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3
제 303화
시계는 없으나, 체내시계로 미루어 봐서는 하루는 족히 걸린 듯싶었다.
그중에는 각 문파의 비전 신공절학들도 있었고.
덕분에 이미 익히 알고 있던 무당파의 무공부터, 북해빙궁의 것까지 알게 되었다.
전부 읽고 났을 때는 걸어 다니는 신공절학 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허나, 이건 역시 상급의 신공절학이다 보니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군.’
많이 안다고 해도. 무학의 세계는 광대하여 글귀만 조금 외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나 이 정도의 신공절학은 태극혜검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그때도 눈은 글귀를 읽었지만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지. 결국 그 무학이란 수없이 누군가와 검을 맞대고 통찰하며 깨달아야겠지.’
날로 먹는 건 여기까지인가.
아니, 날로 먹었다기에는 여기까지 오는 데 목숨을 걸어야 했다.
좀 더 안전하고 쉽게 날로 먹는 방법은 없을까 싶었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게 세상 이치인 모양이다.
‘계속 무학에 정진하면서 스승님과 연구해 나간다면 뭔가 그럴듯하게 나올지도.’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왠지 몸이 휘청거렸다.
‘배고프다.’
혹시 몰라서 황실표 벽곡단을 소매에 넣긴 했는데 이미 다 먹고 도로 배 꺼진 지 오래.
‘일단 쉬자.’
중앙에 놓여 있는 푹신하고 긴 의자에 몸을 뉘었다.
황제를 상징하는 표식이 있었으나 진천희는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그렇게 푹신한 곳에서 한참 쉬고 나니 기력이 좀 돌아왔다.
‘물 냄새가 나는데 뭔가 마실 거라도 있으려나.’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니 샘물이 보였다.
‘목이 마른데 이거 마셔도 되나?’
무림식 라이프 스트로야 미리 챙겨 왔으나 황궁 입구의 경비대가 짐을 다 뺏어갔다.
환궁할 때까지 잘 보관하고 계신다고 하니 별수 없다.
진천희는 천천히 물에 내기를 집중하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영약 반응이 샘물에서 나오는 거야?”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만 판별하려고 했는데 영약?
아, 이건 못 참지.
한입 삼키니 청량한 기운이 목구멍을 넘어 흘러 내려온다.
“전설의 공청석유는 아니지만 적어도 준영약에서 하급 정도는 되는 샘물일세……? 내공 쌓는 초기쯤에 이것만 마시고 운기토납법만 해도 내공이 쌓이겠는데?”
‘……황족 놈들, 좋은 건 다 몰래 가지고 있었잖아!’
준영약급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물이라니.
현대인은 죽창이 당긴다.
‘아니, 이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인데?’
이 샘물을 가지면 한 문파를 일으키다 못해 대대손손 강호 지배자까지 해먹을 수 있다.
“우씨, 좀 더 마셔야지.”
이제 와서 삼 갑자나 되는 진천희가 이거 먹고 효과볼 일은 없다.
그래도 공짜고 보물이니까 좀 더 마셔 준다.
그렇게 갈증을 해소하고 흐느적거리면서 늘어졌다.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진천희도 조금 쉬려고 이렇게 늘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휴식이다.
뇌를 쉬어 줘야 하니까.
그렇게 멍 때리고 있던 진천희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뭐가 이리 이상하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그제야 깨달았다.
‘아, 물건들이 팔괘의 모양으로 진열되어 있었던 거구나.’
그런데 그냥 팔괘도 아니고 역팔괘다.
‘왜 이게 반대로 되어 있어?’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머리를 득득 긁었다.
“그래. 숨겨진 비고에 또 숨겨진 비고가 나왔으니, 여기에 또 숨겨진 게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네.”
진천희는 잠깐 고민하다가 항아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다른 물건들도 팔괘에 맞추어서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대단한 지보들이지만 일단 옮기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모든 물건들이 맞는 위치에 배열되고.
마지막으로 꽂혀 있던 검까지 제대로 배치해서 꽂아 넣어 보았다.
달칵-
‘역시나 이번에도 또 뭔가 숨겨 놓았군.’
이곳을 설계한 놈은 분명 인간 불신에 찌들어 있는 놈이거나, 아니면 사람 갖고 노는 거 좋아하는 놈일 게 분명했다.
‘음…… 제갈가 선조님들처럼 말이지.’
스승님께 어렴풋이 들은 바로는 아무래도 강호의 책사 역할을 오랫동안 맡고 있다 보니 직업병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단다.
드드드드드드드!
이번에는 기관진식뿐만 아니라 주변 기운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이게…… 무슨 일이지?’
진법? 아니면…….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심장이 저릴 만큼 가공할 기운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바닥 정중앙이 갈라지며 다시 계단이 나타났다.
‘후우. 이게 마지막인가?’
여기까지 온 이상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건 의미 없는 일.
진천희는 옷매무새를 바로 잡고는 계단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가공할 기운이 더욱 온몸을 누르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위층(?)처럼 야명주가 천장에 있어 어둡지는 않으나 안개로 시야가 차단된 것은 매한가지.
‘진법인가. 하지만 아까와는 달라.’
기감을 동원해도 주변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고.
뒤를 돌아보니 아까 들어왔던 출입구와 계단이 사라져 있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어려워도 풀 수 있게 만들어 놨었는데 이건 뭔가 기존 것과는 다르다.’
죽는 건가?
설마 이런 곳에서?
소름이 등을 타고 오른다.
그 순간 목소리가 울렸다.
-자격이 없는 자 멸할지어다.
쿠그그그-
안개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진법이 아니라 흡사 짐승의 뱃속에 들어온 기분.
