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5
제 1285화
진천희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래. 선협 세상으로 보내주었다. 이름도 선남선녀에서 따서 여자가 좋으면 선녀도, 남자가 좋은 자들은 선남도로 자동으로 시작하게 되어있는 시스템이지.”
진천희는 차분하게 또다시 미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당아가 말했다.
“…웃음도 되게 음충맞은 웃음이군.”
황보산은 바닥에 누운 채로 히죽거리고 있었다.
상당히 기분 나쁜 웃음이다.
“원래 미녀, 또는 미남만 있는 섬에 나 혼자만 다른 성별이라는 설정은 하렘물의 정석과도 같지.”
“?!”
하렘? 그게 뭔 뜻이지?
하지만 왜인지 당아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뭔가 알 것 같았고.
진천희가 차분히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얘는 자기가 미친 소리 하는지도 모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당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환몽진이라는 게 꼭 유령에 쫓긴다거나 과거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조우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겠다 싶더라고.”
“음? 환몽진은 보통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 따위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절규하는 게 정석 아닌가.”
환몽진.
강호에서 자주 관측되는 이 진법은 상대에게 환각을 보여주어 심마에 빠트리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히 심리 타격 전술을 위해서 고안되어 있고.
여러 가지 베리에이션이 있다.
진천희도 북해빙궁에서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당시 그는 어릴 때의 나날을 경험했다.
진법을 만든 혈선교는 진법 안에 들어온 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과거로 들어가도록 유도했고.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천희는 자신이 치료한 모든 자들에게 몸이 조각조각 계속 뜯겨나가는 환상을 경험해야만 했다.
“…….”
그 고통만은 환상이라 할 수 없이 지독하게 실감이 나서.
미쳐 버리지 않는 게 용할 지경이었고.
심약한 자라면 그 통증만으로도 심장이 멈춰 죽었겠지.
‘환상이라고 하나 거기서 경험한 모든 감각들은, 심지어 고통마저도 진짜였으니까.’
지옥이 있다면 그런 모양일 거라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진법의 환상이 만들어낸 통증, 그 냄새, 그 꿉꿉한 온기마저도 아직도 기억이 난다.
꿈에도 가끔 나타나곤 한다.
시간도 마찬가지.
밖에서는 고작 찰나의 시간이었을 텐데.
진법 안에서는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느껴야만 했다.
그걸 경험한 진천희는 생각을 달리 먹었다.
“뭐, 그렇긴 하지만…… 기왕 환상인데 그런 극심한 고통을 받게 하는 건 좀… 인권적으로 너무 잔혹하지 않나 싶어서.”
“응?”
환몽진이 꼭 굳이 고통스러워야 할까?
“그런 지독한 짓을 당하고 나서, 진법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면 기분이 나쁘실 거 아니니. 그래서 나랑 대화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해?”
……미친놈인가?
당아는 강호인 인생 중 가장 미친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미친 소리를 진천희에게 들었지만.
그중 이게 최고였다.
당아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 네가 만들었다는 회빙환환몽진… 대충 그런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선협? 선녀도는 또 뭐고?”
“말 그대로야. 이 진법에 들어온 자는 회빙환이라고 명명한 세계 중의 하나를 경험하게 되지. 그다음에 들어온 자의 욕망에 따라 선녀도, 또는 선남도에서 깨어나게 돼. 그리고 일곱 빛의 미남미녀들을 조우하며 관계를 가지게 되는 거야.”
‘두근두근 콩닥콩닥~ 선남선녀와의 관계 형성~★’이라는 좋은 꿈을 꾸게 된다.
“!?”
진천희가 미친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군.’
당아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대체 회빙환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만…. 자고 있는 이자의 모습을 보니 약간 무공을 쓰는 자세도 움찔움찔 취하는 것 같은데? 이건 왜 그런 건가?”
“좋은 지적이야! 회빙환에 전투를 빼놓을 수 없거든. 지금 황보산은 선녀도의 곤란을 해결해 주고 영웅 대접을 받은 후, 사랑하는 정인을 만나 수선계(壽仙界)라는 곳을 모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 외에도 진천희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안쪽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고.
선남선녀와 호형호제 혹은 연인이 되어 행복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아니…. 미친! 그런 짓을!”
소름이 돋았다.
당아는 광의의 발상에 참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양팔에 돋아난 닭살을 문질렀다.
