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059
02062 2062화
“모시겠습니다.”
“홍 선생님, 저 안 갈 거예요.”
“이번에는 제가 마음 편하게 모시고 가게 해 주세요. 그때 김 선생님 모시고 돌아설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았어요.”
이선정 간호사는 결국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
겉으로는 태수도 잡아먹을 듯이 까칠하고 도도했지만 인정이 많은 간호사였다.
태수가 노린 것도 그런 점이었다.
치사하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보내야 했다.
결국 남는 인원은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으로 좁혀졌다.
이제 응급처치만 남았다.
그 생각과 동시였다. 저쪽 차 뒤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니요. 아버님, 지금 여기 이렇게 가실 때가 아니라니까요.”
“아까부터 그 소리.”
“아까부터 했으면 이젠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지금 여기가 어디냐 하면 정말 정말 위험하고 또 위험하며, 너무나 위험한 곳이란 말입니다.”
“나도 안다니까. 어서 가자고.”
익숙한 두 사람의 목소리에 태수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혹시나 싶던 태수의 표정은 곧 모습을 보인 두 사람을 보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박성민, 그리고 엄수찬 차관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어깨에 방송용 카메라를 얹은 채 다가오는 김성국 기자 모습도 보였다.
태수는 진짜 아찔했다.
“미치겠다.”
그 중얼거림은 푸념이 아닌 진심이었다.
지금 박성민이 여기에 온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물며 엄수찬 차관과 김성국 기자의 등장은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태수가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엄수찬 차관이 가까이 다가왔다.
깔끔한 면바지가 홀딱 젖었고, 위에 걸친 활동적인 점퍼도 곳곳에 물방울이 튄 자국들이 선명했다.
무모한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구명조끼는 입고 있었다.
엄수찬 차관은 바로 태수에게 말했다.
“저기 저 아이가 문제라고?”
“지금 문제가 더 늘어났습니다.”
“또 환자를 발견했나?”
“아니요. 제 앞에 계시면 안 되는 분들이 계셔서 문제가 늘어났습니다.”
태수가 허탈한 표정으로 하소연했다.
하지만 엄수찬 차관은 차분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어 보였다.
“최 팀장이 바쁘면 지휘가 엉망이지 않겠나. 누군가 지휘할 사람이 있어야지.”
“없어도 됩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현 시간부로 지휘권은 내가 다시 돌려받지.”
“……차관님!”
태수가 강하게 소리쳐도 엄수찬 차관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그는 오히려 태수에게 찡긋거리며 말했다.
“나 보건복지부 차관이야.”
“압니다.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모르지.”
“네?”
“내가 여기 있으면 간 떨릴 사람들이 많단 걸 모르잖아. 잘 보라고. 곧 보여 줄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마친 엄수찬 차관이 무전기를 들고 직접 말했다.
“나 보건복지부 엄수찬입니다. 현재 상판 한가운데에서 응급 환자를 발견해 응급의료대와 함께 있습니다. 곧 물이 차오를 것 같으니 지원 좀 부탁합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태수의 지휘용 무전기에서 똑같이 울렸다.
뭐 이런 일이…….
태수의 시선이 박성민에게로 향했다.
레펠 장비를 들쳐 메고 시선을 마주한 박성민의 양쪽 눈꼬리가 축 처져 있었다.
“나도 미치겠다. 내 말발이 통하는 분이어야 모시고 가지.”
“…….”
태수는 할 말이 없어 김성국 기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카메라의 빨간 녹화불이 먼저 눈을 자극했다.
“현장에 나와 있는 김성국 기자입니다. 현재 최태수 팀장을 비롯한 응급의료대는…….”
그는 카메라를 들고 아예 현장을 생중계 중이었다.
태수를 화면에 잡은 후 몸을 돌린 김성국 기자는 아이 쪽으로 향했다.
태수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쯤 되니 태수도 막막했다.
혹을 떼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오히려 혹이 몇 개가 동시에 불어났다.
누구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혹이란 게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그때였다.
부아아앙! 푸다다다!
사방에서 엔진음과 헬기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퉁명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태수가 황당한 얼굴로 변했다.
