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27
제 1127화
여기 모인 모두가 이를 득득 갈았다.
“……그렇지. 백린의각에 복속되면 분명 예전처럼 되지는 않을 터.”
다른 문주들이 동의하자 그제야 해남검문 문주가 입을 열었다.
“그 영역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지금 이때 사도련이 기습하여 직할지로 만들어야 하네!”
“…….”
긴 침묵이 이어진다.
이윽고 황하장강수로채 채주가 입을 열었다.
“껄껄걸, 섬사람인데도 식견이 참 대단한걸? 나는 찬성이오!”
이화궁주도 답을 했다.
“본 궁주도 지지하겠다.”
마교인 음양도문 문주도 말했다.
“본 교에서도 찬성이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산 신녀문.
“…….”
대답을 하지 않고 얼굴만 찌푸리자 모두가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이윽고 그녀가 면사 아래에서 입을 열었다.
“다들 찬성하니 어쩔 수 없군. 본 문주도 따르겠네.”
이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제 사도련주가 된 해남파 문주가 탁상을 손바닥으로 쿵 때린다.
“좋다. 그렇다면 사도련주가 새로 취임했음을 알리고, 귀곡문의 영역을 접수하는 것을 련주로서의 첫 일로 하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음양도문이 물었다.
“일광은 어떻게 할 건가.”
사도련주가 답했다.
“상식 밖의 일이나 저 어린 나이에 진짜로 현경이 되었다는 건 확실해졌다. 보고를 듣고도 믿기지는 않으나 증거가 이리 많으니 다른 가능성은 없겠군.”
그 말에 여기저기서 작은 한숨이 나왔다.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질투였다.
여기 모인 자들 모두 한 문파의 책임자이지만, 한 명의 강호인이기도 했다.
자신은 미처 가지 못한 그 경지를 어린 이가 몇 배나 빨리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끔거릴 수밖에.
사도련주가 말했다.
“다행히 놈은 혼자 돌아다니기를 즐기니……. 다음에 포착된다면 본 련의 전력을 다해 지워버려야겠지. 다만, 무작정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다.”
“호오?”
그 말에 음양도문의 눈이 빛난다.
사도련주가 말을 이었다.
“끌어들여서 함정을 빠뜨리는 게 이다음 수순이겠지.”
“함정이라……. 하지만 일광에게 미끼를 던진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네. 생각해 둔 게 있나?”
“물론 일광은 제갈세가의 후계자. 그 교활한 머리로 함정임을 모를 리가 없을 거다. 하지만 놈은 묘하게 양민 목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 봐야겠지.”
과거 수많은 살수들이 일광을 칠 때 양민들 틈에서 공격한 적이 있었다.
전서에 의하면 그때 일광은 양민들과 함께 살수를 베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공력과 무학을 투입하여 하나하나 잡는 쪽을 택했다고 했다.
실로 무서운 놈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그게 약점이라는 뜻이었다.
“일광을 치운 후에는?”
“오륜회를 친다. 혈린광살의 진법은 물론 두려우나 정보에 의하면 혈린광살은 최근에 진법 외에 본신의 무력을 쓴 일이 발견된 바가 없다고 하더군.”
“호오?”
모두의 눈에 이채가 스민다.
“제자가 현경이니 스승 역시 현경일 수도 있지 않나. 과거 염전에서 제갈린이 현경일 수 있다는 목격 정보가 있던데.”
“우리는 그간 일광의 업적은, 사실 제자가 한 게 아니라 스승이 한 것이라 생각해 왔네.”
“……그랬지. 혈린광살로 인해 일광이 과대평가가 된 거라 생각했네. 그쪽이 상리에 맞으니 말일세.”
“허나, 그게 아니라면. 일광의 실력은 진짜배기이고, 강호가 과거의 혈린광살을 기억하여 반대로 착각한 거라면?”
“?!”
실로 날카로운 발상의 전환.
“그렇다면 염전의 조화는…….”
“그것은 스승이 아니라 제자가 현경에 다다라서 조화를 일으킨 거지.”
“증거는 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혈린광살을 기억하는 자들이다.
쉽게 움직일 수 없다.
“증거는 여기 있네.”
탁!
전서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무림맹의 인장이 찍힌 것으로, 틀림없는 무림 쪽 정보였고 화주의각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운 좋게 무림맹 쪽 전서구를 중간에 가로챌 수 있었네.”
암호로 되어 있었으나 파자(破字)를 사용한 암호다 보니 문주쯤 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었다.
그 전서를 모두가 돌려보고는 크흠,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게 진짜란 말인가?!”
“허어, 믿기지가 않는군!”
문주들이 당황하여 한마디씩 보탠다.
