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30
백무영이 말했다.
“근일 내로 소웅을 통해 돈을 좀 보내도록 하겠네.“
“돈이라고요?”
“강적과 싸우려면 필요한 게 많을 테니 사양하지 말고 써주게.”
“고맙습니다.”
기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일을 했으며 그만큼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백무영은 다시 한 번 기수의 공로를 칭찬했다.
“자네가 무림의 평화를 위해 애써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하네.”
“하핫! 사실 형님이 정보를 수집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저 혼자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하하하!…. 겸양이 지나치네.”
백무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기수가 교만하지 않다는 사실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돈 말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부 다 얘기해보게.”
“사실은…. 부탁드릴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건 들어주겠네.”
기수가 부탁하는 게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황금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한 군데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게 어디인가?”
“황궁 비고입니다.”
순간 백무영의 얼굴이 굳었다.
“거, 거기는 내 권한으로 어찌 해볼 수 있는 곳이 아니네.”
설마 기수가 그런 부탁을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기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형님에게 부담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출입 방법, 아니 정확한 위치만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그것은….”
고위 무관인 자신에게 대놓고 불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기수가 그만큼 대장군부에,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거긴 도대체 왜 들어가려고 하나?”
“알아보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이번에 유지광과 겨뤄 보니 그는 몹시 특이한 무공을 사용하더군요. 하마터면 저도 당할 뻔했습니다. 아들이 그 정도면 교주는 더 괴이한 수법을 사용할 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천하의 무공이 집대성 된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황궁비고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으음….“
백무영은 양손을 깍지 끼고 비벼댔다.
얘기를 듣고 보니 기수의 요구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돕기도 어려운 상황.
기수는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실은 초조한 마음으로 백무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궁금한 게 있어도 인터넷으로 찾아보거나 할 수 없는 시대.
사실, 현대라고 해도 위커피디아 뒤지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진짜 귀한 자료는 도서관에 직접 가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수가 학교 다니면서 도서관에 간 이유는 1. 친구가 가자니까 2. 도서관 식당 밥이 맛있다기에 3. 예쁜 여학생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정도일 뿐 공부나 자료 열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황궁비고의 책들이 진정으로 보고 싶었다.
상대편은 온갖 해괴한 수단을 다 동원하는데, 이쪽은 신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니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다.
무공비급이 워낙 많아서 사부님이 주화입마에 걸릴 정도였으니까 분명 자기를 기쁘게 해줄 특이한 무공 서너 개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령 하나도 못 찾는다 하더라도 어떤 게 있나 견문을 넓혀두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꼭 거길 들어가야만 하겠나?”
“다른 데라도 좋습니다. 천하의 무공이 모두 모여 있다면…”
“흐음….”
백무영은 대장군부에 있는 서고를 생각했다.
하지만 황궁비고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곳은 사례감의 관할이라…”
환관들이 맡고 있으니 직급이 아무리 높은 관리라고 해도 장인태감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기수가 실망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아니. 꼭 그런 건 아닐세. 아우가 이런 위급한 시기에 산을 비워두면서까지 와서 부탁하는데 방법을 찾아봐야지.”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동창을 견제하는 대장군부답게 뭔가 길이 있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민감한 일이라….”
기수는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 만에 하나 문제가 되더라도 이번 일은 대장군부와 어떠한 연관도 찾을 수 없는 일로 처리할 테니까요.”
“그래 주리라 믿네.”
결심을 굳힌 표정이었다.
기수는 기뻤다.
“가능하면 지금 당장이라고 가고 싶습니다만…”
“좋아! 당장 떠나도록 하지.”
백무영은 해주기로 한 이상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장 경공을 펼쳐 북경으로 달려갔고, 아침이 되자 황궁 북서쪽에 자리 잡은 집으로 기수를 데리고 갔다.
겉보기엔 평범한 가정집인데, 사는 사람들이 백무영을 알아보고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니 대장군부 소속 조직원들이 분명했다.
백무영은 기수를 창고로 데려갔다.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바닥의 철판에 걸린 자물쇠를 풀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번거로운 절차 뒤에, 두 사람은 수평으로 판 땅굴을 한참 걸어갔다.
축축한 통로였지만 바닥에 나무 발판을 깔아서 신발이 젖지는 않았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 겁니까?”
“황궁비고의 한 석실과 연결되네.”
“그렇군요.”
담을 넘지 않고 땅속을 통해 황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한참을 걸어 땅굴 끝에 도착하자 거기엔 벽에 옷장이 있었다.
“저 옷으로 갈아입게.”
황궁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드렛일 맡은 환관의 옷이었다.
기수는 여러 벌 중 몸에 맞는 것을 골라 입고 모자까지 썼다.
백무영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것을 보면 비고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 수 있을 것이네.”
받아서 펼쳐보니 선이 수십 개 그어지고 각각 간단한 명칭이 적혀 있었다.
백무영이 다시 말했다.
“책과 물건을 보는 건 괜찮지만 가지고 나와선 절대로 안 되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걱정 마십시오.”
“저 앞에 있는 나무판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들어갈 만큼만 틈을 만들도록 하게. 그리고 나간 뒤엔 원위치로 하고.”
“알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가지다가 돌아갈 테니 형님은 이제 그만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까 들어오면서 본 부부에게 얘기를 해둘 테니까 배가 고프거나 필요한 게 생기면 무엇이건 얘기하도록 하게.”
“그리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백무영과 작별한 기수는 심호흡을 한 후 그가 가르쳐준 나무판을 잡았다. 예상보다 굉장히 무거웠다.
조심스럽게 밀고 밖으로 나가 보니, 그곳은 어두운 석실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들어 올린 나무판은 책꽂이의 뒷판이었다.
