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38
제 238화
잠에서 깨서 눈을 뜨니 약 2시진(약 4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고.
자는 사이 급변한 환자는 없었는지 호출은 달리 없었다.
다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야간 근무 중인 상의원이 달려왔다.
“더 주무시지 일어나셨습니까.”
이 눈빛이다.
천하의 미친놈을 보는… 그런데 그 미친놈이 안쓰러울 때 짓는 눈.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은 어디 계시죠?”
“무림맹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웃옷을 챙겼다.
“소각주님도 가시려고 하십니까?”
“네, 네. 혹시 급변하는 환자가 생기면 바로 타종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아, 참!”
상의원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서 진천희에게 건넸다.
“약초를 섞은 주먹밥입니다. 벽곡단 씹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리고…… 떡 남은 것도 있는데 식었지만 되게 맛있습니다.”
밥으로 마음을 전하는 건 한국이나 무림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진천희는 그렇게 요깃거리를 잔뜩 입에 물고 무림맹으로 향했다.
* * *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도 않았는데 무림맹은 낮보다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이번 일로 인해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는 뜻.
진천희는 사람을 시켜 스승님을 뵈러 왔다고 전하고는 안내해 준 다실에 앉아 스승님이 나오시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진천희를 찾으러 온 것은 스승님이 아닌 무림맹 책사인 독고선이었다.
그녀는 예를 표한 후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다만 지금 맹주께서는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셔서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스승님과의 대화가 깊어지는 모양이군요.”
“네. 계획의 내용이 다소 과격하여…….”
독고선은 뒷말을 작게 흐렸다.
진천희가 말려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을지 지혜를 빌리기 위함일까.
“제가 들어도 될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독고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향해 턱짓했다.
독고선의 턱짓만으로 모든 이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일사불란하게 밖으로 나갔다.
드르륵-
완전히 문이 봉해지고, 다실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조급하긴 한 모양이군.’
진천희가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무엇을 제안하시던가요.”
“백린의선께서는 무림맹의 정체성이 있는 한 증거 없이 섣불리 움직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이대로 둔다면 그건 그것대로 화를 면하기 어렵다 하셨습니다.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니까요.”
그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다.
독고선이 말했다.
“무중생유, 조호이산.”
푸흡!
진천희는 그만 찻물을 뱉었다.
“과연 백린의선의 제자. 두 단어만으로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셨군요.”
진천희는 기침을 내뱉었다.
“스승님이 정말로 그걸 제안했다고요……?”
우선, 무중생유(無中生有).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얼핏 들으면 대단한 마법 같은 일처럼 느껴질 터.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없는 것을 억지로 있다고 우기는 것을 뜻한다.
“증거가 없는데 있는 척하자는 겁니까?”
“네. 삼인성호라는 말이 있듯, 소문을 퍼트리고 여론을 만든다면 제아무리 거대 문파라 하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겠죠. 제자들과 피붙이들이 다친 건 사실이니까요.”
진천희가 되물었다.
“혈선교가 저주를 이용했다고 퍼트리자고요?”
“네. 아주 크게, 아주 많이. 다른 문파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끔.”
대범한 수……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스승님이니까 할 수 있는 짓이기도 했다.
진천희가 중얼거렸다.
“시기가 늦어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아마 그리 판단한 것 같네요. 거기다 일단, 조호이산의 계를 성공시키면 문제가 아니게 되니까요.”
그다음, 조호이산(調虎離山).
범을 산 밖으로 나오게 한다는 뜻이다.
적을 유인해서 둥지에서 끌어내 친다는 병법 중의 하나.
문파들을 분노하게 하여 집결하게 하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다음.
“적을 어떻게 끌어내는 거죠?”
“……알아서 생각하라는군요.”
“네?”
달기의 유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아니면 귀한 패이니 덮어 놓고 있다 나중에 쓰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군사님께서는 생각해 두신 수가 있으십니까?”
스승님께서 말하지 않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독고선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본 군사는…… 노이요지(怒而橈之)의 계를 추천했습니다.”
쉽게 말해 상대를 열 받게 만들라는 뜻이다.
“……어떻게 화나게 할 생각이십니까?”
“간단하죠. 혈선 욕을 할 겁니다.”
그걸로 된다고?
진천희가 되물었다.
“스승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좋은 수라고 답하셨습니다.”
……아니, 그게 먹힌다고?
사실 다른 속셈이 있으신 건가?
* * *
매담자(賣談者)라는 게 있다.
사마현처럼 경극을 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버는 자들도 있는데, 그들을 매담자라고 불렀다.
이야기꾼이라고도 부르는데 어찌 보면 현대의 개인 방송 VJ라고 할 수 있다.
돈을 주고 이야기를 파는 만큼 하나같이 입담이 좋고 소문에 밝았다.
허와 실이 기묘하게 섞인 그들의 이야기는 한번 듣게 되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전냥을 쪽쪽 빨리게 된다.
“즐거운 저녁이올시다!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객잔에서 몇 번이나 이야기를 팔았던 매담자 풍계이올시다! 오늘은 최근 밤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할까 하는데 다들 어떠십니까?”
“최근 밤이라 하면 무림맹의 이야기오?”