아니. 그런 일장춘몽(一場春夢)과 호접지몽(胡蝶之夢)스러운 꿈을 꾸게 해 준다고?
“그는 이후에 외눈박이 거인과 머리 여덟 개의 이형용(龍)을 무찌르고 여러 정인들을 다수 사귀다가 깨어날 거야. 대충 환몽진의 시간은 우리가 진짜로 꿈을 꾸듯 밖의 시간과 수십 배는 차이가 나니까…. 압축된 회귀, 빙의, 환생을 느낄 수 있겠지.”
드디어 회빙환이 뭔지 알게 된 당아였다.
회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빙의. 타인의 몸에 깃든다.
환생. 다시 태어난다.
“……!”
당아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녀 역시 강호를 주유하며 수많은 환몽진을 돌파했지만.
이런 무서운 이야기는 난생처음 들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아, 자아가 강한 사람은 셋 다 안 하고 그냥 이세계로 넘어가는 꿈을 꾸게 돼. 그건 트립이나 이계 진입이지. ‘회빙환트’라고 명명하기에는 왠지 없어 보여서 뺐지.”
“?”
그건 또 뭔 소리여, 이 미친놈은?
“……대적자여. 행여라도 나에게는 그런 꿈 보여 주지 말게나.”
“왜? 당아, 너는 선남선녀도에 가보고 싶지 않아?”
“그거야…. 아무튼 됐네!”
‘이 미친 새끼가 그런 걸 줬다 뺏어?!’
현실인 줄 알았던 부귀영화. 그리고 사랑하는 정인들.
그 모든 게 전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녀석은 피도 눈물도 없는 건가!’
진천희가 말했다.
“아무튼 적당히 기다렸다가 깨우면 되겠지.”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너무 과몰입하면 약간… 후유증이 생기거든. 광인이라도 되면 불쌍하잖아.”
“…말만 들어도 후유증이 생길 지경인데. 그거 좀 짧게 한다고 후유증이 안 생기겠나?”
아니 강호인의 심혼을 이런 식으로 박살 낸단 말인가.
진천희가 말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야. 환몽진으로 꼭 죽은 부모나 친우를 만나서 서로 찌르네, 마네 할 건 없다는 거지. 가급적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이 환몽진을 만든 거야.”
……평화?
“이 사람도 나름대로 즐거운 꿈을 꾸었을 거고. 나도 기분이 좋아진 상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
대화……?
“심지어 다친 곳도 없이 상대도 곧바로 무력화가 될 거다.”
당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그래. 확실히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라도 전의를 잃을 수밖에 없겠지.”
부귀영화와 사랑하는 연인까지.
그 모든 게 다 일장춘몽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여기서 더 싸울 생각이 든다고!?
그런 놈이 있긴 한가.
제아무리 부모의 원수가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압축된 일장춘몽을 경험하고 나면, 최소 삼 다경은 멍 때리면서 엎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당아는 두려움에 얼굴을 쓸었다.
“미친, 미친놈, 미친 새끼……!!”
확실히 돌아가신 부모, 친우, 연인을 다시 보는 것보다야 낫… 아니, 차라리 그쪽 보는 게 낫겠다며 당아는 생각했다.
“아무튼 나한테는 쓰지 마라. 차라리 죽여!”
“당아야. 내가 왜 널 죽이니…. 나는 누구도 다치지도 않고, 내게 적의를 갖지도 않으시고, 그저 모두가 평화롭게 대화의 장을 열었으면 해서 만들었다.”
“그, 그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 같구나.”
……정신이 털리면 싸움도 못 할 테니.
그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연 학사가 오들오들 떨었다.
‘이런…. 이런 무시무시한 진법이라니! 과연 제갈세가의 전설은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것은 철금방의 다른 강호인들도 마찬가지.
‘말 그대로 살려만 주고 심혼을 털어버리는 진법 아닌가!’
‘실로 무서운지고, 어찌 이리 극악한 진법을……!’
‘이것이… 일광이 원하는… 평화?’
이윽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후, 진천희가 말했다.
“이제 슬슬 깨우면 되겠다.”
그리 말하며 진천희는 누워 있는 황보산을 깨웠다.
“어, 어윽? 어…?”
“좋은 꿈 꾸셨습니까?”
