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66
비룡검문은 무림맹 내에서 귀빈 대접을 받았다.
명성으로만 따지자면 신흥문파에 가깝지만, 산문 아래서 실력 발휘한 것이 큰 반향을 불러온 것이다.
무림맹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다들 그 얘기였다.
남궁세가 봉문이 결코 운으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룡검문의 입맹 과정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마 연합군과의 길고 치열한 전쟁 때문에 무림맹주와 무림맹 군사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상당수 감숙성으로 가 있기 때문에 인편으로 문서가 오고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덕분에 무림맹에 빈 공간은 많았다.
비룡검문은 넉넉한 자리를 배정받아 사용했다.
진백은 비룡검문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 장사를 한 사람답게 물정에 밝았다. 그래서 무림맹 살림살이를 담당한 사람들에게 적당히 돈을 뿌렸다.
손님으로 먹고 자는 데 숙박비 정도는 내야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지만, 실제로는 무림맹 모든 문파에 골고루 기름칠을 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외부적으로는 각 문파의 체면을 생각해서 일체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나흘쯤 지나고 나니까 무림맹 안에서 비룡검문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되었고, 진백은 하루 온종일 손님들을 맞게 되었다.
무공 고강하고, 처신까지 잘 하는 비룡검문과 다들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십절금왕문이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기수는 옆에서 진백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상대방 듣기 좋은 얘기를 하면서도 전혀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칭찬을 한다는 점이었다. 돈이나 선물을 줄 때도 이쪽에서 뭔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단순한 호의라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받는 쪽도 주는 쪽도 기분이 좋게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래지 않아 호의에 답례하는 상대방도 늘어나게 되었다.
기수는 비록 무공은 자기가 진백에게 전수해주었지만, 처세술은 진백에게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수는 손님 접대 자리에 되도록이면 빠지려고 했다.
양십일은 세상에 알려져서 좋을 일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거니와, 친해지기 원하는 사람이 선인이건 악인이건, 양쪽 다 문제가 있었다.
악인이라면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될 것이고, 선인이라면 진심을 열고 친해지지 못하니 미안한 일이 될 것이었다.
이래저래 은둔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기수는 그렇게 생긴 여유 시간에 비룡검문 호법의 일에 열중했다.
제자들에게 개인 레슨을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무림맹에 온 100명은 비룡검문 최고의 실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백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바꿔 말하자면 가르치는 보람은 더 클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몇 가지 조언을 하면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그런 경우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게 제자 기르는 맛이지. 후후….’
제자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는 것 이상으로, 스승도 제자를 잘 골라야 가르치는 즐거움이 배가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림맹에서 지내는 내내 제자들과 어울리고 싶은 게 기수의 바람이었지만, 현실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문주급 레벨에서 진백이 최고의 인기라면, 그 아래 등급에선 기수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기수 혼자라면 계속 모른 척할 수도 있겠지만, 비룡검문의 호법으로서는 불가피한 자리가 자꾸만 생겨났다.
결국 저녁 술자리에 참여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예전에 기수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무림대회가 열리기 직전이라 엄청나게 많은 젊은 고수들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한산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서 기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술자리에 앉아서도 대화를 최소화하고, 시선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남궁세가에서 지내는 동안은 바보 하인 행세를 했지만, 무림맹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십절금왕문 금랑대 대장을 이긴 고수이기 때문에 바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과묵한 고수.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그리고 밤 9시쯤 되었다 싶으면 기수는 양해를 구하고 일어섰다.
몇 번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도 그를 잡지 않았다.
역시 고수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며 듣기 좋은 말들을 해주었지만, 술자리가 이어지는 내내 단답형 대답만 최소한으로 하니까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무림맹에 온 지 열흘째 되는 날 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밤이 일어서서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미약한 파공음과 함께 흰 물체가 날아왔다.
그것은 기수의 소매를 향하고 있었다.
기수는 그것이 그냥 소매 안으로 들어오도록 놔두었다.
