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
제 21화
마보 자세가 끝난 후에는 물구나무로 계단을 오르내린다.
물론 진천희가 당장 물구나무를 설 정도의 근력은 없었다. 그러나 끈기 있게 앞의 두 개의 단계를 매일 반복해 나갔고, 거기다가 영약으로 얻은 약간의 내공이 있었다.
동공의 형태로 내공을 사용, 그렇게 근력을 보조하며 물구나무를 설 수 있었다.
내공을 사용했다고는 해도, 팔에 전해지는 부담이 적은 것은 아니어서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만큼 빠르게 근육이 붙고 근력이 생겨났다.
그 이후 익숙해지면 눈을 감고 물구나무로 내려가게 되는데, 눈을 감은 상태로 땅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몸의 중심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보 자세까지는 어찌어찌 한다고 해도, 물구나무로 내려가는 건 동공을 운용하지 않으면 진천희의 체력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앞의 단계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동공의 운행이 습관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됐다.
그게 제갈린이 자신의 가문의 비전 무공들을 정립하며 얻은 결론이다.
그리고 그 결론은 소설을 읽은 진천희의 결론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딱 하나, 인권이 없는 게 문제구나.’
지구에서 어린아이에게 이런 교육을 시키면 아동 학대로 잡혀간다. 그러나 인간 목숨이 파리 목숨 같은 이 세계에서는 어릴 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천고의 기연이다.
처음에는 빈 물동이 하나도 하루 종일 걸려서 들고 올라왔는데 이제는 두 개를 꽉 채워서 반나절 만에 올라왔다.
나중에는 거기에 마보 자세를 하고, 물구나무로 내려가서 내일 물 끓일 때 쓸 장작을 지고 올라오고.
그 장작까지 패고도 하루가 다 가지 않는 때가 왔다.
이 모든 수련을 위해서 배운 무공의 이름이 바로 수신공(修身功)이라고 했다.
수신(修身)의 뜻이 몸을 갈고닦음이니 말 그대로 몸을 준비시키는 무공인 셈이다.
기초적인 내공을 기르고, 진기를 사용할 수 있게 수련하며, 육신을 단련하여 그릇을 만드는 수련용 무공.
효과는 확실했다.
“이리 안정적으로 물동이를 나를 수 있게 되었으니,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되겠구나.”
“진짜요!?”
진천희의 얼굴에 기쁨이 나타난다.
“그럼 물론이지. 다음 단계는 새로운 내공심법이다. 수신공으로 어느 정도 길이 닦였으니, 이제 그 길을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단다.”
“와아!”
“그리고 내일은 물동이 네 개.”
“으윽…….”
천사 같은 얼굴로 자비가 없으시다.
진천희는 그런 스승을 보면서 몇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바로 진천희가 제갈린의 제자가 되었던 때를.
* * *
몇 달 전.
진천희가 제갈린의 제자가 되기로 하고서 그를 따라서 백린의각으로 향했던 때.
“이곳이 내 장원이며, 의방이란다. 규모가 있다 보니 사람들은 백린의각(白麟醫閣)이라고도 부르지.”
신기하게도 진천희는 이곳의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중국의 한자와 많은 부분이 흡사했지만, 다른 부분도 많았다.
그럴 만도 하다.
소설의 설정에 나오는 곳은 가상의 세계로, 옛날 중국의 복식과 생활양식은 닮았지만 어쨌든 내공이 있고 영물이 있는 세계 아닌가.
어쨌든 언어를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점에 감사하면서, 진천희는 고풍스러운 건물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높다란 산의 중턱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상과 마을들이 내려다보인다.
제법 높은 곳에 세워진 건물의 거대한 대문에는 백린의각이라고 적힌 현판이 붙어 있고, 이 아름답고 거대한 장원의 뒤로는 멋들어진 산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먼 곳에서는 흰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선을 그렸다.
달걀 삶는 냄새가 났다.
온천이 있는 휴화산 지대!
‘소설에서도 백린의선은 구음절맥을 다스리기 위해서 화산 지대에서 요양한다고 나와 있었는데…… 그곳이 여긴가 보다.’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규모가 크네요. 환자들도 많이 오기 때문인가요?”
“물론이지. 내 비록 제자를 들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유명한 의원이거든.”
“나름대로라뇨. 스승님 정도면 천하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시잖아요.”
“알고 있었느냐?”
“그 정도는 알아요.”
“후후. 그렇구나.”
스승이 된 백린이 손을 뻗어온다. 그리고 가만히 진천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거 참 부끄럽네.’
겉은 어린아이지만, 속은 아저씨인 진천희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자, 들어가자꾸나. 우선 짐을 좀 풀어야지 않느냐. 하루는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내리겠다.”
“가르침이시라면…….”
“무공과 의술.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게 말하고서 백린이 앞으로 성큼성큼 걷는다.
유호가 진천희를 무심한 얼굴로 빤히 바라보며 지나쳤다.
진천희는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곧 백린의각이라고 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 *
‘꼭 무협 영화나 드라마 같네.’
건물 내부는 고풍스러웠다.
운룡표국의 분타는 사실 삭막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실용적인 건물이어서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이곳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처마에만 해도 용이 익살맞게 조각되어 있었고, 대문 기둥에도 다양한 문양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아주 얕게 조각을 해 놓아서 그냥 보면 보기가 어려운데 만져 보면 알 수 있게 해 놓았다.
자칫 너무 화려해 보일 수 있는 전각이다. 그러나 힘을 뺄 부분은 힘을 빼고, 강조할 부분은 강조해서 그야말로 고급스러워 보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인들이 일행을 맞이했다.
“마차는 안으로 들이고, 말에게는 여물을 충분히 먹여 주십시오.”