사도련주가 말했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네. 화주의각에서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놈의 천형이 현경의 경지를 막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네.”
“구음절맥을 완치시킨 것은 아닌가?”
“대증요법일 뿐, 결국 체질 그 자체를 변화시킨 건 아닌 듯하다더군.”
“……!”
그 말에 모두의 눈이 커진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화주의각이 그리 장담한다면 틀림없겠군.”
“그렇군. 그래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지. 놈이 당한 게 좀 큰가. 강호의 옛 원한을 생각한다면 현경이 되자마자 사방에 피를 뿌렸어야 옳네. 지금 백린의각에서 제자나 곱게곱게 키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
“설마 제자의 불살주의에 감화가 되어 멸문의 원한이라도 잊었다고 말하고 싶은 겐가?”
“…….”
그럴 리가 없다.
세가 전체를 말 그대로 몰살을 시켰지 않았나.
그 원한이 고작 제자 하나 때문에 변할 리가.
오히려 이 원한을 제자에게 가르쳐서 함께 원한을 갚는 쪽이 훨씬 이치에 맞는 행동 아닌가.
“하긴, 그 마수가 그럴 리가 없지.”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조각이 맞았다.
“그래.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법이지.”
제갈린이 제자로 인해 천형이 나았다고 했을 때 강호의 원로들이 불안에 잠을 못 잤다.
하지만 지금을 보면 어떤가.
가끔 원한이 유독 깊은 문파 몇이나 원인불명의 화재로 전소되었을 뿐.
그래도 다른 문파들은 건재하다.
그 살인귀가 제자 하나 품었다고 강호의 원한을 잊었을 리 없다.
‘거기다 그놈은 사람의 마음이 없는 새끼니.’
고작 말년에 얻은 제자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그리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다들 그리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무림맹은……?”
무산 신녀문이 물었다.
사도련주가 답했다.
“책사의 조언에 따르면 그쪽은 따로 손을 써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걸 우선으로 하자고 하더군. 애초에 한 번에 두 세력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네.”
새로운 사도련주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도련을 부흥시킬 새로운 음모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새 련주가 취임했으니 일광을 이번에는 잡을 수 있겠군.”
“생각해 보면 술제는 너무 유약했지.”
* * *
“도련놈이 결국 주인님의 진법을 잘 습득했군요.”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린 유호, 그가 손을 치우며 말했다.
제갈린은 턱을 괴고 그런 유호의 말에 답했다.
“그런가?”
“그 경지는 아직 미미하나, 선(仙)에 가 닿은 자를 상대로 이겼습니다.”
“흠흠, 뉘 집 제자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장하군.”
제갈린은 칭찬을 하는 일이 그리 없는 자.
그런 자가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이는 세상천지 제자밖에 없으리라.
그런 그의 주변에 삼청관의 삼도사, 그리고 쟈시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여우 조각이 새겨진 원형 기둥이 있다.
어찌나 생동감이 넘치는지 건드리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미려한 형상.
삼도사와 쟈시는 진언을 외우며 주술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래서, 도련놈 몰래 이런 걸 만드시는 이유는 결국 그겁니까? 도련놈을 위한 모형 정원의 완성을 위해서.”
“물론일세. 이게 완성된다면 적어도 이 강소성은 완전히 내 손에 들어오게 되겠지.”
“그렇다면 그 ‘전서’ 역시 그것을 위함인가요?”
화주의각의 전서.
물론 제갈린이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진 않는다.
화주의각에서 그런 전서를 보낸 일이 있긴 했다.
허나, 그것은 수년 전에 이미 무림맹에 당도했던 전서이고, 책사들 사이를 돌고 돌아, 마침내 제갈린의 손에 들어왔다.
‘그래서 백린의각에서는 이런 기밀 전서를 보자마자 태우지. 무림맹주도 사람을 너무 믿는군.’
그리고 그 전서는 그대로 사도련에 도착했다.
“주인님께서 사도련에 많은 것을 안배해 두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정보를 교란하고 그 초석들을 하나씩 쌓고, 때로는 빼내기도 하였지요.”
“…….”
“그렇다 한들 상대는 문주들 아닙니까. 비록 사파라 하더라도 고작 전서 하나가 마지막 물방울 하나가 될까요?”
유호의 머리로 보았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갈린을 얕보는 일 같은 것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옆에서 징을 치고 꽹과리를 울린다 하더라도 범을 고양이라 일컬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것은 요괴도 아는 법이다.
“옛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란 고사가 있다고 한들, 집단의 수장인 자들이 뇌가 있으면 그리 움직이진 않겠지요.”
“이성적으로는 그렇겠지.”
“그렇다면?”
“…….”
