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0
제 340화
유호의 일이 좀 줄었다.
그동안은 유호가 총관으로서 안과 밖의 일을 모두 다 도맡아 했다면, 무월이 외당 총관으로서 유호의 일을 어느 정도 보좌하게 되었다.
유호는 무월을 보며 한쪽 눈을 슬그머니 떴다.
“이해가 안 가는군요. 대체 왜 하오문 출신에게 이런 중한 일을 주었는지.”
“구명지은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생각입니다.”
“허, 구명지은의 은혜? 강호에서 가장 입에 발린 소리 아닙니까.”
파격적인 인사 조치인 것은 맞다.
유호가 말했다.
“뭐, 대신 우리 쪽 사람이 그쪽의 내의원 총관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괜찮은 일이긴 하지요.”
이쪽에서 중하게 쓰면 하오문 측에서도 똑같이 중하게 써야 한다.
그렇기에 백린의각에서 보낸 인사도 하오문의 내의원 총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슷한 급의 직책, 비슷한 급의 권한.
황금왕이 팔대절학을 주고 언약한 그 상호 협력 관계를 이렇게 이어나가는 셈.
“누가 그쪽으로 가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부족함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 주신다면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월은 그리 말하고는 예를 표했다.
유호는 못마땅한 듯 그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된 거 일을 하지요. 제 일이 조금이라도 줄면 그걸로 되니까 말입니다. 다만.”
“네?”
유호가 서늘한 눈으로 말했다.
“앞으로 제가 시키는 일에 ‘왜?’라는 질문을 금합니다. 외인에게 줄 정보는 없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또한.”
“…….”
“허튼짓을 했을 시에는 즉결 처분합니다. 그것은 도련놈이 말린다 하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세작을 처단하는 건 총관의 권한이니까요”
무월이 보기에 유 총관은 어쩐지 무공을 익힌 사람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직감이 유 총관은 결코 약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알 수 없기에 더욱 무서운 법.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연구각에는 접근을 불허합니다. 연구각은 백린의각의 모든 연구가 모여 있는 보물고이니 발각 시 묻지 않고 목을 꺾겠습니다.”
“그 말은…….”
“즉, 실수로라도 길을 헤맸다는 변명은 저승에서나 하라는 뜻입니다.”
“알겠습니다.”
“영민한 사람이니 굳이 연구각에 대한 정보를 준 이유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유호의 질문에 무월은 솔직하게 답했다.
“일부러 미끼를 푸신 것을 보니, 제가 그것을 먹으러 갈지 아닐지 보고자 함이 아니십니까. 또한 말씀대로 제가 그곳에 접근하는 즉시 즉결 처분하실 거고요.”
“진법이 쳐져 있는 곳이니 헤맨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만. 만약 발견 시에는…… 네, 즉결 처분합니다.”
차가운 목소리에는 자비 한 톨 없었다.
심문을 하고 죽일지, 아니면 그냥 죽일지의 차이 정도겠지.
백린의선부터 해서 사람을 살리는 의각이 어찌하여 이리 흉흉한가.
되뇔 법도 하건만 무월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어느 세가든 접근해서는 안 되는 밀지(密地)가 있는 법이지.’
소림은 불가이나 여차할 때는 자비가 없다.
그것은 도가도 마찬가지.
무당과 소림의 뇌옥에 사람이 마른 일이 있던가.
그들의 무구에 피가 마른 일이 있던가.
물건을 옮기는 표국에서조차 표물에 손을 대면 즉각 책임을 묻듯, 도산검림의 강호에서 의각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백의신룡의 존재 덕분에 백린의각이 그나마 유해졌을 뿐.
그 본질은 변할 수 없는 법.
강호의 서슬 퍼런 칼 아래 모든 이들의 생명은 소중하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그 외에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면 말해 주십시오.”
“연무장에 접근하신다면 제가 아닌 주인님께서 즉결 처분을 하시겠지요. 무공이 누설될 수는 있으니까요.”
“그 외에는?”
“전서를 받는 곳과…… 약재 보관 창고, 그리고 세가의 서적을 모아 둔 비고 정도겠군요. 그 외에는 괜찮습니다.”
‘잠재적 세작 취급치고는 기본적인 곳만 금하시는군.’
이 정도면 꽤 상식적인 수준 아닌가.
이건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말은 그리해도 나를 믿는다는 것, 아니면…….’
언제든 일거수일투족 감시할 수 있고, 목을 칠 수 있다는 자신감.
은공이야 전자일 터고, 아마 이 유 총관은 후자일 터였다.
“특히 연구각은 무슨 소리가 들리든 무시하십시오.”
“네?”
“연구각에서 나온 상의원이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거든 절대로 대답하지 말고 조용히 도련놈이나 제게 데려오십시오.”
정보 누설을 할까 싶어 그런 걸까?
유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낮에 상의원이 연구각 밖으로 나왔다면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인사를 건네도 못 본 척하셔야 합니다.”
있을 수 없다?
유호의 말은 계속되었다.
“혹시 미쳐 버린 상의원 하나가 만약 이상한 약을 들고 와서 먹으라고 권한다면 결코 먹어서는 안 됩니다. 약은 즉시 폐기하십시오.”
흡사 괴담을 말하듯 유호는 담담하게 앞으로 지켜야 할 사항들을 읊기 시작했다.
