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81
기수의 시선이 멈춘 대상은 아투사였다.
소항산을 떠난 이후 여러 여인을 만났고, 특히 천마교에서 다양성의 파티를 즐겼지만 한 가지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던 자극이 있었다.
길고 힘 센 혀, 그리고 단번에 뿌리까지 쑤욱! 삼키는 그 느낌.
그 어떤 여인도 아투사의 능력은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아! 무인도에 한 명만 데려갈 수 있다면 결국 그녀를 선택해야 하는 건가?’
몸은 확실히 그걸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 따지자면 각각의 장점을 조합하고 싶었다.
‘얼굴은 주예림, 입은 아투사, 힙은 탁지연, 거기는….’
갑자기 생각이 탁 막혔다. 대상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연말의 시상식에서 공동수상이 많은 이유에 갑자기 공감이 갔다.
기수가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이 사매들은 질투와 장난기가 뒤섞인 시선으로 아투사를 보며 놀리고 웃으며 떠들었다.
“어쩜 좋아. 궁주가 네 생각만 했나 봐.”
“오늘 1번은 정해졌네. 호호호!…”
아투사는 좋아서 볼을 발그레하게 붉어졌다.
탁지연이 손을 저은 후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런데 궁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 좀 해 봐.”
기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대강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여자와 관련된 부분은 대강, 역모와 관련된 부분은 자세히…
공주가 중간에 화를 냈다.
“한귀비를 죽여 버리면 어떻게 해?”
“그 정도 고수를 사로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잖아.”
“그래도 그녀를 문초하면 역모의 실체가 드러났을 텐데…”
“후후…. 그보다 좋은 걸 가지고 왔어.”
“더 좋은 거? 그게 뭔데?”
“이거야.”
기수는 품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유명한 화공을 찾아가서 우리가 찾아야 할 두 사람의 역모 수뇌부 얼굴을 그리고 목판화까지 만들었어. 자! 봐.”
사매들은 그림을 펼쳐서 돌려보았다.
기수가 두 그림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수염 짧은 놈이 방금 전 나하고 싸우던 거인이야.”
공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사람은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글쎄… 그게 확실치가 않아.”
기수는 이해했다. TV를 켜면 뉴스 시간마다 사람들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신문이나 인터넷, 잡지는커녕, 아예 사진이란 게 없는 시대였다.
직접 만나기 전에는 사람 얼굴을 볼 수 없는 이 시대에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외출도 못하고 자란 공주가 아는 얼굴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기수는 동창 출신 사매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유력인사들을 많이 알지? 이 두 사람 모두 맨손으로 역모를 꾸미지는 않았을 거야. 뭔가 기반이 있는 세력가일 거라고.”
춘매, 추매, 동매, 풍매, 설매는 서로 의견을 교환한 후 말했다.
“이 사람은 우리도 긴가민가 해. 하지만 방금 네가 싸웠던 이 사람은 아무래도 우리가 아는 사람 같아.”
“그래? 누군데?”
“전군도독 황호.”
공주가 깜짝 놀랐다.
“설마!… 어떻게 도독이 반역을….”
기수는 명나라의 관직 시스템에 대해 잘 몰랐다.
“잠깐. 도독이 높은 자리야?”
공주가 설명해주었다.
“군대는 병부와 오부가 나누어서 관리하도록 되어 있어. 병부는 무관을 발령 내고, 이동시키고, 출병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군대를 직접 운용하지는 못해. 오부는 중군, 좌군, 우군, 전군, 후군도독부의 다섯 개를 한꺼번에 부르는 말인데, 그들은 평소에 군대를 관리하지만 황상께서 총병관을 보내기 전까지는 군대를 움직이지 못해.”
“아! 어느 한 쪽이 멋대로 쿠테타를 일으키지 못하게 견제하는 식이구나?”
공주는 쿠테타란 용어에 대해 몰랐지만 기수가 가끔씩 이상한 단어를 말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냥 넘어갔다.
“서로 견제하는 게 맞아. 하지만 도독부는 직접 군대를 관리하니까 역모에 참여한다고 봤을 때 아무래도 좀 더 위험하지.”
“장군부는 어디에 속한 거지?”
“그들은 양쪽 모두에 간여하고 있지만 병부 소속이야.”
군대도 그냥 한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에 계열과 소속이 나뉘어져 있다는 게 좀 복잡하긴 했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도독부가 실체를 가진 야전부대라는 것이었다.
