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빌어먹을 협곡 같으니라고.”
신성 왕국의 추기경인 베르디는 이를 갈았다.
지크 드레이커를 추적해 데스밸리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협곡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길을 잃고 말았다.
굽이굽이 나 있는 좁은 길과 마른 모래 바닥, 끊임없이 펼쳐진 계곡 벽들은 들어온 사람들의 방향 감각을 잃게 했다.
일단 재정비를 할까 싶은 생각에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가려 했지만,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 봤자 더 깊은 협곡 안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전하. 데려온 루베른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성유물을 찾기 위해 파견된 교단 직속 팔라딘 부대의 대장인 루이스가 추기경에게 말했다.
추기경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루이스를 따라 부대 뒤쪽으로 갔다.
손과 다리, 목이 연결되어 있는 사슬을 차고 있는 어린 남녀 여럿이 몸을 웅크린 채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추기경이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며 말했다.
“빌어먹을 이단 놈들아. 뭐가 또 문제냐.”
백금발의 소년은 추기경이 머리를 흔들자 고통스러운 듯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자 뒤에 있는 소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이곳 이상해요.”
소녀의 말에 추기경이 소년의 머리카락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이단의 더러운 꾀를 내려 하는 수작이라면 당장 집어치워라.”
그러자 소녀가 고개를 저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 정말로 이상해요. 저, 저곳에 가까워질수록 시, 심장이 쿵쿵쿵 울려요.”
소녀의 말을 들은 추기경의 표정이 변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인 루이스를 불렀다.
“아무래도 저 어린 이단 놈들과 성유물이 있는 곳이 반응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제 생각도 전하와 같습니다.”
추기경은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를 매만지며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여자애를 앞에 세우고 반응을 보이는 쪽으로 간다. 만약 제대로 길을 제시하지 않으면 가장 어린 녀석들부터 죽여라.”
“알겠습니다.”
루이스는 소녀의 사슬을 풀어 부대 가장 앞으로 데려갔다.
소녀는 두려움을 참으며 이상한 느낌이 드는 쪽의 방향을 가리켰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소녀는 자신의 심장이 강하게 뛰는 방향을 말했다.
놀랍게도 미로 같은 협곡을 빙빙 돌기만 하던 아까와는 달리 점차 새로운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추기경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전하의 혜안으로 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태양신의 인도 아래 이루어지리라.”
흡족한 얼굴을 한 추기경은 루베른의 소녀에게 빨리 길을 찾으라고 윽박질렀다.
한참을 더 간 뒤에야 협곡 절벽 아래 거대한 동굴 하나가 나타났다.
마치 악마의 입처럼 생긴 동굴을 보며 팔라딘들 역시 긴장했다.
추기경이 소녀를 구속하는 사슬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저 동굴 안이 맞는 거냐?”
소녀는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기경이 소녀의 귓가에 대고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만약 저곳에 성유물이 없다면 저놈들은 물론이고 교단에 있는 루베른의 혈족 모두를 화형시켜 버릴 거다.”
추기경의 말에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덜덜 떨었다.
“마, 맞아요. 저, 저곳에 가까워질수록 시,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어요.”
추기경은 마뜩잖은 표정을 짓더니 팔라딘들에게 손짓했다.
그러고는 부대 전체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죽음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기온이 무척 낮았다.
팔라딘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루베른의 아이들은 추위에 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팔라딘들은 아이들에게 담요나 외투를 나눠 주지 않고 빨리 따라오라며 차가운 쇠사슬을 잡아당길 뿐이었다.
거대한 종유석 동굴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소녀는 추위와 두려움을 참고 자신의 심장이 반응하는 대로 길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몇 시간 동안 동굴 안으로 걸어간 끝에 뭔가가 나타났다.
“전하. 무, 문입니다!”
동굴 벽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문이 있었다.
추기경과 루이스는 물론 팔라딘 모두가 그 거대한 문의 크기에 압도되어 말을 잃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추기경이 문을 살폈다.
