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92
#닥터 플레이어 92화
‘중독! 그러고 보니 수은 중독이 저런 식의 증상을 나타낼 수 있잖아!’
벼락을 맞은 듯 등줄기에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수은 중독이면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신경학적 증상! 연금술사들이 실수로 수은 화합물에 중독되었을 때 나타난다는 증상과 똑같아!’
‘연금술 스킬’을 익히며 알게 된 지식이다. 수은 화합물을 다룰 때 유의 사항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레이몬드는 전령으로 뛰어온 병사에게 물었다.
“혹시 쓰러진 병사들이 휴식 때 어떤 일을 했었나요?”
“어…… 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왔던 것 같습니다.”
‘역시!’
레이몬드는 입이 바싹 말랐다.
‘냇가에 수은 화합물이 풀어져 있었던 거야! 그러면 모든 게 설명이 돼.’
모든 게 아귀가 맞혀졌다.
수은은 무색, 무취, 무미이니, 물과 함께 섭취해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수은 화합물을 냇가에?’
순간, 레이몬드의 몸이 경직되었다.
한 가지 섬뜩한 가정이 떠오른 것이다.
‘혹시 또 드로튼 놈들이?’
이제 레이몬드도 드로튼 왕국이 벌인 소행을 알고 있었다.
베이 구역에 전염병을 퍼뜨린 것도, 유적에 함정을 판 것도 모두 드로튼 왕국의 짓이었다고.
심지어 랑함 후작의 사건도 어쩌면 드로튼 놈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이번에도 놈들의 짓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악마 같은 놈들이. 아무리 적국이어도 이건 도를 넘었잖아!’
“준남작님? 무언가 알아내신 겁니까?”
레이몬드는 클리앙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에게 1시간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모두 해결하겠습니다.”
“……!”
레이몬드는 이를 갈았다.
평소와 다르게 분노한 모습.
“이번 사태를 일으킨 빌어먹을 악마 같은 놈들을 모조리 잡아 오겠습니다.”
* * *
레이몬드는 자신의 추측을 클리앙와 엘무드에게 말해주었다.
두 사람 모두 크게 경악해 분노했다.
“어찌 그런! 세상에 그런 악마 같은 놈들이!”
“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레이몬드는 다급히 말했다.
“일단 병사들이 마셨던 냇가의 물을 수집해 놓아주십시오. 나중에 마탑으로 가져가 성분을 분석해 증거물로 삼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악마 놈들을 잡아야지요.”
레이몬드는 이를 갈았다.
“범인은 아직 이 근처에 머물고 있을 겁니다. 도망치기 전에 잡아야 합니다.”
레이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통에 괴로워하던 환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 중 다수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속물 치료사라도 이런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반드시 잡아 죗값을 치르게 해주겠어.’
클리앙이 격앙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당장 병사들을 동원해 놈들을 잡겠습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병사들을 동원하면 눈치를 채고 도주할 겁니다. 분명 잠복, 도주에 능한 놈들일 터. 숨기 시작하면 잡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라면?”
“덫을 놓아야지요.”
레이몬드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고, 클리앙은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클리앙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가 있었다.
레이몬드 본인을 미끼로 내놓자는 작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레이몬드는 자신 있게 고개를 저었다.
“실례지만 제 신조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자님?”
“환자를 살리자, 입니까?”
“……아니요. 안전이 최고다, 입니다.”
그의 두 가지 신조.
‘강약약강’과 더불어 ‘무사안전제일주의’이다.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비밀 병기가 있거든요.”
그러며 레이몬드는 분노와 슬픔으로 빨개진 눈을 하고 있는 앳된 영주, 엘무드를 바라보았다.
“……저요?”
“네, 영주님만 도와주시면 놈들을 단번에 일망타진할 수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악마 놈들을 잡으러 출발하겠습니다.”
* * *
“큰일입니다! 페닌 준남작이 산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페닌 준남작이?”
와이트삭스는 놀라 멈칫했다.
