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우우우우웅!
포탈이 열리고 지크는 유적지가 아닌 얼음산맥의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크는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북풍을 느끼며 기지개를 켰다.
“후우. 역시 포탈이 좋긴 좋네.”
여러 가지로 제한이 있어서 숨겨 둔 한 수에 가깝지만 쓸 수만 있으면 확실히 편리하고 좋았다.
엘더 드래곤의 유물도 챙겼으니 이제 지크에게는 아틀라스로 다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얼음 산맥을 내려가려던 지크는 숲 저편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사냥개 놈들인가.’
제국의 사냥개인 게 차라리 나았다.
드레이커 흑무대라면 인기척을 죽이고 멀리 돌아가야 했다.
그때 숲 너머로 늑대가 그려진 깃발이 보였다.
히모나스 기사단이었다.
‘흑무대보다는 낫지만, 저놈들도 미친놈들인 건 마찬가지니까. 조용히 지나가야겠군.’
지크가 청력을 집중시키며 그들 몰래 지나가려 할 때였다.
그의 귓가에 큰 목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스벤! 이 새끼야, 정신 좀 차려 봐라!”
지크는 설산에 울려 퍼진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저건 분명 니콜라이 목소린데.’
니콜라이와 스벤.
모두 지크와 전생에 인연이 있던 히모나스 기사들이었다.
그냥 지나가려던 지크는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망설이던 그는 인벤토리에서 북부식 옷을 꺼내 입었다.
옷을 갈아입은 지크가 천천히 히모나스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 * *
“젠장! 스벤! 이 새끼야! 눈 떠! 정신 차리라고!”
히모나스 엉겅퀴 기사단 소속의 니콜라이는 동료인 스벤의 상처를 꽉 붙들어 매고 지혈을 하며 그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서 피가 멈추지를 않았다.
주변에 있는 다른 동료들은 니콜라이를 붙잡았다.
“니콜라이, 그만해. 이미 늦었어.”
동료들이 붙잡았지만, 니콜라이는 처치를 멈추지 않았다.
“씨발! 늦기는 뭐가 늦어! 스벤 이 새끼는 X 같은 새끼라서 피도 X 같이 많다고! 피 좀 흘렸다고 죽기에는 X 같은 새끼라는 말이야!”
니콜라이가 계속 상처를 붙잡고 처치를 하고 있었지만, 스벤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도 출혈이 멈추지를 않는 것을 보니 독을 썼거나, 마법이 걸려 있는 무기에 당한 듯싶었다.
그때였다.
“거기 부상자가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낯선 목소리에 기사들이 깜짝 놀라며 클레이모어를 뽑아 들었다.
북부 용병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크가 기사들을 보며 안심하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얼음벽에 지원하려고 올라가던 용병입니다. 부상자가 있는 것 같아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도와주러 왔다는 말에도 기사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지크가 조심스럽게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포션입니다. 상처에 바르면 출혈이 멎을 겁니다.”
북부는 중앙대륙에 비해 가난하고 물자가 부족했다.
때문에 포션은 구하기 어려운 고급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포션 같은 고급 물품을 건네니 기사들은 오히려 더욱 의심 어린 눈빛으로 지크를 노려봤다.
‘히모나스 새끼들. 하여간 의심은 많아 가지고.’
북부인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지크는 포션 뚜껑을 열어서 한 모금 마시고 꿀꺽 삼켰다.
그때서야 기사들이 조금 경계를 풀었다.
니콜라이가 몸을 일으켜 지크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포션을 낚아채듯 가져가 스벤의 상처에 부었다.
치이이이익!
피가 멈추기는 했지만, 상처 부위에 거품이 일고 살이 검게 변색되고 있었다.
이를 본 지크가 입을 열었다.
“반응을 보니 독에 당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해독약이 있습니다.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기사들이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는 쓰러진 스벤에게 다가가 배낭에 미리 준비해 둔 해독제를 꺼냈다.
그는 단검을 꺼낸 뒤 기사들에게 물었다.
“화령주 남은 것이 있습니까.”
화령주는 북부인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먹는 독한 술이었다.
기사들이 주머니에 차고 있던 술병을 모두 꺼냈다.
지크는 기사들이 건넨 술병을 받아 화령주로 단검을 소독한 뒤 스벤의 상처에도 뿌렸다.
그러고는 상처 주변을 검으로 찔렀다.
푸슉!
검에 베인 곳에서 검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지크는 검은 피를 좀 빼고 그 위에 해독제를 부었다.
치이이이이익!
