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63
기수는 염정구심술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걸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방법은 하나.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야채가게의 새 주인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덩치는 제법 있지만 얼굴 생김새가 순해 보이는 데다 눈이 사팔뜨기고, 말투가 어눌해서 약간은 만만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기수는 맞은편 찻집에 앉아 빈둥거리는 척 하면서 그와의 동조에 성공했다.
아쉽게도 무림맹 첩자와의 동조는 그 순간 끊어졌다.
멀티가 안 된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었다.
기수의 예상대로 상대는 청탑산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소속은 주작 12진.
동료 한 명과 함께 상황 파악을 위해 난주에 파견된 상태였다.
옛 야채가게 주인의 사촌이라는 구실로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아는 사람하고만 거래한다는 화양문의 원칙에 따라 무림맹 납품은 현재 끊어진 상태였다.
그는 아직까지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해서 몹시 답답해하는 중이었다.
기수는 속으로 웃었다.
‘생존자가 없는데 네가 건질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 후후… 여기서 천마교 은신처까지 되짚어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거야.’
기수는 그와의 동조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숙소로 돌아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히 임했다.
장거리 염정구심술의 장점은 멀리 떨어져서도 속마음까지 읽어내는 감시가 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6인조 교대를 계속해서 받고, 함께 황야의 협곡으로 가서 실전비무 연습까지 하면서도 사팔뜨기의 심리상태를 계속 주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동료를 불러 상의한 후, 상부에 1차 보고를 위해 동료를 보내는 정황을 포착하게 되었다.
‘됐다!’
그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움직임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수는 대법을 중단하고 여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 나 지금 급히 가봐야 돼. 첩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백서린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하, 하지만 아직 내 차례가 남았는데…”
“미안해, 대신 다음에 돌아왔을 때 너부터 해줄게. 오늘 못한 것까지 보상해서.”
“다음? 지금 떠나면 언제 돌아오는데?”
“글쎄… 일이 처리되자마자 최대한 빨리 돌아올 거란 건 약속할 수 있어.”
“아!…. 그렇지만…”
백서린은 기수의 덜렁거리는 물건을 보며 못내 아쉬워 입맛을 다셨다.
기수는 그녀 마음을 이해했지만 1초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대충 옷을 입고 유성추를 챙겨 든 후 얼굴을 바꾸며 곧장 밖으로 나간 기수는 야채가게 앞으로 달려가 주인의 동료를 확인했다.
그는 훌쩍 키가 크고 비쩍 마른 30대 중반의 사내로, 짐 떠날 채비를 하고 막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
기수는 그에게 염정구심술 동조를 옮겼다.
그렇게 새로운 추적 대상이 결정되자 비로소 여유가 좀 생겼다.
그는 키다리가 야채가게에서 충분히 멀어지기를 기다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팔뜨기 사내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뭘 사러 오셨습니까? 헤헤헤…”
만면에 미소를 보이는 모습이 전형적인 장사꾼이었다.
기수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점원의 위치를 확인한 것이다.
“손님. 오늘 부추와 무우가 아주 싱싱합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실은 미안한 용건이 있어서 왔는데…”
“예? 미안하다니요? 뭐가요?”
“네 목숨을 취하게 돼서…”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주인의 목에 구멍이 뚫렸다.
푸른빛의 길고 굵은 송곳 모양 강기가 기수의 손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상대는 순간적으로 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격을 막지 못했다.
목이 꿰뚫린 상태라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그는 절명하고 말았다.
허공에서 푸른빛 강기를 타고 피가 흘러내리자 기수는 손을 뽑았고, 사팔뜨기가 쓰러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기수는 그 핏방울에 맞지 않았다.
선풍비를 시전하여 어느새 가게 밖으로 나간 것이다.
화양문 장원의 담 모퉁이에서 다시 새로운 얼굴을 만든 기수는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가 식당으로 향했다.
이번엔 걷는 내내 퇴로부터 살폈다.
야채가게와 달리, 무림맹엔 보는 눈이 많고 모두가 무림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청탑산 고수라고 해도, 설령 은혈대법을 끌어올린 상태라고 해도 근거리에서 집중하여 기습하면 100% 죽일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뒤에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식당에 들어간 기수는 한참 열심히 그릇을 나르고 있는 첩자를 발견했다.
여기저기 앉아 늦은 아침을 먹는 무림인이 모두 합해 10명 정도.
‘그냥 해치우자! 더 늦으면 키다리가 멀리 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기수는 첩자 뒤쪽으로 다가가 아까와 똑같은 수법으로 상대의 명문혈을 푹! 찔렀다.