이 여우는 아직 인간에 대해 잘 모른다.
제갈린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예전에 말일세, 도망 다니던 어릴 적에 있던 일이네. 한 마을의 노파 하나가 딸아이의 전서를 받고는 무척이나 기뻐하더군.”
“노파 말입니까? 무림인인가요?”
“아닐세. 그냥 양민이야. 북경에 딸아이가 있는데 좋은 곳에 시집을 갔다더군. 거기서 호강하며 산다고, 이 효녀가 매번 어미가 걱정이 되어 이렇게 전서를 보낸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유호에게 제갈린이 말했다.
“그런데 말일세, 삼 년 전에 사실 딸아이는 죽었네. 그것도 강호인들의 싸움에 휩쓸려서 끔찍한 꼴이 되었지. 정보를 알고 있다며 고문을 했는데, 얼마나 모질었는지 손가락 조각과 발가락 조각을 다 찾지 못했어.”
“북경에 있다고 방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 노파의 머릿속에서는 딸이 북경에 있는 셈이네.”
“……그러면 전서는 누가 쓰고 있는 겁니까.”
“아무도 쓰지 않았네. 그저 누런 종이를 붙들고 하는 이야기이지.”
“…….”
“나는 그 노파가 치매인가 싶어서 진맥을 했네. 하지만 그런 조짐은 전혀 없었어. 눈빛도 맑았네. 그러니까 그 노파는 정말로 딸이 북경에 있다고 믿기로 한 거야.”
“이상하군요.”
“……그래. 자네 눈에는 이상한 일이겠지.”
제갈린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인간은 기이하다.
분명 답이 눈앞에 있는데도 아니라며 주변을 뒤지고 있다.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원하는 점괘가 나오지 않는다고 계속 새로운 점쟁이를 찾아가는 인간들을 본 일이 있긴 하지.’
결국 좋은 점괘가 나오고 나서야 이걸 맞는 점괘인 셈 치자, 하고 가슴을 쓸었다.
하지만 본인이 처한 건 아무리 봐도 좋아질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그것과 방금 이야기의 할머니가 비슷하다면.
‘사파의 장문인조차도 결국 한낱 ‘인간’이라는 건가?’
“우두머리라면 뭔가 더 뛰어난 통찰과 냉정한 계산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원칙적으로는 그게 맞지.”
“허면?”
“모든 장문인이 이성적이라면 왜 강호가 피로 물들어 있겠나.”
“!”
“정말로 나이를 먹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이성적이라면 팔순 먹은 세가 장로가 왜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주화입마로 픽픽 쓰러지겠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맞는 말이었다.
유호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살아오며 높으신 분이라고 딱히 인내심이 좋지도, 그리 너그럽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그대 같은 존귀한 자들은 다른가? 나이를 먹고 권력을 가지면 무언가 달라지나?”
“…강해지긴 합니다만. 모든 신선들이 이성적이었다면 봉신연의는 나오지 않았겠지요.”
결국 지성체란 감정에 휘둘리는 생물인가.
유호는 거기까지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갈세가가 왜 저주받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다른 이라면 목이 잘렸을 말.
허나, 제갈린은 폭소한다.
“하하핫. 뭐 어떤가. 저주받아 마땅한 가문이라 끝내 멸문하지 않았나.”
비록 그 웃는 소리는 호쾌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맛은 지독하게 떫었다.
피의 맛이었고, 광기의 맛이었고, 절망의 맛이다.
아버지의 궤적을 쫓으면 쫓을수록 그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 절망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시킬 생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유호가 말했다.
“……유쾌하신 모양이군요 주인님.”
“유쾌하지. 유쾌해. 후후후후. 희 녀석이 이번에는 어떤 선물을 가져올지 기대되는군.”
제갈린은 여우 조각이 새겨진 기둥을 보며 웃었다.
제갈세가.
그 자체가 저주이자 천형임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제는 내려놓은 자의 웃음만이 있을 뿐.
“도련놈에게는 옛 제갈세가 터에서 발견한 것을 계속 숨기실 겁니까?”
“…….”
그 말에 제갈린은 답하지 않는다.
대신-
“유호.”
“네?”
“요즘 천문을 보는 재주가 생겼는데 말이네.”
“예.”
“희가 곧 도착할 것 같네. 계단 아래쯤에 있겠지.”
유호가 한쪽 눈을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붕을 뚫고 천문을 봤을 리는 없으니 제자의 걸음 속도를 두뇌로 계산하여 말한 것일 터.
그리고 그 계산은 정확했다.
진천희가 바로 계단 아래에 있는 게 맞았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알려준다는 뜻……?”
“…진귀한 차를 준비했으면 좋겠군. 깊은 향이 나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