그런 중요한 부대의 지휘관이라면 황제의 심복을 앉혀놓았을 텐데 모반이라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사매들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정말 전군도독이 맞아?”
춘매가 대답했다.
“얼굴만 놓고 보면 확신하기 어렵지만, 그 큰 체격과 무공까지 함께 생각하면 틀림없어. 그는 황호야.”
“사병을 키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군대까지 동원할 생각이라니…”
정말 오랜 세월 철저히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도가 불편하게 복면을 쓰고 나타났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공주가 말했다.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어. 당장 궁으로 돌아가야 돼.”
탁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전군도독과 그 휘하 무관들을 전부 체포해야지.”
그렇게만 해도 일단 역모의 큰 날개 하나는 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기수는 일단 황호가 버리고 간 청룡도를 챙겨 들었다.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칼과 자루 모두 엄청나게 무거웠다. 황호의 무지막지한 힘에 대한 감탄과 동시에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도 생겨났다.
‘내가 이걸 막아냈다니…’
싸울 때는 집중 상태라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무기였다.
시험 삼아 휘둘러보니 중량 때문에 손목과 팔꿈치가 따로 놀고 몸의 균형이 흔들렸다. 진기를 끌어올린 다음에야 겨우 칼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공주가 말했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북경까지 달리는 거야. 알았지?”
워낙 시급한 사안이기 때문에 다들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기수는 무거운 짐을 들고 그 머나먼 북경까지 경공을 펼치기 싫었다.
“이게 너무 무거워서…”
그러자 공주가 칼을 빼앗아 들었다.
“내가 들게. 칼 부분만 가져가면 되니까 칼과 이어지는 데서 잘라.”
기수는 끝부분을 잡고 화류 태포련을 일으켰다.
쇠사슬이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뚝! 끊어졌다.
“이제 됐지? 가자…”
“으윽! 쿨럭, 쿨럭!….”
“왜 그래? 또.”
“아까 내상을 입은 데다 방금 진기를 무리하게 운용했더니 기혈이… 쿨럭! 쿨럭!”
“같이 가기 싫으면 싫다고 해!”
“그건 아닌데 내 몸 상태가 지금…”
“알았어. 우리끼리 먼저 갈 테니까 곧바로 따라와야 돼. 알았지?”
공주가 움직이자 동창 출신의 다섯 사매가 곧바로 따라 나섰다.
탁지연이 그녀들에게 말했다.
“궁주는 우리 둘이 책임질게. 어서 가서 급보를 알려.”
공주와 동창 출신 사매들은 역모보다 중요한 일이 없지만, 탁지연과 아투사는 그들과 우선순위가 좀 달랐다.
공주는 뒤처진 세 사람이 뭘 할지 알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전에 묵었던 객잔으로 와. 알았지?”
그리고는 바람소리만 남기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만 남게 되자 탁지연이 기수를 부축하며 물었다.
“궁주 괜찮아? 일단 운기조식 할 자리부터 찾아볼까?”
“아냐.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곧 쓰러질 것 같더니…”
기수는 씩 웃었다.
“보고하는데 전부 다 우르르 몰려갈 필요 없잖아. 예매만 가도 충분할 텐데 뭐.”
“하긴, 보통사람이 전군도독을 역모의 주동자라고 고변하면 아마 무고죄로 오히려 뇌옥에 갇힐 거야. 하지만 공주마마 말씀이라면…”
그러면서 탁지연은 자기 가슴을 기수 팔꿈치에 꾸욱~ 누르며 비볐다.
아투사도 잽싸게 반대쪽 팔을 잡고 똑같이 했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므흐흐…. 웃으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투사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궁주 뭐 찾아?”
“므흐흐흐…. 그냥 잠시 좀 쉬었다 가고 싶어서. 내가 사실은 사흘 동안 꼬박 잠도 못 자고 놈들과 싸웠거든.”
“그래? 피곤하겠다. 오다 보니까 저 아래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이 있던데.”
세 사람은 계곡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기수는 거기서도 쉬지 못했다.
땀과 피를 깨끗이 씻어낸 후 아담의 낙원 쫓겨나기 이전 모습이 된 기수.
탁지연과 아투사는 그런 기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게걸스럽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기수 입장에선 8명이 아닌 2명에게 집중하는 게 또 나름의 맛이 있었다.
