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27
기수는 유지광의 마음이 돌아설까봐 불안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심지가 굳은 사내였다.
“저 자의 손에 우리 교의 장로 아홉 중 세 명이 죽었습니다. 여러분은 저 자의 배후가 궁금하지도 않으십니까?”
“하지만 도련님이 꼭 나서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이제까지처럼 마냥 기문진만 바라보며 기다리잔 말씀입니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그러는 동안 만약 저들의 배후가 우리 뒤를 치면요?”
유지광의 물음에 세 마왕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탈각왕이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저들의 배후는 무림맹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틈을 파고들어 분열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유지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추측일 뿐입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려면 저 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지광이 정색하고 세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저 자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 자는 절대 얕잡아볼 수 없는 고수입니다. 마추왕이 손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당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안 될 거라는 말씀입니까?”
“그, 그런 뜻은 아닙니다.”
세 마왕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유지광이 몹시 불쾌해 하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차 교주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을 이런 위험한 싸움에 뛰어들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탈각왕이 말했다.
“저 자는 진기를 암기처럼 만들어서 쏘는 기이한 무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유지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더 더욱 확인해봐야겠군요.”
그는 세 마왕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서서 기수를 향해 말했다.
“네가 하자는 대로 싸우겠다. 어서 이리 나와라!”
“사내대장부답구나. 마음에 든다.”
기수는 혹시라도 그가 마음이 바뀔까봐 일단 칭찬부터 해주었다.
그리고 세 마왕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들이 가까이 있으면 네가 불리해졌을 때 뛰어들어서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뒤로 멀리 물러나도록 해라. 그러면 내가 나가겠다.”
“우리 일월신교는 신의를 중시한다. 내 입으로 일대일 대결을 하겠다고 했으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끼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걱정 마라!”
기수가 아니라 세 마왕들에게 하는 얘기 같았다.
“간단히 행동으로 신의를 보이면 되는데 뭐 하러 말을 길게 하느냐? 물러서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느냐?”
그 말에 유지광은 세 마왕들에게 손짓을 했다.
풍도왕, 탈각왕, 도산왕은 가까이에 있으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싶었다.
그러나 유지광이 계속해서 손짓을 하니 거의 20여장이나 뒤로 물러서야 했다.
유지광이 위를 보며 물었다.
“어떠냐? 이 정도 거리면 만족하느냐?”
“충분하다.”
기수는 전망대에서 곧장 몸을 날려 나뭇가지를 두세 번 밟은 후 유지광의 맞은편에 사뿐히 내려섰다.
절정의 경공술이라 유지광의 눈썹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차분함을 되찾았다.
“생각보다 꽤 젊구나.”
“너도 마찬가지야.”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매들이 기수의 뒤를 따라 가까이 내려오면서 내는 기척이었다.
기수는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건 우리 두 사람만의 대결이니까 중간에 끼어들면 절대로 안 돼!”
사매들보다는 멀리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 마왕에게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지광이 뒷짐 지고 있던 손을 풀며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좋지.”
기수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킨 후 내공을 끌어올렸다.
자리가 마련되었으니까 이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실수 없이 펼쳐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세를 낮춘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며 조심스럽게 사이드스텝을 밟았다.
일종의 탐색전인데, 싸움의 당사자인 두 사람보다 사매들과 세 마왕, 그리고 혈매궁 부하들과 일월신교 교도들이 더 긴장해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타핫!”
“야압!”
두 사람은 동시에 기합을 토하며 몸을 날렸다.
팔과 팔이 얽히고 강렬한 파열음이 수십 차례 울린 후 둘은 2장 정도 떨어져 섰다.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은데…”
기수는 검도, 유성추도 가지지 않은 맨손으로 내려왔다.
상대가 빈손이기도 했고, 처음부터 분광권으로 상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그 예상이 맞았다.
팔뚝에서 통증이 전해져 왔지만, 두려움보다는 흥분감과 쾌감이 더 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기수는 이런 상황의 아드레날린 분비에 중독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적과 목숨 걸고 싸우는 것만큼 짜릿한 건 없지.’
온몸의 세포들이 전부 다 긴장하고, 신경다발엔 고전압이 걸린 것 같은 그 팽팽함이 정말 기분 좋았다.
유지광이 물었다.
“어째서 파천강기를 쓰지 않느냐?”
기수는 깜짝 놀랐다.
‘저 놈이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지?’
그것은 수로맹의 두 군사 유청기와 유소진의 무공이었다.
‘혹시 같은 유씨인 걸 보면 친척인 건가?’
성도 같고, 사도라는 정체도 같고, 또 일월신교는 지리적으로 수로맹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들의 주 활동무대가 수로맹과 다이렉트로 연결된 강남인 것이다.
기수는 낯빛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파천? 그게 뭐라는 거냐?”
기수가 일부러 모른 척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파천강기를 인정해버리면 유지광은 분명히 자신과 유소진 사이의 관계를 의심할 것이고 사도를 잡으러 다니는 기수를 떠올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그가 도망칠 수도 있었다.
유지광은 지금 일월신교의 2공자로서 혈매궁 궁주를 상대하기 때문에 부하들보고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 그러나 만약 사도로서 기수를 상대한다면 세 마왕을 당장 불러들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기수가 금시초문이란 표정을 짓자 유지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탈각왕에게 얘기만 들었을 뿐 자기가 직접 본 게 아니니까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파천강기를 암기처럼 쓰는 경우는 본 적이 없기도 했다.