“끄아아아!…..”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가 들고 있던 그릇들이 다 쏟아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기수는 그 즉시 식당 밖으로 몸을 날렸고, 미리 보아 둔 경로를 따라 장원의 담 위에까지 올라섰다.
화양문은 난리가 났다.
식당에서 난데없이 살인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경계 중이던 무림인들이 민첩하게 기수를 따라와 외쳤다.
“거기 서라!”
“웬 놈이냐! 무슨 목적으로 감히 무림맹 사람을 해쳤느냐?”
기수는 씩 웃은 후 목소리를 변조하여 말했다.
“난 주군의 명에 따랐을 뿐이다. 우리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4개 진이 천마교주 죽인 일은 다들 알고 있겠지? 다음엔 무림맹주 차례다. 크하하하!….콜록, 콜록!”
광오한 웃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마지막에 에러가 좀 있었지만 어쨌거나 멋지게 옷자락 휘날리며 담 너머로 뛰어내렸다.
“잡아라!”
“놓치지 마라!”
무림맹 무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기수를 따라 담을 넘었다.
그러나 담 너머엔 흙먼지만 날리고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기수는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선풍비를 10성으로 시전하여 현장을 벗어난 것이다.
나중에 담을 넘은 자들이 먼지의 흔적이라도 따라가려고 우왕좌왕 할 때, 기수는 이미 난주성 밖으로 나간 다음이었다.
남아 있는 청탑산 패거리를 모두 처단한 기수는 개운한 마음으로 키다리의 뒤를 밟았다. 오래지 않아 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동료들의 비극을 모르는 그는 평범한 경공 속도로 동쪽을 향하는 중이었다.
기수는 그가 눈치 챌 가능성에 대비하여 잠시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 간격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뒤를 돌아보았다.
무림맹으로부터의 추격은 감지되지 않았다.
애당초 식당의 점소이 하나 죽은 것 때문에 고수가 출동할 일은 없는 것이다.
‘다음 차례는 무림맹주라고 했으니까 정신들 좀 차리려나?’
사실, 천마교 다음 목표가 무림맹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얘기였다.
그 정도면 적당히 경계심을 키워줬다고 할 수 있었다.
키다리를 따라간 지 이틀째 되는 날.
기수는 연안부에 들어서게 되었다.
키다리의 마음은 상급자를 만날 거라는 사실에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에 놈들이 자리 잡고 있구나.’
기수는 시내로 들어서면서 걷는 내내 오행 상생순환을 돌렸다.
언제 있을지 모를 대결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얼굴도 한 번 더 바꿨다. 길에서 마주친 낯선 남자들의 얼굴을 섞었다.
키다리가 들어간 곳은 도수산이었다.
기수는 그의 경로를 밟아 따라가다가 산 입구 마을에서 일단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산을 노려봤다.
‘이게 뭐지? 기분이 나쁜데…’
봉우리인지, 골짜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법을 펼쳐놓은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고수? 그렇다면 사도?’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럴 가능성이 컸다.
청탑산 고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지금, 조사 결과를 보고할 정도의 상대라면 사도가 맞을 것 같았다.
기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한 뒤 세 사도들의 얼굴을 생각해보았다.
그 중 하나라도 잡을 수 있다면 청탑산 패거리 100명을 죽인 것보다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위험성도 컸다.
그동안 꾸준한 연공을 통해 내공을 쌓은 만큼 한귀비와 다시 붙는다면 지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이긴다고 해도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100초, 200초 이상 겨루면서 근소한 차이로 상대를 압박하고, 그게 누적되는 식으로 승부가 날 가능성이 컸다.
그때 만약 청탑산 패거리들이 그녀를 돕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리고 한귀비가 아닌 다른 사도라면 1대1에서 밀릴 수도 있었다.
기수는 일단 상황을 좀 살펴볼 생각으로 근처의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손님이라곤 자기밖에 없는 식당에 앉아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기수는 점소이를 가까이 불러 물었다.
“앞에 저 산이 도수산인가?”
“예. 그렇습니다.”
“여량현으로 가려면 저 산을 넘어야 하는 거 맞지?”
그러자 점소이가 손을 내저었다.
“안 됩니다. 길을 돌아서 가십시오. 도수산은 못 넘습니다.”
“아니. 왜?”
“도수산에는 태선사라는 큰 절이 있는데, 얼마 전에 산적 패거리가 승려를 다 죽이고 그 절을 차지하고 앉아서 오가는 행상들을 털어먹고 있습니다.”
