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26
기문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절정고수의 움직임.
거기다가 예상치 못한 파천강기의 연속공격은 천하에 이름 높은 구마왕이라 하더라도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기수가 처음부터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거의 저격수의 .50구경 한 방과 같은 위력까지 담겨 있었다.
“크으윽!…”
마추왕은 연달아 날아와 박히는 정체불명 암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급히 끌어올린 호신강기가 속절없이 뚫리면서 온몸에서 피가 튀었다.
그는 일월신교를 대표하는 고수갑게 그 와중에도 기습하는 적을 향해 팔을 뻗었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기수의 검은 마추왕의 손목을 그었고 연달아 그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성공이다!’
완벽한 기습 성공이었다.
맞상대를 해도 밀리지 않을 실력을 지닌 자신이 기습까지 했으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검을 뽑은 기수가 다음 목표를 찾자 탈각왕이 놀라운 움직임을 보였다.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멈춰라!”
기수는 설마 구마왕씩이나 되는 자가 이렇게 쉽게 등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풍도왕! 어디 있소!”
그는 동료를 부르는 것이었다.
기수는 당황했다.
두 사람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풍도왕이 가까이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숲이 갈라지며 금속 장갑을 낀 풍도왕이 튀어 나왔다.
그는 마추왕의 시신을 보고 즉시 상황을 알아차렸다.
“저 놈이 바로 혈매궁 궁주요! 우리가 잡읍시다!”
탈각왕은 도망칠 때만큼 잽싸게 돌아서서 반격을 가해왔다.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나서야 싸우는 게 습관화된 사람 같았다.
기수는 두 마왕의 협공에 밀려 수세를 취하게 되었다.
‘젠장!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닌데….’
마추왕을 찔러죽일 때까지만 해도 일이 수월하게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탈각왕과 풍도왕의 협공은 만만치 않았다.
일단 기습에 집중하느라 페이스가 흐트러졌고, 자꾸만 검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풍도왕의 금속 장갑과 탈각왕의 소매에서 느닷없이 날아오는 암기들이 집중력을 흐트러뜨려 놓았다.
기수는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뒷걸음질을 치자 풍도왕이 더욱 공세를 강화했다.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하오!”
탈각왕도 퇴로를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기수의 능력이 비록 그들을 동시에 제압하지는 못한다 해도, 자기 몸 하나 빼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기수가 선풍비를 사용하여 기문진 안으로 사라지자 탈각왕과 풍도왕은 서로를 마주봤다. 그러나 따라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대도왕이 이미 그렇게 했다가 죽었고, 오늘은 마추왕마저 목숨을 잃은 것이다.
풍도왕이 마추왕의 시신을 살펴본 후 탈각왕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수법에 당한 것이오?”
전신에 십여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나 있지만 암기는 보이지 않았다.
탈각왕이 상황을 돌이켜본 후에 말했다.
“아무래도 진기를 암기처럼 발사한 것 같소.”
“그,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이오?”
풍도왕의 목소리가 떨렸다. 혈매궁 궁주가 교주 정도의 고수라면 대도왕도 사술 때문이 아니라 실력으로 당했다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탈각왕이 말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더 불러야 할 것 같소.”
풍도왕도 적극 찬성했다.
상대가 단지 기문진 뒤에 숨어 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절륜한 무공까지 갖추고 있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각오로 총력전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일단 병력을 물렸다.
기수는 산채로 올라가 사매들과 기념식을 가졌다.
나중엔 둘의 협공을 피해 빠져나오는 모양새였지만, 애당초 노린 목표는 확실하게 처치했으니까 축하할 만 했다.
축하 파티가 끝난 후 탁지연이 물었다.
“그럼 이제 기문진은 더 이상 뚫리지 않는 건가요?”
“일단 멈추게 하긴 했지만 탈각왕을 제거하지 않는 한 위험은 남아 있다고 봐야지. 사람보다는 폭약 구하기가 더 쉬울 테니까.”
“그, 그럼 어쩌죠?”
“걱정하지 마.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탈각왕도 처치할 거니까.”
구마왕 중 한 명이라면 짧은 시간에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탁지연은 여전히 걱정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교활한 자라면 원군을 부른 후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서 기다리지 않을까요? 싸울 때도 동료와 합류할 때까지는 일단 도망부터 치고 봤다면서요?”
