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67
제 967화
그전에도 그랬지.
대충 해도 어차피 따라갈 길이니 좀 놀면 어떠냐고.
가주가 되고 대충 하지 않게 되니 이만큼 성장한 건가.
‘역시 짜증 나는 양반…….’
진천희가 가자미눈을 뜨고 남궁운을 바라본다.
남궁운은 눈치가 없는 건지, 있으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진천희의 지시에 따라 진법을 척척 완성해나갔다.
“그런데 내 진법을 설치하는 것을 여럿 봤지만… 이건 조금 독특하군?”
“하긴. 남궁세가도 진법과 기관장치 시공업체로 이름이 높죠?”
“시공업체는 또 뭔 소리인지……. 아무튼 그렇긴 하네. 제갈세가가 건재하던 당시에도 제법 이름 날렸으니 말일세. 제갈세가는… 지나치게 가격을 높이 불렀다고 들었거든.”
선대 가주께서는 아마 고급화를 노리신 모양이다.
남궁세가는 그 점을 노려서 한 단계 아래 가격으로 괜찮은 품질의 진법을 설치해주었던 모양이고.
“가격에서 승부 보는 건 좋은 일이죠. 어쨌든 남궁 형이 예리하게 본 겁니다. 이거는 주술을 섞은 진법이거든요.”
“주술을?”
“모산파에 갈 일이 있어서… 그쪽에서 조금 배워 왔습니다.”
그 말에 남궁세가는 턱을 문질렀다.
“흐음…. 이거. 괜찮은 건가? 모산파의 주술이 일절인 것은 알고 있다만, 자칫 폭주할 수도 있는 게 주술 아닌가.”
“예. 괜찮습니다. 저는 불살을 모토로 하니까요.”
“모토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만.”
“그냥 느낌으로 이해해 주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돌아다니면서 계속해서 진법을 설치하고 보강해나갔다.
같은 시간, 여하륜은 먼 곳에서 두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린다.
“…….”
수하들이 전원 집합한 것은 아니다.
정예. 그것도 삼백여 명만이 이곳에 와있다.
여하륜이 일카나에게 물었다.
“전부 온 것이 아니었나? 왜 이들뿐이지?”
“아, 전부 왔지만, 다수는 다시 이동시켰습니다. 저쪽을 끌어들이려면 이래야죠.”
일카나의 답에 여하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책사의 배신을 의심하는데 여하륜은 그런 법이 없다.
주먹이 있는데 사람을 의심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일카나도 저 미친 괴물 놈이 사람을 어떻게 터뜨리는지 생눈으로 봐왔기 때문에 행여라도 그런 생각 안 한다.
한 줌 핏물로 화하는 것도 아니다,
별 모양 핏물이다.
한 줌 별물.
절대 못 이기라 생각했던 ‘마두’, ‘마황’이라는 불리는 자들을.
네놈의 목을 일월께 바치겠다, 네놈이 마시는 공기가 아깝다…면서.
죄다 한 줌 별물, ‘★두’, ‘★황’으로 만들지 않았나.
옛날에는 머리통만 터뜨리더니, 요즘은 뭔가 성취가 는 건지 사람 사지째로 터뜨리더라.
미친 천살성 소교주는 오늘도 사람을 한 줌 핏물, 아니 ★물로 만드는 중이다.
사막에서는 사람이 죽어 별이 된다고 믿는 부족들이 있는데, 일카나는 안 믿었다.
허나, 저놈이 사람을 별 모양으로 터뜨리는 것을 보며 이제는 믿는다.
인간은 죽어 한 줌 ★물이 된다.
여하륜이 물었다.
“흠. 정보가 있나?”
“적의 적은 친구……. 소교주들 중에서 두 명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견제하는 자들이 정보를 가르쳐 주었죠.”
여하륜은 믿는다.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가. 둘인가. 잘됐군.”
그리 말하며 여하륜의 손에서 새카만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천마진기.
마치 세상 그 자체에 구멍을 뚫은 듯한 아득히 깊은 무언가가 여하륜의 의념에 따라 말미잘처럼 움직였다.
‘그래요. 진천희 형제님. 일카나는 한 줌 ★물이 안 되려고 오늘도 신용 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저놈이 천마가 되면 복수를 이루어주겠지.
그게 두 사람의 계약이니까.
계약 하나는 누구보다 잘 지키는 놈 아닌가.
여하륜은 천마진기를 느끼며 결론을 내렸다.
“놈들을 치고, 다른 녀석들까지 정리한다.”
“이후에는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천마와 대적하실 생각이신가요? 형제님.”
원래라면 천마께서 탈각을 하고 승천해야 맞는 일.
허나, 죽어서 넘기리라 생각한 그 천마의 자리가 비질 않는다.
그렇다면…….
“…….”
