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EPISODE.53
파밧-.
붉은 협곡에 당도한 그들은 빠른 속도로 관광 지구를 벗어났다.
애당초 그들의 목표는 언더월드로 향하는 동굴을 찾는 것이었으니.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러셀의 이유는 그것과 조금 다르긴 했지만, 어쨌건 간에.
‘언더월드로 향하는 동굴이 관광 지구 근처에 있을 리가 없지.’
사람들의 발길이 자주 와 닿는 곳인 만큼, 드워프들 역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줄여두고 싶었을 테니까.
파밧-.
발끝이 바닥을 박찰 때마다 러셀과 버밀리온의 신형이 날듯 협곡의 바위와 바위 사이를 타 넘었다.
집채만 한 바위건 그보다 큰 수십 미터에 달하는 바위산이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십 수 미터를 뛰어오를 수 있는 그들에게 있어, 산의 높이는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관광객들의 기척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지고, 약 몇 시간가량이 흐른 후.
바닥에 내려서며 버밀리온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가도록 하지, 사제.”
“예. 사형.”
고개를 들자, 하늘 위로 붉은 석양이 깔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붉은 바위산과 그와 같은 색의 석양이라…….’
프리랜서 마법사로 활동할 당시, 용병 일을 겸하며 왕국 곳곳을 돌아다녔던 러셀조차도 보지 못했던 장관이었다.
‘아니, 그때는 이런 경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목적과 목표를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삶이었고.
‘굉장하네-.’
하늘을 비롯해 땅까지, 천지(天地) 모두가 불꽃에 휩싸인 듯 장엄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기도 잠시.
그 광경을 심상(心想) 속에 기억한 러셀이 몸을 돌렸다.
야영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
.
“이쯤이면 슬슬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요?”
빠른 속도로 내달렸던 탓에, 풍압이 윙윙거리며 그들을 방해했지만 말을 알아듣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무리가 없었다.
러셀의 음성에 반 호흡 가량, 앞서 내달리던 버밀리온이 신형을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군.”
주변으로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 아래에 펼쳐진 붉은 바위의 협곡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몇 마리가 있었지만, 신경 쓸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사람의 기척은 물론 발걸음도 거의 닿지 않는 오지(奧地).
“예. 백탑주님께서도 하루 반절 정도 들어간 후 시작하라고 하셨으니까요.”
버밀리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러셀이 정령계로 통하는 문을 현현시켰다.
화르륵-.
그 문을 통해 페퍼를 불러냈고, 녀석의 목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부탁한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페퍼와 러셀은 정신과 정신으로써 이어진 유대를 지니고 있었기에. 러셀의 부탁에 알았다는 듯 페퍼가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고.
갸르륵-.
푸드덕―.
곧이어 네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원을 그리며 허공을 크게 선회했다.
순식간에 날아올라 점으로 화(化)하는 페퍼의 모습을 보며 버밀리온이 코끝을 찡긋했다.
“음, 저렇게 높은 위치에서 정령의 기척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마도 되니까 올라간 게 아니겠습니까? 안 된다 싶으면 알아서 내려오겠죠.”
만약 이 근방에서 페퍼가 언더월드로 통하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다시 이동해야겠지만…….
‘그때까진 이렇게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길 얼마간, 하늘을 주시하던 버밀리온이 침음을 흘렸다.
“음?”
이어서 페퍼로부터 전해진 것은, 날카로운 전투의지.
고개를 들자, 하늘을 날고 있는 페퍼 근처로 비슷한 크기를 가진 점 몇 개가 다가서고 있는 것이 보인다.
“허. 평범한 새인 줄 알았거늘, 설마 몬스터였던 건가?”
버밀리온이 중얼거린다.
마법을 이용해 안력을 돋우자 페퍼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새들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활짝 펼쳐진 날개 길이만 족히 5미터가량, 독수리보다도 훨씬 거대한 덩치에 이마 위로 자라난 것은 유니콘의 그것과 같은 일각수(一角獸)의 뿔이라.
“……외뿔 수리로군.”
외뿔 수리, 성체가 된다면 오크도 낚아챌 수 있다는- 꽤 상위의 비행 몬스터였다.
놈들의 정체를 간파하기 무섭게, 버밀리온이 요격을 위한 준비를 하는 순간.
화르륵-.
“사형.”
“응?”
“하지 말랍니다.”
러셀이 그런 버밀리온을 멈춰 세웠다. 그 순간 페퍼가 네 쌍의 날개를 펄럭였다.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외뿔 수리 세 마리를 노려보며 포효를 터뜨렸다.
캬오오오오-!
“건방진 놈들에게 쓴맛을 보여줘야겠다네요.”
실제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그런 느낌의 정신파가 전해져왔으므로.
그 순간, 팟!
허공을 따라 불꽃의 궤적이 새겨진다. 직후 순식간에 이동한 페퍼가 외뿔 수리 중 한 마리의 목을 물어뜯었다.
콰적!
이빨과 이빨 사이로 불꽃놀이와 같은 화염 폭죽이 터져 나오고, 페퍼가 양다리를 뻗었다.
신체의 일부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짤막하던 다리가 순식간에 팽창한다.
이어 다른 방향에서 날아들던 외뿔 수리들을 동시에 낚아채고.
덥석, 덥석!
화르르륵!
발톱 사이로 뿜어져 나온 불꽃이 외뿔 수리들을 덮쳤다.
그보다 조금 늦게, 잘 구워진 외뿔 수리들이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쿵쿵-.
얼마나 높이서 떨어진 것인지, 바닥에 닿는 순간 형편없이 뭉개져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버밀리온을 향해 러셀이 페퍼의 정신파를 전달했다.