진천희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도 이러한 형태의 진법은 본 적이 없었기에 공포는 더욱 명치를 내리누르고.
“컥……!”
엄청난 압력이 몸속에 들이부어지기 시작했다.
독과는 달랐다.
순수한 기(氣)!
어째서 이런 것이 작동하고, 왜 이곳에 있는지 인간의 이지(理智)로는 가늠할 수가 없었고.
숨이 막히려던 찰나.
갑자기 심장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뭐지? 왜 내 몸이 공명하고 있지?’
이만한 압력이 들어온다면 기혈이 터져 죽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왜인지 진천희의 육신은 이 압력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격이 있는 자여. 나아가라.
압력이 사라진다.
“…….”
안개가 갈라지며 길이 나타났다.
진천희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손등 위로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가 불티처럼 사라졌다.
‘이 육체는 대체 뭐지?’
자격이 있는 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이 육체의 정체만 더욱 의심스러울 뿐.
‘돌아가는 곳은 막혔다.’
그렇다면 나아갈 뿐.
길을 따라 얼마나 더 걸어갔을까.
거대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동굴의 호수였는데 정중앙의 천장에는 빛이 통하는 곳이 있어서 신비로이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저 호수인 건가. 황궁 아래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일단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저 구멍을 타고 올라가면 될까.
황상께 어떻게 변명을 할지가 문제지만, 일단 살고는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호수 근처로 다가가는데 거대한 무언가가 미끄덩하고 지나간다.
그르르르-
이 소리, 들어본 적이 있다.
과거 흑갑오공, 즉 거대 영물 지네를 퇴치할 때 들었던 소리였다.
짐승의 숨소리.
그것도 거대한 짐승의 숨소리.
‘검이 없는 게 문제네.’
소리를 봐서는 흑갑오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영물일 터.
설마 ‘싸워서 이기는 게 마지막 시험이다!’는 아니겠지?
그런 무협지 전개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때도 주인공 칼은 쥐여 주고 시험을 했다.
그때 촤아아악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물을 헤치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용?”
한눈에 다 차지 않을 만큼 거대한 용의 머리가 나타났고.
황실을 상징하는 황금색 비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친, 황가 상징이 황룡이었던 게 진짜로 황궁 지하에 황룡이 살아서 그런 거였어?!’
지금 이 순간도 감찰사의 징표가 다소곳이 손목을 감고 있다.
이걸 감고 있으면서도 진짜로 황룡이 지하에 계시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하륜이 이무기 잡는 게 소설에 나오긴 했는데!’
장편 무협답게 나중에 신선이랑 싸우고 이무기랑도 싸우고 난리가 나지만 용 잡는 건 나오질 않았다.
그것도 몸 전체가 블링블링 황금인 용은!
-기이하구나.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이곳에 도달한 황족이 있다니.
들은 적 있는 목소리다.
마지막 절진에서 진천희에게 자격을 물었던 그 목소리.
“사실 황족은 아니옵고…… 어…… 황실 비고 사용을 허락받은 자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말에 황룡은 코웃음을 쳤다.
-복희의 후손아. 너의 앞에 있는 내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냐. 설마. 너희들이 나에 대해 잊은 것은 아니겠지?
‘아니, 황족이 아니라니까.’
어찌 되었든 황룡의 말에서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
“당신은 혹시 건국신화 속에 나오는 응룡이십니까?”
응룡(鷹龍).
매 응(鷹)에 용 용(龍).
보통 용이란 신수로서 날개 없이 허공을 날지만, 이 응룡은 용에서 더 상위의 존재로 나아가서 날개를 얻은 용이라는 전설이 있다.
응룡은 태고의 신들과 뜻을 함께했다고 알려진 존재로.
용 중의 용. 신룡이라고도 한다.
‘허나, 지존천마에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황궁 지하에 이런 세계관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하다. 나는 응룡. 과거 천하를 정립하기 위해 힘을 보탠 용제(龍帝)일지니.
아니, 근데 그런 분이 왜 이런 황실 지하 호수에 계십니까.
“…….”
이 말을 했다가는 훅 가는 거 순식간이겠지.
이건 이미 인간의 이지(理智)를 초월한 존재.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찰박-
거대한 몸체가 움직이는데도 수면은 크게 일렁이질 않았고.
용의 거울 같은 각막이 흡사 사람의 내면을 통찰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너는 몹시 기이하구나. 이미 죽었어야 할 육신이 살아 움직이고. 그 혼백은 운명이 보이지 않아. 흠… 도리어 천기를 흩어 내다니. 후후… 그래서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이곳에 다다른 것인가.
천기(天氣).
이제는 질릴 만큼 듣는 말이다.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찰박-
응룡은 꼬리를 조금 흔들더니 이리 말했다.
-……아무래도 너는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이곳에 온 듯하구나. 그렇다면 내 이곳에서 너에게 진실을 가르쳐줄 의무는 없도다. 어차피 백 년도 못 사는 게 인간. 뭘 가르치든 그 작은 머리로 무엇을 판단하겠느냐.
그 말에 진천희는 화내는 기색도 없이 차분히 답할 뿐.
“당신은…… 저를, 아니. 인간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으신다는 건 알겠습니다.”
-후후후. 내 이곳에 거한 지 벌써 수천여 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복희와의 약조 때문에 이곳에 거하고 있는 것인즉. 이는 귀찮은 일이다. 내 잠을 방해하지 말라.
도로 주무시려고요?
응룡이 말을 이었다.
-너는 네가 아는 바대로 행하라. 나는 내 의무를 이행할 터이니.
그리 말하며 도로 수면 아래로 내려가려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