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35
제 434화
제국의 군대는 상비군만 따지만 백오십만.
그 대부분은 국경을 지키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런 백오십만에 이르는 병력 중, 사십만이 차출되어 이곳 단목성으로 오고 있는 중이다.
본래 이 산서성의 국경을 지키는 병력은 약 이십사만…….
초기 숙신족의 정찰 부대를 발견한 장수 도굉이 상대를 야만족이라고 얕보고 사만의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여 전멸했었으니.
‘역적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는 무능함 그 자체였지.’
허나, 죽은 놈은 말이 없다.
결과적으로 이십만의 병력이 남았다.
부상자만 수천이 단목성에 거주하게 된 미친 상황에서 적들의 규모가 삼십만에 달하는 대군이라는 것을 육헌은 확인하고 말았다.
‘피로써 이 국경을 반드시 사수하고 말리라!’
초양장군 육헌.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그의 등 뒤에 있다.
숙신족이 이 지평선을 넘는 순간, 가족들도 결국 이런 꼴이 될 터.
‘장수란 자, 그걸 볼 수야 있나.’
대장군이란 결국 개와 같다.
그의 주인은 황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집에 있는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살아서 아빠라고 부르는 한 그는 결코 그런 짓을 가만히 둘 수 없다.
살아있는 한 물어뜯고 물어뜯는 것만이 그의 일이었고.
단목성을 수비하고자 오만여 명의 병력을 남겨 두고, 다른 칠 대 장군들 두 명이 이끌고 오는 사십만의 군대가 전부 당도할 시간을 벌기 위해 건곤일척의 싸움에 나선 것이었다.
쿠구구궁-
먼 곳에서 새카만 빛이 메아리쳤다.
흡사 뇌전과도 같은 웅장함이 있었다.
“주왕 전하와 주왕부 병사들이 전투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다행히 군신(群神)께서 이 망할 전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연재해에 가까운 힘으로 주왕은 숙신족의 군대, 그 쇠뿔을 정면으로 받아 이쪽으로 틀어내야 한다.
그동안 그들의 전략은 간단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전진한다!
귀갑차(龜甲車)라고 불리는 전쟁 병기가 있다. 마차에 철판을 덧댄 것으로, 본래는 보병을 지원하기 위한 물건.
그런 귀갑차 위에 비차노(飛車弩)를 올려 개량했다.
비차노는 한 번에 수십 발의 화살을 쏘아내는 연노(連弩).
본디 수성용 공성 병기라 성벽에 설치하고 쓰이는 것이 이 비차노.
그는 수레에 얹어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숙신족과 싸우기 위해 귀갑차에 물건을 올린 것.
‘그 높이는 팔 척!’
다만 그 육중한 무게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육헌은 흡사 거북이처럼 진형을 단단하게 말아서 천천히 진군했다.
숙신족의 정찰대가 다가와 화살을 쏘아댔지만, 침착하게 비차노를 이용해 응전해 상대의 정찰대에 끊임없이 타격을 준다!
백린의각에서 파견된 소각주가 그렇게 제작 중인 비차노를 보며 했던 말이 있다.
‘로마 팔랑크스 방진에 연사 석궁을 얹으려고요? 돌았네.’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군사가 아무도 없다.
허나, 원래 제갈세가 놈들이란 약간…… 맛이 가 있다는 평이 있는 자들이다 보니 크게 신경 쓰는 이는 없다.
그를 치료해 주었던 제갈린도…….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옛날보다는 살기가 많이 빠져 있었지.’
지금의 아내가 그때의 제갈린을 보고 놀라서 약사발을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그녀 역시 군문 출신으로 살기에 익숙해 있는데도 그랬다.
‘지금은 그때보단 사람 냄새는 좀 나더군.’
늘그막에 자식은 못 봐도 제자는 봐서 사는 재미나 좀 보는 모양이다.
제갈린이 군문에 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지금 이 꼴을 생각하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끄는 백린의각이 수많은 장수와 병사들을 살려 냈으니까.
군사가 말했다.
