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29
제 528화
그 순간, 공기가 드디어 끊어졌다.
흡사 소나기 전, 천둥이 우는 듯한 소리가 사방을 때린다.
그것은 생존자의 고함이었고 해방의 울음.
“와아아아아!”
“백의신룡!”
“소백룡!”
“벽안신의!”
아이, 깜작이야.
아이가 깨어나서 운다. 할머니는 그런 손주를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살았다. 아가… 우린 살았어.”
현령 대리의 시선을 느낀 포졸이 말했다.
“현승 때문에 아들도 며느리도 모두 염전에 팔려 갔습죠. 할매 혼자서 손주를 돌보고 있는데 어느 날 대들보에 목을 매려던 것을 마을 사람이 말렸습니다요.”
“그랬군요.”
“손주 때문에 산다고 살고 계시는데 가슴의 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정의가 실현되고 악이 징벌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만큼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렇기에 밧줄을 찾거나, 가끔 대들보를 멍하니 바라보곤 하셨다고 했다.
‘후우, 이 정도면 시작치고 나쁘진 않은 건가?’
포졸이 말했다.
“현령 대리. 백성들이 환호하는 것에 당황하신 모양이시군요.”
“네, 저는 의원일 뿐 이런 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 말에 포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승이 횡포를 극악하게 부려서 그렇습니다. 전 현령도 그렇고, 현승도 그렇고 둘 다 뇌물을 주고 직위를 샀나 싶을 정도로 악독했던 자들인지라…….”
뭐, 국민 신문고가 있는 시대도 아니니 때리는 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겠지.
포졸 역시 항명할 게 아니면 결국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했으니.
인생 그런 건가.
“그렇군요. 그러면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를 시켜야겠네요.”
노비로 팔려 나간 백성이 있다면 찾아내서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고, 재물을 빼앗긴 이들에게는 다시 재산을 돌려줘야 한다.
악인을 처벌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지.
빼앗긴 백성들을 회복시키고 돕는 일도 위정자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할 일이 아주 많았다.
“현령 대리님만 믿습니다.”
스승님이 이걸 맡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진짜 귀찮은 일이야. 이거.’
주민들은 새로운 현령 대리를 찬양했다.
“벽안신의!”
“백선광의—!”
다들 이렇게 좋아하는데 뭐, 어쩔 수 없나.
* * *
한 달.
현의 업무를 완전히 파악하는 데까지 한 달이 걸렸네.
“과연 제갈세가 사람이군요. 그 많은 걸 한 달 안에 파악해 내시다니!”
관리들은 죄다 감탄하며 보고 있지만 현대인 시점에서 보면 그렇게 업무가 많은 건 또 아니다.
특히나 ‘이렇게 대충 해도 되는 겁니까?’ 하고 청문회라도 하고 싶을 만큼 허술한 데다가 뭔가 주먹구구구구구…….
‘아니, 일개 의각보다 현의 업무가 더 대충인 게 말이 되나.’
골드&실버 왕야님들 좀 실망이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뭐 어쩌겠나.
전기, 전화, 자동차, 그리고 X셀이 없는 이 시대에 이 정도면 그래도 선방한 셈이긴 하지. 거기다가 선대 황제들이 싸놓은 똥도 다 치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도 사람 목숨이 기다려주진 않아요. 이 사람들아.’
‘아아, 모르는가. 이건 거울이다.’ 또는 ‘페니실린이다.’ 뭐 그런 것들보다 결국 가장 많이 전파하는 건 이거다.
“이게 바로 표입니다. 그래프지요. 먹으로 막대를 그려 알기 쉽게 표현하는 겁니다. 직관적으로.”
“어차피 양민이 보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 짓을 하는 겁니까.”
“업무 시간을 줄이려고요! 효율성 증대요!”
시간은 금이라고. 친구.
고블린만 금이 아니라고. 휴먼 종족도 시간이 금이야.
특히나 한국인은 행정이 느린 것을 참을 수가 없어요.
옛날에 잠깐 해외 갔을 때 뭐 떼어 와라, 뭐 떼어 와라, 연락은 오는데 그게 컴퓨터 이메일도 아니고 우편으로 보내라는 거라서 머리털 다 빠지는 줄 알았었지.
“여러분, 들으십시오. 제가 현령 대리입니다. 제게는 거대한 특권이 있습니다.”
꿀꺽.
아예 강압적으로 나서니 관청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도 침을 삼키고는 긴장한다.
역시 권력에 약한 것은 우리 공무원의 본능.
“산을 밀 겁니다.”
“네?”
왜 놀라? 이 사람에게는 별의 요술봉…… 아니, 현령의 요술봉이 있어.
이 현령 대리가 지금부터 지도 위에서 이걸 뾰로롱 흔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게.
자아, 산아! 없어져라! 호잇!
“밀어야죠. 안 밀 겁니까? 도로를 만들어 물류 유통을 개선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아까 말씀드린 등고선과 표 사용법을 익힌 분은 산이 밀리는 동안 인구 조사와 세수 조사를 할 겁니다. 그리고 익히지 못한 분들은.”
“익히지 못하면……?”