‘후후… 이 뒤에 동굴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하겠는 걸.’
대장군부에서 이런 식으로 황궁비고에 몰래 드나드는 통로를 만들었을 거라고는 더 더욱 예상치 못할 것이었다.
만약 발각된다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닐 텐데, 그런 비밀을 자기에게 공유하도록 해준 걸 보면 백무영이 자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기수는 책꽂이를 원위치로 하고 일단 그 석실 안의 서가부터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대부분 농사나 목축, 약초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장소를 참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궁 비고에까지 들어와서 농사에 관련된 책을 찾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기수는 석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좌우를 확인해보았다.
눈과 귀뿐만 아니라 기감을 총동원한 결과, 아무도 없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일단 전체를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긴 통로를 따라 좌우로 빽빽이 쌓인 책이며 물건들을 대충 훑어보며 걸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끝이 나왔다.
‘여기까지가 이 선인가?’
지도와 비교해보았는데 뭔가 맞지 않았다. 그는 곧 깨달았다.
‘헉! 내가 지나온 길이 이 선이 아니라 이 선인 거야? 그렇다면…’
황궁비고의 규모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최소한 4배 이상 더 컸다.
한편으로는 몹시 기쁘면서, 동시에 언제 다 둘러볼지 까마득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사부님은 이걸 다 보셨다는 건가?’
물론 이곳에 있는 게 전부 무공서적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도 왠지 납득이 됐다.
‘사부님이 공부에 몰두하시던 곳에 이제 내가 왔구나.’
뭔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두운 지하.
책이 습기 차지 않도록 사방에 뚫려 있는 환기구를 통해 새어 들어오는 미약한 빛이 전부지만 기수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자 어둠에 더욱 익숙해져서 구석구석 잘 보였다.
기수는 일단 자기가 원하는 책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하기 위해 책꽂이에 붙은 표부터 훑어보며 돌아다녔다.
그것들만 다 둘러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기수는 무공비급들이 모여 있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다른 곳에 비해 먼지가 쌓여있지 않은 걸로 보아 손을 많이 타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 있는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대여는 안 되나보네.’
군데군데 탁자와 지필묵이 놓여 있는 걸 보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필사해서 가져가도록 한 것 같았다.
‘저게 일종의 복사기군.’
기수는 제목들을 쭉 훑어보고, 그 중 관심 가는 것들은 뽑아서 읽어보았다.
예전에도 태무신궁의 무고를 지금처럼 훑어본 바 있지만 그때와 비교해서 받아들이는 지식의 양이 천지차이였다.
뭔가 좀 아는 만큼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어떤 비급에선 사부님에게 들었던 얘기가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정신없이 책들을 읽던 기수는 사방이 깜깜해진 것을 느꼈다.
어느새 밤이 된 것이다.
그러나 기수는 멈추지 않았다. 책을 들고 환풍구 쪽으로 가서 구름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달빛에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날이 훤하게 밝았다.
기수는 그제서야 비로소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와! 나 도대체 몇 시간을 집중한 거야?’
시험 전날 벼락치기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없는 그였다. 내공 덕분인지 강력한 집중력이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기수는 잠시 땅굴을 거슬러 가서 위장 가정집의 부부를 만났다.
“뭐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두 사람은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상의 50대 부부였다.
워낙 인상이 선량해 보여서 뭔가를 숨기고 속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문지기로는 참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량과 물을 좀 싸주십시오.”
밥 먹으러 올 시간이 아까워서 아예 비고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부부는 기수의 뜻을 이해했는지 군말 없이 말린 떡과 건포, 그리고 물호리병을 챙겨주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이라 신경을 덜 써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식량을 확보한 기수는 다시 비고로 돌아가 무공비급들을 훑어보았다.
전기충격 같은 특이한 기술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한 권 한 권 펼칠 때마다 재미가 쏠쏠했다. 기억이 왔다 갔다 하던 사부에게 들은 것과 오리지널 원판을 직접 읽는 것 사이엔 많은 차이가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특별히 어떤 무공을 익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려면 시간과 정열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수에겐 찾아봐야 할 다른 분야가 있었다.
그가 황궁비고를 고집한 진짜 이유.
그것은 바로 불로장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불로장생하면 진시황의 예를 들면서 어리석음의 표상처럼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수는 왠지 그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자기 자신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 세상에 와 있는 판에 불로장생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슨 영원한 생명을 얻겠다는 욕심은 아니었다.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
불사가 아닌 장생이면 충분했다.
신이 차원을 넘나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을 때. 기수는 정말 기뻤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시궁창 같은 현실.
방법을 알아도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말.
정말 병주고 약주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희망도 있었다. 신이 수천 년간 수행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한 것이다.
그것은 즉, 시공초월의 능력을 처음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가진 게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 쟁취했다는 뜻. 어쩌면 자기도 노력하면 그게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장대 없이도 이신바예바보다 높이 점프할 수 있고, 거미줄 없이도 스파이더맨보다 더 멀리 날 수 있고, 실탄 없이도 발칸포를 쏠 수 있는데 시공초월을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시공초월 능력을 가진다면?…..’
그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 될 것이었다.
그 사실이 기수에게 열망을 품게 만들었다.
수천 년의 수련을 하려면 딱 한 가지 필요한 게 있는데, 바로 수명 연장이었다.
영원히 살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시공초월 능력을 익히고, 그 익힌 바를 누릴 동안만 살고 죽겠다는 것이다.
딱 1만년 정도면 충분했다. 더 살기는 싫었다.
기수는 불로장생과 관련된 섹터를 집중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