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지크 일행은 바르칼에서 얼음산맥으로 올라갈 준비를 마치고 도시를 나섰다.
몬스터 군단을 막고 제국군의 음모를 파헤친 덕분에 값비싼 방한 용품을 무료로 보급받을 수 있었다.
지크는 흑령대와 바바리안 부대, 투른의 기사들을 이끌고 히모나스로 통하는 가도로 향했다.
초반에는 일반적인 가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 행군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가도가 얼음산맥으로 진입하는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갑옷 안을 파고드는 냉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모두 갑옷을 벗고 방한 용품들을 걸쳐라.”
흑령대는 물론 투른의 기사들도 차가운 갑옷을 벗고 냉기를 막아 줄 방한 용품들을 착용했다.
얼음산맥의 한기를 느껴 보니 북쪽 출신 용병들이 왜 갑옷을 입는 데 익숙지 않은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일행들이었다.
이런 곳에서 중앙대륙식 갑옷을 입고 돌아다녔다가는 곧바로 냉기에 얼어 죽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들과 달리 드레이커 제복을 입고 있던 레이나는 위에 방한복만 입는 것으로 충분했다.
본래 고산 지대에 살던 바바리안들은 냉기에 강했기에 두꺼운 방호복까지는 필요 없었다.
지크는 한서불침의 능력이 있는 제롬의 망토가 있었기에 무거운 방한복을 걸치지 않아도 냉기를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추위에 대비한 채, 그는 얼음산맥 위로 이동하며 주변을 살폈다.
‘이쪽까지는 아직 몬스터들이 내려오지 않은 것 같군.’
가능하다면 몬스터 군단을 소환하는 게이트 위치를 찾아 이를 먼저 제거하고자 했다.
하지만 얼음산맥 자체가 워낙 넓었기에 산맥 초입부에서 게이트를 찾기는 힘들 듯했다.
밤이 어두워지고 기온이 더 낮아지자 지크는 근처에 동굴을 찾아 부대원들이 쉴 캠프를 마련했다.
동굴 안에서 마력 난로를 피고 뜨거운 수프와 보존 식품으로 배를 채우자, 이들은 조금이나마 냉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크는 이들을 두고 주변을 정찰하겠다며 슬쩍 캠프를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가도로 올라오며 발견한 뱀파이어들의 흔적을 찾아갔다.
흔적을 쫓다 보니, 부대원들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버려진 민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뱀파이어 무리의 기운이 느껴졌다.
뱀파이어들은 인간보다 추위에 더 강했기에 북쪽의 냉기에 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눈에 덮인 민가를 지키고 있던 레드아이 뱀파이어들은 위에 가죽 코트를 걸치고 가죽 장갑, 장화 정도를 착용한 것이 다였다.
‘인간이 저랬다가는 얼어 죽기 딱 좋은데 말이지.’
갑자기 나타난 지크를 보고 레드아이 뱀파이어들이 흠칫 놀랐다.
하지만 곧 지크를 알아보고 조용히 옆으로 물러섰다.
잠시 후, 멀리서 니키가 지크 쪽으로 다가왔다.
“늦었네.”
니키의 말에 지크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바르칼에서 일이 좀 있었다.”
지크의 대답에 니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바커스와 카르밀라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녀를 따라 눈에 파묻힌 집 중 하나에 들어선 지크는 안쪽에서 바커스와 그가 지키고 있는 관 하나를 발견했다.
바커스는 지크를 발견하고는 간단하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어서 와라. 찻물을 끓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지크가 오는 소리를 듣고 눈을 모아 차를 끓이는 모양이었다.
지크는 앞에 있는 관을 보며 물었다.
“카르밀라의 관인가?”
바커스가 금방 끓은 물을 찻주전자에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머니가 아직 성장기다 보니 잠을 많이 자서 말이야. 아무래도 이럴 때는 관에서 자는 게 낫지.”
관에서 자는 것과 침대에서 자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뱀파이어의 문화려니 하고 그냥 넘겼다.
지크는 바커스가 끓여 따라 준 차를 마시며 그에게 말했다.