기수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런!… 관군은 그걸 그냥 두고만 본단 말인가? 연안부 정도면 큰 도읍인데…”
“웬걸요. 벌써 여러 번 토벌군이 갔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형편없이 깨져서 쫓겨 내려왔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녹림72채라는 무시무시한 산적무리가 자리를 잡았답니다.”
기수는 속으로 웃었다.
녹림72채는 지금 수로맹을 따라 사마연합에서 탈퇴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런 곳에 산채를 세울 만큼 한가한 처지가 아닌 것이다.
점소이가 투덜거렸다.
“그놈들 때문에 우리 가게에 손님이 없습니다요. 에휴~”
기수는 창밖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이 여전히 느껴졌다.
‘어쩌지?’
여기까지 따라온 건 잘 한 일이다.
하지만 절까지 빼앗아서 자리를 잡았다면 저들이 작심하고 만든 거점일 것이고, 경비태세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솔직히 겁이 나는 게 사실이었다.
그때, 염정구심술로 연결된 키다리가 잔뜩 긴장한 게 느껴졌다.
성과 없이 보고하러 와서 잔뜩 깨지는 게 분명했다.
한동안 질책을 받은 후, 그는 곧바로 산을 내려왔다.
기수는 음식을 반쯤 남긴 후 일어섰다.
그리고 키다리가 지날 길에 미리 가서 으슥한 장소를 찾아 기다렸다.
키다리는 기수의 출현에 흠칫 놀라 내공을 끌어올렸다.
“웬 놈이냐?”
“난주에 돌아가봤자 아무도 없어.”
“무, 무슨 소리냐!”
“지금 당장 은혈대법을 끌어올리는 게 좋을 거야. 두 번은 기회가 없을 테니까.”
“뭐라고? 네가 어, 어떻게…”
기수는 곧장 몸을 날렸다.
파천강기나, 화류 태포련, 멸절강기 없이 분광권만으로 상대를 압박했고, 키다리는 은혈대법을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기수의 주먹에 인중을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기수는 키다리의 사혈을 누르고 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도록 협곡에 던졌다.
상대는 사력을 다했지만, 기수 입장에선 스파링 한 판 뛴 것 같은 느낌의 대결이었다.
막상 그렇게 몸을 풀고 나니까 자신감이 고양되었다.
기수는 포목점을 찾아 위아래 모두 검정색 옷을 사 입고 두건까지 검정색으로 샀다.
‘사도가 있다면 싸워주마!’
결론은 그랬다. 겁이 난다고 피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신중하게, 퇴로를 확인하면서 조금씩 접근하기로 했다.
날이 어두위지기를 기다려 산으로 오른 기수는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전방에 자리잡은 기문진이나 경비병을 찾아내려 애썼다.
어둠은 그에게 별 방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키는 입장에선 침입자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기수에겐 든든한 우군인 셈이었다.
산 중턱쯤에서 기수는 초소를 발견했다.
‘저기 있었군.’
무성한 나무 사이에 오두막처럼 얽어 만든 구조물 안에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자기들은 잘 보이지 않고, 올라오는 길은 훤히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기수는 그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우회하여 그 지점을 통과했다.
그리고 30분 정도 더 진행했는데, 의외로 감시초소 이후로는 지키는 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분 정도 더 올라가자 사찰이 보였다.
예상보다 규모가 꽤 큰 절이었다.
기수는 자신의 기척을 최대한 누르고 사찰을 중심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주변을 확인해보았다.
절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기척은 뚜렷한 것만 해도 최소 100개.
그리고 꺼림칙하던 기운도 더욱 강하게 느껴졌는데, 거리가 좁혀진 때문인지 어딘가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한귀비인가?….’
절에 가까이 다가가면 심장의 전율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상대 역시 감지가 가능하니까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기수는 절 외곽을 한 바퀴 돌면서 다른 보초병들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숫자는 많지 않았다.
담의 네 귀퉁이에 두 명씩, 모두 8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올라오는 길의 두 명까지 합해봤자 고작 10명.
자신들의 실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하긴, 내가 겁먹을 정도이니…’
천하의 누가 감히 이 절에 접근하겠는가.
기수는 태선사 주변을 두 바퀴, 세 바퀴 돌면서 주변 지형을 익혔다.
그러고 나니까 어둠 속에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던 사찰 둘레가 익숙해지면서 두려움도 많이 가셨다.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도망칠 길은 많군.’
선풍비로는 누구에게도 따라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수백 명에 둘러싸인 적의 수괴를 어떻게 처치하느냐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