“함께 산을 밀게 될 겁니다.”
“……!!”
음, 그래. 다들 미쳤냐는 눈으로 바라보는군.
이러려고 관리가 됐나 허탈해졌을 거야.
고작 지방 하급 관리라고 하더라도, 그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천자문 좀 뗐다는 놈들이 모여서 수만 분의 일로 합격을 해야 봉록을 받으며 산다.
당연히 이놈들은 5살부터 책상물림을 하면서 공자 왈 맹자 왈 했겠지.
그런 고오급 인력을 토목에 쓰겠다고 하니 이게 미친 거지, 알고 있어. 하지만…….
“표를 익혔는지는 여기 저의 부관이 확인할 겁니다.”
지옥에서 기어 나와라. 어둠의 집행관이여!
“……무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무월은 핼쑥해진 표정으로 현령 대리님을 한 번, 정신이 나간 하급 관리들을 한 번씩 번갈아 보고 있다.
약간 이러려고 들어왔나 하고 현타도 느껴지는 모양.
본인도 몰랐겠지.
하오문에서 구를 대로 구른 예인 출신인 자신이 다섯 살에 천자문 떼고, 여섯 살에 사서삼경과 삼강오륜을 익히고, 예학이니 법가니 죄다 외워다가 마을의 천재라고 불리는 놈들이 표를 익혔는지 안 익혔는지 검사하고 다닐 줄은.
괜찮아. 무월.
이 몸에게는 전능한 현령의 지팡이가 있다.
이걸로 뾰로롱 산을 옮길 거야.
무월, 너는 누굴 끌고 갈지만 정하면 된다.
이걸 눈빛으로 쏘아서 보내니 무월이 ‘미치셨습니까? 은공.’이라는 눈으로 다시 바라본다.
그래. 이런 눈빛 아주 익숙해.
지금 이 명령을 하달받은 하급 관리들도.
‘일광이 진짜 일광이군.’
‘진심으로 산을 옮기는 데 나를 쓴다고?’
‘웃기는군. 화 제국 최상위 예학에 사서삼경에 삼강오륜을 마스터한 나를?’
‘일광은 한다면 하는 새끼일세.’
왠지 이런 시선을 나누고 있으니까.
이 방에서 나를 제정신이라고 생각하는 놈은 없지. 케헤헤헤.
알게 뭐냐. 산 한번 옮기고 나면 수류 쪽도 손볼 거다.
전능한 현령의 지팡이로.
* * *
이렇게 두뇌를 풀가동하며 세금 장부를 확인하고, 인력을 확인하고, 소모 비용을 확인하고.
관련 업무를 며칠 만에 끝내고.
토목도 어떻게 할지 대략적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걸 하고 나서 이제 개방에 서신도 좀 보내주셨지.
그렇게 다소 시일이 지난 후.
설견이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아니, 설견 대협. 방주씩이나 돼서 어찌 직접…….”
“망할 영감이 가서 인사하고 오라고 엉덩이를 차시더라. 젠장.”
그녀는 투덜투덜거리더니 술을 꺼내서 건넸다.
개방 방주가 주는 술이라, 거지는 얻어먹기만 하지 주는 법이 없는데?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설견이 한소리 했다.
“망할 영감이 보낸 술이야. 잘 지내는지 안부 인사 하라고 하더라.”
귀한 술인 모양이군.
문득 그녀 뒤에 있는 낡은 봇짐에 시선을 옮기니 설견이 버럭 소리쳤다.
“젠장, 이건 그 영감탱이한테 내가 주는 선물이고!”
음, 만나러 오시는 김에 선대 방주님 줄 것도 좀 챙기신 모양이군. 약초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개방 거지들과 함께 산야에서 직접 뜯은 모양이다.
강소성 산야에는 괜찮은 약초가 많지.
입은 거칠어도 보약까지 꼬박꼬박 챙기는 게 사부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군그래.
“그나저나 진짜로 현령이 되었네?”
“아, 그… 네. 대리지만요. 잘 지내시고 계시는 것 같아 기쁩니다.”
“네놈은… 입수한 소식에 의하면 열 번 죽어도 아깝지 않을 혈투를 벌이고 살았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아……하하하.”
“거기서 보여 준 엄청난 무위도 들었고 말이지. 화경이 맞긴 하냐? 네놈. 뭔가 무인들의 상식을 벗어나 있는 강함이야.”
이것 참 부끄럽구먼.
“돌아와서도 제법 또 미친 짓을 하고 있고. 아마 네 녀석은 죽을 때까지 별호에서 광(狂)이 떨어질 날은 없을 거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사람 시선은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뭘.
“그래서 부탁한 건은……?”
“그래. 뒷조사에 심성 실험까지 해서… 그렇게 추린 학사만 스물둘. 이리로 오고 있어.”
그랬다.
그녀에게 학사 영입을 부탁드렸다.
이것은 사파이자 흑도인 하오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백린의각 역시 무리.
백린의각은 쓸 만한 의원이나 무인을 구하는 거라면 할 수 있지만 학사 쪽은 분야가 아니니까.
오히려 정파인 데다가 발이 넓은 개방이 적합했지.
