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EPISODE.64
파바바밧-.
일단의 무리가 녹음이 우거진 수풀 사이를 가로질렀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타 넘어 이동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흔들림이 없는 표홀한 움직임.
그때마다 허리에 휘감은 붉은색 노끈이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러셀을 데리러 온 쿠릴의 대전사들이었다.
러셀은 후미에서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쉬시식-.
걸음을 내뻗을 때마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쉬지 않고 귓전을 스쳤다.
등줄기 너머로 그 소리를 흘려보내며 앞서 나가던 대전사 중 하나가 손을 움직였다.
수화(手話)를 이용해 무리를 이끄는 수인에게 질문했다.
-저 인간이, 소문의 그 인간이 맞습니까?
검은 피부가 금속과 같이 광택이 나는, 재규어 수인이었다.
그 물음에 대전사 무리를 이끌던 낭인족 사내, 자르반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수인들과는 달리 총 세 줄의 매듭을 가지고 있는 사내였다.
눈을 흘깃하며 뒤쫓아 오는 러셀의 외견을 일견했다. 섬의 안쪽으로 들어오며 염색과 변장을 풀었기 때문일까.
언뜻 언뜻 흘러 들어오는 햇빛에 흑발과 적안이 도드라지고. 그 모습을 확인하며 자르반이 손을 움직였다.
수화를 이용해 수하에게 대꾸했다.
-흑발에 적안. 소문의 외모와 똑같지 않은가. 저런 외모를 가진 인간이 섬 안쪽에 또 있을 리가 없지.
러셀이 가진 외형적 특징은 비단 쿠릴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도 특별한 것이었기에.
자르반의 대꾸에 질문을 했던 재규어 수인이 콧방귀를 꼈다.
-흥. 여태껏 잘 쫓아 오는걸 보면 몸놀림은 제법 날랜 듯 보이지만 과연 소문대로의 실력일지.
-글쎄…….
수하의 질문에 자르반이 말꼬리를 흐렸다.
‘소문에 의하면, 쓰러진 자들 중 적사자 부족의 소족장과 흰 뱀 부족의 족장 호위도 있다던가.’
비록 개개인의 사정으로 대전사의 자격을 획득하지 않았을 뿐.
그들 모두가 일결(一結) 대전사와 비등한 실력을 지녔다고 소문이 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쓰러뜨렸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보면, 저 사내의 실력이 마냥 과장된 것만은 아닐 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자르반이 자신을 뒤따르던 대전사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수화를 통해 경고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투쟁본능이 들끓어 일을 벌일 것 같거든, 먼저 무리를 이탈하도록. 그에 대해 죄를 묻지는 않겠다.
그 물음에 재규어 수인이 이를 꾹 다물었다.
강자에 대한 호승심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가 가진 실력에 대한 자긍심 또한 높은 이들이다.
하지만 그 둘을 합산하더라도 수왕의 말보다 높지는 않았던바. 다른 수인들이 고개를 저으며 수화를 보내왔다.
-걱정 마십쇼.
-저희들이 아무리 싸움에 미친 놈들이라고는 하지만…….
-왕의 손님께 먼저 손을 댈 정도로 무도한 놈들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인족 사내, 자르반은 안심하지 못한 것인지 남은 한 명의 수인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대꾸하지 않을 생각인가?
-안 합니다. 안 해요.
그 대꾸에 재규어 수인이 크게 고개를 도리질 쳤고, 이어 다시 손바닥을 움직였다.
-그리고 시험을 해 볼 방법이라면 꼭 손을 쓰는 것 말고도 있지 않소?
-……?
고개를 갸웃하는 대전사들을 뒤로하며 재규어 사내가 몸을 휙 틀었다.
몇 미터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들을 뒤좇아 오는 러셀의 얼굴을 마주하며 소리쳤다.
“어이, 이봐. 형씨!”
“……?”
“이 대로면 왕께서 계신 도시까지는 족히 열 시간을 더 달려야 하는데, 속도를 조금 더 올려도 괜찮을까?”