소방대 소속 모터보트와 경찰 소속 모터보트들이 상판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얼핏 다섯 척이 넘었다.
하늘에는?
마찬가지로 소방 헬기, 경찰 헬기, 심지어 구조 헬기와 의료 헬기까지.
10여 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호버링 중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몰려온 게 혹시?
태수가 직감하는 사이 엄수찬 차관이 다가와 말했다.
“그거 아나? 내가 최 팀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위치라는 걸 말이야.”
“…….”
“이래 봬도 공무원들 중에서는 고위 간부야. 그 간부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떻게든 지원을 해야지. 저렇게 말이야.”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반면 태수는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위치와 직급을 이렇게 사용하는 공무원이야말로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있을지 모르지만 태수가 두 눈으로 목격하는 건 처음이었다.
확실한 건 헬기와 모터보트가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으면 탈출할 때 위험보다는 안전이 확보된단 점이었다.
그때 홍진만이 슬쩍 태수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도…….”
“유람선 환자들은?”
“…….”
“니들까지 내 머리 복잡하게 하지 말고 얼른 가라. 이제 이쪽도 시간 없어!”
태수가 호통을 치다 못해 호소했다.
이 모든 상황들이 벌어지는 사이 물은 허벅지의 반까지 차올랐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다들 고집만 부릴 때가 아니란 걸 그제야 인지했다.
더 지체해 봐야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환자의 목숨은 더 위험해지고, 여기 남을 사람들의 안위도 위협받게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성민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와 말했다.
“알았어. 우리는 갈 테니까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하늘로 솟구쳐 버려.”
“알았다니까.”
“잔소리 끝. 모두 돌아서. 안 돌아서는 새끼는 내 주먹이랑 인사할 줄 알아. 어서!”
도성민이 재촉하자 유병태도 나섰다.
“다들 뭐 해? 빨리 돌아가. 유람선에 계신 환자분들을 그냥 놔둘 순 없다고.”
“선정이 언니, 어서 가요. 빨리요.”
최소현 간호사도 이선정 간호사를 이끌어 유람선 쪽으로 향했다.
다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하지만 태수는 그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헤어져야 했다.
모두가 멀어지기 시작하자 주변이 좀 한가해졌다.
그때 엄수찬 차관이 도성민을 불렀다.
“거기 도 선생!”
“네, 차관님.”
“이름이 같은 사람끼리 그렇게 매정하면 되나.”
“네?”
“선배 모시고 가라고.”
엄수찬 차관이 말하는 선배는 박성민을 말했다.
그 소리에 박성민이 펄쩍 뛰었다.
“제가 어딜 갑니까? 아버님을 여기 놔두고 제가 어떻게 혼자 한강을 유람할 수가 있겠냔 말입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나도 그쪽으로 갈 거야.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아버님, 이건 아닙니다. 제가 장모님 같은 어머님을 어떻게……. 아니, 어머니 같은 장모님을 어떻게 뵈라고요. 그리고 제 사랑하는 예림이는 또 어떻고요!”
“거참, 말 많네.”
엄수찬 차관이 흘겨봤지만 박성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건 말해야죠. 입이 없으면 만들어서 해야 할 상황입니다. 저희 조만간 딴딴따다 합니다. 예림이 손잡고 식장 들어오셔야죠!”
“그럼 그걸 누굴 시켜. 걱정 말고 돌아가서 다른 환자들부터 돌봐. 박 팀장의 소임이 뭔가? 여기서 시간 끄는 건가?”
“제 소임이야…… 그러니까…….”
박성민이 우물쭈물거리자 엄수찬 차관의 냉정한 말투가 귀에 다가섰다.
“지금 난 내 소임 중이야. 마지막까지, 모두가 안전하게 여길 벗어날 때까지 지키고 있는 것 말이야.”
“…….”
“어서 가, 어서! 계속 이렇게 잔소리할 시간 없어!”
엄수찬 차관이 몇 번이나 재촉했다.
태수도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워 박성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어깨에 걸쳐진 레펠 장비를 강제로 건네받으며 말했다.
“선배, 지금은 차관님 말씀대로 하십시오.”