그것을 던진 사람이 젊고 아름다운 미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판단하건데 암기는 아니었다.
밖으로 나와서 꺼내어 보니 과연 종이를 여러 번 접은 거였다.
펼쳐 보니 일 각 뒤에 한 번 만나달라는 얘기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기수는 씩 웃었다.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술자리에 앉은 9명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20대 초반. 긴 머리를 언밸런스로 한 쪽은 쪽을 지고, 다른 쪽은 슬쩍 늘어뜨려서 묶었는데, 기본적으로 얼굴 자체가 약간 마른 달걀형으로 예뻤고 이따금씩 마주치는 눈빛이 몹시 매력적이었다.
‘아! 고수의 숙명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사실, 남궁세가를 나온 이후 꽤 오랫동안 여인의 체취를 맡아보지 못하고 지내기는 했다. 비룡검문에서 맡을 수 있는 건 사나이의 땀 냄새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호법이니까 이런 만남에 끌리면 안 돼!’
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두 발이 김유신의 말이었다.
어느새 약속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무림맹 내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정자 주변에 수목이 우거졌고 숲길 사이로 난 산책로까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더욱 더 눈에 안 띄는 장소로 이동하기도 쉬웠다.
‘아! 무슨 이유로 만나 달라는 건지도 모르면서 으슥한 곳부터 찾고 있다니…’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반성은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인기척과 함께 향기가 먼저 다가왔다.
‘으음… 냄새 좋은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한밤중에 이렇게 으슥한 곳에서 미녀와 단둘이 만나는 것은 확실히 설레는 일이었다.
“아! 와주셨군요.”
목소리도 예뻤다.
“예. 무슨 일입니까?”
겉으론 무뚝뚝한 캐릭터를 유지했지만 속으론 침이 꿀꺽 꿀꺽 넘어갔다.
그녀는 앉아 있을 때와 확연히 달랐다.
거의 추매 만큼 키가 커서 라인이 아주 시원시원해 보였다.
“제가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아! 미안하오. 아까 인사 소개를 할 때는 경황이 없어서..,”
“아뇨. 이해해요. 사실, 전 뭐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으니까 양대협 같은 분이 기억 못하시는 것도 당연하죠.”
괜히 미안해졌다.
소개 받을 당시엔 다른 이름들이 많았고, 또 그녀의 얼굴이 그림자와 긴 머리에 가려져 잘 안 보였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이었다.
“저는 소흥 관령문의 채정이라고 해요.”
“그렇군요. 채소저. 난 비룡검문의 양십일이라고 하오.”
“호호!…. 양대협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새삼스레 소개를 하세요?”
“한 달 전만 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지요.”
“실력만 있다면 그걸 숨기기가 더 어려운 일 아니겠어요? 그래서 낭중지추라는 말도 있잖아요. 호호호!….”
웃음소리는 목소리보다 더 듣기 좋았다.
“채소저는 아는 것도 많으시군요.”
“그래봤자죠, 뭐. 우리 같은 군소방파는 무림맹에 와서도 늘 대접이 시원치 않죠. 비룡검문 같은 유명한 문파와는 달라요.”
“우리는 그동안 이름도 제대로 내세우지 못했소.”
“그래도 지금은 남궁세가를 봉문시키고 십절금왕문을 꺾은 문파로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십절금왕문을 꺾었다는 건 좀 과장이….”
“과장이 아니죠. 금랑대 대장이면 십절금왕문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인데 비룡검문의 호법이 이겼으니.”
기수는 속으로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자 채정이 미소 띤 얼굴로 기수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다.
“아까 여럿이 있을 때는 말이 없으셨는데, 이제 보니 양대협도 말씀을 잘 하시네요?”
기수는 뜨끔했다.
‘아! 미색에 홀려서 캐릭터 유지에 실패하다니…’
연말 연기대상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기수는 짐짓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오?”
그러자 채정은 겁먹은 기색으로 어쩔줄 몰라 했다.
