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73
제 1273화
소화기와 수총기.
이 두 놈이 본격적으로 공방에서 생산, 보급되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에 백린군 전체를 커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각 구획에 따라 보급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방식.
‘소화기는 초기 단계에만 나누어주고, 그 후부터는 구매로 바꾸기로 했지.’
수총기야 그 정도 크기의 수레를 끌고 다닐 사람은 소방 무인들뿐.
양민들이 끌고 다닐 무게는 아니다.
관리는 예상보다 쉬운 편.
주기적으로 공방에서 사람을 보내 관리를 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정도면 된다.
반면 소화기는 소모품이다.
빈 깡통이야 재활용해서 받아 가지만.
또 쓰려면 또 사야 한다.
‘업자들에게는 약간 강매 느낌이 있긴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구 별에는 소방법이 존재하지만.
이놈의 강호에는 소방법은커녕 구획마다 소방 무인이 달려가서 물을 뿌리는 것 자체가 백린군밖에 없지 않나.
‘궁궐이나 관청 같은 곳이야 소방 관련 체계가 있긴 하지만…….’
봉록 받는 강호인이 양민 집까지 달려가서 불 꺼주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지.
협객이 왜 협객이겠나.
거의 없으니 협객인 것이지.
‘땅값이 비싼 만큼 관련 법규가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법.’
진 교수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또한 백린군 행정법에 특정 크기 이상의 건물에는 무조건 소화기를 비치하게 했다.
다가구가 사는 주택의 경우 특히나 필요한 법이었다.
‘이게 가능하려면 인구조사가 잘 이루어져야 하지.’
어디에 얼마나 사는지 모르면 소방법도 제대로 효용성이 있기 어렵다.
그렇게 관료들과 진천희 본인을 박박 갈아버린 진천희.
“효용이 있을까요?”
관리들의 불안한 눈빛을 보며 진천희가 답했다.
“될 겁니다. 일단, 이다음은 기다려 보죠.”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드는 법.
의원은.
파종을 마친 농부의 마음으로 기다려 보기로 했다.
***
그렇게 일 하나를 마무리한 후.
진천희는 연구당에서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소아마비 백신이 완성된 겁니까?”
“예! 소각주님! 여기 최종 보고서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길었다. 정말로 길었다.
진천희가 호남성에서 장마와 멱살잡이를 하고.
돌아와서 소화기 만들며 화재와 멱살잡이를 하는 사이.
소아마비 백신이 완성되었다.
“드디어 출시……하고 싶지만 이것도 임상시험을 밟아야겠군요.”
“네. 그런 셈이죠.”
진천희의 지구 지식으로 이게 괜찮을 거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사람 일이 어찌 돌아갈지 알 수는 없는 법.
‘아무리 그래도 이 시대에 현대 제약법 수준의 검증 절차를 밟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다.’
단,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단계까지는 진천희의 힘으로도 가능하다.
“참, 황상께서 진행 과정을 친히 물으셨습니다.”
‘흐음……. 마침 잘되었군.’
진천희는 황상에게 상소를 올렸다.
[제가 돈이 없고, 배가 고프고, 백린군은 가난하고…….]예산 내놓으라는 상소였다.
***
아직 완성도 아닌.
그저 시험 단계인데도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황상은 일전의 두창 접종과 함께 소아마비 접종도 이루어질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공손세가와 남궁세가는 임상시험용 접종 백신을 세가의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맞힐 수는 없는지 서신을 보냈다.
‘의외…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애초에 강호에 의약 검증 시스템이 어디 있겠나?
영약에도 수은이 들어가는 판국에.
보통 강호 사람들은 먹다 죽으면 자기 팔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공이나 기연 모두 마찬가지.
이곳, 강호인들은 몸을 사리는 법이 없다.
영약이든 신물이든.
좋다 싶은 것이 강호에 나왔다 하면 피를 흘려서라도 먼저 차지하고자 했다.
특히나 진천희는 신의(神醫)라고 불리는 자.
의술에 관해서는 공손세가와 남궁세가의 신뢰가 꽤나 확고할 터.
그뿐이 아니었다.
‘무당파와 사천당가에서도 연락이 왔고, 보타문은…… 의외군.’
원한다면 의원을 파견할 것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오겠다는 서신이었다.
과거 콜레라 치료 때의 연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셈.
‘그래. 보타산은 파도에 잠기는 법이 없군.’
봉문을 하였다 한들 후인들이 줄어드는 법이 없이.
