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485
01488 1488화
박성민도 무슨 뜻인지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1분이라.”
“안 됩니까?”
“……1분. 어떻게든 해 볼게. 내 실력으로는 더 못 줄여.”
박성민이 말함과 동시에 태수가 우측 경동맥과 연결된 쇄골하동맥을 차단했다.
“선배, 지금!”
“야 인마,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젠장. 송 간호사!”
박성민은 버럭 소리치며 손을 더욱 빨리 움직였다.
태수도 예고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차단한 혈류를 다시 풀어야 했다.
이런 과감한 방법은 카프레네가 20년 전에 실행한 방법이기도 했다.
현대 의학처럼 의료 시설이 발전하지 못한 시기에 진행한, 무모하면서도 그 당시엔 가장 확실한 수술법이었다.
결과는 뇌 손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태수도 그런 확신이 없었으면 절대 진행하지 않았을 위험한 시술이기도 했다.
박성민은 불만과 당혹감에 눈꼬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나 태수는 그걸 볼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해도 지금 손에 발까지 더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리고 1분 후.
태수가 먼저 말했다.
“혈류 재개합니다.”
“잠……. 자식. 벌써 풀었네. 제발 준비 좀 시켜 주라.”
“안 됩니다.”
“냉정한 놈. 이쪽 출혈은 거의 잡았어.”
박성민의 말에 태수의 시선이 서영우에게로 향했다.
“어떻습니까?”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 그런데 계속 업, 다운이 있어서 언제 위험해질지 장담하지 못하겠어.”
“계속 그럴 겁니다. 심정지는 절대 안 됩니다.”
태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서영우는 태수의 모습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누구는 심정지 일으키고 싶겠냐고. 노 간호사, 강심제 하나 더. 그리고 강하제는 잠시 보류.”
“혈압이 많이 올랐는데요.”
“어차피 떨어질 거니까 차라리 승압제를 준비해요.”
서영우의 말이 신빙성이 있는지 노지연 간호사도 준비하는 약의 종류를 바꿨다.
모두 정신없는 사이에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혈압과 맥박의 등락이 계속 반복됐다.
그뿐 아니라 출혈이 끊이지 않아 수혈하는 팀원들은 벌써부터 기진맥진했다.
그런데도 수혈팩을 쥐었다가 펴는 행동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심정지 직전까지 몇 번을 오갔을까.
세어 보지 않아 가늠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심정지가 일어나지 않은 건 순전히 서영우의 노력 때문이었다.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의 주변에는 빈 약병들이 늘어지다 못해 쌓여 있었다.
약을 과다하게 주입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사용되었다.
그건 수술 자체도 힘들게 진행되지만, 수술 진행 시간도 엄청나게 흘렀단 걸 의미했다.
수술실에 걸린 전자시계는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총 9시간이 지났단 의미이기도 했다.
수술에만 집중하던 태수가 턱을 높이 들어 고개를 뒤로 젖혔다.
“푸우!”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현재 진행 상황을 보면 아직도 암담했다.
두 번째 고비인 대동맥궁의 문제도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인공혈관을 대동맥궁에 맞게 성형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들었다. 없는 걸 만들어 내는 과정은 노력과 끈기가 모두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 숨을 돌릴 수 있는 건 출혈이 잠깐 멈춰서였다.
물론 아직까지 두 군데 더 출혈을 일으키며 성형과 혈관을 잇는 걸 반복해야 했다.
태수는 막간을 이용해 어느새 옆으로 돌아와 왼쪽 경동맥을 수술하고 있는 박성민에게 물었다.
“선배 쪽은 어떻습니까?”
“거의 끝나 가. 길어야 10분.”
“출혈은…… 생각보다 적은데요.”
“출혈이 있는 부분은 끝내고 마무리하는 중이니까. 그런 너는?”
박성민이 묻자 태수가 바로 대답했다.
“두 군데 더 남았습니다.”
“징그러운 놈.”
“그런 말씀은 나중에. 마무리 지으면 넘어오세요.”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박성민은 자신이 맡은 일에 끝이 다가오자 다시 한 번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처음과 비교하면 많이 느려졌다. 시간이 지나며 체력적인 문제가 도드라지는 중이었다.