“엄청나게 크고, 거대한 문이군. 이걸 어떻게 열 수 있는 거지.”
추기경이 문 이곳저곳을 두드려 봤다.
쇳덩이처럼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루이스가 추기경에게 다가왔다.
“드레이커 쪽에서 전달한 물건을 써 볼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흐음.”
추기경은 루이스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아벨 드레이커 측에서 보낸 것이기는 하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물건임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추기경이 루이스를 향해 그러라는 의미로 눈짓했다.
루이스는 이곳까지 안내를 한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소녀의 팔을 잡고 문 앞으로 끌고 왔다.
“왜, 왜 그러세요. 기사님.”
루이스가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더니 소녀에게 내밀었다.
“마셔라.”
“이, 이게 뭐예요……?”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장 어린 녀석의 팔을 자르겠다.”
소녀는 두려움에 질려 루이스가 준 약병을 받아 들고 그대로 마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모두 마신 소녀는 심장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루이스가 소녀의 손을 잡고 아이의 손목을 단검으로 쭉 그었다.
그러자 소녀의 손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아아악!”
뒤에 있던 루베른의 아이들이 소리를 치며 소녀 쪽으로 달려오려 했다.
하지만 쇠사슬에 묶인 아이들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녀는 자신의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인지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소녀의 피를 문 쪽으로 뿌렸다.
추기경은 그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봤다.
소녀의 피를 뿌렸음에도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냉정한 눈빛으로 피를 흘리는 소녀를 바닥에 버려두고 단검을 든 채 다른 루베른의 아이들 쪽으로 다가갔다.
루이스가 품에서 다른 약병을 꺼내 가장 나이 많은 소년에게 먹이려 하는 찰나였다.
쿠구구구구!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추기경이 그 광경을 보고 손을 위로 뻗었다.
“태양신의 보살핌 아래 광명이 찾아드노라!”
쿵!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모두 열렸다.
추기경이 팔라딘들을 향해 외쳤다.
“빨리 와라!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성유물을 찾아서 나간다!”
팔라딘들은 루베른의 혈족들을 끌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루이스는 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 손목을 베어 낸 소녀를 찾았다.
그런데 죽어 가고 있을 소녀가 온데간데없었다.
‘어디 간 거지?’
루이스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
팔라딘 중 한 명이 문 안쪽으로 발을 내디디려 하자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냐!”
문 안쪽 벽에 서 있던 두 개의 거대한 전사 석상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척! 척! 척!
팔라딘들이 문밖으로 걸어 나오는 전사 석상을 보며 방패를 들고 검을 뽑아 들었다.
“저, 저게 뭐야……!”
마법사들이 부리는 골렘을 상대해 본 적도 있었지만, 저 거대한 전사 석상은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마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전사의 석상은 그런 두려움을 주는 미지의 존재였다.
그들은 주기도문을 외우며 두려움을 떨치려 했다.
쿠궁!
그런데 그 순간, 4미터가 넘는 크기의 전사 석상들이 무기를 겨누며 팔라딘들을 위협했다.
추기경이 팔라딘들을 향해 외쳤다.
“이단의 마물들이다! 당장 태양신의 이름으로 저들을 처단하라!”
동시에 추기경이 태양교단의 주문을 외웠다.
그가 입은 법의에 새겨진 마법진들이 빛을 내뿜었다.
화르르르륵!
마치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듯 거대한 화염구가 생겨났다.
추기경이 석상을 향해 화염구를 쏘았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화염구 두 개가 각각 석상의 몸에 적중했다.
그 틈에 루이스가 팔라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저 이단의 마물을 공격해라!”
팔라딘들은 방패를 들고 두 패로 나뉘어 석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온몸을 오러로 두른 팔라딘들의 돌격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방패로 만들어 낸 벽으로 화염에 휩싸인 전사 석상을 후려쳤다.
콰쾅!
그때였다.
석상을 휘감은 화염이 사라졌다.