“무무 소저. 무무. 우리 무무 소저 어디 있느냐!”
“아, 그건 그냥 회빙환환몽진의 환상입니다. 현실이 아니지요.”
“그, 그럴 리가 없…. 나는 분명 삼천세계의 수호자였거늘! 헛, 여기는…. 설마 철금방의 광산?!”
“오우, 여기가 철금방 광산이라 인정해 주시는 겁니까? 대화의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군요.”
……교수 새끼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이윽고 모든 것을 알아챈 황보산이 외쳤다.
“그,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 그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었다니! 설마, 일광 내 마음마저 가지고 노는 것인가! 실로 극악무도한……! 쿠헉!”
그 순간, 황보산은 심마를 이기지 못하고 피를 됫박으로 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석적인 선협 소설을 꿈꿀 수 있게 해드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실감이 과했나?”
빡!
그리 말하며 뒷목을 빠르게 후려쳐 기절을 시킨 후.
신외지물인 용각생사침을 꺼내 혈도를 점했다.
“으음, 역시 이 시대의 강호인들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면역이 좀 약한가? 다음번에는 이 부분을 더 고려해서 회빙환환몽진을 펼쳐야겠어. 어쨌든 프로토타입으로 나쁘지 않군.”
“….”
“너무 걱정하지 마. 당아야. 보기보다 이분은 건강하셔. 깨어나면 다시 ‘대화’를 하면 돼.”
“……인질로는 쓸 수 있겠구나. 대적자여.”
“아 응. 주화입마에 들기 전에 바로 생사금침을 꽂았으니 피해는 적을 거야.”
“…….”
당아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른 무인들도 깨우기 전에 꼭… 꼭… 꼬옥…… 그 신외지물을 준비하거라.”
“?”
“줄줄이 곧 피를 토할 거니까.”
그 말대로 무인들은 깨우는 족족 피를 토하며 가상의 정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쓰러졌다.
동시에 깨어난 무인들은.
모두 똑같은 체험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피를 토했다.
회빙환의 효과는 지독했다!
누구도 죽지 않고 평화롭게 끝나긴 했다!
‘…그걸 겪고 싸울 생각이 들면 사람이 아니긴 하겠…지.’
차라리 다음에는 꼭 죽은 부모나 친우를 꺼내라고 부탁하기로 당아는 결심했다.
이놈은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평화’에 미친 새끼였고.
다만 그 평화라는 게 약간… 서장의 ‘원숭이 손’이 떠오르는 방식이라는 게 문제였다.
평화, 이루어는 드렸습니다.
아무튼 아무도 안 죽었으니 된 건가?
***
진법 밖.
한참이 지난 후에 황보순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실패했군.”
황보단도 곁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외당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황보순이 답했다.
“전서를 보냈으니 본가에서 이야기가 오겠지. 그동안 대기한다. 활인광의는 섣부르게 상대할 수 없는 자이니….”
황보순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운무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운무 사이로 거대한 개가 수레에 사람을 싣고 털털 다가왔다.
“무무 소저. 무무….”
“무무 소저, 어찌하여….”
“무무 소협, 나는 분명 사랑을 하였는데 존재하지 않았던 일장춘몽일 뿐이라니.”
대체 ‘무무’란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벽안광의를 만나고 모두 무사하다.
사지 하나 박살 난 곳 없고 주화입마… 는 터질 뻔한 듯하나 신의께서 직접 진정시킨 것 같다.
하지만-
‘심혼이 꺾였구나.’
대체 환몽진에서 무엇을 본 것인가.
‘필시 인간이 겪기 힘든 무시무시한 짓을 한 게 틀림없겠지.’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형제, 친우, 연인 등을 만나게 했으리라.
그야말로 생살을 씹는 것 같은 고통!
마교의 술사들이 펼치는 환몽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고통은 아니었을 터.
‘어찌 위로해야 하나, 큰일이군.’
진실을 모르는 황보순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무무 소협, 무무 소저라니…. 왜 이름이 똑같지?’
삼천세계는 또 뭐고?
***
진천희는 황보순과 대면을 했다.
“아, 다행입니다. 그래도 평화롭게 황보세가와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소름이 돋았다.
‘진법에 휘말린 모든 무인들은 마음이 꺾여 나왔다.’
정말로 이번에도 살려만 줬다.
딱 살려는 드렸다.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꺾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