이 세계의 입시 체계는 대충 이러하다.
학문을 갈고 닦은 학사를 동생이라 부르며, 이들은 현시, 부시, 원시를 전부 패스해야만 그제야 수재(秀才)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데.
이 수재에 이르러야 제국의 하급 관리로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게 된다.
관리가 된다는 것은 관직을 얻는다는 것.
참고로 포졸 정도는 관리가 아니라 관원이라 불리며, 직급만 따지면 관리와 아예 격부터가 다르다.
어찌 보면 관에 속한 일꾼 같은 존재들이 관원이라 할 수 있다. 그건 현에서 일하는 현령과 현승 밑에 있는 서기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관직을 얻은 게 아니라 관원으로 일하는 것이니까.
물론 자격을 얻는 것과 임용은 또 별개인 게, 내가 수재가 되어도 관에서 안 부르면 취직이 안 돼요.
그렇다면 장원급제란 뭘까?
수재가 된 상태에서 향시 패스하고, 향시 패스한 다음 진시까지 통과하면 그놈은 장원급제다.
처음 얻게 되는 관직이 정6품부터다.
현대로 치면 행시 통과 후 바로 5급 공무원부터 시작하는 것.
물론 난이도는 이때의 장원급제가 현대의 행시, 사시에 비할 바가 아니지.
이 시대 사람은 컴퓨터도 폰도 없으니 전부 다 외워 버리거든.
이 시대에 문맹이 많아서 그렇지, 다들 기억력 하나는 책 전체를 뇌에 넣고 다니는 수준이니까.
아무튼 이쪽에서 요청한 것은 수재급의 인재들.
그것도 관직을 얻지 못한 이들 중 심성이 바르고 곧은 이들을 개방의 도움으로 조사, 그리고 영입한 것이다.
수재의 칭호를 얻었다지만, 취직이 안 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한데…….
관리 새끼들이 어지간히 썩어야죠.
뇌물을 안 주면 취직이 안 돼요.
때문에 취직 안 된 수재들은 둘 중 하나라고 보면 되는 거죠.
심성이 꼿꼿하거나, 돈이 없거나.
돈도 없고 심성도 꼿꼿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게 지금 골드&실버 왕야로 나아진 수준이라는데 선황 때는 얼마나 지독했을지 상상이 안 가는군.
때문에 단순히 조사뿐만 아니라 간단한 시험을 해 달라고 했지.
어떻게 할지는 설견과 선대 방주님의 재량에 맡겼다.
그 덕에 순식간에 인재가 만선이다.
개방에서 보증한, 엄선된 인재가 무려 스물둘이나 오고 있으니까.
‘후… 얘들도 표를 익히지 못하면 나의 요술봉을 보여 줘야겠군.’
그래도 앞선 선배가 토목 공사로 차출되는 걸 보면 약간 학습 의욕이 고취되지 않을까?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작가 태선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이르지만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두 가지 소식을 들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소식으로는…… [의원, 다시 살다]를 곧 주 5회로 돌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는 시나리오를 가다듬고,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주 7회로는 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결정하였습니다.
24일 금요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3화를 연참하고 바로 주 5회 연재로 들어가겠습니다.(월~금)
좀 더 주 7회를 이어나가고 싶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두 번째 소식으로는.
작년, 올해 [의원, 다시 살다]는 독자님들께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모두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감사를 표현하고자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친한 작가님들에게 ‘독자 조공’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비로 직접 생일 축하 광고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22일 진천희의 생일을 기념하여.
20일부터 2호선 홍대입구역 1번이나 9번 게이트에서 합정 방면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가시면 [소설 진천희]와 [웹툰 진천희]의 전면 생일 축하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실은 지금 예정보다 광고가 일찍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어서 공지도 급히 쓰게 되었습니다.
생일 광고는 총 2개고요.
웹툰 버전 소년 진천희의 생일 축하 광고도 지금 올라와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20일 안에는 올라가긴 할 겁니다.
아이돌 생일 축하 느낌으로 부탁드렸는데…… 외주 받아주신 디자이너님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센스 있고 넘 멋져요!!
*생일 광고는 1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 홍대입구역에 있을 예정입니다.
또한 소소하게 백린의각 기념품도 만들었어요.
실용적인 것을 찾다가 시국이 시국이니 역시 비누가 좋겠다 싶어 주문 제작 중입니다.
훗날 SNS나 카카오 이벤트를 통해 소소하게 풀 예정입니다만 반응이 좋으면 더 찍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진천희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긴 연재 동안 함께 달려주신 독자님들께 드리는 작가의 조공 선물입니다.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커다란 진천희를 보실 수 있어요.
혹시나 홍대에 들를 일이 있다면 한번 보러 가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이런 괴이한 부탁에도 기꺼이 도와준 남편과 동생, 그리고 고렘팩토리 직원분들, 그리고 외주를 맡아주신 디자이너님과 웹툰 작가 도빈 님께 감사의 인사를.
그리고 500화가 넘는 대장정 속에서도 함께 달려와 주신 독자님들께.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뒤에 이어질 도면 E1, E2 위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