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05
계속 우위를 점하면서, 장무검이 말했다.
“흐흐… 내공은 제법이다만, 이따위 단순한 초식으로는 날 이길 수 없다!”
기수는 탈백도 초식만으로 장무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밀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오행류를 쓰지 않고도 상당 수준 버틴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덕분이었다.
물론 상대도 죽을 각오로, 극한의 힘을 짜내는 상황이 아니기는 했다.
‘슬슬 파워를 올려볼까?’
내공과 초식 양면에서 막 부스터를 작동시키려고 할 때, 파공음과 함께 조민, 조현 자매가 협공을 시작했다.
‘웨이러미닛!’
기수는 자신의 즐거운 전투를 방해하는 그녀들에게 작전타임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자매는 단호한 기세로 강력하게 장무검을 몰아붙였다.
처음부터 2:1로 덤빈 것도 그렇고, 지금의 상황도 그렇고, 형식이나 명예보다 침입자를 처단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한 것 같았다.
안전하다고만 여기던 본궁이 침입당한 게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세 사람에게 협공 당하자 장무검은 연속해서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다.
결국 무시무시한 검강을 폭발시키며 상처 입은 맹수처럼 설쳐대서 겨우 공간을 확보했지만, 기수와 조민, 조현은 잠시 밀렸을 뿐 곧바로 포위망을 좁혀왔다.
장무검의 얼굴에 절망감이 스쳤다.
이 정도의 고수를 세 명씩이나 한꺼번에 상대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것을 본 기수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슬그머니 손길을 늦추었고, 눈치 빠른 장무검은 기수가 맡았던 방위를 통해 잽싸게 몸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조민, 조현 자매를 그를 따라잡으려 했지만 기회를 잡은 장무검은 더 이상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로 작심한 듯 순식간에 간격을 벌려 도망쳐버렸다.
단지 그의 목소리만 남아서 산에 메아리를 만들었다.
“너희 주군에게 전해라. 난 약속을 지켰다고! 하하하!….”
조민, 조현 자매가 동시에 기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수는 면사 위로 드러난 두 여인의 매서운 눈초리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렇게 노려봐도 예쁘니까 대책이 없었다.
조민과 조현은 기수를 자기네 편이라고 생각하고 3:1 합격진의 한 방위를 맡겼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놓쳐버리자 기수에 대한 배신감을 강하게 느꼈다.
“넌 누구 편이냐?”
“아!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기수 입장에선 설명하기가 난처했다.
그가 장무검을 그냥 보내준 것은 그의 실력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비록 적이라고 해도, 그 정도 고수가 3:1의 수적 불리함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떳떳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사도였다면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얄짤 없이 죽였겠지만 장무검은 적어도 공정한 대결을 할 자격이 있다는 게 기수의 생각이었다. 예전에 그가 한 번 자기를 살려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으로 비간 거라고도 볼 수 있었다.
조현, 조민 자매는 기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눈짓을 교환한 후 좌우로 벌려섰다.
기수는 손을 내저으며 뒤로 쑥 물러섰다.
“워우! 워우! 난 너희들의 적이 아냐. 그건 확실해.”
그리고 그는 홱 돌아서서 다섯 명의 무관을 노려봤다.
그리고 곧장 몸을 날려 놈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처음부터 8성 이상의 공력을 넣은 파천강기를 사용했다.
5명 모두 은혈대법 상태이기 때문에 괜히 설렁설렁 하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으악!…”
“크으윽!….”
순식간에 두 명이 쓰러지자 나머지 세 명이 합격진 대형으로 펼쳐섰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장무검이 도망치는 걸 봤으면서도 올바른 선택을 못한 것이다.
그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멸절강기와 파천강기가 연달아 발출되자 합격진 대형 같은 것은 소용이 없었다.
먼저 얼굴을 긁어 시야를 차단한 후 발칸포를 쏘아대는데 어떻게 그걸 막거나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기수를 데려온 인솔자인 손보는 너무 놀라, 죽어서도 부릅뜬 눈을 감지 못했다.