마치 살이 불에 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엄청난 소리처럼 고통도 어마어마했는지 의식을 잃었던 스벤이 깨어났다.
“끄아아아악!”
고통을 참는 것에 일가견 있는 히모나스 기사가 비명을 지를 정도라니,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옆에 있던 니콜라이가 스벤의 입에 단검집을 물렸다.
“새끼야! 지랄하지 말고 이거나 물고 있어!”
스벤은 니콜라이의 단검집을 물고 끔찍한 고통을 참았다.
지크는 가장 심한 허벅지 상처를 먼저 치료하고 다른 자상들 역시 해독제와 포션으로 치료를 했다.
상처들을 모두 치료한 지크는 상처 부위를 화령주로 깨끗이 소독하고 붕대로 감았다.
“응급 처치는 끝났습니다. 바로 부대로 데려가 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으시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지크의 말에 니콜라이는 그제야 안심한 듯 뒤로 나자빠졌다.
“하! X발! 스벤 이 새끼야! 넌 진짜 X나게 운이 좋은 새끼다! X 같은 새끼!”
말은 거칠었지만, 지크는 니콜라이가 훌륭한 기사이자 동료애가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히모나스 기사단이 제국군에 밀려서 전멸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마지막까지 동료들을 위해 몸을 내던져 적들을 막았다.
니콜라이와 방금 죽을 뻔했던 스벤은 지크가 북부 연합 소속이었을 당시 이 엉겅퀴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이었다.
‘둘 다 오랜만이군. 전생에서 죽었던 사람들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하나.’
그때 니콜라이가 다가와 지크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이봐! 용병 친구. 이름이 뭐야. 자네한테 정말 빌어먹게 신세를 졌구만! 물론 스벤 저 X 같은 새끼가 진 신세기는 하지만 말이야!”
지크는 니콜라이의 말에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지크 머레이라 합니다.”
“지크 머레이! 멋진 이름이군. 얼음벽에 지원하려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예. 레인저에 지원하려 합니다.”
“북부 레인저. 사나이다운 일이지.”
히모나스 기사단과 북부 레인저 모두 거칠기 그지없는 이들이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다.
니콜라이가 지크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어차피 얼음벽 쪽으로 갈 거라면 우리 쪽 캠프에서 하룻밤 보내고 가라고. 내가 단장에게 말해서 레인저 쪽에 가져갈 추천서도 써 달라고 할 테니까.”
이대로 떠나고 싶었지만, 여기서 거절하게 되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지크는 니콜라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크와의 동행을 결정한 엉겅퀴 기사단은 능숙하게 들것을 만들어 스벤을 올리고 설산을 타고 올랐다.
지크 역시 기사단을 따라 그들의 캠프로 향했다.
니콜라이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자신들을 따라오는 지크를 보며 놀랐다.
“설산을 타는 게 능숙한데. 원래 북부 출신인가.”
“예. 북부 고르카 쪽에서 태어났는데 칼 밥 먹고 살겠다고 고향 떠나서 용병으로 떠도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얼음벽에서 레인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가던 길입니다.”
지크는 능숙하게 거짓말을 술술 뱉어 냈다.
니콜라이는 지크의 북부 사투리가 워낙 완벽하다 보니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술은 어디서 배웠나. 아까 보니 응급 처치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용병이지만 오히려 던전에 들어갈 일이 많았습니다. 모험가 놈들이랑 워낙 험하게 구르다 보니 저절로 손에 익었습니다.”
니콜라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 출신이라고 하니 그가 포션과 해독제를 가지고 있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몬스터 중에서는 워낙 기괴한 독을 가진 것들이 많아서 모험가들은 언제나 포션과 해독제를 상비하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설산을 오른 엉겅퀴 기사단은 가장 가까운 캠프로 스벤을 데리고 들어갔다.
말이 캠프였지 실제로는 요새나 다름없었다.
얼음 산맥은 워낙 지형이 험해 곳곳이 천혜의 요새나 다름이 없었는데 북부 레인저들은 곳곳에 흙과 얼음을 이용해 단단한 요새를 만들고 몬스터와 마수의 공격에 대비를 했다.
끼리리리릭!
요새의 문이 열리고 지크는 엉겅퀴 기사단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 * *
“푸하하! 지크 머레이! 어서 마셔! 마시라고!”
니콜라이가 지크의 잔에 화령주를 가득 부었다. 지크는 거절하지 않고 화령주를 통째로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과 레인저들이 휘파람을 불며 손뼉을 쳤다.
지크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화령주를 연거푸 들이켜자 니콜라이가 신나서 외쳤다.