“만약 연구각이 아닌데도 진법에 갇히게 되면 당황하지 마시고 눈을 감고 왼손으로 대나무를 쓸면서 걸으십시오. 그러면 처음 들어온 장소로 돌아올 겁니다. 그대로 뒤로 세 걸음 걸으십시오. 또한 진법에 갇혔다는 말을 저 외에 누구에게도 하시면 안 됩니다.”
유호의 말은 계속된다.
“혹시 야밤에 의각 입구에서 할머니께서 아들이 연구각에 있다며 위치를 물어보신다면 절대로 모른다고 하셔야 합니다. 본 의각은 밤에 면회가 불가하며 외부자가 안내인 없이 계단을 올라오는 일은 존재치 않습니다.”
그러면 그 할머니는 뭐 하시는 분이란 말인가?
유호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 그분께서 당신의 육체에 호기심이 생겨 납치하고자 하거든 재빨리 의각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의각 안은 안전합니다.”
‘대체 연구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흑전의각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만약 꾸물거려서 납치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본 의각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 *
무월이 외당 총관으로 임명되고 난 이후.
유호는 무월을 이렇게 평했다.
“아주 똘똘한 인간입니다. 주인님과 도련놈 당신만큼 압도적인 기억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판단력과 지혜가 아주 뛰어나더군요. 용인술 면에서도 우수합니다.”
“오오, 그럼?!”
“쓸 만한 인간이니 현원전단신공의 하위 단계인 현원공 정도는 전수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천희는 유호가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지극히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유호의 입에서 ‘우수하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인간이란 종족의 상위 1% 안에 들어가야 한다.
제갈린은 애초에 탈인간이니까 논외지만.
그런 유호의 건의로, 무월에게도 혼원오행귀종기공이 전수되었다.
유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애초에 혼원오행귀종기공은 제갈린이 암호화해서 만든 특별한 진법 안에서 수련해야만 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축복이면서 족쇄.
백린의각을 상대로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만들면서, 안전하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자 기능을 제공한다.
무월도 자신이 익힌 제법 그럴듯한 무공이 있었지만, 혼원오행귀종기공으로 갈아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왜냐면 혼원오행귀종기공을 익히고 나서, 변형된 현원공을 익힐 수 있으니까.
현원공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뇌의 기능이 제법 살아난다.
사실 제갈세가가 멸문할 적에 현원전단신공은 유출되지 않았으나, 이미 현원공은 유출되어서 어지간한 대문파는 전부 이 현원공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진천희는 왠지 화가 나서 대문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스승님은 담담했다.
-본디 산의 대호(大虎)가 사망하면, 그 시체는 독수리와 파리와 들개들이 갈라 먹는 법이란다. 제갈세가도 한때는 그런 수순이었지.
현원공이 비록 제갈가의 정수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현원전단신공으로 가는 다리라 할 수 있었고.
순간 인지능력과 사고 가속 능력을 올려주는 신공이야말로 제갈가의 저력이라 할 수 있었다.
스승님은 분하지 않은 걸까.
어쩌면 이미 한번 타 버리고 하얗게 재만 남은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의 속을 진천희로서는 도통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진천희를 만났을 때는 구대문파나 팔대세가에 대한 증오심도.
가문에 대한 애착도.
심지어 제갈가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사명감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텅 비어 버린 무언가였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생존 욕구조차 갖지 않았다.
일세의 천재가 거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아득한 일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혈린광살이라는 별호도 이제는 백린의선이라는 별호에 가려져 풍화되고 있었던 이때.
스승님은 여전히 가문의 비사(祕史)를 알려주지 않고 계셨고.
그것은 제갈린의 원(怨)은 제갈린의 대에서 끝내기 위함임을 모를 진천희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무공이 유출되었던 것일까.’
차라리 고아원 진씨를 버리고 정식으로 양자로 입적하여 제갈가의 성을 이어받는다면, 그때가 되면 알려주실지 모르겠으나.
제갈린은 진천희에게 그런 것은 한 번도 권하지 않았고.
진천희 입장에서는 칼 밥 먹는 유교 사회에서 먼저 성을 갈겠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
거기다 가족 같은 것과 진짜 가족은 또 다른 법이니 말 꺼내기가 어렵다.
스승님은 제자의 복잡한 심정도 모르시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다만 현원공을 사용하면 내공이 극악하게 모이기 때문에 다른 대문파들은 현원공을 사용하지 못했지. 개량 시도를 하려고 한 이들도 있지만 줄줄이 실패하였단다.
그랬다. 현원공의 단점.
일단 현원공을 익히게 되면 그 구간은 내공이 모이는 속도가 너무나도 극악하게 느리다.
그렇기에 제갈세가에서도 현원공과 상성인 진법 안에서 운기조식을 하거나, 뛰어난 오성을 이용해 현원전단신공으로 넘어간다.
그리되니 반쪽짜리 현원공을 익히자고 무(武)를 완전히 놓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었고.
그 말을 들은 진천희의 표정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스승도 놀지는 않았단다. 모든 무공은 발전한단다.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듯 십 년이면 어떠한 무공이든 조금씩 개선되기 마련이지.
제갈세가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은원을 정리한 제갈린은 그 후로는 그저 적당히 지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현원전단신공의 오성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지 않는 푸른 눈동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그의 사고를 자극했다.
혈린광살로서 그저 사람을 베고, 베고, 찢고, 찌르며, 분쇄하며.
그렇게 얻었던 경험은 무학이 되어 차근차근 뇌 한켠에서 정리가 되고 있었고.
이제는 모든 문파가 뜯어가 버린 반쪽짜리 무공인 현원공을 그는 그냥 뇌 한켠에서 분해하고 다시 재구축하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