탁지연의 예쁜 엉덩이와 아투사의 입을 정말 원 없이 즐겼다.
“와우! 와아~ 너희들 정말…. 으으~”
임무 교대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기수는 목숨 구해준 사매들에게 밤새도록 보답하고 싶었지만 2시간 정도 지나자 탁지연이 몸을 씻고 옷을 입었다.
“중요한 일인데 우리도 가 봐야지.”
기수는 분위기를 이어갈 방법을 찾았다.
“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자. 강과 만나면 포구가 있을 거고, 수로맹 소속의 배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탁지연과 아투사도 배가 경공 못지않게 빠르면서 몸도 피곤하지 않고, 선실에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견 일치를 본 세 사람은 연인끼리 산책하는 기분으로 물길을 따라 갔고, 저녁 무렵엔 수로맹의 배를 찾을 수 있었다.
선원들은 두 미녀에 정신이 팔려 넋을 놓았지만 기수가 맹주의 신패를 보이자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수로맹 식구들에게 있어 혈매궁주 기수는 귀빈 중 귀빈이었다.
기수는 그들에게 북경으로 배를 젓도록 하고 진무의 쾌속선에 행선지를 알리도록 했으며 선실 안에서 운기조식을 할 것이니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선원들은 그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북경까지 가는 내내 배가 규칙적 진동을 반복했지만, 선실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이상하다고만 생각할 뿐 원인은 알지 못했다.
마침내 배는 북경에 도착했다.
그동안 기수는 내상을 완전히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매의 내공도 듬뿍 증진시켜 주었다.
무림맹과 천마교에서도 했던 일이지만 역시 사매들과의 대법 효율이 가장 좋았다.
기수는 수고한 선원들에게 감사인사와 함께 금화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극구 사양했다.
수로맹주의 신패 가진 사람은 한 식구이기 때문에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수는 한 식구니까 괜찮다고, 기어이 돈을 쥐어주고 내렸다.
선착장을 따라 걸어가자 진무가 다가와 반가이 인사했다.
“도착하셨군요. 연락을 빨리 받았으면 저희가 모셨을 텐데… 미안합니다.”
“일찍 오셨습니다.”
“저도 방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합비에 있던 배가 연락을 받은 후에 출발했는데도 먼저 도착한 걸 보면 쾌속선이 빠르긴 빨랐다. 그러나 선실이 좁으니까 이번 여행엔 적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기수는 진무와 함께 식사라도 할 생각으로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리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행인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고, 그나마 다니는 사람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대로에 들어서자 관군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기수는 행상인에게 슬쩍 물었다.
“웬 군사들이 거리에 이리 많습니까?”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곧 전쟁이 난답니다.”
“전쟁이요?”
“예. 오군도독부 중에서 중군, 우군, 전군이 모반을 일으켜서 지금 이곳으로 쳐들어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다마다요. 금군이 있으니까 경사가 함락되는 일은 없겠지만, 도독부가 모반이라니. 이거야 원…”
기수와 탁지연은 서로를 바라봤다.
원래 계획은 공주가 황제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즉시 체포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독부가 먼저 움직인 것이다.
기수는 다시 행상에게 물었다.
“그들은 국록을 먹는 관리들인데 도대체 왜 모반을 하는 겁니까?”
그러자 행상은 그동안 거리에서 주워들은 얘기들을 모아서 얘기해주었다.
“원래 반역도당이 역모를 꾸민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오랑캐를 끌어들인 강호무림의 문파가 난주를 함락하는 바람에 동창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토벌한 적도 있었지요.”
행상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
기수는 여론조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무원이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근무시간에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거나, 동창이 자기네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선전하는 거나 비슷했다.
그러나 기수는 그걸 지적하기 보다는 다음 얘기를 재촉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군대가 움직인 겁니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 온 천하에 역모 주동자의 용모파기가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들켰다 생각하고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이겠지요.”
“아!… 용모파기.”
기수가 천마교를 떠나오면서 두 사람의 얼굴을 목판화로 찍어 최대한 많이 퍼뜨려 달라고 부탁했는데, 바로 그게 원인이었던 것이다.
기수는 당황스러웠다.
그들의 얼굴을 알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당황스러운 점은 바로 오군도독부 중 3군이 역모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설마 그 정도로 깊숙이 일이 진행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