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689
01692 1692화
그러는 사이에도 환자의 심장은 계속 최저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서영우가 갖가지 약들을 투여한 후 ECG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지?”
“왜 그러십니까?”
박효준이 수혈팩을 교체하며 빠르게 물었다.
서영우는 여전히 ECG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가늘어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 정도면 심장이 멈춰야 해.”
“선배님.”
“자식아, 내가 지금 환자 죽으라고 지랄하는 거 같아? 그게 아니라 수치나 경과 시간으로 봤을 때는 멈췄어야 했다고.”
“…….”
“그런데 안 멈춰. 버티고 있다고. 어떻게든 스스로. 나 좀 살려 달라고 버티고 있다고.”
서영우의 말에 태수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진들 또한 한차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환자는 무의식중에도 살아야겠단 절실함이 가득했다.
눈앞에서 죽어 간 구조대원들의 바람처럼, 그 또한 멈춰 가는 자신의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헝클어진 태수의 머릿속 생각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싹 쓸려 갔다.
너무 생각이 많았다.
이런 순간일수록 단순하게 접근하는 게 정석이었다.
태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서영우에게 물었다.
“혈압 로스트라고 하셨죠?”
“그렇다니까.”
“맥박은 최저치도 안 되게 유지되고 있고.”
“지금까지 내가 하는 말을 어디다 팔아먹었는데?”
서영우가 소리쳐 따졌지만 태수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흉부, 복부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런데도 출혈이 일어났을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면?
머릿속에 차곡차곡 가정을 쌓아 가던 태수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허벅지.
인체에서 가장 많은 혈관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골절된 왼쪽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는 부었단 말로 이해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워져 있었다.
태수가 날카롭게 눈빛을 번뜩이며 김혁권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스.”
“여기.”
탁.
김혁권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건 그뿐만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였다.
의아함 가득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 시선 속에서 태수는 왼쪽 허벅지를 길게 메스로 그었다. 날카로운 메스의 날에 살이 갈라진 순간이었다.
푸악.
피가 마치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가까이 있던 태수와 하석준 팀장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피를 뒤집어써야 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다들 몰아친 피보라에 깜짝 놀랐다.
“헉. 저기가 왜……?”
“그게 중요해?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
“팀장님들 얼굴부터 닦아.”
다들 어수선해진 순간 김은영이 눈빛을 번뜩이며 이기준에게 말했다.
“이 선생, 벌려.”
“뭐?”
“벌리라고, 새끼야.”
김은영의 거친 목소리에 이기준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뭘 벌리라는 건지 바로 알아들은 그는 리트렉터로 갈라진 허벅지 사이에 틈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수술 도구를 든 김은영이 김수진 간호사를 재촉했다.
“썩션.”
“가요.”
“혁권 씨, 뭐 해요? 자요? 빨리 썩션 안 들이밀어요!”
김은영이 소리치자 김혁권도 움찔거리며 얼른 곁에 있던 썩션으로 출혈을 빨아들였다.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자잘한 일들은 다들 전혀 개의치 않았다.
태수와 하석준 팀장도 얼굴만 닦아 낸 후 얼른 허벅지를 확인하는 데 손을 더했다.
콰륵콰륵.
썩션들의 적극적인 보조에 출혈 부위가 곧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퇴정맥이 말 그대로 터져 있었다.
그걸 확인한 하석준 팀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떻게 이게 터질 수 있지?”
“여기.”
“이 혈전 덩어리는……. 설마 패혈증 때문에?”
하석준 팀장이 상황을 빠르게 유추해서 묻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팀장님, 최대한 빨리 수습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혁권 씨, 얼른 인공혈관 준비해. 최 팀장이 위쪽을 맡아. 내가 아래쪽으로 갈게. 김 선생은 주변의 터진 혈관들 확인하고 빨리 수습해. 이 선생은 계속 보조하고.”
“네.”