“숙신족의 궁기병대는 분명 강력한 상대. 허나, 그 강력함은 기동력과 원거리 공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화살을 쏘아내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유목 병사들의 특징이지요.”
“그렇지. 그러니 이 기갑비차노를 이용한 응전에는 숙신족이라 해도 대책 없이 육편이 될 걸세.”
한 명이라도 더 숙신족을 죽일 생각에 병사들의 눈이 벌게진다.
이미 전우들의 피는 충분히 보았다.
“교전 시 병력 교환비가 3:1인가?”
숙신족 세 명이 죽을 때, 육헌의 군대는 한 명이 죽었다.
귀갑비차노를 끌고 가는 말, 그리고 병사들 역시 전부 방패와 창으로 무장했기 때문.
콰과과과과과광-!
그때 굉음이 울리며 지축이 흔들렸다.
“방위는?”
“주왕군 쪽입니다!”
분명 같은 힘이 부딪쳤을 때 나는 소리.
숙신족에도 주왕을 상대할 만한 고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정말 혈선교가 뒤에 있는 거라면…….’
그들이 사특한 술수를 이용한 것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주왕은 이미 오랜 전쟁의 피로로 몸이 만신창이일 터.
쇠뿔을 붙잡아 틀어 버리는 게 지금 그녀의 일이다.
과연 할 수 있을지 부관의 표정이 술렁거렸다.
“침착하라. 불안이 병사들에게 전해진다.”
그의 작은 목소리에 부관이 표정을 바꾼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약 저렇게 틀어진 병력이 참지 못하고 육헌군을 쓸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육헌이 바라던 바.
부디 주왕 전하의 육체가 버텨 주길 바랄 뿐이다.
* * *
X 같은 세상이다. 그치?
“후욱… 후욱…….”
천우.
진천희의 동생이자, 무당권제의 가르침을 받은 자.
본래 무당권제의 직전제자가 되었다면, 항렬의 위계가 꼬여서 골치 아팠겠으나.
무당권제는 무당파의 큰 어른으로서 무공을 정수하고, 수련을 도와줄 뿐 ‘직전’이라는 명칭까지는 내리지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천우가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표면적인 명칭만 그럴 뿐.
무당권제의 진전을 이은 것은 천우가 맞았고, 그것만으로도 다른 무당파 무인들의 주목을 받을 만했다.
애초에 무당권제의 신공절학은 무당파에서도 사람을 가리는 무공.
사람이 아니면 가르치지 않는다(비인부전, 非人不傳)는 원칙에 의거한 절세무공인 것이다.
실제로 무당 장문인의 사제 정광은 무공을 전수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무당파를 배신했으니까.
결국 무당파의 무공 특성상.
배움이 허락되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는 증명이며, 그것이 무당파의 기둥이 될 자라는 증명.
‘허나 그게 무슨 소용이지?’
천우는 생각했다.
히이이잉–!
거친 숨을 몰아쉬는 천우 옆으로 말 한 마리가 고통에 찬 울음을 내질렀다.
주변에는 말 그대로 시체가 산을 이루며, 피가 강을 만들고 있었다.
거의 대다수가 숙신족에 속한 기마병들.
허리에는 말 위에서 내려치기 좋은 만월도를 차고, 등에는 여러 개의 활 통을 맨 자들.
털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마무리가 조잡하다고는 하나, 화살을 막아 주는 가죽 갑옷과 비단 조끼를 입었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손목이 거칠게 잘려 있었다.
목이 낙과처럼 바닥을 아무렇게나 구르고 있었고, 몸뚱이만이 말에 붙어 있었다.
배가 갈라져서 바닥에는 흥건히 핏물과 뒤섞여 고여 있었다.
다리 하나가 쪼개져 엎어져 있는 시신도 보였다.
귀 한쪽이 핏물로 이루어진 강을 따라 느릿느릿 조각배처럼 흘러갔다.
“악귀가 따로 없군. 무당파는 도가(道家)의 무공 아니었어? 이래서야 사파와 다를 바가 없군그래.”
“……시끄러워.”
“워워, 진정해. 셋째 형~ 나는 그래도 형의 편이라고?”
