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EPISODE.117
계속해서 하늘을 비행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웃기는지라 러셀 일행과 정령왕들은 일단 근처에 내려설 곳을 찾았다.
그로부터 몇 분 후, 척─.
일행들이 내려선 곳은 거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숲속이었다.
적당히 드리운 수풀 너머로 번개 폭풍의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는 숲속.
쿠르르릉-.
폭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떨어져 내릴 때마다 정령계의 대지가 쪼개져 간다.
아니, 대지만이 아니다.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던 바위와 식목은 물론, 땅속 깊은 곳에서 흐르는 마그마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대지가 붕괴함에 따라 그 모든 것이 이지러지고 흐트러져가는 것이다.
‘마치 세계가 멸망하는 것 같은 광경이야.’
그렇게 파괴된 세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는 의문의 촉수까지.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러셀이 질린 표정을 해 보였다.
이어 자리에 내려선 정령왕의 화신들과, 번개 폭풍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저희들을 정령계로 부른 존재가 바로 당신들입니까?”
러셀의 물음에 대지의 정령왕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들을 이곳에 부른 것은 정령계의 의지(意志). 우리 또한 작은 범주 안에선 정령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용제여.”
역시나.
페퍼 본인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뜻에 따라 자신들을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러셀의 추측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애당초 그게 아니었다면 본래부터 통행증을 지니고 있던 자신은 몰라도, 이오나 아레인.
다른 두 사람에게까지 통행증이 전달될 이유는 없었기에.
“저희들을 부른 이유는 바로 저것 때문이고요?”
이번에 대꾸한 것은 물의 형상을 한 여인, 암피트리테였다.
“그래.”
대지의 화신, 데메텔이 자애로운 어머니의 형상이었다면 물의 화신인 암피트리테는 도도한 얼굴의 미녀와 같은 모습이다.
“저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여전히 불길한 벼락을 쏟아내고 있는 그것을 바라보며 아레인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착각일까.
번개 폭풍의 위치가 아까보다 이쪽과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진 것은.
폭풍의 규모 또한 어쩐지 전보다 조금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착각이 아니겠지.’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감각은 분명히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저것의 정체는 ‘채워지지 않을 허기’…….”
아레인의 중얼거림에 불의 화신, 아그니가 불꽃으로 이루어진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세계의 바깥쪽에서 들어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집어삼키는 혼돈의 파편이다.”
세계의 바깥,
하나의 세상을 파괴,
혼돈의 파편.
하나같이 거창하면서도 압도적인 수식어들이었다. 하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세계를 넘어서 그 바깥에 대한 이야기까지 필요하다니.
정령왕들의 화신이 직접 그리 말했을 정도였다.
과장은 조금도 섞이지 않았을 터.
아그니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낀 것일까.
바람의 화신, 제피로스가 입을 열어 첨언했다.
“외신(外神), 이쪽 세계의 신이 아닌 바깥에서 들어온 신인 동시에 침략자(INVADER)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쉽게 설명하면, 세계의 바깥에서 들어온 악신(惡神)이라는 말이군요.”
“흥. 신은 무슨. 저건 신에도 이르지 못한 파편일 뿐이야.”
암피트리테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아그니가 다시 한번 적의를 불태우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분명 물질계 어딘가에 좌표를 제공하는 녀석이 있을 터.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저런 악신을 불러들인 건지……!”
스케일이 상당히 큰 설명들이었지만, 지금까진 그럭저럭 이해를 하고 있던 러셀이었다.
그런 러셀의 사고가 일순 정지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후유증처럼 뒷목이 뻐근했다.
“자, 잠시만요. 물질계? 좌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흥. 정령들 중 저런 놈을 불러들일 만한 녀석은 없을 테니, 분명 물질계 어느 놈의 소행일 테지.”
그의 기분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아그니의 불꽃이 사자 갈기 마냥 사방으로 나부낀다.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만큼이나 성격 역시 급한 듯했다.