기수도 일정 부분 동의했다.
“그런다고 해도 난 기필코 놈을 찾아내서 잡을 거야.”
그래야 안심할 수 있었다.
기수는 다음 날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적진을 살피다가 진 밖으로 나가서 유성추로 일월신교 교도들을 쓰러트렸다.
죽이지 않고 일부러 다리를 노려서 골절상을 입혔다.
기수가 던지는 유성추에는 스쳐 맞아도 뼈가 온전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것은 일월신교 교도들에게 동정심이 생기거나 살인을 꺼려서가 아니었다.
죽이면 그 시체를 치우는 것으로 끝나지만 부상자로 만들면 그를 치료하고 돌볼 사람이 필요하고, 그의 고통에 찬 신음을 동료들이 계속 들어야 했다.
그것이 일월신교의 사기를 더 떨어트릴 수 있었다.
포위되고 수적으로도 열세인 혈매궁으로서는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늘어나도 탈각왕이나 풍도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병력을 산 중턱으로, 아래로 계속 퇴각시켰다.
‘자식들! 제대로 겁먹었군.’
기수는 다음날 좀 더 내려가서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일단 하루를 접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 진 밖으로 나간 기수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이, 이게 뭐지?’
기수는 무심코 산 아래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위화감.
분명히 어제와 같은 숲인데 뭔가가 달랐다.
그는 한참 동안 멈춰 서서 상황을 살피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기문진이다! 놈들이 밤사이 무극환혼진 주변을 기문진으로 감쌌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혈매궁이 지키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월신교가 똑같은 태도를 취함으로써 양측이 서로 담을 치고 대립한 모양새가 되었다.
기수는 탈각왕의 솜씨라고 보이는 기문진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나 파해법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기문진법에 대한 지식은 오로지 무극환혼진에만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레벨이 현격히 낮은 진이라면 무극환혼진을 공부하면서 익힌 지식만으로도 파해할 수 있지만 탈각왕이 만든 진법은 그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젠장!”
기수는 일단 산채로 올라가 탁지연과 사매들을 데리고 다시 내려왔다.
기문진법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나은 탁지연도 파해법을 찾아내진 못했다.
“우리가 도리어 갇히게 된 건가요?”
“식량이 충분하니까 대치상태가 이삼 년씩 이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어.”
대장군부에 전서구를 날려 구원요청을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못 하고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게 기분 나빴다.
탁지연이 말했다.
“지금 당장 원군을 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왠지 그러기는 싫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구원부터 청하는 건 이제까지 대장군부에 보인 자신의 이미지와도 배치되는 것이다.
“겁먹고 기문진을 만든 건 저들이야. 원군을 부를 쪽은 우리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까 일월신교의 최강 전력과 한 번 맞붙어 보자고. 교주를 쓰러트리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니겠어?”
기수가 자신 있는 표정을 보이니까 사매들도 다소 마음을 놓는 듯 했다.
그러나 기수는 사매들을 올려 보낸 후 부하들을 불러 기문진 보수공사를 했다.
폭약으로 무너진 부분과 새로 생긴 경계선을 돌며 가능한 부분의 보강을 하는 것으로 사나흘쯤 지났을 무렵 적진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고수들이 추가된 것이다.
“혈매궁주는 나와라! 우리 일월신교의 둘째 도련님이 직접 오셨다!”
기수는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곳엔 처음 보는 거한과 20대 중반의 키 큰 청년이 풍도왕, 탈각와 옆에 서 있었다.
기수는 청년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사도다!’
전신의 신경들이 흥분으로 날뛰었다.
‘과연 일월신교에 사도가 있었구나. 그런데 교주의 둘째 아들이었다니…’
약간 의외이기는 했다.
그러나 젊은 여자의 진기를 빨아들이고 뒤통수에 구멍을 뚫어 죽이기도 한 판에 교주 아들이면 어떻고 교주면 어떠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들은 그저 자신의 목표물일 뿐이었다.
기수는 상대, 유지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나이는 자기보다 한두 살 많거나 동갑 정도인 것 같았고, 키는 기분 나쁘게도 그가 조금 더 커 보였다. 몸과 얼굴은 마른 편이라 턱이 더 뾰족해 보이고 눈빛이 날카로워서 오래 마주 보기가 꺼림칙할 정도였다.