그건 태수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체력적인 문제를 보완하는 건 이 수술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태수는 더 깊은 생각은 일단 뒤로했다.
“마무리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이대로 끝까지 갑니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이 수술을 계속 이어 가는 게 중요했다.
이 수술의 종점을 향해 모두 악으로 깡으로 스스로를 독촉하며 수술을 이어 갔다.
또 한 번 열정을 불태우며 2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대동맥궁, 그리고 좌우 경동맥의 수술은 마무리가 됐다.
석정현 이사장의 바이탈 사인도 최악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했던 수치보다 조금 더 상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마지막으로 소비된 출혈을 다시 보충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태수와 박성민은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태수는 그 틈을 이용해 시간부터 다시 확인했다.
예정했던 10시간은 이미 지났다.
문제는 무려 1시간이나 오버됐다는 것이다.
그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 단 1초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그걸 증명하듯 대부분의 수술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태수가 생각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박성민이 물었다.
“이제 마무리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점검한 후에 덮으면 되는 건가?”
“현재까지 상황으로는요.”
“무슨 문제 있어?”
“잠시만요.”
태수가 양해를 구하자 박성민의 시선이 김혁권에게로 향했다.
김혁권도 같이 마주 보고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두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이, 태수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봤다.
11시간이 넘는 대장정의 수술을 진행했다.
화장실은커녕 틈틈이 물을 한 모금씩 먹은 게 전부였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연속된 문제와 과다한 출혈로 수술대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체력은 유한했다.
환자도 수술을 받는 데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듯이 수술하는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였다.
태수는 냉정한 시선으로 수술실의 모든 인원을 둘러봤다.
서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누가 봐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확인까지 하는 게 과연 현명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곧 태수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간호사님, 의국에 전화해서 닥터 헤인즈와 수술팀들 들어오라고 해 주세요.”
“알았어요.”
이선정 간호사는 절뚝거리며 전화기로 향했다.
그 순간 박성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야, 태수야, 이 상황에서 닥터 헤인즈를 부르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
“이 수술 거의 끝났다고. 마지막 확인만 남았다니까. 이 수술을 끝까지 마무리 짓고 성공시키면 넌 그냥 떠 인마.”
박성민은 엄지까지 내보이며 갑갑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태수는 오히려 옅게 미소 지었다.
“선배, 뭐가 더 중요한지 아시잖아요.”
“…….”
“다들 혹시 제 생각이 너무 물렁하다고 느껴지십니까?”
태수가 모두에게 물었다.
그러자 제각각의 대답들이 돌아왔다.
“10분도 못 서 있겠어. 진심이야.”
“전 이제 주먹이 안 쥐어져요.”
“다리……. 음, 좀 앉고 싶은데.”
개개인의 상태는 확실히 좋지 않았다.
반대하고 있는 박성민 또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는 태수와 달랐다.
알려지는 걸 좋아했고, 명예욕도 있었다.
“밥상을 가져다가 앞에 떡 차려 놓고 숟가락에 밥하고 고기반찬 올려놔 줘도 못 먹을 놈.”
“체할 거 같으면 상을 물려야죠.”
“새끼. 니가 그렇다면 그래야지. 아이고, 내 새끼.”
말과 달리 박성민은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잠시 후.
그르릉.
수술실 문이 열리고 닥터 헤인즈와 메이요 클릭닉의 흉부외과 수술팀이 들어왔다.
닥터 헤인즈는 수술 준비에 앞서 태수에게 다가왔다.
“대기실에서 보니까 거의 끝난 거 같은데.”
“맞습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넘기는 거지? 확인만 마치면 끝이잖아.”
“너무 지쳤습니다.”
태수가 대답했지만 닥터 헤인즈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확인할 체력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꼼꼼하게 확인할 순 없습니다.”
“…….”
“단 1퍼센트라도 성공 확률을 올리려면 자세히, 그리고 확실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닥터 헤인즈, 부탁합니다.”
태수는 집도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걸로 끝이 아니라 깊게 고개까지 숙였다.
