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95
합비는 헛기침을 한 후 말했다.
“어흠! 제법 흉내는 냈지만 아직 멀었어.”
기수는 자기 주변을 감싼 기운에 신비로움을 느꼈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간 직후처럼 뭔가 후끈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는가 싶더니, 곧이어 활발한 기운이 몸 주변에 빠르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화류라고 해도 별로 뜨겁지는 않군요. 처음 발동될 때만 빼고.”
“아무렴. 화의 속성은 활짝 퍼지고 팽창하는 거야. 그 성질이 불과 비슷할 뿐, 불 자체는 아니니까 뜨거울 이유는 없지.”
“그렇군요.”
“물론 뜨겁게 할 수도 있지. 이렇게…”
합비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에 붉은 화염이 확!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기수는 라이터도 없이 불을 만드는 게 신기해서 자기도 따라해 보았다.
그러나 불꽃은 커녕 따듯한 느낌조차 생기지 않았다.
“방금 그건 뭡니까? 삼매진화입니까?”
“힝! 삼매진화와는 차원이 다르지. 왜? 배우고 싶어? 배우고 싶으면….”
“됐습니다. 이제 이걸 할 수 있으니까 다 된 거죠?”
“다 됐다고? 크크크….”
합비는 실소를 터뜨린 후 말을 이었다.
“네가 날 놀라게 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유현기공을 처음으로 만들 때는 석 달이 넘게 걸렸는데, 넌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했으니까.”
“제가 천재이기 때문이겠죠.”
“으으….”
합비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은 표정으로 기수를 노려봤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 그냥 속으로 화를 삭힌 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이미 파천강기라는 수법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수월했을 뿐이야. 다른 류까지 쉽게 되라는 법은 없어.”
“파천강기는 목류라면서요? 그런데 화류를 만들어낸 게 당연하단 말씀입니까?”
“목류 다음에 화류를 배우면 진도가 빠르지. 그 역은 몹시 어렵고.”
“흐음…. 그럼 제 경우엔 파천강기를 먼저 만난 게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순서보다 중요한 게 첫 류가 자기 체질과 맞느냐 하는 것인데, 운을 따지자면 그게 진짜 행운이라고 해야 하겠지. 가능성이 오분지 일이니까.”
“아! 사람마다 맞는 류가 따로 있군요?”
“아무렴. 난 토류부터 시작했다.”
기수는 탁지연을 통해 다섯 사매들에게 파천강기를 가르치려고 했는데, 진도가 저마다 제각각이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화류의 호신강기를 만들었으니까 이제 다음에 배울 건 뭡니까?”
“그게 다다.”
기수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되물었다.
“예? 이걸로 끝이라고요?”
“화류의 강기를 운용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그건 제자가 아니면 가르쳐줄 수 없다. 화류뿐만 아니라 토금수목의 기공들 역시 마찬가지지.”
“으으…. 치사합니다!”
1회분만 맛보기로 공개하고 2편부터는 결제를 요구하는 식이었다.
합비는 능글맞게 웃었다.
“치사할 것 없어. 애당초 약속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음종과 싸울 힘을 주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방금 방패 만드는 법을 전수해주지 않았느냐.”
“이걸로 된단 말입니까?”
합비는 단정적으로 대답했다.
“된다. 합가촌에 대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아, 알았습니다.”
뭔가 너무 간단해서 속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음종의 수법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었다.
합비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자! 이제부터는 호신강기를 단련하러 가자. 합가촌에 내가 빈 집 하나를 구해 놨으니까 거기면 될 거야.”
“다 됐다면서 단련은 무슨 단련입니까?”
“이놈아. 난 네게 방패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뿐이다. 그 방패를 실전에서 어떻게 쓰는지 연습하지 않으면 소용없어.”
수긍이 가는 얘기였다.
“실전적응 훈련이라… 하지만 음종의 무공을…”
“음종? 이를테면 이런 식인 거지.”
합비가 손바닥을 기수 쪽으로 내밀었다.
순간 기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함께 뒤로 두세 걸음 밀려났다.
“어, 어르신…. 어떻게 음종의 수법을….”
두 번째로 만난 소녀 루주 때와 똑같은 고통이 폐로부터 전해져 왔다.
“크크크…. 봐라. 방패가 있어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느냐.”
“어르신. 음종의 수법도 익히셨습니까?”