여하륜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에 일렁이는 천마진기가 더욱 어둡고, 어둡고, 어두워질 뿐.
그 모습에 수하들은 소름이 돋아 몸이 멈추었고.
책사 일카나만이 제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저 미친 형제님이 또 미친 마기를 뿜어내고 있군.’
오오, 모래와 밤의 신이시여.
무식한 중원 이교도들 사이에서 제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습니다.
* * *
일월신교.
그러나 외인들은 마교라고 부르는 곳.
그곳에서는 교주를 선출하기 위해서 소교주들끼리 서로를 죽이게 한다.
때문에 소교주들은 서로에게 강렬한 살의를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공동의 적을 위해서 손을 잡기도 하며,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였다.
천살성 여하륜.
독보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는 소교주.
현재 교주인 천마가 귀애하는 제자.
그러나 천마의 총애는 역시 일반적인 것과는 달라서, 여하륜은 무수히 많은 사선(死線)을 건너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종육가 중 두 가문이 현재 낼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을 보냈다.
“너는 소교주 자리에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
“형님이 죽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수파채가 있던 섬이 내려다보이는 근처 산의 꼭대기.
그곳에는 두 명이 서 있다.
키가 구 척에 가까운 구릿빛 피부의 거한과 과거 패천무상신공의 비동 사건 때 마교의 대표로 나섰던 청연.
“독운이 폐인이 되었다더군.”
“그놈이 섣부르게 나서다가 그럴 줄 알았어. 일광이 어떤 놈인지 모르니 그랬겠지.”
“청연. 너는 일광을 지나치게 고평가하는 게 아닌가?”
“글쎄다. 네가 상대를 안 해봐서 그래. 별호대로 그놈은 미친놈이거든. 저곳에 들어가는 것도 꺼림직해.”
청연의 말에 거한은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섬을 바라보았다.
“제갈세가의 진법은 천하일절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본가의 정예를 당해낼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겠지. 하지만 피해는? 여기서 피해를 많이 본다면 다른 놈들에게 밀릴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천살성을 잡아먹을 수만 있다면 손해는 아니겠지. 협약을 잊지 마라.”
“우선은 여하륜. 그다음은 너와 나,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 것. 알고 있어. 흑록. 너야말로 잊지 마라.”
“좋다. 그러면. 시작하자.”
철혈마가의 새로운 소교주. 흑록.
그리고 마종육가의 하나인 만병살가(萬兵殺家)의 소교주인 청연.
둘은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제갈세가가 만든 요새를 향해 달려들어야 할 때다.
* * *
진천희.
그가 수파채의 섬에 머문 지 열흘이 지났다.
섬 전체를 진법과 주술로 요새화 했고, 틈틈이 여하륜에게 수많은 무공들의 구결을 전했다.
무공이라고 해봐야 외공이나 재생공에 관련된, 이른바 잡기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 잡기들이 사람 생명을 어떻게 구하는지 알고 있다.
‘그치……. 안전벨트가 강호인들에게는 잡기처럼 보여도 그 안전벨트 덕분에 사람 목숨 건지는 거니까.’
거대한 몬스터 트럭을 몰고 다니는데 고작 그 까만 끈이며 사고 날 때 팡 터지는 흰 풍선이 얼마나 가오 없어 보이겠나.
하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지 알기에 폼은 좀 안 나더라도 가르친다.
여하륜 역시.
“음…. 그렇군.”
이놈은 폼을 잡아 본 적이 없다.
그저 숨 쉬듯이 모든 행동과 동작이 폼이 날 뿐.
흑백으로 이루어진 피부와 머리카락, 그리고 붉은 눈.
흑의는 틀림없이 이 사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그가 숨을 쉬는 곳은 언제나 공기가 조금은 더 무거워진 기분이 든다.
‘따라 하려고 해도 안 되는군.’
분위기를 잡으려고 하질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생긴다.
진천희는 섬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 위에서 주변을 내려다본다.
여하륜 역시 진천희 옆에서 일주천을 마치고 눈을 반개한다.
소금처럼 흩뿌려진 별 아래로 붉은 천살성 한 쌍이 진천희를 응시한다.
새카맣고, 또 새카만 밤.
웨옹-
흑설묘가 진천희의 발목을 부비고는 스윽 지나간다.
마치 새카만 해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감촉.
그리고 저 멀리, 물살을 가르며 배가 오는 것이 보였다.
희미한 등불.
보통 사람이라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빛이지만 진천희와 여하륜은 볼 수 있었다.
둘은 배의 숫자를 세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우, 많이들 오는구먼~”
“음.”
“저들이 섬 안으로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하륜아, 알았지?”
“알고 있다.”
스스스스스-
여하륜이 깊게 숨을 내쉬자 풀들이 몸을 떨듯 소리 내어 눕는다.
‘살의를 내면으로 갈무리하는 중이구나.’