“바르칼 쪽에 거해궁의 기사단이 버티고 있더군. 혹시 봤나.”
바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찰조가 말해 주더군. 괜히 엮이면 골치 아플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지.”
“그랬군. 거해궁의 기사단을 없애고 오느라 좀 늦었다.”
지크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바커스는 순간 마시던 찻물을 뱉을 뻔했다.
“지금 롬 제국의 13군단 중 하나인 거해궁의 기사단을 없앴다고 한 건가?”
마치 오는 길에 어디 들러서 뭘 사 왔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무시무시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지크였다.
지크가 바커스를 보며 말했다.
“지멘스 쪽과 손잡은 놈들이었으니, 기회다 싶어서 그냥 해치웠다.”
바커스는 지크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흑무대 출신인 그가 봐도 지크의 심계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 지크에게 어설프게 계책을 쓰려 했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바커스가 못 당하겠다는 듯 시선을 보내는 걸 무시한 지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놈들이 몬스터를 부리는 흑마법사들과 함께 있더군.”
그가 찻잔을 내려놓고 바커스에게 말했다.
“정찰조를 보내서 몬스터를 소환하는 게이트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겠나. 대략적인 위치나 지형은 특정할 수 있다.”
바커스가 옆에 있는 니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아 다리를 까딱이던 니키가 손톱을 다듬으며 괜히 딴청을 부렸다.
바커스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니키, 얘기 들었잖아. 가능하겠어?”
그러자 니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바커스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정찰조장이 가능하다는군.”
“좋아, 그럼 정찰을 좀 부탁하지. 놈들을 지금 막지 않으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이 뻔하니까 말이야.”
뱀파이어들의 목적은 북부에 있는 칼리귤라의 무덤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무덤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몬스터 대군이 산맥에 포진되어 있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도 좋을 리 없었다.
지크는 바커스에게 말했다.
“정찰조는 따로 보내도록 하고 우선은 히모나스로 들어가도록 하지.”
그 말에 바커스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굳이 히모나스로 들어갈 필요가 있나. 만약 무덤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라도 특정할 수 있다면 근처에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서 수색 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커스는 한시라도 빨리 칼리귤라의 무덤을 찾아 어머니인 카르밀라가 진정한 진조의 힘을 각성하기를 원했다.
부활 의식 때문에 육체가 어려진 지금, 그만큼 약해진 카르밀라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몬스터를 비롯해 나락의 흑마법사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이상 외부에 계속 있는 건 오히려 위험해. 우선은 히모나스로 가서 상황을 파악한 다음에 무덤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
사실 지크가 히모나스로 가고자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침반이 히모나스, 정확히 말하면 히모나스 성을 가리키고 있다.’
히모나스 성에 칼리귤라의 무덤이 있는 건지, 무덤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무덤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곳으로 가야 했다.
방향키를 쥐고 있는 지크가 그렇게 결정한 이상 바커스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자, 지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니키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서 니키에게 전달했다.
“구애의 선물이야?”
지크는 니키의 말에 어이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할 말을 전했다.
“수색 하다가 게이트의 위치를 찾게 되면 절대 다가가지 말고 이 목걸이의 보석을 깨뜨려라. 그리고 뒤도 보지 말고 그대로 도망가. 근처에 마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건넨 목걸이는 요정석으로 만든 것이었다.
하데스가 직접 고안해 제작한 것으로 이것이 깨진 위치의 좌표가 지크의 맵에 기록되도록 마법이 걸려 있었다.
니키는 지크가 준 목걸이를 받아 자신의 목에 걸었다.
“어때?”
지크는 니키의 말을 무시하고 바커스에게 인사한 뒤, 그대로 집에서 나갔다.
지크가 나간 문 쪽을 가만히 보던 니키가 바커스 쪽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지크 드레이커가 나한테 관심 있는 거 같지?”
“…….”
지크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었지만 바커스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니키는 수십 년 전 진조인 카르밀라가 직접 자신의 피를 먹여 만든 강력한 능력을 지닌 뱀파이어였다.
레드아이의 간부이자 뛰어난 환술가, 암살자면서 니키는 자주 저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고는 했다.