그들은 영지의 식수원이 되는 상류 계곡에 머물며 주기적으로 유독 수은을 물에 흘리고 있었다.
‘설마 벌써 우리의 음모를 눈치챈 건가?’
그런 듯했다.
뭔가 실마리를 잡고 확인하러 올라오는 것이리라.
“페닌 준남작은 혼자 올라오고 있나?”
“로브를 뒤집어쓴 비리비리한 소년 한 명과 같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확실하지? 다른 병사들은 대동하지 않은 거지?”
“네.”
와이트삭스는 여유로운 얼굴을 되찾았다.
‘놈도 아직 확신하지는 못한 모양이군.’
만약 확신했다면 저렇게 홀로 올라오지는 않았을 거다. 병사들을 대동했겠지.
“지금 놈은 뭘 하고 있지?”
“뭔가를 알아내려는 듯 계곡 주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말에 와이트삭스는 결단을 내렸다.
“놈을 잡는다.”
“……!”
“놈이 혼자 있는 지금이 기회야. 놈을 잡지 않으면 이번 계획은 실패다.”
만약 놈을 내버려 두면 전염병의 비밀을 알아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계획은 실패다.
그렇게 되기 전에 놈을 잡아야 했다.
‘놈을 잡아가면 베라드 대공 전하도 크게 흡족해하시겠군. 큭큭.’
와이트삭스는 수하들과 함께 레이몬드를 잡으러 갔다.
“당신이 페닌 준남작입니까?”
와이트삭스는 스산하게 물었다.
그런데 레이몬드의 반응이 이상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들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래, 이 뒤질 X새끼들아. 이 몸이 페닌 준남작님이시다.”
“……뭐?”
레이몬드는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영주님,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놈들을 잡아주십시오!”
스륵.
레이몬드 옆의 소년이 후드를 젖혔다.
엘무드 드 랜톤.
아니, 엘무드 드 아리스.
휴스톤 왕국 최고 무가(武家)인 아리스 후작가의 후계자이자, 왕국 최고의 천재라 칭송받던 이.
스무 살이 되기 전, 무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를 돌파한 왕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천재가 빨개진 눈으로 스르릉 검을 꺼내 들었다.
가족 같은 영지민들을 해친 원수들을 향해.
* * *
레이몬드는 신이 나서 욕설을 내뱉었다.
“이 지옥에나 떨어질 빌어먹을 놈들아! 너희는 다 죽었다! 지옥 갈 준비나 해라!”
그가 이렇게 자신만만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옆의 소년, 엘무드 때문!
‘왕국 최고의 겁쟁이.’
엘무드에 대한 세간의 평이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다른 소문도 들어 알고 있었다.
‘왕국 역사 최고의 검술 천재.’
3년 전.
엘무드는 17살 경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를 돌파했다.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가히 왕국 역사에 손꼽는 전무후무한 천재라 할 수 있었다.
남들 앞에 나서기 두려워하는 엘무드의 내성적인 성격 덕에 일부밖에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레이몬드는 우연히 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지금 엘무드는 더욱 강해졌을 거야. 저딴 놈들이야 손가락으로도 잡겠지.’
과연 엘무드의 강력함을 눈치챈 건지, 놈들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레이몬드는 신이 나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쳐죽일 놈들. 네놈들은 이제 끝장이다! 죗값을 치를 각오나 해라. 영주님, 어서 저놈들을 무릎 꿇리십시오!”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엘무드가 우뚝 선 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영주님?”
순간 레이몬드는 엘무드의 앳된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두려워하는 거야? 그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그러고 보니 어제 엘무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끄러운 자식이라고 쫓겨났습니다. 전 아버지와 다르게 겁쟁이거든요.’
순간, 레이몬드는 자신이 간과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리스 후작이 오죽하면 본인의 아들을 내쫓았을까 하는 사실을 말이다.
‘아리스 후작이 괜히 내쫓은 게 아니었어! 설마 저 정도로 겁쟁이였다니!’