이미 지친 몸이라 고개를 숙였는데도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태수는 그 정중한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닥터 헤인즈는 그런 태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 수술.
솔직한 이야기로 마무리까지 짓는다면 세계의료협회에 보고가 올라갈 케이스였다.
그렇게 되면 태수의 주가는 한국이란 나라가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어렵고 난해한 수술이었다.
세계의료협회에서 알아서 찾아올 정도로 엄청난 영광을 누릴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무리만 남겨 놓은 채 과감하게 물러난다고 한다.
닥터 헤인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무리해서 마무리를 고집한다면 아주 사소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환자의 나이와 체력을 고려한다면 그 사소한 문제가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뜻이었다.
닥터 헤인즈는 태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수술 중에 할 얘기는 아니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해도 되나?”
“얼마든지요.”
“좋아. 약속하지, 이 환자, 절대 후유증과 부작용 없게 만들겠네.”
닥터 헤인즈가 호언장담했다.
그의 실력이라면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태수는 그걸 알기에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부탁하며 서서히 수술실 문으로 향했다.
태수의 뒤로 교대를 마친 모든 수술 팀원들이 함께했다.
곧 태수와 수술 팀원들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텅.
뒤에서 수술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달라진 공기를 한껏 들이쉬고야 수술실에서 벗어낫단 실감이 났다.
태수가 힐끔 뒤를 돌아보고는 활짝 미소 지었다.
다들 정상은 아니다.
이런 대수술을 마치고 팔팔하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김혁권이 제일 먼저 만만한 박성민을 향해 툴툴거렸다.
“그런 체력으로 어찌 살아?”
“힘들다고요.”
“으이그, 평소에 얼마나 체력 관리를 안 했으면.”
“그러는 양반은 멀쩡한 줄 아십니까?”
박성민이 톡 쏘자 김혁권이 슬쩍 다리를 내려다보고 머쓱한 표정으로 변했다.
“흠흠! 떨리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아이고, 사시나무네. 뭘 이렇게 떨어 대고 그래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니 이젠 정말 수술에서 벗어난 모양이었다.
태수가 그런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힘들더라도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됩니다.”
“넌 뭐야? 왜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지.”
“내가 왜요? 괜찮은데요.”
“거울이나 봐라.”
“제가 왜…….”
대답하던 태수는 뭔가 이상했다.
인중부터 입술 주변에 찝찝함이 계속되고 있어서였다.
의아한 태수는 돌아서서 개수대로 향했다.
개수대 위에 붙어 있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본 순간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코피.
그것도 쌍코피.
아주 줄줄 흘렀다.
“하, 하하.”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지 태수는 황당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송현미 간호사가 떨리는 손으로 수술포를 가져왔다.
“닦아야죠. 머리는 젖히지 마세요. 코피가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 기도 막힐 수도 있어요.”
“제가 의삽니다.”
“피 보고 겁나 하실 줄 알았죠.”
“제 온몸이 피투성인데요.”
“팀장님 피는 아니잖아요.”
송현미 간호사는 말대답을 하며 태수의 입 주변을 수술포로 찍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더는 문제없겠죠?”
“닥터 헤인즈는 메이요 클리닉에서 최고인 심장 전문의입니다. 믿으세요.”
“그게 다 팀장님이 수술을 잘해 놔서 그런 거잖아요.”
“그건 좀 다른 문제죠.”
“아니에요. 고생하셨어요. 정말, 진짜로 고생하셨어요.”
송현미 간호사는 수술포를 옆으로 치우고 태수를 가볍게 안았다.
작은 행동 하나에 태수는 가슴이 진동했다.
솔직히 성공에 확신이 없었다.
지금도 처음 수술실에 들어가던 순간만 생각하면 눈앞이 껌껌했다.
그런 자신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순간도 의심없이 끝까지 신뢰해 줬다.
그런 믿음이 이 순간을 맞이하게 했다.
태수는 그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장해요.”
“감사…… 합니다.”
태수의 목이 꽉 메어 왔다.
그건 태수뿐만이 아니었다.
태수를 안고 있는 송현미 간호사는 물론 다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이 순간의 기쁨을 온몸으로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