언제쯤 저런 부분이 익숙해질까, 바커스가 속으로 고개를 내젓는 그때였다.
“악!”
관 속에서 카르밀라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바커스가 급히 관 뚜껑을 열고 카르밀라를 챙겼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이전보다 조금 더 성장한 카르밀라가 덜덜 떨며 울상을 지었다.
카르밀라가 바커스를 보며 말했다.
“꾸, 꿈을 꿨어. 끔찍한 꿈을…….”
“악몽을 꾸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아서 드레이커는 이제 절대로 어머니를 붙잡지 못해요.”
그러자 카르밀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서 드레이커가 아니야! 지크, 지크 드레이커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야!”
카르밀라의 말을 들은 바커스가 깜짝 놀랐다.
“어머니, 끔찍한 일이라니…… 그게 무슨?”
하지만 카르밀라는 대답하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덜덜 떨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니키가 재빨리 카르밀라에게 다가와 그녀에게 환술을 걸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니키의 환술에 경련을 일으키던 카르밀라가 서서히 잠 들었다.
바커스는 다시 잠이 든 카르밀라를 관에 눕혔다.
그녀가 바커스를 보며 말했다.
“퀸 카르밀라는 아직 예언을 감당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어.”
바커스는 니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니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어머니의 예언이 사실이라면 지크에게 뭔가 일이 일어나기는 할 거다.”
꿈을 통한 예언은 모든 예언 중에서 가장 불확실하면서도 정확했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바커스는 고민하다가 니키에게 말했다.
“일단 이건 지크에게 말하지 말자. 예언의 내용을 모른 채 결과만 말했다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어.”
바커스의 말에 니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관 속에 잠든 카르밀라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관 뚜껑을 덮었다.
* * *
‘끔찍한 일이 닥친다라.’
바커스의 의도와 달리 지크는 이미 이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니키에게 준 목걸이에는 도청 장치의 기능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무대 출신인 바커스는 정보를 통제하고 확실한 것들만 공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그가 파악한 바커스는 굉장한 완벽주의자이자 논리주의자였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불신하고 어떻게든 자신이 납득되도록 정보를 해석하려 했다.
보통은 그런 경향이 정보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지만 의외의 것을 놓칠 수도 있었다.
칼리를 죽게 만들 뻔했던 해적왕 건이 이와 같은 경우였다.
‘세상의 모든 일이 논리적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알고 보면 실상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더욱 많았다.
지금과 같은 경우도 바커스가 임의로 정보를 지크에게 넘기지 않았기에 도청 장치가 없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터였다.
지크는 이전에 카르밀라가 말했던 꿈의 내용이 자신의 전생 중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지금 이 내용도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어떤 끔찍한 일을 겪는 건지 알면 좋을 텐데. 아쉽군.’
다음에 카르밀라를 만나면 자세히 물어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지크는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동굴 안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뭐지?’
지크가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투른의 기사들은 물론 흑령대마저 무기를 뽑아 들고 누군가와 대치 중이었다.
그들이 검을 겨누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불청객 하나가 바위에 걸터앉아 솥째로 수프를 퍼먹고 있었다.
마력 난방기 위에는 얼어붙은 곰의 앞다리가 올려져 있었다.
막 수프를 모두 긁어 먹은 불청객이 솥을 바닥에 턱 내려놨다.
“후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입을 슥 닦은 불청객은 이번엔 단검을 꺼내 해동된 곰 앞다리의 살점을 베어서 입에 집어넣었다.
레이나를 포함해 흑령대는 물론 강인한 투른의 기사들과 심지어 바바리안들조차 아무 말도 못 한 채, 무기를 들고 불청객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움직이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불청객이 곰 다리를 베어 먹던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네가 이 패거리 대장인 것 같은데. 와서 앉지.”
군중을 압도하는 목소리였다.
지크는 천천히 걸어가 불청객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제야 곰고기를 베어 먹던 불청객이 고개를 들었다.
사방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기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곱게 땋은 금발과 오밀조밀한 하얀 얼굴, 작은 체구가 큰 이질감을 줬다.
지크는 그녀의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회귀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다시 살아서 움직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크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알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