기수는 그의 실력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좌우에 세 마왕이 있는데 그를 경외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단지 교주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분위기였다.
‘둘째를 옹위하는 마왕의 수가 훨씬 많은 것은, 그가 서열이 밀림에도 불구하고 훨씬 고강한 무공을 지니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지상도 그런 동생을 의식해서 강시까지 만든 것이겠지?’
산 위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새로 합류한 마왕이 앞으로 나서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난 도산왕이라고 한다! 혈매궁 궁주가 어떤 놈이냐! 낯짝 좀 보자!”
도산왕은 대도왕과 비슷한 거구였다.
그리고 큰칼 하나를 들고 다니던 대도왕과 달리 등에 두 자루, 허리에 두 자루, 총 네 자루의 칼을 차고 있었다. 손이 2개니까 어차피 두 자루밖에 못 휘두르겠지만 큰 덩치에 긴 칼이 상당히 위압적으로 보였다.
기수는 답답함을 느꼈다. 사도를 만났는데 그의 주변엔 일월신교의 마왕이 셋이나 몰려있으니까 섣불리 나서기가 어려웠다.
마추왕을 쓰러트린 후 탈각왕, 풍도왕과 싸울 때 물러선 것은 그 이전에 파천강기를 강력하게 운용한 후유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 붙는다면 암기와 장갑에 쉽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유지광과 도산왕까지 가세한 지금의 4명이라면 사매들과 힘을 합친다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기문진으로 막혔을 때 억지로라도 뚫었어야 했나?’
일월신교 진영처럼 폭약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적의 기문진도 그다지 튼튼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파천강기로 갈아엎을 기회는 있었다.
그걸 놓쳤기 때문에 지금 갇히게 된 것이다.
기수가 생각에 잠겨 대답을 하지 않자 우두머리가 직접 나섰다.
“난 일월신교의 유지광이라고 한다. 혈매궁이 우리를 공격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일파의 수장이라면 당당히 나와서 얘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목소리는 의외로 굵은 저음이었다.
기수가 전망대 앞으로 가서 입을 열었다.
“내가 혈매궁의 궁주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노려봤다.
유지광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기수의 기도를 읽은 모양이었다.
“혈매궁은 무슨 이유로 본교의 방파들을 무단히 공격하고 살인을 했는가?”
“청부를 받았다. 그뿐이다.”
“그 일을 청부한 자가 누구인가?”
기수는 피식 웃었다.
“너 바보냐? 그건 말해줄 수 없다.”
유지광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수도 지고 싶지 않아서 내공을 집중했다.
그러자 유지광 좌우의 세 마왕이 흠칫하는 게 보였다.
동시에 유지광의 입가에 흥미롭다는 미소가 번졌다.
“너의 사문이 어떻게 되느냐?”
“사부님이 가르쳐주셨지. 너는 누구에게 배웠느냐?”
기수야말로 유지광을 비롯해 다른 사도들이 누구에게 어떻게 무공을 배우고 익히는지 궁금했다. 자기와 같은 경로로 배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너 바보냐? 일월신교의 적통을 잇는 내가 무공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을지는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이 새끼 봐라.”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유지광을 죽이면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기수가 그에게 제안했다.
“너하고 나하고 일 대 일로 싸우자! 네가 이기면 청부의 배후가 누구인지 가르쳐주겠다. 대신 네가 지면 포위를 풀고 병력을 모두 철수시켜라.”
유지광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네 쪽이 유리한 상황인데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망설이는 것이었다.
기수가 그를 자극했다.
“왜? 자신 없냐? 아직도 싸울 때 아빠 불러야 되는 거냐?”
유지광의 입술 끝이 일그러졌다.
“흐흐… 네놈을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흥! 싸움을 해야 죽이거나 말거나 하지.”
“오냐! 좋다. 일대일로 싸우자.”
기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젊음이란 좋은 거구나!’
한두 마디 도발에 발끈해서 맞장을 뜨겠다고 나서니 일이 아주 수월해졌다.
마왕들의 방해 없이 사도를 죽인다면 그것만으로도 대성공. 게다가 유지광만 없애고 나면 나머지 사도 3명은 사매들과 힘을 합치면 해볼 만 한 싸움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세 마왕은 젊은 소교주의 성급함을 저지했다.
“도련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런 하찮은 자는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세 마왕이 동시에 유지광을 만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