조금 가난하지만 언제나 협을 추구하는 자들이 강호를 주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적극적으로 원한다고 서신을 보냈다.
‘그래. 아무리 무문(武門)이라 하더라도, 모든 아이들의 오성이 높을 수도 없을뿐더러. 세가 같은 경우에는 체질적으로 약한 아이도 늘 태어날 거고…….’
아이들을 아끼는 곳일수록 먼저 맞추려고 하고 있다.
아직 정식 출시도 아니고.
그저 임상시험 단계일 뿐인데도 그렇다.
‘지구와는 확실히 다르구나.’
그만큼 두창 때부터 쌓아 올린 신용이 있는 덕이기도 하고.
사마혜가 말했다.
“은공, 저라도 애 있으면 맞고 오라고 할 것 같은데요.”
“…….”
“천룡공이 모든 아이들에게 전부 적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최종 검증까지 다 끝난 후에 맞아도 되잖아?”
“아마… 그때는 줄을 오래 서야 할 것 같으니까요.”
“고작 그것 때문에?”
“줄이라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백린의각은 때에 따라서는 몇 년이나 대기해야 할 때도 있긴 하니까.”
재생당주인 사마혜가 특히 그렇다.
그녀의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수많은 세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연을 쌓기 위해 안달이지 않던가.
‘설마 줄 서는 것조차도 하나의 경쟁으로 받아들이는 건가.’
현대인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
어쨌든 혜아를 통해서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진천희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세가에서는 보통 장애가 생긴 아이들은 어떤 대우를 받아?”
“아, 은공은 부술당이니 그런 내밀한 사정은 잘 모르겠군요.”
부술은 진천희의 영역이지만.
목숨을 살린 이후.
피부 및 근골의 재생, 재활 관련은 재생당의 영역이다.
그런 만큼 세가의 내밀한 이야기도 진천희보다 들을 기회가 많았다.
“장애에 따라 다르지만 남궁세가 같은 큰 세가에서는 혼처를 구해요. 어쨌든 자손을 볼 수만 있으면 그 또한 쓸 수 있는 패니까요.”
음, 냉혹하군.
‘하지만 사지가 멀쩡해도 혼사로 팔려 가는 것이 세가이지. 의외로 이 시대의 정석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무공을 잘 쓰느냐, 못 쓰느냐의 차이.
후자의 카테고리로 들어가게 되는 셈.
“작은 세가가 문제에요.”
“그래?”
“어느 날 그냥 없어져 있어요.”
“뭐?”
“그냥 그 아이가 없어져 있어요. 그 환자 어디 갔냐고 물으면 대답 안 해요.”
“…….”
무서운 이야기였다.
사마혜가 말했다.
“뭐, 사지가 멀쩡해도 한 줌 핏물이 되는 게 강호니까요. 아이한테는 더 가혹하죠.”
인권, 그 자체가 없는 강호.
어른 인권도 없으니.
아이의 인권은 더더욱 없는 법이었다.
사마혜는 과거 걷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러니까, 은공이 하고 있는 이 약이 널리 잘 퍼졌으면 좋겠어요. 아마 먼저 연락해 오는 세가들도 비슷한 마음일 거예요.”
“……그래.”
사마혜가 빙긋 웃었다.
“참, 혜아야.”
“네?”
“당아랑은 연락하고 있니?”
“아, 맞다. 서신 왔다고 은공이 말했었죠?!”
그제야 퍼뜩 깨닫는 사마혜.
후다닥 달려가는 폼을 보니, 내내 답장을 안 줬던 모양이다.
‘아이고, 당아 속상하겠네.’
일부러 무시한 건 아니지만 그걸 알아줄지 모르겠다.
그래도.
두 녀석의 우정이 계속 잘 지속되길.
‘흠. 그러면 뭔가… 우정이 지속될 만큼 특별한 것을 보내는 게 좋으려나.’
여기서 진천희는 생각을 한번 회전했다.
머릿속 작은 천희들이 인간 파도타기를 했다.
‘예전에 당아랑 남궁연 둘 다 엄청 잘 먹었었으니까. 달달한 간식을 혜아 통해서 좀 보내면 좋아하겠지?’
‘하지만 당아는 사천당가 소가주야. 어지간히 맛있는 건 다 먹어 봤을 거라고. 보통 음식으로는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워.’
‘소가주에게도 귀한 것, 그리고 이 땅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간식으로… 그것도 당아 입맛에 좋아할 단맛.’
그 순간.
답이 도출되었다.
‘그러면…… 그걸로 간다! 오렌지 초콜릿이다!’
