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80
80화
EPISODE.40
“함께 임무를?”
예상치 못한 러셀의 방문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길 얼마간.
툭툭, 이내 자세를 고쳐 앉은 다리아가 손끝으로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5써클 마법사를 한 명 더 증원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가 자원해준다면 나로서는 고민거리를 던 셈이로구나.”
이어진 다리아의 말에 휴버트가 조금 심각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게 중요한 임무입니까?”
초인 급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마도사의 벽을 넘어선 그들은 사실상 살아 있는 인간병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5써클 워 메이지가 무려 둘이나 동원되어야 할 임무라니.
“타국 주요 인사의 호위, 임무의 내용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게야.”
“그렇다면…….”
“문제는 호위 대상의 신분과 상황이겠지.”
그렇게 말하며 다리아가 한 장의 문서를 꺼내 러셀과 휴버트의 앞에 내려놓았다.
마력을 불어 넣자, 문서에 쓰인 글자가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사라-, 상대는 키옐 왕국의 백작이로군요.”
“키옐 왕국이라면…….”
익숙한 이름에 러셀이 키옐 왕국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휴버트가 설명했다.
“엔디미온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중립국가. 국력 자체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지만, 풍부한 마석 생산량으로 이름이 높은 국가일세.”
설명대로, 키옐은 제국과 엔디미온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였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 두 손가락 안에 꼽는 열강들 사이에 몸이 끼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국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옐이 중립국으로써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요새라 할 수 있는 칼리안 산맥이 나라의 절반을 휘감고 있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마석 생산량을 기반으로 한 자원 외교를 해왔기 때문이지.’
물론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 자체가, 키옐의 왕실과 관료들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키옐에서 갑작스럽게 특사 파견에다 호위 요청이라니, 뭔가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렇단다.”
핵심을 찌르는 러셀의 질문에, 다리아가 평소와는 달리 무거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래도, 근 십 년간 키옐 왕국 내부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던 이들이 근래 들어 새로운 후원자를 정한 것 같더구나.”
“불온한 움직임이요?”
“조리오 코만치 후작.”
타국의 인사였지만, 들려오는 소문을 통해 몇 번이고 들어봤던 이다.
회귀 전에는 지금 보다 조금 더 유명하기도 했었다.
‘제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키옐 왕실을 집어삼킨 매국노, 비틀어진 위정자.’
“그가 결국 키옐 내부 문제에 제국의 세력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는구나.”
양 떼 무리의 왕을 자처하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라니.
지극히 비효율적인 선택이었지만, 본래 정치나 권력이라는 것이 그랬다.
“그래서 키옐 왕실에서 특사를…….”
특사로 파견되는 킴블리 백작은 키옐 내부에서도 충신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므로.
“그래. 사실상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바에는 우리와의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하고 싶다는 선택이겠지.”
패도주의를 추구하는 제국에게 있어 동맹국이란 단어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사실상 식민지, 혹은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자원을 통한 줄타기 외교도, 사실상 여기까지가 끝인 셈이군요.”
“이백 년이 넘는 세월 간 잘 해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지.”
그리 중얼거린 다리아가 손끝을 가볍게 튕겼다.
촤르르륵-.
책상 한켠에 돌돌 말려있던 지도가 쫙 펼쳐지며 대륙의 전경이 드러났다.
“호위를 시작하는 곳은 키옐과 칼리온 산맥의 접경지대부터란다.”
“칼리온 산맥이 몬스터의 출현이 잦은 곳이라곤 하지만, 초입의 접경지대는 분명 키옐의 영토인데…….”
거기서부터 출입이 시작된다는 의미인즉, 러셀이 말을 받았다.
“제국, 혹은 조리오 후작 쪽에서 뭔가 낌새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요.”
“그래. 추격조가 따라붙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키옐 측에서도 호위를 요청했단다.”
앞서 말한 바 있듯, 키옐의 국력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키옐 제일의 마법사라는 이조차도 6써클 마스터에 불과했을 뿐.
그렇게 생각하면 이쪽에 호위를 부탁한 그들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곧장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호위 임무이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포션 종류를 넉넉하게 챙겨 가려무나.”
특사의 호위와, 거기에 더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제국 추격조와의 전투.
쉽지 않은 임무가 될 것이라 여기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휴버트가 답변했다.
“알겠습니다.”
[미션]키옐 왕국의 특사 호위.
키옐 왕국의 중요 인물인 특사를 무사히 호위해 왕국의 영토로 진입하세요.
[보상]중급 마석(식용)x5
.
.
창구로 간 휴버트가 지원품과 포션을 수령 하는 사이, 벽에 등을 기대고 선 러셀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형의 죽음, 그러고 보니 키옐에 대한 제국의 내정간섭이 심해졌던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였다.
‘덕분에 한동안 엔디미온으로 들어오는 마석의 양이 줄어들었던 적이 있었지.’
타국을 통해 유통되는 키옐 산 마석을 수입하기 위해 웃돈까지 얹어줬다는 소문 또한 있었다.
당시 두 배 이상 치솟았던 왕국 내 마석의 가격을 생각하면 단순히 뜬소문만은 아닐 터.
‘사형의 죽음, 호위 임무의 실패. 그로 인한 제국의 내정간섭 심화…….’
따로 때놓고 있었을 때는 그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허나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니 이야기가 달랐다.