속도와 지구력.
둘 모두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에 아주 좋은 척도였기에.
* * *
그로부터 몇 시간.
앞서 나가던 대전사 무리가 속도를 늦춘 것은 거대한 도시 안으로 들어선 후였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나무 위에 지어진 수인족 특유의 생활양식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사다리를 지어 집을 위로 올린 것은 물론, 덩굴과 덩굴을 엮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모습.
해안가에 늘어진 양식과는 그 형태가 꽤 달랐다.
‘섬 바깥쪽보다는 안쪽에서 지나쳤던 수인족 부락과 꽤 비슷한 형태인데-.’
그 규모가 남달랐다.
지금껏 지나쳤던 모든 마을을 합산하더라도, 이것 하나만 못할 넓이라.
깊은 숲 한복판에 지어졌다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도시였다.
그럴 수밖에.
인간들의 문화에 비교하자면, 이곳이 바로 수도이자 왕도였으니까.
‘초대 수왕의 이름을 따 지었다는 수인족들의 도시, 펜릴.’
‘이미지 프레임’ 마법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의 외견을 기록해두며 러셀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앞서 나가던 재규어 수인이 러셀과 걸음을 맞추며 말을 건네 온 것은.
“그릉. 그릉. 혀, 형씨. 보통이 아니군. 그르릉.”
재규어 특유의 성대 때문인지.
헐떡거리는 호흡이 마치 그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설마, 그렁. 인간 중에 이렇게 잘 달리는, 그르릉. 자가 있을 줄이야.”
처음에는 그냥 실력을 시험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웬걸?
다리도 짧고 털도 많이 나지 않은 인간 주제에 자신들의 속도를 어렵지 않게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기가 붙어 전력을 다해 내달렸건만.
‘우리들과는 달리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라니…….’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말끔한 외견이었다.
자리에 있는 수인들 중에서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은 이는 자르반 단 하나뿐이었고.
“그르릉, 섬 바깥, 대륙에는 형씨처럼 강한 인간이 얼마나 있는 게요? 허약한 인간들이니, 많아 봐야 열 명이 채 넘지 않을 것 같은데…….”
러셀을 인정했기 때문인지 전과 달리 호감이 넘치는 목소리. 그 물음에 대충 숫자를 헤아림 해 본 러셀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 왕국에만 서른 명 이상은 있을 것이고, 대륙 전체로 통튼다면 백 명쯤 될지도 모릅니다.”
마법사만 계산한다면 그보다 적겠으나, 오러 수련자들 중에서도 강자는 존재했던 까닭이다.
“허억-!”
“그르릉-.”
러셀의 말에 놀란 것인지 귀를 기울이던 수인들이 저마다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는 사이, 러셀을 비롯한 그들의 걸음은 도시의 거대한 건축물 앞에 당도해 있었다.
몇 개나 되는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천막은, 그 규모만으로도 성채를 방불케 하기 충분했다.
거기다, 색색들이 깃발을 이용해 장식해 놓은 외견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한눈에 보아도 수왕 무야호의 거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지요.”
러셀을 여기까지 안내해온, 자르반의 말이었다. 그 역시도 러셀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인지 전과 달리 사뭇 정중한 태도라.
그리 말한 자르반은 이내 천막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러셀이 당도했음을 알리고 입장 허가를 받기 위해서인 듯했다.
그 틈을 타 러셀이 입을 열었다.
재규어 수인을 향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수왕께서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 겁니까?”
대전사나 대장로를 이끌어 낼 생각이었는데, 설마하니 수왕이 움직일 줄이야.
상어를 잡겠다고 드리운 그물에 고래가 걸린 격이 아닌가.
“음, 그게…….”
러셀의 물음에 재규어 수인이 뭔가를 말하려는 찰나.
펄럭-.
천막이 열렸다. 안쪽으로 들어갔던 자르반이 금세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왕께선 잠시 후에 나오실 테니, 일단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직후 들어선 천막의 내부는, 러셀이 생각했던 것만큼 넓지는 않았다.