놀랍게도 석상들은 추기경의 마법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추기경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 이럴수가.”
쿠구구구!
석상이 다시 방패와 무기를 들고 자세를 갖추었다.
그러고는 곧장 방패 벽을 세운 팔라딘들에게 달려들었다.
석상이 든 방패와 팔라딘들의 방패 벽이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굉음을 내며 팔라딘들의 방패 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크으윽!”
이를 지켜본 추기경과 루이스의 얼굴이 굳었다.
루이스가 팔라딘들을 향해 소리쳤다.
“벽을 다시 세워라! 석상의 움직임을 막고 뒤에서 공격해라! 골렘이라면 반드시 핵이 있을 것이다!”
루이스의 말에 팔라딘들이 다시 자세를 잡고 방패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석상이 거대한 도끼를 들고 팔라딘들을 향해 휘둘렀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도끼가 방패를 든 팔라딘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크아아악!”
오러로 몸을 강화해서 죽지는 않았지만, 그 한 방에 단단한 팔라딘들의 방패 진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빌어먹을! 버텨라! 네 녀석들이 그러고도 태양신의 기사들이라 할 수 있겠느냐!”
루이스가 포효하며 검을 뽑아 들고 석상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펼쳤다.
아크 팔라딘의 강력한 후보인 루이스는 적색 기사급의 실력을 갖춘 뛰어난 기사였다.
그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전사 석상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콰콰쾅!
전사 석상이 방패를 들어 루이스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 냈다.
콰드드득!
루이스의 오러 블레이드에 전사 석상의 방패가 금이 갔다.
루이스가 뒤로 물러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러 블레이드는 통하는군.’
루이스가 팔라딘들을 향해 외쳤다.
“청색 기사급이 앞으로 나와 오러 블레이드를 펼쳐라!”
곧 청색 기사급 팔라딘들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그들은 단단한 방패 벽으로 석상의 공격을 막고 오러 블레이드로 공격을 가했다.
콰드드득!
오러 블레이드가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석상을 쓰러뜨릴 정도의 유효타를 넣기는 쉽지 않았다.
석상들도 아까와는 달리 자세를 바꿔서 방패를 들고 서로 어깨를 붙인 뒤 방어에 집중했다.
석상들이 본격적인 방어 태세로 들어가자 오러 블레이드로 공격해도 쉽게 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추기경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빌어먹을! 뭣들 하는 거냐! 빨리 저 마물을 해치워라!”
성유물을 찾으러 들어가기도 전에 정체불명의 골렘에게 가로막혀 나아가지를 못하는 상황이 되자 초조해졌다.
그런데 그때 루이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당황한 듯 추기경을 바라봤다.
“저, 전하. 루, 루베른 녀석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쇠사슬로 묶어 둔 루베른의 아이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추기경이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팔라딘들에게 외쳤다.
“젠장! 네놈들은 뭣들 하는 거냐! 빨리 루베른 놈들을 찾아와!”
추기경의 고함 소리에 단단하게 벽을 만들었던 팔라딘 부대 중 일부가 방패 벽에서 이탈했다.
쿠쿵!
팔라딘들의 전열이 흐트러지자 전사 석상 중 하나가 틈을 놓치지 않고 가장 강한 루이스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콰콰쾅!
“하아아앗!”
루이스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겨우 날아오는 창을 쳐 냈다.
전사 석상들은 문 앞을 단단히 지키며 단 한 명의 출입자들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서 있었다.
추기경은 이를 갈며 외쳤다.
“빌어먹을! 태양신께서 보고 계신다! 당장 저 이단의 마물을 해치워라!”
루이스는 추기경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살인 충동을 느꼈지만, 꾹 참았다.
‘아크 팔라딘만 된다면…….’
그가 아크 팔라딘이 되도록 도움을 줄 정치적 연줄이었기에 어떻게든 이번 임무를 성공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루이스는 탐욕에 찬 목소리로 팔라딘들을 향해 외쳤다.
“다시 진형을 짜라! 돌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