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53
남궁현이 석초에게 물었다.
“장원 안으로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석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들어오게 해서 어쩌려고?’
남궁현은 동생 남궁인과 인상이 달랐다. 얼굴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얼굴에 야망과 욕심이라고 써놓기라도 한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남궁현이 석초에게 포권을 한 후 말했다.
“대인의 호의에 감사합니다!”
그러자 석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감사할 것까지는 없소. 들어가서 뒤진 뒤 만약 혈매궁인가 뭔가 하는 자들이 없다는 게 판명되면 조정에서 남궁대인을 소환할 거니까.”
남궁현은 깜짝 놀랐다.
“남궁대인이라면… 저희 아버님 말씀입니까?”
“그렇소. 우리 병부의 일을 방해하고 관리를 우습게 봤으니 가주가 직접 나와서 해명을 해야 하지 않겠소? 도지휘사사가 아닌 오호도독부에서 소환장이 갈 것이오. 그리고 도찰원에도 나와서 소명을 해야 할 것이오.”
“오, 오호도독부와 도찰원이라고요?”
남궁현의 목소리는 떨렸다.
“당연한 일 아니겠소? 병부의 일에 시비를 걸었으니 오혹도독부에서 천하의 남궁세가가 도대체 얼마나 권세가 대단하기에 조정의 일에 간여하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고, 첨도어사인 나를 무시했으니 도찰원에서도 발끈하겠지요.”
남궁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 어사대인. 저, 절대로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오호도독부에 추가로 도찰원이라니… 말만 들어도 끔찍했다.
그것도 자기가 아니라 가주인 아버지가 끌려가 봉변을 당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던가.
석초는 더욱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뒤에 서있던 군관에게 물었다.
“허허! 이제 와서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발뺌을 하는구나. 너희들도 듣지 않았느냐?”
그러자 한 군관이 대답했다.
“예. 어사대인께서 없다고 하셨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힘으로 밀고 들어가서 뒤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들이 똑똑히 봤습니다.”
남궁현은 기가 막혔다.
“힘으로 밀고 들어가다니요! 절대로 그런 일 없었습니다!”
“다들 허리에 검과 칼을 차고 무리지어 몰려왔는데 그런 의도가 없었다?”
“이, 이것은…”
석초가 꾸짖는 어조로 말했다.
“야심한 시각에 병장기를 들고 무리 지어 다니는 자들을 뭐라 부르는지 아는가? 그걸 바로 폭도라고 하는 것이야! 천하의 남궁세가가 말이지.”
남궁현은 사색이 되었다.
사실, 석초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무림 문파가 무장하고 다니는 게 통상적으로 용인되기는 하지만 엄격히 따지면 법령 위반이었다. 관군을 상대로 밤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 것은 정말 큰 실수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수장이 도찰원의 첨도어사라니.
남궁현은 장원 안을 살펴보기는 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 할 상황이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사 나리! 제발 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저희는 절대로 그런 의도가 없었습니다.”
“지금 허리에 찬 게 검이 아니라 나무 막대기란 말인가?”
“그, 그게 아니오라…. 저희는 단지 이 부근에 괴이한 일이 벌어져 주민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사를….”
“허허! 아까는 혈매궁 어쩌구 하더니, 이젠 주민들 핑계를 대? 네가 보기엔 내가 대충 그런 식으로 말을 바꾸면 넘어갈 바보로 보이느냐?”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남궁현은 머리를 땅에 쿵쿵 찧으며 빌었다.
천하의 남궁세가. 그 자존심을 생각하면 상대가 아무리 관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저자세를 보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새벽에 무기를 차고 몰려와서 장원을 뒤지겠다고 했으니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가주인 자기 아버지를 얽어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관군을 전부 다 죽여 입을 막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석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마땅한 표정을 유지했다.
기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석초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남궁세가의 자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약해지는구만.”
남궁현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 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석초는 남궁현이 아닌 하늘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휘하의 무장들이 먼 길을 오느라고 다들 수고가 많았는데… 무관의 녹봉이라는 것이 하는 일에 비해 참으로 하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남궁현은 눈치를 챘다.
“나랏일을 보시느라 애를 많이 쓰시는데, 백성 된 도리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군요. 제가 약소하나마 군량에 보탬을 드리고 싶은데, 받아주시겠습니까?”
“어흠! 어흠….”
석초는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빠졌고 뒤에 있던 군관이 나서서 말했다.