엘무드는 그냥 겁쟁이가 아니라, 구제불능의 겁쟁이였던 것이다!
레이몬드는 급히 태세전환을 하였다.
“너희. 그냥 가라.”
“……뭐라고요?”
“특별히 자비를 베풀 테니 꺼져! 평생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레이몬드는 허세를 부리며 간절히 바랐다.
‘제발 가라. 그냥 가라. 으아아. 괜히 이런 작전을 짜서. 죽고 싶지 않아! 제발 그냥 가주세요.’
물론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와이트삭스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거 누군가 했더니. 휴스톤 왕국 최고의 겁쟁이였군요. 잘됐어요. 모두 사로잡아 대공 전하께 바쳐주겠습니다. 겁쟁이는 아리스 후작을 낚을 인질로 삼으면 되겠고.”
와이트삭스는 섬뜩한 눈빛으로 레이몬드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대공 전하께 전리품으로 바쳐주지요. 당신 때문에 망친 계획이 하나둘이 아니니 아주 길고 끔찍한 죽음을 선사받을 겁니다. 큭큭.”
사이코패스 같은 웃음이었다.
‘으아악! 살려줘! 내가 미쳤지. 왜 이런 계획을!’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다.
레이몬드는 호신용 쇠몽둥이,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벌벌 떨렸지만, 다행히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수많은 환자를 중독시킨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철의 심장’이 발현됩니다!] [강력한 의지와 굳건한 심기를 갖습니다!]하지만 워낙 떨리는 상황이어서일까? 두려움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다.
간신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영주님, 어서 도망가십시오.”
“치료사님?”
“내가 막을 테니, 빨리 내려가라고요!”
무슨 불타는 희생심을 발휘해 엘무드만 살리려는 게 아니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클리앙의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들을 불러와야 했다.
거북이걸음인 그보다는 소드 익스퍼트인 엘무드가 훨씬 빠르리라.
‘놈들도 당장 나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여.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끌면 병사들이 와서 날 구해줄 거야!’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엘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치, 치료사님만 놔두고 저 혼자 갈 수는 없습니다.”
“아, 진짜. 그냥 가라고요!”
레이몬드는 고구마 백만 개를 씹어 삼킨 기분이 들었다.
몰랐는데, 진성 고구마 덩어리였다.
내쫓은 아리스 후작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되었다.
설상가상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이군요.”
와이트삭스가 시커먼 미소를 지으며 검을 꺼내 들었다.
‘제기랄!’
레이몬드는 눈물을 삼키며 엘무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서 가라고요!”
“그, 그럴 수는…….”
“아, 좀! 제발 도망가라고! 아, 진짜! 신발! 빨리!”
하지만 엘무드는 속 터지는 이야기만 하였다.
“거, 겁쟁이인 절 위해 적을 가로막아주다니. 어,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나설 수 있는 겁니까? 영지민들을 도와줄 뿐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희생하려 하다니…… 난 이렇게 못났는데 당신께서는 어찌 그렇게 숭고하게…….”
어찌나 감동했는지, 물기에 젖은 음성이었다.
물론 레이몬드는 속만 터졌다.
‘닥쳐, 이 고구마 덩어리야!’
메이스를 들었다.
‘제발, 이번에도 하늘이 도와주길.’
어쩌면. 정말 운이 좋으면 세이틸과 싸웠을 때처럼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때,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기 상황입니다!] [호신 스킬, ‘치료사의 호신술’이 발현됩니다!] [스탯]체력 : 36 → 46
감각 : 33 → 43
추가로, 스탯이 더 올라갔다.
[상대의 힘이 강력합니다!] [‘업적 : 거인을 쓰러뜨린 난쟁이(2+)’의 특전이 발현됩니다!] [‘약간’ 더 강해집니다!] [스탯]체력 : 36 → 46 → 49.5
감각 : 33 → 38 → 41.5
특전 효과로 체력 스탯이 무려 50에 육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