“제, 제가 대협을 화나게 했나요?”
미녀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데 마음 약해지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기수는 쿨한 남자라 굳건함을 유지했다.
“그런 건 아니오. 용건이나 말해보시오.”
그러자 채정이 볼을 붉히며 고개를 푹 떨구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혹시… 양대협에겐 정혼자가 있나요?”
“없소.”
짧게 대답했지만 속으론 예스! 라고 크게 외쳤다.
예상했던 대로 어떻게 한 번 잘 해보자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면 혹시…. 마음에 둔 정인(情人)이 있나요?”
“없소.”
지금은…. 그리고 이 얼굴로는…
기수의 대답에 채정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짜내어 말했다.
“그러면 혹시 저와 사귀어주실 수 있나요?”
기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무리 무림의 여인이 개방적이라고는 해도 여자 쪽에서 먼저 고백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텐데 채정은 그런 거 다 개의치 않고 진심을 밝힌 것이다.
막상 그렇게 나오니까 기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순정을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욕정을 이기지 못해 하인을 침실로 불러들인 백서옥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기수는 인상을 굳힌 채 물었다.
“왜 나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 방에도 거울이 있소. 어린 시절엔 놀림 받으며 자라기도 했고…. 도대체 나처럼 한심하게 생긴 남자가 어디가 좋단 말이오?”
“아뇨! 양대협은 못 생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남자는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익힌 무공이 얼마나 고강한지, 가슴에 품은 뜻이 얼마나 큰지가 더 중요하죠.”
워낙 확신에 찬 어조라 기수도 설득되는 기분이었다.
‘햐! 이 얼굴에도 여자가 붙네.’
역시 남자는 능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여자들이 남자 얼굴이 아닌 돈을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긴, 얼굴은 부모가 만들어준 것일 뿐, 자신의 노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면 억울한 일이 분명했다.
현재 얼굴 상태가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추남들과 급격한 공감대가 느껴졌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서 미녀를 차지한다면 그건 최소한 자기가 노력해서 쟁취한 결과니까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그럼 부모 잘 만나서 재산 물려받아 잘난 척 하는 경우는 뭐지?’
결론은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못 생기고, 부모가 부자도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씨발!
욕하다 보니까 문득 깨닫게 된 점도 있었다.
‘아! 참…. 나. 원래는 미남이지.’
그나마 절반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니오.”
“역시 저는 아닌가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기수는 그래서 더 더욱 그녀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채정은 기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군요. 이름 없는 문파 출신인 데다 박색인 제가 양대협의 눈에 찰 리는 없는 거였어요. 죄송해요!”
그러더니 소매로 눈을 가리며 홱 돌아서서 가기 시작했다.
기수는 황급히 그녀를 막아섰다.
“아니오. 절대 그래서 그런 게 아니오.”
“위로해주지 않으셔도 되요.”
그녀의 목소리는 벌써 울먹이고 있었다.
“채소저는 내가 이제까지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답소.”
어제부터 오늘까지를 기준으로.
“저, 정말인가요?”
고개를 든 그녀의 긴 속눈썹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물론 진심이오. 그리고 난 문파의 명성 같은 것은 개의치 않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 아니겠소?”
“아아! 기뻐요…”
채정은 갑자기 기수의 품으로 와락! 뛰어들었다.
기수는 엉겁결에 그녀를 안고 말았다. 확! 풍겨오는 향기. 그리고 그녀의 따듯하고 보드라운 몸의 밀착감이 기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번엔 손이 배신했다. 그녀의 허리와 등을 부드럽게 안아준 것이다.
밀착감이 더해지자 채정이 떠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양대협!”
바로 코앞에서 여인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고 달큼한 향기가 확 뿜어져 오자 기수는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입술의 배신으로 인해 결국 채정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말았다.
“으음….”
“으으음…..”
채정은 입맞춤이 상당히 서툴렀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기수에게 다양한 스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수는 천천히, 그리고 자상하게 그녀를 키스의 세계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