“내 유현기공은 오행의 모든 운용기술을 마음대로 조합하고 변형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음종의 수법은 내 능력의 오분지 일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크크크….”
“괴, 굉장하군요.”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합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떠냐? 배우고 싶지?”
또 결제창이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한테는 벅찰 것 같군요. 방패 쓰는 법이나 연습하렵니다.”
“그래. 일단 그것부터 시작이지. 크크….”
“그걸로 끝입니다.”
“두고 보자고.”
기수는 합비를 따라 합가촌으로 갔다.
그동안 단검 스무 자루를 주렁주렁 몸에 꽂고 다니는 방법까지 고안해가면서 음종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유현기공, 오행류는 그보다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줄 가능성이 컸다.
적의 음공을 방어해낼 수만 있다면 굳이 멀리서 암기를 던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금 전 느낀 바에 의하면 폐에 가해진 고통의 종류는 같지만 그 위력 면에선 뭔가 달랐다. 단순히 강약의 차이가 아니라 뭔가 커버 위를 맞은 느낌이랄까. 한 단계 걸러서 들어오는 단차 같은 게 있었다.
그 덕분인지, 통증에 비하면 진기의 흔들림도 미약했다.
그렇게 효과를 체험했으니 합비가 뭐라 하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합가촌은 무림맹의 장원을 마주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두 합치면 100호 정도는 될 것 같은 집성촌으로, 집이 다들 큰 편이었다.
주변의 농지가 넓어서 소출도 많이 나오는 듯 했다.
합비는 그들 중 외곽에 있는 낡은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손봐야 할 곳이 많이 보였다.
“손자가 촌장이라면서 왜 이런 낡은 집을 구하셨습니까?”
“그놈은 내가 제 할애비라는 걸 몰라.”
“예? 왜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강호행을 하면서 집안을 좀 내팽개쳐두었거든. 크크크….. 내 기일이라고 제사까지 지내고 있는데 이제 와서 얼굴 내밀기가 힘들더라고.”
“뭐가 부끄럽다고 그러십니까? 자식도 아니고 손자인데 산 사람 제사를 지내도록 그냥 내버려두실 겁니까?”
“아! 거기에 대해선 얘기하지 마! 우린 할 일이 있잖아.”
기수는 궁금했지만 말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파고드는 것도 이상해서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좋습니다. 훈련할 게 뭡니까?”
“일단 금류의 공격이 어떤 식으로 호신강기를 파고드는지 몸으로 체득해라.”
합비가 내공을 끌어올리자 기수도 새로 배운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합비의 단순무식한 수련이 시작되었다.
기수 입장에선 오히려 마음 편한 면이 있었다.
모므로 체득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었다.
훈련은 기수가 익숙해지면 합비가 약간씩 강도를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 질 무렵이 되자 기수가 손을 내저었다.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파천강기도 그랬지만, 무형의 진기를 유형의 강기로 만드는 것은 엄청난 내력 소모를 동반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기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웠다.
합비가 웃으며 말했다.
“너. 이제 보니 엄청난 놈이구나. 나 이외에 오행류를 이렇게 오래 운기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제자 안 될 겁니다.”
“크크크…. 어쨌거나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갑자기 너무 무리해도 좋지 않으니 내일 다시 오너라. 운기조식 충분히 하고.”
“알겠습니다.”
기수는 합비에게 정중히 목례를 한 후 합가촌을 나왔다.
걷는 내내 합비에 대해 생각했는데, 정말 대단한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궁심법으로 3개의 단전을 풀가동했는데도 내가 먼저 지치다니. 도대체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장원으로 복귀한 기수는 당장 진백부터 찾았다.
진백은 기수를 보자마자 물었다.
“하루 종일 어디 가 있었나?”
“아! 말씀 안 드리고 자리를 비워서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용봉련 사람들이 자네를 찾아왔었네. 여러 차례.”
“저를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용봉련이라면 예전에 무림대회가 열리던 때에 젊은 남녀 고수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모임이었다.
그 이전엔 신주오룡이라고 해서 후기지수들 중 뛰어난 다섯 명을 꼽곤 했지만 삼황맹의 준동으로 향후 무림에 큰 풍파가 예상되자 따로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네를 그 안에 넣으려고 하는 것 같더군.”
기수는 피식 웃었다.
“제가 어디 용에 어울리기나 하나요.”