‘아니, 천막 안에 다른 천을 세워 공간을 나눠놓은 건가?’
양옆을 가로막고 있는 통로 너머에서도 이런저런 기척들이 느껴지는 것이 그 증거라.
굳이 따지자면 이 천막과 천막 사이는 입구에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통로와도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쪽입니다.”
그렇게 자르반의 뒤를 쫓아 들어간 곳은 굉장히 넓은, 또 다른 천막의 내부였다.
천막 안쪽의 천막인 셈.
그리고 어떤 기척들이 그 천막의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건…….’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기도를 가진 이였다.
최소한으로 따지더라도 4써클 이상, 개중에 몇은 5써클이나 익스퍼드급 오러 유저에 육박하는 기척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대전사들인가…….’
그 사실을 증명하듯, 각기 하나부터 셋에 이르는 붉은 매듭을 머리에 매달고 있는 모습.
‘이만한 전력이라면…….’
어지간한 지방 마탑 둘, 그 이상의 전력이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수인족의 전부가 아닌 것을 감안하면-.’
실제 쿠릴 아일랜드의 저력은 그 이상일 터.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기백에 달하는 시선들이 화살처럼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단숨에 그를 도려낼 것만 같은 날카로운 시선들.
한 점의 살기조차 섞이지 않은, 순수한 투기(鬪氣), 허나 그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화아악-.
일대를 잠식하는 투기에 장내의 공기가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기 시작한다.
평범한 범인이었다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려 버렸을 시선이라.
‘6써클을 넘어선 후에 오기를 잘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을지 몰랐다.
그렇게 되자 도리어 놀란 것은 시선을 쏘아 보낸 수인들이었다.
“허-.”
“이만한 투기를 견딘단 말인가?”
“일백의 대전사가 내뿜는 투기를 맞닥뜨리고도 태연한 인간이라니!”
“놀랍군…….”
가벼운 소요가 그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순간!
“소란 떨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우릉우릉!
거대한 존재감이 일대를 무겁게 찍어 눌렀다. 수인족 대전사 일백이 쏘아내는 투기보다도 더욱 강대한 존재감이라니.
한순간 나타난 거력에 러셀의 무릎이 휘청였다.
‘큭…….’
이를 악물고 러셀이 신형을 바로 잡았다. 비틀거리는 무릎을 바로 세우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주시했다.
‘수왕(獸王)……, 무야호.’
스승인 다리아나, 창탑주인 헤밍웨이 멜빌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존재감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평소 자신의 기운을 억눌러 놓고 있는 그들과는 달리, 무야호는 자신의 존재감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까.
높게 솟은 대전 위로 드리워 있던, 호박으로 만든 발이 천천히 거둬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반갑다. 인간족, 꼬마야.”
수왕 무야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으로 따지면 스물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견.
길게 길러 내린 잿빛의 머리칼과, 그 위로 솟은 잿빛의 늑대 귀와 스스로의 기분을 대변하듯 살랑거리는 꼬리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것이 두 가지 있었으니, 그 중 첫 번째는.
‘상처…….’
그의 전신을 따라 자리한, 수없이 많은 상처들이었다.
초콜릿을 녹여 낸 듯 매끄러운 담갈색 피부 위로, 크고 작은 상처들이 아로새겨진 모습이라니.
몇 번이나 되는 격전과 사선을 넘어오지 않고서는 절대로 생겨날 수 없는 상처라.
그리고 두 번째.
두 번째는 바로…….
‘여성?’
하반신과 가슴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마물의 가죽으로, 간신히 치부만을 가린 그 모습은 분명 매끄러운 곡선을 가진 여인의 그것이었다.
‘설마하니, 수왕 무야호가 여성이었을 줄이야!’
이름이 ‘무야호’이기에 남성이라고 생각했거늘, 그런 러셀의 생각에 마침표를 찍듯.
무야호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바로 수인들의 왕, 수왕 무야호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