그는 호흡으로 진기를 조절한 후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몰아붙이면 본래 실력이 나올 거라 본 것이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하고 분광권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그는 강적을 상대로는 암기 스타일의 파천강기는 쓰지 않았다.
하지만 탁지연이 대도왕을 죽일 때처럼 몸에 붙인 상태로는 쓸 수도 있었다.
다만, 유지광이 눈치 채고 도망치면 안 되니까 결정적인 기회가 올 때까지 아껴두기로 했다.
두 사람의 공방은 무시무시했다.
내리 찍는 팔을 막으면 그 충격으로 발 디딘 자리가 푹! 푹! 파일 정도였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이 계속되자 세 마왕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유지광의 무공에 놀라는 한편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달랐다.
기수가 약간 봐주는 상태였다.
무학 연구에 재미를 들인 그는 유지광의 초식에 어떤 변화들이 있는지, 그리고 수로맹 유씨 남매의 무공과 혹시 관련이 있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유지광은 싸움 도중에 기수와 눈이 마주쳤다.
차분하고 맑은, 그리고 심원한 깊이가 있는 눈빛이었다.
순간, 유지광은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의 백중세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비장의 수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운기를 하자 갑자기 파란 불꽃같은 게 그의 전신을 휘감아 돌았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뭐지?….. 스파크 같은데?’
살짝 당황하는데 유지광의 팔과 자신의 팔이 얽혔다.
순간, 격렬한 진동과 함께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으윽…..!”
등 뒤에서 사매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궁주!”
기수는 그 소리를 듣고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눈을 번쩍 뜬 그는 화들짝 놀라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자기도 모르게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일어선 뒤에도 두 다리가 휘청거려서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았다.
“하하하!….. 꼴 좋구나.”
유지광이 맞은편에 서서 여유 있게 웃고 있었다.
“내게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하하하!…..내가 그 기술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정도만 해도 네 능력은 입증된 것이니 기뻐해도 된다.”
“무슨 개소리냐.”
기수는 전신에 진기를 순환시켜 보았다.
그러자 겨울에 금속에 손을 댔다가 정전기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따끔하고 짜릿한 느낌이 몸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혹시 전기충격기 같은 건가?’
그의 몸에서 본 푸른 불꽃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때 분명한 것 같았다.
‘이 새끼 무슨 전기뱀장어였던 거야?’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을 리는 없고, 특별한 무공을 익혀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내공이 어떻게 전기로 바뀌지?’
그러나 그건 당장 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지광이 양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자! 순순히 말할 테냐? 아니면 몇 번 더 맛을 본 뒤에 말할 테냐?”
그의 손가락들 사이로 빠지직거리는 파란 불꽃이 보였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닿기만 하면 감전될 거라고 생각하니 발이 뇌의 명령도 없이 저절로 움직였다.
“후후… 기문진 속으로 도망칠 생각이냐?”
유지광이 비웃는 어조로 물었다.
기수는 ‘그렇다! 메롱~!’하고 도망칠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감전이 두려워서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또 유지광과 싸울 기회를 얻을지 기약이 없었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건!’
그런 걸 들고 간격을 벌린 상태에서 때리면 감전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림의 무기들은 대부분 강철로 만들어져 있으니 소용없었다.
유지광의 눈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간격이 좁혀졌다.
기수는 무의식 중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크으윽…..!”
곧바로 파란 섬광과 함께 그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닿는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마니까 방어니, 반격이니 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유지광은 쓰러진 기수를 발로 걷어차 사오미터 쯤 굴러가게 만든 후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래도 아직 똥은 싸지 않았구나.”
“으으…..”
기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아까보다 몸 여기저기의 타격이 더 심했다.
그래도 억지로 섰는데, 무릎과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우선 기문진 쪽을 향해서 손짓부터 했다.
사매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우선 자존심 때문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전기뱀장어라고 해도 일 대 일로 싸우겠다고 한 자신의 말은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사매들이 나온다고 해서 유지광을 상대할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공연히 포로의 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죽더라도 나 혼자 죽어야 한다.’
속으로 그런 결심을 하자 정신이 약간은 맑아졌다.
유지광은 다시 성큼성큼 다가왔다.
“넌 어떻게든 말하게 되어 있다. 괜히 시간 끌어봤자 너만 손해야.”
“흥! 웃기지 마라!”
“흐흐흐…. 좋아.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먹여주마.”
기수는 상대가 대놓고 팔을 잡으려 하는데도 그걸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근육들이 다들 경련중인데 반해 유지광은 본래의 무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유세할 때 여유 부리지 말고 곧장 죽여 버렸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지금에 와선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유지광의 손이 손목을 잡는 순간, 기수는 자신이 아는 기술 중 투입되는 진기 대비 가장 효율이 좋은 붉은 암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완맥을 잡히기 직전 손바닥을 뒤집어 악수하듯 유지광의 손바닥에 장심을 대면서 그것을 상대의 손으로 밀어 넣었다.
“으윽…..!”
“크윽!….”
기수와 유지광은 동시에 신음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번엔 충격이 크지 않아 기수는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유지광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별 타격을 받지 않은 듯 했다.
워낙 다급하게 만든 암경이라 파괴력이 미약했던 것이다.
유지광이 무서운 눈으로 기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단정홍을 쓸 줄 아느냐?”
“단정홍?”
기수는 그 기술의 이름은 몰랐다. 동창의 진유룡에게 당한 후 스스로 연구해서 독학으로 깨우친 기술이기 때문이다.
유지광이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너…. 이제 보니…..!”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몸은 여전히 휘청거리고, 상대에게 치명타 먹이기도 실패했는데 정체를 들키고 말았으니 낭패라 아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