“나라를 위해 훌륭한 결정을 하신 겁니다. 하하…”
남궁현은 약간은 떨떠름한, 그러면서도 안도한 표정으로 전표 한 장을 꺼내어 군관에게 내밀었다.
군관은 그것을 석초에게 보였다.
석초는 곁눈질로 슬쩍 한 번 살핀 후 역시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괴사건을 조사하다가 의욕이 지나쳤다고도 볼 수 있지.”
액수를 확인하고 태도가 확 바뀐 모습이었다.
남궁현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저희들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석초는 더 이상 가타부타 말없이 남궁현에게 고개만 한 번 끄덕인 후 장원으로 되돌아 들어갔고 군관은 남궁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준 후 따라갔다.
남궁현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돈이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뒤탈 없이 해결된 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즉시 부하들을 인솔하고 철수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기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관리로서 상대를 등치는 데는 석초가 자기보다 나은 것 같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악에 받치기 직전까지 겁을 주다가 난데없이 돈을 밝히는 탐욕스런 관리로 변신하여 남궁세가를 간단히 쫓아버린 것이다.
“석초, 대단한데? 세 치 혀로 남궁세가를 쫓아버렸잖아?”
“부끄럽습니다. 형님. 관복을 무서워하는 문파도 있거든요. 하하하!”
“훌륭해! 아주 대단했어,”
“감사합니다. 헤헤헤… 받은 돈은 전장에서 바꾸는 대로 형님께 절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돈은 필요 없어. 네가 알아서 처리해.”
“예.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석초는 자기 마음대로 기수에게 금원보를 건네줄 생각이었다.
혈매궁이 해준 일들을 생각하면 거저 생긴 돈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남궁세가 때문에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아침 해가 뜨고 있었다.
기수는 안채로 들어가 사매들과 개운한 아침 섹스를 즐겼다.
‘I’m Back!’
컨디션이 돌아온 것도 기뻤고, 귀찮게 달려든 남궁세가를 쫓아버린 것도 개운했다.
그로부터 혈매궁의 일곱 남녀는 거의 하루 온종일 안채에서 지냈다.
석초는 눈치 빠르게 요리사와 하인을 고용해서 혈매궁 사람들이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본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목욕물 데우기와 요리 같은 문제가 해결되니까 기수와 사매들은 더 많은 파티와 더 많은 대법을 시행할 수 있었다.
석초는 전표 바꾼 금원보를 기수가 아닌 탁지연에게 주었다.
탁지연으로 부터 보고를 받은 기수는 억지로 돌려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서 그냥 가지고 있으면서 경비로 쓰기로 했다.
자금이 넉넉해지니까 반찬의 레벨이 달라졌다.
그래서 밥 먹을 때는 꼭 석초를 불러서 함께 식사를 했다.
혈매궁 일곱 식구는 하루 세 끼의 식사시간 때만 옷을 입고 지냈다.
즐거울 때는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순식간에 보름이 흘렀다.
그동안 장원엔 인원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 많은 단지와 재료들을 옮길 게 아니라 대장군부에서 사람들을 장원으로 파견한 것이다. 이른바 강시연구소가 설립된 것이다.
홍가장이라고 하지만 본래 주인 대신 일월신교에서 점거하고 썼던 장소이기 때문에 관에서 압류하고 임의로 사용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루는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는 중에 석초가 기수에게 말했다.
“형님. 좀 귀찮은 일이 생겼습니다.”
“무엇인가?”
“지난번에 왔던 남궁세가 기억하시죠?”
“기억하다마다. 방금 먹은 산해진미를 협찬해 준 고마운 사람들인데.”
“그런데, 그 남궁현이라는 자가 혈매궁에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하핫!… 웃기는군. 자기들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건가?”
“그보다는, 자기네가 직접 나섰을 때 지난번처럼 관과 마찰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한 다리 건너서 해결해보려는 속셈인 듯 합니다.”
“그래봤자지.”
일월신교와도 싸운 바 있는데 남궁세가를 겁낼 이유가 없었다.
자기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사매들은 일월신교의 9마왕과도 겨루었고, 지난번엔 탁지연 혼자서 남궁세가의 셋째 아들을 가볍게 물리친 바 있었다.
석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강호행을 하실 땐 조심하십시오. 소재를 찾아 안내해주면 은 500냥, 죽이거나 생포하면 일곱 명 각각 두 당 5천 냥씩 걸었다고 합니다.”
“으음….”