하석준 팀장의 오더에 다들 대답과 동시에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왼쪽 허벅지에 8개가 넘는 손이 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각 처치하는 위치가 다르고 얇은 수술 도구 끝으로 진행하기에 부딪치진 않았다.
태수와 하석준 팀장은 터져 버린 대퇴정맥부터 수습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혈전 잘랐습니다.”
“이쪽도 단면은 정리했어.”
“여기 인공혈관.”
김혁권은 건네주는 게 아니라 수술 도구로 인공혈관을 잡아 봉합하기 좋은 위치에 그대로 들고 있었다.
그사이 태수는 준비된 니들홀더를 직접 교체하며 서영우에게 물었다.
“상황은요?”
“뭔 상황? 환자가 버티고 있어. 우리가 버티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버티고 있다고.”
“10분만요. 10분만 더 버티라고 하세요. 혈관 봉합 들어갑니다.”
태수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니들홀더를 움직였다.
그런 태수를 눈살 찌푸리며 째려본 서영우가 작게 짜증을 토했다.
“뭘 버티라고 그래? 내가 지금 말한다고 환자가 알아듣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영우는 얼른 환자의 귀로 다가갔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참아요. 곧 해결되니까. 더 아프지 않게 해 주려는 과정 중에 하나니까 이것만 잘 이겨 냅시다.”
서영우는 환자의 귀에 대고 말하다가 스스로 놀랐다.
태수가 예전에 했던 행동이었다. 마취된 환자가 무의식중에 알아듣는단 지론으로 행한 일이기도 했다.
그때는 사실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자진해서 환자에게 말을 거는 자신을 보니 태수가 왜 그랬는지 이젠 알 것 같았다.
아직도 그 지론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런데도 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의사는 환자와의 약속을 철석같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입으로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 말이 사실이 되게 스스로를 다그치고 노력해야 한단 것이다.
“이래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어쩌랴.
이미 내뱉은 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서영우는 재빨리 또 다른 IV로 달려가 수혈팩을 잡았다.
“노 간호사, 나하고 박 선생한테 수혈팩하고 수액을 뭉텅이로 가져다줘요.”
“네. 그런데 지혈제는요?”
“그거 놔두고, 박 선생 옆에 강심제하고 승압제만 가져다 놔요. 박 선생, 내가 신호하면 원 샷에 밀어 넣을 준비 하고.”
서영우 말에 박효준이 얼른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목소리 봐라. 그 정도 소리 쳐서 환자에게 들리겠어?”
서영우가 자극하자 박효준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꼭 살릴 겁니다.”
“씨발. 나도 그럴 거다.”
서영우는 자신이 담당하게 된 IV의 수혈팩을 있는 대로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와 하석준 팀장은 오랜만에 합을 맞춰 인공혈관으로 끊어진 대퇴정맥을 이어 붙였다.
그런 두 사람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았다.
태수의 속도는 성호종합병원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속도를 하석준 팀장이 따라가고 있었다.
속도 그 자체는 태수가 훨씬 빨랐다. 그동안 키워 둔 근육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속도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었다.
하석준 팀장의 움직임은 태수와 비교해 턱없이 느렸다. 그런데도 수술을 진행하는 속도가 얼추 비슷했다.
태수는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담당할 부분을 빠르게 마무리 짓고 하석준 팀장을 도와야겠단 마음으로 진행하는 중이었다.
어느새 태수는 골반 쪽으로 향하는 혈관을 모두 이었다.
“됐습니다. 팀장님, 제가…….”
“이쪽도 됐어. 지혈 클램프 떼.”
“아, 네.”
태수는 순간 얼떨떨한 얼굴로 대퇴정맥을 막아 둔 지혈 클램프를 풀었다.
그와 동시였다.
솨아악.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들릴 리는 없지만 반투명한 인공혈관이 빨간색으로 가득 차오르자 그런 기분 좋은 환청이 들리는 느낌이다.
그때 서영우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박 선생, 어때?”