“야, 태수야, 너 이 자식!”
“제가 꼭 무사히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
“선배!”
태수가 거칠게 재촉했다.
그 순간 박성민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하나 묻자. 진심으로 묻자. 내가 있으면 방해돼, 도움이 돼?”
“네?”
“진실만, 감정은 일체 지우고 딱 진실만 말해. 환자 응급처치에 나 박성민이가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
“…….”
“‘도움이 된다.’에 한 표지? 그럼 됐어. 가자.”
박성민이 나서려 하자 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은…….”
“난 행운의 사나이야. 내 행운이 모든 위험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게 할 거라고.”
“…….”
“거기다 실력도 지금 상황에 딱 필요해. 안 봐도 그건 이미 정해져 있단 말씀. 이 얼마나 이 상황에 안성맞춤인 인물이냔 말이지. 이제 됐지?”
툭.
박성민은 태수의 어깨를 짚고 지나쳐 갔다.
그리고 엄수찬 차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응급의료대 팀장입니다.”
“…….”
“제 소임이요? 저 녀석들을 지원하는 거고, 할 수 있다면 저 녀석들보다 딱 1시간 먼저 죽는 겁니다.”
“음.”
“선배가 목숨 챙기면서 후배들에게 미루는 건 모양 빠지잖습니까. 그런 이유로 저도 여기 남겠습니다. 응급의료대 팀장으로서 말입니다.”
박성민의 말이 끝났다.
엄수찬 차관은 마주한 그의 진지한 눈빛에 더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태수가 두 사람을 지나쳐 가며 말했다.
“선배, 보조 부탁합니다.”
“오케이!”
“응급처치 보조는 물론이고, 차관님의 안녕도 옆에서 같이 보조해 주십시오.”
“그건 또 내가 기가 막히게 하지.”
“그럼 가시죠. 차관님, 더는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어서 실례합니다.”
태수는 할 말만 마치고 환자에게 향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런 소모적인 입씨름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태수와 박성민은 곧 들것에 누운 아이에게 다가섰다.
그사이 아이는 응급처치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김혁권이 박성민을 흘겨보더니 한마디 했다.
“어떻게 혹을 달고 와도……. 참 재주도 좋으십니다.”
“아저씨, 어째 나한테 하는 말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뇌리를 스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찔리나 보지?”
“도대체 이 아저씨는 왜 맨날 내 눈앞에 있는 거지?”
“나도 궁금합니다.”
두 사람의 잔소리에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계속하세요.”
“…….”
“계속하시라고요. 저하고 민수는 레펠 장비부터 입겠습니다.”
차릉차릉.
태수는 더 지체하지 않고 레펠용 장비에 두 다리를 넣고 끌어 올려 허리를 조였다.
그건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날선 대화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자 박성민과 김혁권은 바람 빠진 표정으로 변했다.
“우리도 일단 안전 장비부터 갖춥시다.”
“참 나쁜 사람이네.”
“또 뭐가요?”
“장인 될 분은 구명조끼 입고 계시는데, 사위 될 사람은 하늘로 혼자 날아가겠다니.”
김혁권의 일침에 박성민이 움찔했다.
“……나도 구명조끼 입을 거거든요!”
“그거 입으면 응급처치하기 불편한데.”
“그럼 뭐 어쩌라고!”
진정하는 것 같던 두 사람이 다시 흥분했다.
“알아서 하시라고.”
“나도 모르겠다.”
박성민은 고민 없이 구명조끼를 선택했다.
움직임이 좀 불편해지면 다른 방법으로 응급처치를 도우면 될 일이었다.
두 사람도 각자 안전 장비를 갖췄다.
그사이 먼저 장비를 갖춰 입은 태수가 정민수에게 물었다.
“Washing(세척)은 끝났지?”
“보시는 대로 깔끔하게. 아까 옆구리 그어 놓은 곳도 다시 봉합해서 문제없게 했어.”
“고생했다. 그런데 바이탈은?”
“일단 강심제부터 시작해서…….”
정민수가 투여한 약부터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현재 아이의 혈압과 맥박 등 기본적인 생명 반응에 대해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