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521
00524 524화
수술을 하고 있다는 긴장감이 서서히 사라진 모양이다.
그때 태수가 이야기를 꺼냈다.
“사고를 당하고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다만 더 큰 사고가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하죠.”
“맞습니다. 진짜 아찔했거든요.”
“저희도 그렇습니다. 수술하면서도 이만하시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수의 말에 박성민이 동조했다.
“그럼요. 딱 이 정도가 적당하게 다치신 겁니다. 연초니까 액땜 한 번 크게 했다고 생각하시고 털어 버리세요. 저희도 노력해서 손을 최대한 원상태로 돌려놓을 테니까요.”
“그럼 선생님, 다 나으면 계속 일할 수 있을까요?”
“엔진 톱 일이요?”
“산일도 하지만 농사가 주업인데요.”
이해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성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태수에게 물었다.
“최 선생, 이거 다 회복하면 20킬로그램짜리 쌀자루를 한 손으로 들 수 있을까?”
“아니요.”
“힘들까?”
“아무래도 좀 그렇죠.”
태수의 대답에 이해철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반면, 박성민과 태수는 잠깐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박성민이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태수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너무 가벼우니 40킬로그램을 들면 되겠네요. 한 손으로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네. 들으셨죠?”
박성민이 묻자 이해철의 표정이 얼떨떨하게 변했다.
“20킬로그램도 못 들 거라면서요.”
“너무 가벼우니까 들었는지도 모르실 거라는 겁니다.”
“…….”
“제가 이거 진짜 말 안 하려고 했는데요, 대전에서도 최 선생하고 저하고 같이 수술 들어가면 심장 멈춘 환자도 벌떡 일어나서 수술실을 걸어 나갑니다.”
박성민의 부풀린 이야기를 들은 이해철이 쓴 미소를 지었다.
“그건 너무 뻥이 심하신 거 같습니다.”
“이분이 속고만 사셨나. 대전 신속대응센터에 가셔서 저하고 최 선생에 대해서 물어보세요. 저희 실력 들으시면 아주 기절하실 겁니다.”
“네. 뭐, 그렇다고 알겠습니다.”
“참 못 믿으시네. 그래요, 안 믿으셔도 됩니다. 수술 딱 끝난 후에 저희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박성민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손을 쉬지 않았다.
그 뒤에도 수술을 이어 가는 중간중간 이해철과 대화를 나눴다.
태수는 집도를 하는 입장이라 대화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간간이 대화에 참여하고, 또 박성민이 어떻게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지 귀를 기울였다.
카슈미르나 네팔에서는 원주민을 치료할 때 언어가 너무 달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 불편함이 크게 줄었다.
또한 박성민의 독특한 성격이 이런 순간에는 정말 큰 장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박성민을 따라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어떤 화법이 환자를 더욱 안심시킬 수 있는지 파악할 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태수와 박성민의 손은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이어지고 이어지던 수술은 대략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태수와 박성민에게 이런 수술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괴사한 조직이 광범위하고 혈관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문합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을 뿐이다.
이만큼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던 건 당연히 혈액 때문이다.
출혈이 상당히 심한 편이었지만 혈액 냉동고에 보관된 혈액이 있었기에 수술에 어려움이 없었다.
만약에 혈액 냉동고가 없었다면?
이 수술은 시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태수는 역시 수술실에는 기본적인 장비들이 갖춰져야 한다는 걸 다시금 절감했다.
수술을 마무리 지은 태수와 박성민이 서로를 쳐다봤다.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서로 눈빛으로 확인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환부도 깔끔하게 봉합되었고, 혈압과 체온도 정상 수준이었다.
눈빛으로 의견 교환을 마친 후였다.
태수가 가림막을 걷어 내고 이해철에게 말했다.
“수술은 끝났고,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이해철은 방금 수술이 끝난 환부를 눈으로 확인했다.
철철 넘치던 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엔진 톱이 날카롭게 할퀴고 간 상처는 깔끔하게 봉합되어 있었다.
그걸 본 이해철의 눈이 어느새 크게 떠졌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법도 했다.
태수는 그런 이해철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아직 안심하실 때는 아닙니다.”
“그럼요?”
“회복이 중요하겠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팔에 감각이 돌아오는 걸 확인한 후에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병실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옆방으로 모시겠습니다.”
태수가 말하자 이해철은 스스로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팔이 다쳤지, 두 다리는 멀쩡한 터였다.
태수는 그런 이해철에게 빠르게 다가가 압박붕대로 봉합 부위를 감싸며 말했다.
“옆방에 누워서 마취 깰 때까지는 안정하셔야 합니다.”
“그냥 집에 가도 될 거 같은데요.”
“제가 확인을 해야지 안심이 될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2시간만 더 투자하세요.”
태수가 부드럽게 말하자 이해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그럼 가시죠.”
태수는 직접 이해철을 옆방으로 안내했다.
뒷정리는 박성민과 이경미 간호사의 몫이었다.
어느새 수술실을 정리하기 시작한 박성민이 방긋 미소를 지으며 이경미 간호사에게 물었다.
“우리 태수 멋지죠?”
“잘 모르겠어요.”
이경미 간호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한 후 피를 가득 머금은 거즈들을 들고 수술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박성민이 쓴 미소를 지었다.
“성격 장난 아닌데? 우리 태수, 무지하게 피곤하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박성민은 뒷정리를 이어 갔다.
잠시 후.
태수와 박성민이 동시에 진료실로 돌아왔다.
진료실 책상 위에는 음료수와 떡이 놓여 있었다.
박성민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이야, 너 이건 또 언제 준비했냐?”