하나둘,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퍼즐이 맞춰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조용히 눈을 떴다.
키옐의 특사를 살려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본래의 목적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형의 죽음을 막아내는 것.’
그 사실을 곱씹는 러셀의 두 눈이, 침묵 속에서 고요히 빛을 발했다.
화악.
* * *
다행히도, 칼리안 산맥 인근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워프 게이트가 설치돼 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새 인근 도시까지 이동하고, 그로부터 약 이틀 후.
높게 솟아난 산맥을 응시하며 러셀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웅혼한 양의 마력이 전신을 휘감는 것이 느껴진다.
휴버트 역시 러셀과 마찬가지로 끌어 올린 마력을 전신에 휘돌렸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이동하도록 할 걸세.”
일반적으로 상단의 마차가 칼리안 산맥을 가로지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주가량.
물론 둘 모두 마도사인 만큼, 전력을 다해 주파한다면 그보단 시간이 적게 걸릴 것이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짧지 않은 시간인 것은 분명했던바.
정신력의 소비가 상당할지도 모르니, 단단히 주의하라는 충고의 말이었다.
물론 지닌 마력의 효율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알겠습니다.”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러셀이 시동어를 읊었다.
“헤이스트(Haste).”
이보다 한 단계 위인 초(超)가속 마법, 엑셀 헤이스트 역시 존재했으나 지금은 일반 가속 마법 쪽이 나았다.
‘오랜 시간 마법을 사용해야 하니까.’
시동어가 흘러나오는 것과 함께 날렵한 마력의 흐름이 두 사람을 휘감는다.
그리고 동시에-
“그럼 먼저 출발하도록 하지.”
쾅-!
폭음이 터져 나왔다.
두 줄기 질풍이 빠른 속도로 산맥을 넘기 시작했다.
.
.
홰애액, 착-!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린 휴버트가 바닥을 밟았고, 뒤이어 러셀이 휴버트의 옆자리에 내려섰다.
척.
온통 먼지가 묻고 때가 탄 구둣발이라, 그럴 수밖에.
‘고작 나흘하고 몇 시간 만에 칼리안 산맥을 돌파했으니…….’
사실상 최소한의 휴식과 식사 때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이동에만 할애한 셈이 아닌가.
그렇게 서둘러 약속 장소에 도착하긴 했지만-.
“킴블리 백작 쪽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군.”
회중시계를 이용해 시간을 확인하는 휴버트의 말에 러셀이 안력을 끌어 올렸다.
‘호크아이.’
수목이 그나마 덜 우거진 곳을 이용해 키옐 산맥 끝자락의 모습을 확인했다.
‘저게 소문의 그 성벽이로군.’
산맥의 몬스터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축조한, 사실상 키옐의 국경을 지키는 두 번째 방벽이라던가?
대충 거리를 어림짐작해보니, 성벽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는 약 서너 시간 남짓.
킴블리 백작이 예정된 시간에 성벽을 통과한 것이 맞다면…….
“길어야 한 시간 내외면 도착하겠군요.”
“일단 그때까지 쉬고 있도록 하게, 그래도 경계를 소홀히 해선 안 되겠지만.”
산맥에서 나오는 그저 그런 몬스터 따위가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만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예. 사형.”
말을 마친 러셀이 정령계의 통로, 불꽃의 문을 열었다.
화르륵-.
그와 함께 전보다 작아진 크기의 페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거대해진 모습으로만 돌아다녔는데, 어찌하다 보니 소형화 기술을 습득한 모양.
캬웅-.
러셀의 머리칼을 둥지 삼아 앉은 채, 혀로 자신의 앞발을 핥는 페퍼의 모습에 휴버트가 흥미로운 눈빛을 흘렸다.
“중급 정령으로 진화했다더니 과연…….”
두 쌍으로 늘어난 날개와 날렵해진 외견, 그 속에 깃든 힘까지.
돌연변이를 이룬 중급 정령의 ‘신비’는 마법사의 탐구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느긋하게 관찰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꾸한 러셀이 페퍼를 불렀다.
“페퍼.”
갸르륵.
말을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그 의미를 이해한 페퍼가 허공으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직후 점처럼 작아진 위치에서, 하늘을 선회했다.
“근처에 누군가 다가오면 페퍼가 신호를 보내줄 겁…….”
-캬르륵!
그 순간 페퍼가 날 선 사념파를 쏘아 보냈다.
그보다 한 박자 늦게, 뭔가를 감지한 러셀과 휴버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급하게 청력을 끌어올리자 산길을 내달리는 말발굽과 마차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거리가 꽤 있는 듯,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그 뒤를 쫓아 오는 것은-!!
-캬륵!
검은 로브를 전신에 뒤집어쓴 추격자들!
“사형!”
“미친 작자들이!”
페퍼에게 전해 받은 정보를 전달하자, 휴버트가 대경하며 소리쳤다.
“국경도 아니고, 고작해야 성벽을 벗어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일을 벌인단 말인가?”
아무리 권력욕에 미쳐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라지만.
이건 키옐 왕실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동이었다.
‘제국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한들, 정도를 넘어선 그야말로 후안무치인 작자로구나.’
허나 지금은 어처구니없는 적들의 행동에 성토할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추적자들의 손에서 백작 일행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바.
“가시죠.”
소란이 일어난 방향을 향해, 두 사람의 신형이 단숨에 짓쳐 들었다.
파바바밧-!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