“너는…… 이 광경이 익숙한 모양이구나.”
“형이 만들었으면서 뭘 그리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네.”
사마현은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우의 도복에는 이미 검붉은 피가 깊게 스며 있었다.
“형이 무당파의 무공을 쓸 때는 피를 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말이야.”
“……형과 나는 다르니까.”
무당권제와도 다르다.
천우는… 분명 무당파를 깊게 이해하고, 그 무학에 심취하였음에도 그의 권로는 패도를 그렸다.
그것은 검로가 되어도 마찬가지.
형과 같은 유연한 궤적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같은 투로도 형은 적을 탈골시킬 뿐이라면, 천우는 부순다.
체구의 차이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의 키는 이제 팔 척을 넘었으니까.
무당파 도복 중에 맞는 것이 없을 지경이니 말 다 했지.
다른 무인들은 그런 천우의 투로를 보며 사파와 다를 바 없다 조롱하였으나, 어차피 외형 때문에 사파로 오인받는 일이 잦아서 익숙하다.
천우는 가쁜 숨을 억지로 심호흡하며 천천히 가라앉혔다.
전장.
강호인의 특별 기동대는 보통 척후 부대로 운영된다.
강호인 대다수가 말을 탈 수 있기에 경공과 승마를 함께한다.
천우 역시 형에게 말 타는 법을 배웠기에 어렵지 않게 쫓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진군하다가 적과 조우하면 급습하여 전멸시키는 게 특별 기동대의 일.
“매는?”
“잡았어.”
푸드덕-
사마현의 손에서 숙신족이 사용하는 매가 푸드덕 날갯짓을 했다.
왜인지 숙신족이 쓰는 매는 강호에서 영약을 먹여 키우는 매들보다도 빠르고 강했다.
다리에는 전서 통을 매달아 숙신족 본진에 정보를 보내는 역할.
즉, 상대의 척후 부대를 잡는 역할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개인으로서는 일개 병사보다 강호인이 더 강하기에 소수 정예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강호인들도 제법 다치거나 죽기도 했다.
허나, 천우는 그중 유달리 강했다.
흡사 범이 달려가듯 보이는 모든 것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허나, 정신적인 피로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뭐, 내 알 바 아니지.’
사마현은 그다지 정신적인 피로는 없다.
후에 천우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 시, 챙겨 주지 않았다는 책임만은 면피하고 싶어서 천우에게 말을 조금 건 게 전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철룡린 이거 좋네~ 미리 배우길 잘했어.”
철룡린 덕에 급소를 막은 것이 손으로 셀 수도 없었다.
“…….”
천우는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더니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형이 꿰맬 곳을 많이 만들지 않았으니 다행이군.”
그리 말하고는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려다가 살짝 표정이 펴졌다.
형이 만들어 준 백잠사 장갑만큼은 그래도 핏물에 젖지 않았다.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딱 하나, 혈향이 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 내의까지 하면 두 개인가.’
어찌 되었든 큰 상처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건 그간의 수련, 무학에 대한 고찰과 각오, 마지막으로 형이 가르쳐 준 무공과 이러한 무구 덕분이겠지.
‘살아서 돌아가야지.’
많은 무인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아무리 신이라고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고 있었고.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터였다.
쿠구구궁-
먼 곳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우뢰인가 싶어 돌아보니 하늘이 아닌 땅에서 빛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자는 군신이라 불리는 이.
주왕일 터였다.
그 주왕이 이 전선에 있어 많은 병사들과 심지어 제멋대로인 무인들까지 안심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천우는 강호인일 뿐, 군사가 아니니까.
그러나 적어도 사람의 육체에는 한계가 있고, 마모되어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게 천우가 아는 전부.
‘나도 마모되어 가고 있나.’
사람인 이상 사람을 죽이면 마모가 되기 마련.
이 전장 속에서 마모되지 않는 자는 눈앞의 사마현 정도일 터.
‘역시 형이 보고 싶네.’
곁에 형은 없으나 그가 만든 장갑과 전수해 준 철룡린은 있다.
천우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