유호가 그런 하인들에게 무어라 지시를 내렸다.
마구간으로 가기 전 새장을 여러 개 모아 놓은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그곳에는 비둘기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중에 매와 까마귀가 섞여 있었다는 것.
“전서구가 많이 도착해 있는데 서한은 정리해 두셨습니까?”
그런 유호를 보면서 진천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소설에서 매번 나오던 전서구라는 건가 보네. 직접 보니까 신기하다.’
전서구(傳書鳩).
편지, 서신 등을 운반하는 훈련된 새를 총칭한다. 날짐승의 이동 속도는 사람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런 새들을 훈련시켜 서신을 주고받는 통신 방법은 무협 소설의 단골 소재였다.
그런 것을 진천희가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 유호에게 질문받은 사람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유호 총관님. 수라문과 창룡각에서 온 전서구가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비무 도중 부상인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공손히 곱게 접힌 서신을 내미는 사내. 그 말을 듣고 있던 백린의선이 입을 열었다.
“수라문과 창룡각은 악연이 짙은데 큰일이군.”
그사이 유호가 먼저 전서를 열어 본다. 그러고는 난감한지 이마를 찌푸렸다.
“양측 모두 직접 신의께 진료를 받고 싶어 합니다. 허락할까요?”
“상처에 대해서는?”
“여기 있습니다.”
백린의선은 양측 모두의 편지를 받아 쭉 읽었다.
편지에는 어떤 경과로 다쳤고, 상처의 종류는 어떤지, 그곳의 담당 의원이 써 놓은 소견서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수라문의 소공자님은 간단한 검상이니 금방 나을 것이나, 창룡각의 공녀님이 문제군. 수라문은 독문절기인 수라독공을 사용하니…… 다행히 소공자님의 깨달음이 얕아서 이 정도면 충분히 지역 의원의 손으로도 처리할 수 있겠어.”
아무렇지도 않게 수라문의 소공자의 무공을 평하고는 백린의선은 결론을 내렸다.
“두 환자 모두 상처가 벌어질 수 있으니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답신하거라. 대신 금창약과 내상에 필요한 의약 조제서를 써서 보내도록 하지. 재료가 그리 어렵지 않으니 그쪽 약방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게다.”
유호가 물었다.
“누구부터 보내도록 할까요?”
“창룡각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이긴 쪽은 아마 창룡각의 소공녀실 테니까. 이기고도 더 다쳤으니 독이 더 바짝 올라 있을 거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진천희가 빤히 바라보자 백린이 피식 웃었다.
“수라문의 소공자는 소공녀의 팔에 검이 닿았으나 자르지 못했고, 소공녀께서는 왼팔을 주고 목을 노렸단다. 소공자가 죽지 않은 것은 소공녀께서 더는 은원을 만들지 않기 위해 멈추신 덕분이지.”
“더 다친 쪽이 승리할 수도 있는 거군요.”
“비무란 장기와 비슷한 것이란다. 몇 개의 말을 내주든 마지막까지 왕을 보전하면 이기는 게지.”
창룡각의 매가 먼저 발목에 서신을 묶고 날아갔다.
푸드덕-
“자, 그러면 들어가자꾸나.”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뒤이어 수라문의 까마귀가 날아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 중원에서 수없이 많은 전서구들이 의선을 찾아 날아든다.
“희야. 이리 오거라. 어서.”
백린의 재촉에 진천희는 서둘러 대답했다.
“아. 네. 스, 스승님.”
‘우와, 신기한 구경 했네. 현대로 치면 인터넷 원격 진료 같은 건가? 하긴. 소설에 보면 백린의각은 천하 삼 대 의각 중 하나니까 그럴 만도 하네.’
강호의 의방들은 의각을 중심으로 교류한다.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계속 다치고 병에 든다.
칼밥을 먹고사는 무림인들은 더더욱 그럴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
혈로니, 혈투니 벌이게 되면 다치고 죽는 이들이 허다하고, 내상을 입거나 주화입마 초입에 들거나, 이상한 걸 주워 먹고 병이 들기도 했다.
그들은 그때마다 의원을 찾아 부르짖게 된다.
‘그렇기에 정보 교류는 각 지역 의방에 무척이나 중요해. 하지만 의술이라는 것은 결국 비전의 지식.’
무공이 비인부전이듯, 의술도 쉽게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지만 강호에는 분쟁으로 죽어 가는 이들부터 질병에 신음하는 이들이 많다.
그 결과 오래 전에 무림 문파와 같은 의원들의 조직이 생겨났다.
그것이 바로 의각(醫閣)이다.
의원들의 문파.
의각은 그 휘하에 분타를 여럿 두었는데, 보통은 의방이 자리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의방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물론 어떤 의각에도 속하지 않고 독고다이로 운영하는 곳도 있긴 한데…….’
하지만 검증도 안 된 곳이다 보니 돈 있으면 의각 소속 의방을 찾는다.
의각 소속 의방들은 의각을 통해 서로의 의술과 지식, 그리고 정보를 빠르게 교환했다.
또한 문파 간의 혈쟁이 일어나게 되면 다른 지역의 의방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일도 생기게 된다.
그 가운데에서 정보를 모으고 필요 의방에 의원을 파견하는 역할을 하는 게 의각이었다.
무림에 문파가 있고, 본가 제자와 속가 제자가 있듯이.
이쪽 역시 의각이 있고, 의각에 남아서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각의원(閣醫員)과, 의방으로 돌아가 가업을 있는 방의원(方醫員)으로 나뉘게 된다.
의각은 전서구나 인편으로 이러한 정보를 나누어주며, 보통의 지역 의방에서는 갖출 수 없는 약재를 보관해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의보(醫報)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