“지크 머레이! 스벤을 구한 은인이자! 술로 세상을 지배할 자!”
스벤을 구한 공으로 지크는 이들에게 은인 대접을 받고 있었다.
북부 문화에 익숙한 지크였지만 오랜만에 거친 대접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티를 내지 않으면서, 지크는 다른 이들이 건네는 화령주를 들이켜며 니콜라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한 겁니까. 산에 지독한 마수라도 나타났습니까?”
지크의 말에 니콜라이가 화령주를 한껏 들이켜고 이를 갈며 말했다.
“마수라면 차라리 낫지. 빌어먹을 제국의 쥐새끼 놈들이 몇 년째 우리 영역을 더럽히고 있단 말이야.”
예상대로 제국의 사냥개들 짓인 모양이었다.
만독불침인 지크에게는 독이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일반인에게는 달랐다.
실제로 전쟁터에서는 독이 오러 블레이드보다 훨씬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 가기도 했다.
지크는 스벤의 몸에 남아 있던 독의 흔적을 떠올렸다.
‘슬쩍 힐링을 쓰지 않았다면 스벤은 죽었을 거다. 평범한 독이 아니었어.’
제국이 비밀 실험실에서 은밀하게 연구하던 합성 독의 한 종류가 아닐까 싶었다.
니콜라이가 술잔을 내려놓고 이를 갈며 외쳤다.
“빌어먹을 제국 새끼들과 건방진 드레이커 새끼들! 이 붉은 머리의 니콜라이 에이릭손이 죄다 잡아서 목을 매달아 버리겠다!”
니콜라이의 외침에 다른 이들이 신이 나서 술잔으로 테이블을 마구 내려쳤다.
지크는 북부인들의 생난리를 오랜만에 보며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니콜라이가 잔뜩 흥이 돋은 채 지크 옆에 다시 다가와 턱 앉았다.
“마시자고! 지크 머레이! 히모나스 기사는 절대 은혜를 잊지 않는다!”
지크는 니콜라이의 말에 화답하듯 화령주를 마시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히모나스 기사단. 북부대공의 휘하에 있는 곳이군요.”
니콜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북부대공. 참으로 어려운 자리지. 요즘은 더욱더 말이야.”
지크는 니콜라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 이맘때쯤이면 전대 북부 대공이 죽고 공녀가 대공의 자리를 이을 시기였다.
어디나 그렇듯 권력이 있는 곳에는 구린내를 풍기는 자들이 있는 법이었다.
북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지크는 거친 야수와 같은 북부의 영주들 사이에서 대공의 직위에 오른 그녀를 떠올렸다.
그가 천천히 니콜라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대공께서는 요즘 어떠신…….”
그때였다.
쾅!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순간 난리 치며 술을 들이붓던 이들이 죄다 옆에 있던 무기를 집어 들고 경계를 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가 외쳤다.
“수상한 중앙대륙인 놈들을 잡아 왔다!”
그러자 니콜라이를 비롯한 엉겅퀴 기사단원들과 레인저들이 죄다 밖으로 몰려 나갔다.
지크는 뭔가 싶어서 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연병장 한쪽에 몰려 있었는데, 굴을 깊게 파 놓고 뾰족하게 깎아 놓은 나무를 엮어 감옥 입구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니콜라이가 나무 입구를 향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중앙대륙 새끼들아! 뭘 처먹으려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거냐! 앙!”
그때였다.
콰콰쾅!
갑작스럽게 불덩이가 날아와 나무로 된 입구를 불태워 버렸다.
니콜라이가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구덩이 아래에서 누군가가 기어 올라왔다.
그는 니콜라이가 떨어뜨린 클레이모어를 들고 그들에게 뭔가를 외쳤다.
“■■■■! ■■■!”
중앙대륙어로 외치니 니콜라이를 비롯한 북부인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X발, 저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몰라. 됐고, 그냥 죽여 버리자.”
그때였다.
“갑자기 자신들을 왜 공격했고, 정체가 뭔지 밝히라는데요?”
뒤에 있던 지크가 중앙대륙어를 해석해서 북부 말로 통역해 줬다.
니콜라이가 깜짝 놀라 지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허, 지크 머레이! 놀라운 친구! 중앙대륙 말도 할 줄 아나?”
“용병 생활을 하며 모험가들하고 굴러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때 갑자기 검을 들고 있는 남자가 뭔가 다급하게 외쳤다.
“지크 머레이? 설마 지크 님이십니까? 저! 저! 릭! 릭입니다! 거인 산맥에서 도움을 받았던 모험가 릭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