“그거밖에 없지!”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잘됐소!”
“소백룡에 대한 소문이 많던데 그게 가장 궁금하오!”
매담자가 말문을 트자 객잔 손님들이 왁자지껄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매담자의 목소리에 엉거주춤 객잔 입구로 온다.
점소이는 기다렸다는 듯 행인들을 자리로 안내하고 행인들은 마지못해 가장 저렴한 국수 하나를 말아 달라 부탁했다.
매담자 풍계(風鷄).
바람 닭이라는 뜻이다.
진짜 본명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사파에서는 그런 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2층 어느 한곳에 고정되었다.
사마현이다.
매담자는 객잔과 공생 관계인 만큼 대부분 하오문 소속이다.
거기서 고아들을 매담자로 양성하고 사방으로 뿌린다.
사마현은 금혈방 황금왕의 제자로, 다른 사파 무인들과는 달리 폭력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손을 한번 대게 되면 끝을 보고. 그 손속이 지독하게 잔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그 과정을 목격한 자들은 하나같이 악몽에 시달린다고.
황금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자이니만큼 그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판다는 건 자연히 긴장되는 일.
“커흠, 그러면 이 풍계가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 드리리다. 그런데 목이 좀 막히는데…….”
그러자 전냥들이 매담자 앞 바구니 위로 쏟아졌다.
평소라면 수련생을 시켜 탁자 하나하나를 다 돌아야 하는데 우르르 돈을 넣는 모습이 장관이고.
매담자의 입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어이쿠, 이렇게 다들 듣고 싶어 하시니 입을 열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러면 지난밤 무림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시작은 머리빗이었지요.”
“머리빗? 고작 머리빗 하나로 그렇게 난리가 났다고?”
“예예~ 그렇지요. 고작해야 전냥 하나도 안 되는 머리빗이지만 잘만 쓰면 무인들도 미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 혹시 저주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그 말에 맨 뒷줄에 있는 손님들도 먹던 젓가락도 멈추고 이쪽을 본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는 신호.
매담자 풍계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어느 날인가 후기지수들이 들고 다니던 물건들이 하나둘 없어졌지요. 네~ 대단한 건 없었습니다. 빗이며 노리개며, 싸구려 머리 장식 같은. 없어지면 새로 구하면 되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높으신 용봉지회 무인들은 다들 생각했지요. 아, 술을 너무 마셨구나!”
와하하하하!
객잔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지켜보던 사마현 나으리도 히죽 웃어 주었다.
기쁜 마음에 풍계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혈선교, 저주, 그리고 고작 하급 저주에 당해 싸움을 벌인 정파의 추태! 그리고 그 획책에 꼴깍 넘어가 버린 사파 무뢰배 놈들!
“사파는 원래 뭐……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래도, 아시다시피 늘 하던 일이니까요. 저주가 없어도 일어날 일이었지요.”
푸하하하!
원래라면 이쯤에서 말을 한 번 멈추고 돈을 받아내나, 오늘은 높으신 분의 앞이니 그러지 않기로 했다.
좋은 흐름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게 더 중요할 터.
본격적인 난전 이야기로 넘어가니 이제 차 홀짝이는 사람도 없어졌다.
모두가 눈을 빛내며 한껏 몰입하는 순간!
“그것을 정리한 것이 백의신룡 진천희 소협!”
“역시!”
“백의광룡!”
“사람 구하다 돌았다는 말이 사실인가?”
“선인은 선인인데 다소 미쳤다던데?”
그 순간, 콰창!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1층에 있는 행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매담자 풍계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사마현이 들고 있던 술잔을 그저 손가락 힘만으로 박살내는 것이!
“미쳤다니! 어찌 그런 소리를! 그분은 대협 중의 대협이죠!”
풍계는 급하게 상황을 수습해 나갔다.
그는 청자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진천희 대협! 역시 백의신룡! 그 이름에 걸맞은 대협의 기상을 가지신 참무인이자 의원!”
겨우 기체조 수준으로 배운 콩알만 한 내공까지 끌어올려 풍계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오오오! 하긴, 광인이라니! 어딜 그런 소리를!”
“백의신룡 덕에 목숨을 구한 자들이 한둘이 아니거늘!”
가난한 자들일수록 백의신룡의 인지도가 높았다.
의방에 갈 돈이 없는 이들치고 진천희의 의서 신세를 지지 않은 이가 드물고.
또한 가난하여 먹을 게 없는 상황이 오면 민들레 뿌리 같은, 도처에 널려 있어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약재들을 받아 음식으로 교환해 준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돈으로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만약 돈으로 교환해 주면 빈민가의 주먹들이 아이들을 시켜 착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묽은 고기죽이나 전병으로 교환해 준다.
이러한 음식은 화폐 가치가 낮기 때문에 착취당할 일이 적기에.
물론 객잔에서 파는 음식에 비하면 맛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영양분은 꽉 차 있어 아사(餓死)할 위험을 극단적으로 낮춰준다.
그런 가난한 자들에게 진천희는 이미 의선이었다.
“백의신룡! 백의신룡!”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광룡이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2층을 보니 사마현이 언제 살기를 날렸냐는 듯 새 술잔을 받아 홀짝이고 있었다.
‘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