기수는 좌우를 둘러보다가 자기 조장인 방렬을 가리켰다.
“너!”
“예? 저, 저 말입니까?”
겁에 질린 방렬은 무릎을 떨고 이빨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설마하니 자기가 부하로 거느렸던 양십오가 이 정도의 고수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 너. 누가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라. 태무신궁을 건드리면 기린궁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아,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기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제 다들 왔던 길로 도망칠 시간이야. 셋을 센 다음부터 남아 있는 놈은 모두 죽이기 시작할 거니까 알아서들 뛰어… 자, 하나!”
수색대원들은 돈이나 좀 벌어볼까 하고 동원된 인력들이란 사실을 알기에 굳이 죽일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뭘 멍하니 보고들 있어? 둘!”
수색대는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길은 험하고 좁아서 넘어지는 놈, 먼저 가려고 앞선 동료를 잡아당기는 놈 등 난장판이 펼쳐졌다.
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큰 소리로 말했다.
“둘 반!…. 둘 반에 반!… 둘 반에 반에 반!…”
반 소리를 몇 번이나 했을까.
마침내 공터는 텅 비었다.
기수는 그제야 웃는 낯으로 돌아서서 조민, 조현 자매와 마주섰다.
“자, 이제 우리 얘기를 시작해볼까?”
조민과 조현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기수를 협공했다.
“워우! 워우! 왜들 이래?”
기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공세가 지극히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내가 도망친 게 아냐!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그 망할 놈의 기문진 때문에…”
기수는 두 여인의 공세, 그리고 치명적인 무기까지 피하고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현재 양십오 얼굴이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좋아. 본색을 드러내기 전에 좀 놀아볼까?’
기수는 오른손으로 반월도를 휘둘러 자매의 무기를 막으면서 왼손으로는 파천강기를 발출하기 시작했다.
“아아!…”
적중 당한 조민의 신형이 살짝 흔들렸지만 별 타격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강력한 호신강기… 제법인데?’
기수는 오행류의 기술들을 적절히 섞어 쓰면서 자매의 실력을 시험해보았다.
그리고 장무검과 싸우는 모습을 볼 때와 달리 직접 싸우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두 자매의 무공은 어딘가 허술했다.
미증유의 내공과 고명한 수법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결정적인 부분에서 마무리를 짓는 데는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기수는 그 원인을 즉시 진단할 수 있었다.
‘실전이 부족해서 그래. 사매들처럼 실전 대련 연습을 했다면 지금과 많이 달랐을 텐데… 친 자매끼리라 그러기가 힘들었을까?’
그보다는 실전 비무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워우! 살살하자고, 살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인의 협공은 무시무시했다.
기수는 슬슬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로 했다.
그의 초식이 일변하여 손발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민과 조현은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너, 너는 누구냐!”
“어떻게 분광권을 알고 있지?”
기수는 씩 웃으며 역용을 풀었다.
순간, 조민과 조현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고, 공자님…”
“저, 정말 당신인가요?”
기수는 뒤통수를 긁었다.
“하핫!… 미안해. 놀랐지?”
목소리까지 원래대로 돌아온 기수를 보며 조민과 조현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린 면사가 흠뻑 젖어서 뺨에 달라붙었다.
기수는 당황했다.
“이, 이봐. 진정들 하라고…”
제자들이 다 있는데 궁주가 그러면 쓰냐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자매가 달려들었다.
“으아앙!….”
“공자님!….”
기수는 엉겁결에 그녀들을 한꺼번에 안았다.
다 큰 처녀들이 이렇게 대책 없이 우는 모습을 처음이었다.
방금 전 장무검과 싸울 때의 그 서슬 퍼렇던 전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태무신궁 제자들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우리가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왔을 때 공자님이 안 계셔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처음엔 원망도 했다고요.”
“맞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하핫!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기문진법 밖으로 한 번 나가니까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말도 안 돼!”
“아아앙~!…”
자매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솔직하고 직선적인 감정표현이라 기수도 콧등이 찡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진 것 같았다.