쓰게 웃으며 설명에 나선 것은 이번에도 데메텔의 몫이었고.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정령계와 물질계는 그 이름이 나누어져 있을 뿐, 크게 하나의 세계라고 봐도 무방하답니다.”
데메텔의 설명에 의하면, 물질계는 이 세상의 중심에 되는 세계.
그리고 정령계는 바로 그 물질계의 주변을 휘돌고 있는 많은 세계 중 하나였다.
‘일종의 위성세계(衛星世界)라는 말인가?’
위성세계라는 단어는 방금 막 러셀이 급조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한 세계를 중심으로 위성처럼 그 주변을 도는 세계. 이를 나타내는 적확한 단어는 없었기에.
어쨌건 대충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모양.
“물질계의 좌표를 찾아 내려오던 놈이, 물질계 바깥쪽을 회전하던 정령계에 불시착하게 되었다……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과연. 용제께선 정령사인 동시에 마법사이시기도 한 분이군요.”
쉽지 않았을 설명을 단박에 이해하다니. 데메텔이 고개를 끄덕였고 제피로스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말했다.
“정령계를 집어삼키고 덩치를 불린 녀석이 다음으로 어디를 노릴지는 뻔한 일이겠지.”
“물질계.”
이곳에서 놈을 막지 못하면 정령계의 영향을 받아 대자연의 균형이 무너질뿐더러, 물질계 자체가 직접적으로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
“다행히도 녀석은 본체가 아닌 파편일 뿐이고 아직 힘을 부풀리지도 못한 상황이랍니다.”
지금이라면 막아낼 수 있다.
“만약 녀석이 정령계의 상당수를 포식하고, 본체의 힘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게 된다면…….”
그땐 손을 쓸 수가 없게 될 거라고.
데메텔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잠시간의 침묵, 그 끝에 입을 연 것은 러셀이었다.
“어찌 됐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군요.”
정령계의 일부가 망가진 것만으로도 그 여파가 물질계에까지 미치고 있는 와중이다.
그런데 저런 괴물까지 제힘을 회복해 물질계로 넘어오게 된다면?
‘재앙이 시작되겠지.’
외신(外神), 혹은 악신(惡神).
신(神)이라고까지 불리는 놈의 파편이다.
그런 놈이 정령계를 제 뱃속에 집어넣게 된다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거듭나게 될지.
물질계에도 수많은 강자가 있다지만, 그들로 놈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심지어 대부분이 제국과 엔디미온으로 나누어져 반목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 아니던가.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우리만으론 힘들지만 그대들이 도와준다면 얼마든지.”
제피로스가 껄껄 웃었다. 본체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령왕의 힘을 일부 물려받은 화신들.
그들이 지니고 있는 힘은 8써클 마스터급의 초인에 육박할 정도였다.
거기에 러셀과 이오, 그리고 아레인이 추가된 것이다.
갸륵-.
페퍼 역시 힘을 보태겠다는 듯 각오를 다졌다.
아직 어리다곤 하나 정령화룡으로 거듭나며 성룡급의 힘을 지니게 된 페퍼였기에.
순수하게 화력만 놓고 보자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7써클 정도는 될 터.
자리에 있는 전력이 임전 태세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라.
순식간에 모든 태세를 정비하고, 전투에 포문을 연 것은 자신의 덩치를 한껏 부풀린 폭풍.
제피로스였다.
────길은 내가 열도록 하지!
거대해진 덩치만큼이나 웅장한 외침이 바람과 함께 일대를 떨친 순간, 제피로스의 거구는 이미 벼락 폭풍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폭풍의 형상을 한 벼락이었던바.
───쾅!
제피로스의 발걸음으로부터 반 박자 늦게 폭음이 터져 나오며 강렬한 바람의 흐름이 공간을 통째로 무너뜨리며 어지럽혔다.