모든 것은 당아와 사마혜의 우정을 위해서.
나이가 몇 배는 많은 아재(사실 할아버지)는 결심했다.
얘들아.
앞으로도 둘이 친하게 잘 지내주렴.
***
“으, 으, 은공. 당아 줄 요리 만든다고 하셨죠?”
“응. 근데?”
“저도, 저도 같이 만들려고요.”
사마혜가 식은땀을 흘리며 왔다.
“그래. 좋지. 손수 간식을 만들어 보내면 화를 풀 수 있을 거야.”
진천희의 오지랖.
아재(할아버지)의 오지랖이다 보니.
젊은 사마혜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작 사마혜는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아가 서신을 스무 통이나 보냈더라고요.”
“아…….”
진천희는 초콜릿을 중탕하다 말고 잠깐 말을 잃었다.
“설마 답장을… 한 번도 안 준……?”
“그게, 일 외의 서신들은 따로 모아 뒀는데, 거기 안에 당아 서신도 쌓여 있다가… 은공이 말하기 전까지는 계속…….”
“…….”
‘혜아가 바쁘긴… 했지……. 의원 일도 하고 인형극 각본도 만들었으니.’
인간의 스케줄이 아니긴 했다.
“그, 그 보통 스무 통이나 서신을 보냈는데 답장이 한 통도 없으면 인연 끄, 끊자는…….”
사마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어떠한 마음의 결심을 하려 하자.
진천희가 잽싸게 말을 끊었다.
“아, 아니야. 다, 당아도 이해해 줄 거야.”
거짓말이다.
부모 자식도 그만큼 계속 연락 보내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답이 없으면 생존을 걱정하거나.
생존이 확실한 상태에서 그러는 거면 반쯤은 연 끊자는 뜻으로…….
‘아아아아, 당아야.’
끓어오르는 초콜릿만큼이나 진천희의 걱정도 새카매졌다.
‘설마 절교…하는 거 아닌가?’
작은 진천희 하나가 차갑게 뇌까린다.
‘보통은 절교긴 하지.’
현대 사회도 또도독 치는 까톡 20개 씹으면 보지 말자는 뜻인데.
벼루에 먹 갈아 붓 들고 한 글자씩, 한 글자씩 정성으로 써야 하는 이 시대 서신은 그 무게가 말할 것도 없다.
“어어, 맛있는 귤 초콜릿이 만들어질 거 같다. 혜아야. 당분이라는 게 먹으면 사람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어!”
“그쵸? 당아는 당… 당분……. 당……. 좋아할까…….”
사마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
액면가는 미청년, 속은 아재(사실 할아버지)는 이 아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 혜아야. 편지는 다 읽었니?”
“세 통까지는 읽었는데 나머지는 겁이 나서 못 읽었어요.”
‘아, 나라도 그러겠다.’
진천희가 물었다.
“이건 탓하는 건 아닌데, 혜아는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니?”
“네. 뭐, 만나면 친하게 잘 노는데 좀처럼 먼저 서신을 보내지는 않아요. 그냥 잘 있겠거니…….”
‘혜아는…… 그런… 타입이구나. 나도 그런데 큰일이……네?’
그렇게 잃은 인연이 몇이던가.
나중에는 의식적으로라도 먼저 챙기는 연습까지 해야 했다.
그래도 지구에서 결국 먼저 연락하는 건 친구들 쪽이었지.
‘쓰읍. 남 일 같지 않군.’
그래도 이 세계 와서는 먼저 서신도 보내고 그러고 있다.
그때의 시행착오를 혜아도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쓰럽다.
“일…단은 만들고 서신을 한번 읽어…… 볼까?”
“절교장이면요?”
“…초코, 오빠 주자. 현이 이거 되게 좋아해.”
어른의 치사한 지혜다.
“네, 네에.”
치지지직-
중탕한 초콜릿을 하도 오래 놔두니.
물이 증발해 바닥까지 타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이건 일단 새로 해야겠다. 너무 오래 두었더니 탔네, 이거.”
“…그래요. 관계도 이렇게 오래 두면 타버리는 거죠…….”
갑자기 사마혜가 울음을 터뜨렸다.
절교를 앞두니.
중탕한 초콜릿 타는 모습에도 눈물이 터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은공,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공이라면 방법을 알고 있죠?”
‘현이도 그러더니, 혜아도 무슨 나를 전능한 꾀주머니로 알고 있군.’
진천희가 말했다.
“일단 어…. 이거부터 다시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