기수는 신음을 토했다. 금액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석초 정도 관리가 1년에 은 100냥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안내 역할만 해도 고위직 공무원 5년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 달려들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잡기만 하면 그 수단과 방법에 상관없이 50년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돈으로 밀어붙인다는 건가?
남궁세가 가주가 덤빈다고 해도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을 노리는 패거리들 수 백, 수천 명이 가는 곳마다 눈을 번뜩이고 있다면 정말 귀찮은 일인 것이다.
모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지만 밤잠을 설치게 만들지 않는가. 그리고 방심하면 피를 빨릴 수도 있었다.
모기와 파리 수 천 마리가 달려드는 상황을 상상하니 짜증이 났다.
“아무래도 손을 좀 봐줘야 할 것 같군.”
석초가 말했다.
“아닙니다. 여기 계시면 안전할 겁니다.”
“우리 원래는 강남으로 가서 백시랑을 돕기로 하지 않았었나?”
“그렇긴 합니다만, 지금 시랑님은 우리들 없이도 잘 하고 계십니다.”
기수는 석초가 왜 떠나자고 하지 않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남궁세가의 현상금 때문에 혈매궁은 자유롭게 강호행 하기가 어려운 상태인 것이다.
석초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미 장원 주변에 모기들이 가득 차 있을 가능성도 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음양대법에만 열중하고 있었네…’
돈으로 모기떼를 고용한 남궁세가가 더욱 더 마음에 안 들었다.
그날 밤. 기수는 사매들과 회의를 열어 석초에게 들은 상황을 의논했다.
일곱 명 모두 알몸이었지만 분위기는 진지했다.
탁지연이 말했다.
“꽤 성가신 일이네요.”
“난 우리 때문에 석초가 신경 쓰는 게 마음에 걸려.”
“이미 장원 주변에 적들이 깔렸다고 봐야겠죠?”
“다들 여기서부터 시작하겠지.”
춘매가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담을 넘지는 못할 거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래도 떠나야겠어.”
“어디로요?”
“남궁세가를 멸문시켜 버리면 어떨까? 돈 줄 사람이 사라지면 더 이상 우리를 귀찮게 할 사람도 없어질 텐데.”
“호호호!… 그러긴 하겠네.”
춘매뿐만 아니라 다른 사매들도 기수와 함께 웃었다.
그러다가 거의 동시에 다들 웃음을 멈추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자기들이 힘을 모으면 남궁세가를 멸문시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춘매가 말했다.
“설마 진짜로 할 생각은 아니지?”
기수가 씩 웃었다.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기는 한데…”
춘매는 손을 내저었다.
“안 돼! 강호엔 이미 우리 혈매궁이 관과 연계되어 있다는 식으로 소문이 퍼졌을 가능성이 커. 그런데 남궁세가와 싸울 수는 없어. 그들뿐만이 아냐. 무림맹에 속한 문파들은 하나도 건드려선 안 돼. 대장군부의 입장이 곤란해질 거야.”
역시 조직을 우선하는 쪽으로 습관이 들어 있었다.
기수가 말했다.
“일단 강남으로 가자. 여긴 강시에 관련된 것들로 가득하니까 세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서 좋을 것 없어.”
모두들 기수의 뜻에 동의했다.
혈매궁이 장원에 계속 머무르면 큰 폐가 될 수도 있었다.
“언제 떠날 생각이야? 궁주.”
“밤에 떠나는 게 좋겠지? 오늘은 아무 준비도 안 됐으니까 내일 밤 자정에 떠나도록 하자. 어때?”
“그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사매들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었다.
기수는 씩 웃으며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렇게 꼬박 하룻동안 파티와 음양대법을 병행한 일곱 사람은 다음날 밤이 되자 행장을 꾸리고 석초에게 작별을 고했다.
석초는 기수를 만류했다.
“형님. 그냥 여기 계십시오. 밖엔 귀찮은 일들이 많을 겁니다.”
“후후…. 그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우리가 나가면 세상의 이목도 따라올 거니까 여긴 더 안전해질 거야.”
“여긴 괜찮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까 강남에 가면 어디서 어떻게 해야 백시랑을 만날 수 있는지나 가르쳐 줘.”
석초는 어쩔 수 없이 직인과 공문서 등을 만들고 찾아갈 곳도 일러주었다.
기수는 자정이 되기를 기다려 담을 넘은 후 미리 약속한 대로 길을 따라 스피드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엔 10여명 정도였지만 순식간에 그 수가 2배, 4배, 8배로 늘어났다.
정말 많이도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