음속 따위는 이미 가볍게 돌파해버린 속도의 폭풍이, 지평선과 횡으로 내달리며 전격의 폭풍을 들이박는다.
─────────────!!!
인간의 청력 한계를 넘어선 굉음, 그로부터 반 박자 늦게 쏟아져 나온 충격파가 반구 형태로 지면을 뒤덮었다.
쿠구구구구궁-!
먼지가 거칠게 솟아오르며 지표가 쩍쩍 갈라지고, 뒤이어 제피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높게 솟아오른 먼지 사이로 바람의 터널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제피로스가 제 몸으로 벼락 폭풍을 밀어내며 그 안쪽까지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이들이 몸을 날렸다.
파밧-.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폭풍의 안쪽을 향해 짓쳐 들었다.
콰아아아아!
그와 함께 폭풍에 가려져 있던 녀석의 본신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폭풍의 중심, 그 꼭대기의 어둠이 마치 와류마냥 일그러져 있었다.
밖에서 보았던 촉수들은 바로 그 어둠에서부터 발을 뻗고 있는 것이었고.
보랏빛의 불길한 색상.
두족류의 그것과 흡사한 형태의 촉수와 빨판이 보랏빛의 불길한 색상을 발하며 역겹게 꿈틀거렸다.
차이가 있다면, 여타 두족류의 촉수에 비해 수천 배 이상 거대하다는 점일까.
길게 뻗어져 나온 촉수 하나하나가, 거성(巨城)의 성루와도 비견될 정도였으니…….
콰득-!
그 중심에 놈의 입이 있었다.
촉수나 빨판과는 달리 앵무새의 부리와 비슷하게 생긴 입으로 허공에 떠오른 정령계의 파편을 낚아채며 씹어 대는 모습.
“읏-!”
뒤이어 이오가 침음을 흘렸다.
벼락 폭풍의 안쪽으로 들어와 선명하게 드러난 놈의 형상을 마주한 순간,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전신을 찍어 눌렀던 것.
쿠그그그긍-.
쏟아지는 사념파 역시 폭풍의 안쪽이 훨씬 더 과격했다.
평범한 이였다면 진즉 절망에 무릎을 꿇었으리라.
의지가 약한 이였다면 당장에 까무러쳤을……심할 경우에는 스스로 목숨을 포기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부(否)의 감정들!
허나 이오는 평범한 엘프가 아니었다. 은룡의 힘을 이어받은 엘프였지.
“으읏-!”
침음과 함께 이를 악물자,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은룡(銀龍)은 용의 아종 중에서도 꽤 특별한 존재였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속성에서 파생되는 아종과는 달리, 은룡은 바람에 더해 대지의 파생 속성인 철(鐵)의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으므로.
끓어오른 핏물이 쇳물과 같은 온도까지 치솟아 오르고!
으르르르-.
그와 함께 이오의 이빨 틈새로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뾰족하게 자라나는 송곳니와 팔뚝을 타고 돋아나는 비늘.
등이 아닌 손목에서 자라난 날개는 마치 낫을 연상시키듯 날렵한 형상이었다.
그 모습에 마법을 캐스팅하던 러셀의 눈가에 이채가 흘렀다.
‘용인화가 가능해지신 건가!’
그런 러셀의 추측대로, 눈동자 역시 용인화를 사용한 러셀의 그것과 비슷하게 변모한다.
차이가 있다면 은룡의 힘을 이어받았기에 눈동자 역시 사나운 은빛이라는 점이었지만!
콰득, 콰드득-!
변화에 마무리를 짓듯, 이마 양쪽에 돋아났던 뿔이 창과 같이 길게 자라나는 순간!
후─읍!
위아래로 벌어진 이오의 입 안쪽으로 공기가 집중되었다. 일대의 마력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괴현상!
용이 입을 벌렸을 때 저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였던 바!
은빛 광채……은하수와도 같은 격류가 폭풍의 중심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치솟았다.
────────────!!!!!!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