“갑자기 수혈량이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야. 지금 강심제하고 승압제 추가.”
“추가합니다.”
“계속 밀어 넣어. 이쪽도 같이 보고.”
서영우는 오더와 동시에 IV에서 벗어나 전신마취기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곧장 ECG의 모니터를 주시하며 노지연 간호사에게 오더를 이어 갔다.
“전해질 먼저 추가합니다. 아미노산, 단백질, 알부민은 박 선생에게 주시고요.”
“네.”
“아직 안심할 때 아닙니다. 긴장 놓지 마세요.”
서영우는 스스로를 달래듯이 중얼거리며 계속 ECG에 집중했다.
반면, 의료진들은 모두 손을 멈췄다.
서영우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나와야 그다음 수술을 이어 갈 수 있다.
그때까지는 긴장을 유지한 채 순간적인 변화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정신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을 때였다.
서영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혈압 다시 잡혔어. 아직 혈액이 더 추가되어야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까 그대로 대기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잠깐 손 좀 털고 있으라고. 나에게 5분만 줘.”
단호한 서영우의 목소리에 다들 서로를 쳐다봤다.
끄덕.
태수는 모두와 같이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고 말했다.
“다들 수술대에서 잠깐 물러나세요.”
태수의 말이 떨어지고야 다들 수술대에서 한 발자국 물러섰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완전히 푼 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간호사들은 수술 카트에 부족한 것들을 채울 절호의 기회였기에 바쁘게 움직였다.
태수를 비롯한 의사들은 수술 후 처음으로 물을 들이켰다.
탈수 방지 목적으로 마시는 물이었다.
그냥 맹물이 아닌 소금이 첨가되어 짭짜름했다.
그렇게 물 한 모금을 마신 후였다. 태수와 하석준 팀장은 나란히 서서 ECG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박인수가 다가와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허벅지를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부주의했습니다.”
“…….”
하석준 팀장은 일부러 입을 열지 않고 태수를 힐끔거렸다. 그와 관련한 대화는 태수보고 나누란 뜻이었다.
태수는 고개 숙인 박인수를 바라봤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았다.
다급했던 순간 환자가 위험해서 언성이 높아진 것뿐, 그 외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어떤 의사도 한 번 보고 모든 걸 알 수 없다. 태수 자신도 순간적으로 환자의 병을 놓칠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환자는 응급상황을 넘기고 회복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인수를 문책할 순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태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모르셨을 겁니다. 겉으로 살펴봤을 땐 그런 문제가 있단 걸 판단할 수가 없으니까요.”
“최 팀장.”
“하지만 부주의하셨던 건 사실입니다. 나중에 환자에게 그 점은 정확하게 사과하세요.”
“나중에?”
“이 수술, 무조건 성공시킬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요.”
태수는 그 점은 강력하게 말했다.
그 소리에 흔들리던 박인수의 눈빛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꼭 내 입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게.”
“그러려면 이렇게 시간이 있을 때 지난 일은 털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 때문에 상황이…….”
박인수가 말을 길게 하려 하자 태수가 중간에 막았다.
“아직 수술 중입니다. 실수가 있었어도 이미 지나갔고요. 남은 수술은 너무도 많습니다.”
“…….”
“박 선생님 실력을 이곳의 누가 모릅니까? 자책감에 그 실력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 또 다른 위험을 만들 거고, 그건 환자에게 더욱 큰 실례를 범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그리고…… 말보다 결과로 증명해 보일게.”
말을 마친 박인수는 무거운 마음을 가볍되 단단하게 굳히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과정을 쭉 지켜본 하석준 팀장이 조용히 말했다.
“예전의 최 팀장이었으면 멱살부터 잡았을 텐데.”
“저도 이젠 사리분별이란 걸 조금 할 줄 압니다.”
“어른이 되어 간단 증거겠지. 몸이 아닌 마음이 어른이 되어 가는 거 말이야.”
하석준 팀장의 말에 태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