살겁을 수없이 거치며 내면의 천살성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그 살기를 안으로 삼켜내는 것만으로도 의념이 움직이고, 작은 식물들이 몸을 떤다.
허나, 여하륜의 주변은 그저 고요하고 고요할 뿐.
“…….”
앞으로 있을 전투가 거짓말이기라도 한 듯 모든 것이 어둡고, 느리고, 조용하다.
그게 하륜이가 있는 풍경.
진천희는 아우의 어깨를 툭 친다.
여하륜은 그것을 신호로 완전히 살의를 내면에 삼켜냈다.
꿀꺽-
긴말은 필요 없겠지.
진천희는 절벽을 향해 팔을 벌려 거꾸로 훌쩍 뛰어내린다.
여하륜은 그런 형의 궤적을 좇아서 함께 추락했다.
밑으로, 밑으로.
새카만 어둠이 두 사람을 삼킨다.
* * *
배가 근접해오기 시작했다.
“준비!”
밤에 섬을 점령하기에는 불화살이 정석이다.
특히 지금같이 바람을 등지고 있는 형세에서는 더욱 그랬다.
기름 먹은 화살이 불꽃을 씹어 올리고.
“쏴라—-!”
내공 섞인 외침과 함께 수천, 수만 발의 불화살이 별이 되어 솟아 오른다.
쿠과과과과과과곽!
그 비싸다는 새외의 기름 먹은 화살들.
아무리 습기가 높은 계절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불을 붙이고 만다.
새외에서는 이 기름을 악마의 숨결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허나…….
핑피피피피핑!
숲에 들어간 화살들 중 무엇도 불꽃이 올라오지 않는다.
이상함을 느꼈으나 누군가가 말했다.
“일광이 절진을 구축한 모양입니다.”
“환영진일 가능성도 있겠군.”
끼이이익, 쾅!
배가 섬에 닿기 시작했다.
등에 진 바람, 그리고 마공으로 배를 당겨 순식간에 모래사장에 배가 올라갔고, 마교도들이 우르르르 뛰어내린다.
한쪽에는 철갑을 입고 등에는 창, 허리에는 여러 자루의 칼을 매단 자들.
그리고 다른 배에서는 체구가 칠 척에서 팔 척은 되는 거구의 근육질에 모두 맨손인 자들이 뛰어내린다.
콰광!
마종육가 중 둘.
“철혈마가(鐵血魔家). 그리고 만병살가(萬兵殺家)가 도착했다.”
철혈마가 깃발을 높이 치켜들자 모두가 크게 함성을 질렀다.
불화살까지 쏜 이상, 적의 전의를 꺾는 것이 상수!
“철혈마가, 전진해라!”
그 말에 팔 척 근육질의 마교인들이 달려 나간다.
철혈마가는 외공을 근간으로 하는 마공이 근본.
그 마공을 주로 익히는 가문으로 가주는 강기조차도 산들바람처럼 느낄 정도로 강대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달리는 순간, 지축이 울리며 쿵쿵쿵 소리가 울린다.
흡사 신화 속의 거인이 다시 부활하는 건가 싶을 지경.
“만병살가, 준비되었나?!”
우오오오오!
전신에 흑색 철갑을 입은 자들이 전열을 유지하며 섬에 들어선다.
투구까지 눌러쓰고, 허리에는 검과 작은 도끼, 거기에 비수들이 혁대와 어깨 줄에 빼곡하게 장착되어 있다.
만병살가는 병기를 이용한 살공(殺功)을 익히는 가문.
이 살공이라는 것도 마공 중의 마공으로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 생기와 혈기를 흡수하여 강해진다.
만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는 모든 병기를 다 쓰기 때문.
만병살가 역시 지지 않는다는 듯 전진하기 시작했다.
철혈마가보다는 느리나, 그 달리는 모습이 마치 수십 마리의 흑룡이 땅을 기어 달리는 모양새였고.
두 가문의 정예가 달려 나가며 섬 안으로 일제히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맨 뒤로.
강렬한 기운을 가진 이들 네 명이 천천히 걸어서 움직였다.
만병살가의 소교주 청연.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군요.”
“수하들의 사기도 중요하지 않겠소. 거기다가 우리 철혈마가의 특성상 은밀히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오.”
철혈마가의 새로운 소교주 흑록 역시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좋군. 좋아! 한번 가볼까!”
철혈마가의 부가주 철귀투마(鐵鬼鬪魔) 흑철.
“병장기는 충분한가?”
만병살가의 부가주 혈살기마(血殺器魔) 청선!
절대 고수가 무려 4명. 거기에 더해서 마종육가 중 2개 가문의 정예가 수백!
그들이 살기를 띠고 섬의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천하진일광 진천희의 절진이었다.
스스스스-
손님의 방문에 절진을 덮고 있는 안개가 흡사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