‘허걱! 내가 지금 무슨…’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눈물에 놀란 기수는 자매를 진정시켰다.
“자, 뚝! 그만들 울어. 제자들이 보고 있잖아.”
조민과 조현은 그제야 감정을 추스렸다.
“좋아요. 우리 궁으로 함께 가요.”
자매가 앞장서고 기수는 그녀들을 따랐는데, 뭐가 그리도 급한지 자매는 제자들도 팽개치고 속도를 점점 올렸다.
제자들이야 길을 아니까 따라오려니 하고 기수도 자매 속도에 맞춰주었다.
조민과 조현은 속도를 더 올렸고, 결국엔 경공 겨루기처럼 되어버렸다.
세 사람의 선풍비 대결은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다.
기수는 그녀들의 내공이 예상보다 심후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봉우리를 세 개나 넘은 뒤에야 일행은 어느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기수는 수색대와 맞서 싸우던 곳이 엄청나게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풍비를 경쟁적으로 펼쳤음을 감안하면 적어도 20km는 될 것 같았다.
‘둥지 근처에서 싸울 필요는 없다는 의미군.’
수색에 압박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아지트가 발각되어서 나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50미터 쯤 되는 동굴 곳곳에 기관장치 같은 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를 통과하자 시야가 확 트였다.
“와!…”
기수는 탄성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360도 빙 둘러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 태무신궁이 있었다.
무슨 분화구였는지 중앙 저지엔 작은 호수가 있었고 빙 둘러 경작지도 보였다.
이런 지형이라면 1,500명 아니라 15,000명이 뒤져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항공촬영을 하지 않는 한…
신궁 내부는 고색창연 했지만 바닥이며, 기둥이며, 벽면들이 상당히 고급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고 분위기도 신비로웠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제자들이 도열하여 조민에게 인사를 했다.
기수가 보니 제자들은 다양한 나이대로 분포되어 있었다.
수색대와 전투를 한 사람들은 20대에서 30대 정도였고, 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나이가 들거나 어린 사람들이었다.
전체적으로 100명에서 150명 정도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같은 분위기였다.
분위기는 그렇지만 풍기는 기도는 만만치 않았다.
특히 머리에 두건을 쓴 노인 서너 명은 상당한 고수로 보였다.
조민은 그들에게 다녀온 결과를 간략하게 얘기한 후 해산시키고 기수를 자신의 거처로 데리고 들어갔다.
닫힌 공간에 세 사람만 남게 되자, 기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성적인 흥분이 아니었다.
‘아! 내가 이 두 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그동안 휘발성 메모리 덕분에 잊고 지내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느낌이었다.
아까 눈물이 나왔던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민아, 현아!”
기수는 그녀들에게 다가갔고, 자매는 그동안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벗었다.
“헉!…”
기수는 신음을 토했다.
아름다웠다.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 있단 말인가.
보통 기억 속의 영상이 실제보다 좀 더 낫기 마련인데, 조민과 조현은 경우가 달랐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서 약간 성숙해진 느낌이 가미되어서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
“공자님!”
조민과 조현은 기수의 품에 안겨 왔다.
기수는 탄력의 압박감도 전에 비해 커진 것을 느꼈고 손에 감기는 허리의 감촉까지 옛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기수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자매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그녀들의 피부가 더욱 광채를 발했다.
단순히 이목구비의 형태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바탕인 피부가 너무나 고왔다.
그동안 공주나 탁지연, 능소화, 아투사 등등 살결이 고운 여인들을 많이 만나왔지만 조민과 조현은 격이 다르다고나 할까…
마치 그래픽 카드를 업그레이드 한 후 게임에 처음 접속했을 때 신세계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
‘아! 울고 싶다…’
처음엔 재회가 반가워서 눈물이 나왔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피부가 너무 고와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조민과 조현 역시 뺨이 발그레 물들면서 두 눈에 열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자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가? 해야 할 일이 딱 정해져 있는데…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