“제가 준비한 거 아닙니다.”
“뭐? 그럼 이 음료수하고 떡에 발이 달렸다는 거야? 어디, 어디.”
박성민이 호들갑스럽게 음료수와 떡을 들고 밑을 확인했다.
반면, 태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정말 음료수하고 떡에 발이 달리지 않은 이상 이게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박성민이 말했다.
“음료수하고 떡에 발은 안 달렸는데, 이런 건 있네.”
“뭡니까?”
“수고했고 고맙단다.”
박성민이 메모지를 바라보며 말하자 태수가 성큼 다가갔다.
악필이지만 굵직한 필체가 남자 글씨였다.
태수가 메모지를 살피는 사이 박성민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아무래도 그 친구들이 준비해 준 거 같지? 이야, 여긴 이런 맛이 있네. 누구는 때 되면 물고기를 양동이로 가져다주고 말이야. 여기서 의사 생활 할 만하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태수는 조금 얼떨떨했다.
이렇게 간식을 준비해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터였다. 애써 준비해 주었으니 맛있게 먹으면 될 일이다.
태수와 박성민은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어느새 자리를 잡은 태수와 박성민은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떡을 한입 크게 씹어 넘긴 박성민이 감탄했다.
“이거 죽이는데? 진짜 좋은 쌀로 만들었는지 입에 쩍쩍 붙는다.”
“정말 맛있네요.”
“너 복 받은 줄 알아. 니 앞에 있는 이 선배님은 3년 동안 군의관으로 부대에서 짬밥만 먹고 살았다고.”
“진짜요?”
태수가 의심 어린 표정으로 묻자 박성민이 움찔했다.
“물론 가끔 별식도 먹긴 했지만, 좌우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압니다. 저도 진짜 감사하게 생각하니까요.”
빙긋 미소를 짓는 태수를 향해 박성민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태수야.”
“말씀하십시오.”
“우리 사이가 이렇게 각박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내 몸값이 이런 간식으로 땡칠 정도는 아니잖아?”
“…….”
태수가 가만히 바라보자 박성민은 어색한 미소로 이어서 말했다.
“솔직히 그렇잖아. 이 먼 타지에서, 그것도 휴일에 3시간이나 수술했는데, 보건소 차원에서 뭔가 떨어지는 거 없냐? 그래, 툭 까놓고 말하자. 왕복 차비라도 나오냐고.”
“아니요.”
“뭐?”
“땡전 한 푼도 안 나온다고요.”
태수가 덤덤하게 말하는 순간 박성민이 울컥했다.
“내가 3시간 동안 뭐 빠지게 수술한 게 무일푼 봉사라고?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이게 말이 돼?”
“정 그러시면 제가 차비라도 좀.”
“야, 이 새끼야, 내가 인마, 아무리 그래도 후배 삥 뜯겠냐?”
“네.”
태수의 대답에 박성민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선배라면 충분히요.”
“그래. 나도 물론 충분히 그렇게 너에게 차비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보건소에서 수당 나오는 거 없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박성민을 바라보던 태수가 자기 몫으로 나눈 떡을 내밀었다.
“여기 제 떡이라도 좀 더 드세요.”
“이 새끼가 선배한테 떡 먹이네. 차라리 엿을 줘라. 엿이라도 먹게.”
“그래도 그건 아니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보건소 이거 완전히 등골 빼먹네.”
박성민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태수는 빙긋 미소만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와! 이 해맑은 아이 같으니라고. 아, 너는 이 보건소 소속이니까 들어오는 돈이 좀 있다, 이거냐?”
“저도 땡전 한 푼 못 받습니다.”
대답하는 태수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자 박성민이 울컥했다.
“지도 수술 수당 한 푼도 못 받는데 웃음이 나와? 허파에 바람 들어갔어?”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합니다.”
“쓸개까지 빠진 새끼. 너 안 되겠다. 당장 나랑 같이 돌아가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 있는 널 이대로 두고 어떻게 내 발이 떨어지겠어.”
“그럼 저 무단 탈영 아닙니까?”
태수의 말에 박성민이 멈칫했다.
“그건 그러네. 군인은 아니지만 복무를 거부하게 되는 건 맞지.”
“그리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이렇게 맛있는 간식이 있잖습니까.”
“너야 그러시겠지만 나는 안 그렇다고요. 아, 이 고생을 어디 가서 보상받나. 저 새끼한테 차비 달라는 몰상식한 선배가 될 수도 없고. 에라, 떡이나 씹자.”
와구와구.
박성민은 억울한 만큼 떡을 입으로 가져갔다.
태수는 그런 박성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해철의 마취가 풀렸다.
감각이 돌아온 팔을 검사하니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도 태수는 주의사항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 후 태수와 이해철이 보건소를 나섰다.
밖에는 이해철을 보건소까지 데려다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갔다가 소식을 듣고 온 모양이었다.
팔에 부목을 한 이해철이지만 밝은 표정을 본 친구들이 얼른 다가와 태수에게 깊게 고개 숙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진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두 사람의 인사를 들은 태수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지금부터 회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도 당분간은 무조건 쉬어야 하고요.”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까 해철 씨에게도 말했지만, 내일 삼척 종합병원에 가서 다시 한 번 정밀 검사 받아 보세요. 혹시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태수의 말에 두 사람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데려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뭡니까?”
“일하실 때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물론 피치 못할 상황이라는 게 있지만, 그것 또한 안전에 소홀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꼭 명심하십시오.”
태수는 그 부분만큼은 강조해서 말했다.
이해철의 사고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꼭 안전에 신경 써서 일하겠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태수는 마주 인사하며 세 사람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