“그, 사형.”
“으, 으음?”
“잘 익혀 놨으니, 한입씩 하라고 하네요.”
“……?”
“저번에 고깃덩이를 줬던 보답이라고 합니다.”
고기의 상태는 도무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지만.
캬르르륵-!
* * *
페퍼가 무엇인가를 감지한 것은, 그로부터 약 사흘가량이 더 지난 후였다.
처음 탐색을 시작했을 때보다, 협곡의 훨씬 깊은 곳까지 들어선 상황.
갸르륵-.
무엇인가의 기척을 탐지해낸 페퍼가 러셀에게 정신파로 사념을 쏘아 보냈다.
푸드덕-.
이어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한 방향으로 천천히 날갯짓을 시작한다.
“아무래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정신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나라도 알겠어.”
날갯짓하는 모습이 꼭 자신을 좇아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에.
“음…….”
페퍼의 안내를 받아 당도한 장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바위산과 바위산 사이에 끼여 생겨난, 작은 골짜기. 고개를 돌리자 개미굴처럼 곳곳에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일흔, 일흔하나, 일흔둘……허, 이쯤 되면 수를 셀 의미가 없겠군.”
찬찬히 그 숫자를 세보던 버밀리온이 이내 난색을 표했다.
“대충 세어도 삼백은 넘어 보이는군요. 이 동굴들을 모두 확인해야 했다면 연구 기간을 다 써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어쩌면 언더 월드에는 발도 들이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을지도.
갸르륵-.
그때 페퍼가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냈다.
골짜기 높은 곳에 위치한 동굴 중 하나의 앞에 멈춰 서며 앞발로 바닥을 탕탕 쳤다.
“저곳인가 봅니다.”
“들어가 보지.”
그렇게 들어간 동굴의 내부는, 러셀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동굴과는 꽤 달랐다.
‘축축하다거나, 습기도 전혀 없고. 종유석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이건-.’
러셀과 같은 생각을 한 듯 버밀리온이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흠.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이로군. 어쩌면 근방의 동굴들 대부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어.”
“예. 동굴의 수를 늘려 입구를 숨기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만들어진 동굴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점이었다.
필요하다면, 마차 두어 대쯤은 충분히 지나다닐 만한 넓이.
‘하긴, 아무리 드워프들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는 없을 테니.’
필요에 따라선 외부와 교역을 하기도 했겠지.
아마도 통로를 넓게 만든 건, 교역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위해 준비한 것일 테고.
그렇게 약 몇 시간가량 걸음을 옮겼을까. 러셀과 버밀리온이 거의 동시에 걸음을 멈춰 섰다.
동굴의 안쪽에서 마력의 기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걸음을 재촉해 안쪽으로 다가가자, 동굴의 외벽을 따라 기묘한 방식으로 뒤틀어진 마력이 원을 그리며 흐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사형, 이건?”
“워프게이트의 일종인가? 공간굴절이라…….”
마법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구석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것이 고대의 드워프들이 사용했지만 현재는 잊혀진, 로스트 테크놀로지(Lost Technology)라는 것이겠지.
근육의 기술과 용의 흔적을 찾아왔다곤 하나 두 사람의 본질은 마법사. 러셀과 버밀리온은 본능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이미지 마법을 이용해 마력의 흐름과 그 구조를 기록했다.
“후. 이걸로 돌아가 제출할 보고서가 한 장 늘었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력의 흐름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 순간, 러셀과 버밀리온을 둘러싸고 있던 공기의 흐름이 단박에 변모한다.
순식간에 뒤바뀐 주변의 풍광을 확인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
“이건!”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가파른 절벽의 한복판이었다.
거대한 절벽이 원을 그리며 외벽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그 수백 미터 아래 구릉에 건설되어있는 것은 거대한 도시라.
‘저게 바로-.’
‘언더 월드!’
도시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던지 그 크기가 엔디미온의 왕도에 필적할 정도.
도무지 땅속에 지어진 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거기다 도시의 천장에는 은은히 빛나는 발광석을 수백 개나 때려 박아 별처럼 도시를 비추기까지.
시선을 돌리자 언더월드를 외벽처럼 둘러싼 벼랑을 따라, 수십수백에 달하는 동굴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저것들 모두가, 언더월드로 들어올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들일 터.
두 명의 마법사들은 뭐에 홀린 것처럼 이미지 마법을 이용해 눈에 비친 상황을 기록했다.
그렇게 얼마쯤, 기록을 남기고 있었을까.
러셀과 버밀리온이 동시에 몸을 틀었다.
그들이 나온 동굴의 출구와, 언더월드로 내려가는 계단 사이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
‘이 기척은……아마도 드워프들인가?’
그들을 마주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언더월드에 인간이 들어오는 것을 그리 환영하지 않을 가능성 역시 있었다.
‘어쩌면 다짜고짜 공격을 가해올지도 몰라.’
일단은 그런 드워프들을 설득하기 위해 아공간에 술 단지를 가득 채워 오긴 했는데, 과연 통할지.
몇 가지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진 뒤, 이윽고 드워프들이 그 모습을 보였다.
숫자는 둘.
1m 30cm가 간신히 넘어 보이는 왜소한 체구와는 달리, 어지간한 성인 장정의 허벅지보다 두터워 보이는 팔뚝.
“오?”
“음?”
두 사람을 발견한 두 명의 드워프들이 짧게 탄성했고, 이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오오, 인간이로군.”
“인간 방문자들은 오랜만인데. 자네들은 어디서 왔는가?”
적대는커녕, 아주 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