용과 봉을 자처하려면 빵빵한 사문, 뛰어난 무공, 잘난 외모의 삼박자를 겸비해야 했다. 기수에겐 그런 것들이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는 용봉련 얘기는 뒤로 젖혀두고 궁금한 걸 물었다.
“문주님. 혹시 합비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합비? 글쎄… 처음 듣는데…”
“그럼 혹시 환우구종이 둘로 갈려서 싸운 얘기는 아십니까?”
“그거야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들이 있지.”
“아! 그런가요? 말씀 좀 해주십시오.”
“환우구종이라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문주님은 더 많이 아실 것 같아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진백은 현무단 일을 젖혀두고 얘기를 시작했다.
“환우구종은 본래 그 실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 하지만 몽고가 천하를 다스리던 원나라 때 자기네끼리 크게 한 번 충돌했다고 전해지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누가 이겼습니까?”
가장 궁금한 게 그거였다.
“그건 알 수가 없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 일 이후 환우구종 중 다섯 무리가 속세의 문파가 되었지. 마종은 천마교로, 사종은 일월신교로, 화종은 화양문으로, 독종은 약선문으로, 도종은 장백천문으로 각각 뿌리를 내렸네. 그들은 저마다 자기 문파의 선조들에 대해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따로 들을 때는 다들 그럴듯하지만 얘기를 합쳐보면 하나도 맞지 않아.”
기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마다 자기 선조가 최고라는 식으로 무용담을 지어냈군요.”
“그렇다네. 그래서 강호에 떠도는 환우구종 얘기는 다섯 개의 각기 다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봐야지.”
기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한 건 과장하고, 잘 못한 건 감추는 식으로 저마다의 버전을 제자들에게 전승했을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 검종, 음종, 요종, 비종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지. 내 생각엔 아마 그들이 승자고, 세속화된 문파들은 패자일 거야.”
기수는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 다섯 가지 각기 다른 얘기에도 공통점은 있겠지요? 혹시 환우구종과 맞먹는 고인에 대한 얘기도 있습니까?”
“있지. 전승하는 문파에 따라 삼태성이라고도 하고, 우내삼공이라고도 하고, 삼선이라고도 하는데, 간단하게 언급만 된 수준이라….”
“역시 자기네 시조를 부각시키려면 사실을 사실대로 쓸 수 없었겠죠?”
“그렇다고 봐야지.”
기수는 합비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검종을 도왔다고 말한 게 기억났다.
아마 그들 세 명이 우내삼공 혹은 삼선 혹은 삼태성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종에 대해선 뭐가 알려져 있습니까?”
“일인전승. 그게 다일세.”
“제자를 한 명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까?”
“그건 아니고. 여러 제자 중 가장 뛰어난 한 명만 전승자가 되고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 없앤다고 알려져 있지.”
“아!… 잔인하군요.”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는지 확인된 바는 없지.”
“그렇군요.”
기수는 합비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천하엔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고수가 많고, 하늘의 별만큼 기인이사가 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
사도들을 연거푸 이기면서 어느 정도 교만해졌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진백이 물었다.
“자넨 종일 어디 갔다 온 건가?”
기수는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진백은 몹시 놀라는 한편 기뻐해주었다.
“그 분이 정말 삼공 중 한 명이라면 이보다 더 진귀한 인연이 어디 있겠는가? 이곳의 일은 걱정 말고 가서 그분을 성심껏 모시고 절기를 배우도록 하게.”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음종을 제압할 비책을 배우는데 그보다 중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비밀은 지켜줄 테니까 자넨 그쪽에만 집중하도록 하게.”
진백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온 기수는 약간의 음식을 먹은 후 정좌했다.
밤새도록 운기조식을 해서 낮에 시달렸던 진원지기를 보충해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방해를 받았다.
“호법님. 조치성입니다.”
“무슨 일인가?”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낮에 여러 차례 오셨던 용봉련 분들입니다.”
기수는 짜증이 팍 났다.
‘나 용 아니라니까!’
애들 소꿉장난 같은 용이니, 봉이니 하는 짓거리는 너희들끼리 해라. 난 정도 무림을 음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바쁘다! 라고 한 마디 해 줄 생각으로 문을 열었는데, 그 얘기는 쏙 들어갔다.
찾아온 사람들 맨 앞줄에 미녀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맞았다.
“하하하!…. 여러 번 걸음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들어오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