬드를 믿는다. 그저 걱정되어서 그럴 뿐.
린든이 옆에서 촐싹 맞게 말했다.
“저도 폐하를 믿어요. 그러니 전 폐하를 응원하고 있을게요!”
제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검성이 분연히 일어섰다.
“그래, 한슨 경의 말씀이 옳다! 이 검성, 폐하의 빛을 믿지 못하고 폐하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자 하려 했는데 부끄럽습니다.”
레이몬드는 그런 검성의 외침에 입을 뻐끔거렸다.
‘아니, 이 양반아? 호위 기사인 당신은 날 말려야지!’
하지만 검성은 레이몬드의 빛을 의심한 게 크나큰 잘못이라도 되는 양 후회하는 얼굴로 외쳤다.
“너희는 거기서 가만히 우두커니 무엇 하고 있느냐?!”
“폐하의 빛을 믿자!”
“냐옹! 냐옹!”
그 난장판 속에서 레이몬드는 울고 싶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다들 조용히 해줄래?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난 절대 싸우러 갈 생각 없거든?’
지금껏 온갖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해온 레이몬드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상대는 무려 마왕.
절대, 절대 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