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59
559화
츠츠츠츠츠―
게이트가 열리면서 하비 웨스트가 튕겨져 나왔다.
“으으으윽!”
그의 옆구리에는 진득한 피가 잔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입에서도 피가 울컥울컥 올라왔다.
“커허어억!”
호문쿨루스가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와 지크의 검격을 막았기에 죽지는 않았지만, 본질을 베어 내는 심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영혼의 본질이 손상되었기에 아무리 마력을 쏟아부어도 상처가 아물지를 않았다.
하비 웨스트는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든 쥐어서 피가 흐르지 않도록 틀어막고 아지트 안쪽으로 기어가려 했다.
이렇게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움을 느끼는 게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지만, 그는 정신을 다잡았다.
‘……연구실로 가서 새로운 육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가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른 흑마법사들의 육신에 빙의하며 명령을 내렸던 이유는 다름 아닌 육신의 불안정성 때문이었다.
위대한 현자는 오만한 구원자의 영혼을 이용해 완벽한 ‘불멸자’를 만들어 내 새로운 구원자를 만들고자 했다.
영웅왕 카이시르마저 만들어 낸 위대한 현자의 이론은 완벽했다.
문제는 카르마의 제약이었다.
태초의 빛이 만들어 낸 카르마의 제약은 불멸자의 존재가 현상계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렇기에 하비 웨스트는 불멸의 힘을 갖추었지만, 현상계에 머물기에는 불안정한 존재가 되었다.
위대한 현자의 힘으로 카르마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에게서 이탈하여 마왕을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뒤로는 존재의 불안정성을 어떻게든 안정화시켜야 했다.
그렇기에 하비 웨스트는 자신의 존재가 현상계에 머무르고 유지될 수 있도록 불멸의 힘을 연구한 것이었다.
까드드드득!
하비 웨스트는 손톱이 모두 빠지는 고통을 참고 어떻게든 자신의 연구실 쪽으로 기어 들어갔다.
성혈 세포를 배양하는 배양소에만 들어가도 우선은 육신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지트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단단한 구둣발의 사내.
그는 다름 아닌 드레이커 흑무대장 바론 드레이커였다.
하비 웨스트는 바론이 자신의 비밀 아지트에 있는 것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놈이 여기를…….’
바론 옆에는 두건을 쓴 자들이 서 있었는데 하비 웨스트는 이들이 카이시르의 호문쿨루스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게이트 앞에서 자신을 대신해 지크의 공격을 막은 것 역시 호문쿨루스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애초에 영웅왕의 호문쿨루스를 그에게 붙여 준 것도 바로 바론 드레이커였다.
아서 드레이커가 죽기 전에 남긴 여러 가지 비밀 유물 중 하나가 그 호문쿨루스였는데, 맹약을 맺기로 하고서 선물로 그에게 넘긴 것이었다.
‘설마 영웅왕의 호문쿨루스가 하나가 아니었을 줄이야…….’
그때 바론 드레이커가 피를 흘리며 거의 죽어 가고 있는 하비 웨스트를 보며 말했다.
“많이 괴로워 보이는군.”
하비 웨스트가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바론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게냐, 바론.”
그 말에 바론이 몸을 낮추고 쓰러져 있는 하비 웨스트와 시선의 높이를 맞췄다.
“약조를 지키러 왔다. 아서 드레이커의 육신이 준비되었으니 말이다.”
바론의 말에 하비 웨스트가 흠칫 놀랐다.
순간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스스스스스―
바론 드레이커의 얼굴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잿빛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벨 드레이커와 비슷하지만, 더 건조한 눈빛을 가진 사내.
패왕 아서 드레이커의 젊었을 적 얼굴이었다.
이를 본 하비 웨스트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모든 것이 네놈의 농간이었던 것이냐.”
그 말에 아서가 씨익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럴 리가. 바론에게는 엘더 드래곤의 심장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정말로 자네에게 내 육신을 넘겨줘도 된다고 말해 놓았었지. 나는 도박을 한 거고, 그 도박에서 이겼을 뿐. 다른 의미는 없네.”
아서 드레이커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지크에게 당해 육신이 무너지고 있는 하비 웨스트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심하군. 지크에게 당한 것인가.”
하비 웨스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했다.
‘육신을 버리고 영혼체만 빠져나가게 되면…… 다시 힘을 기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노스트라 패밀리의 보스였던 제르망이 그랬던 것처럼 하비 웨스트 역시 자신의 육신을 만들어 내고 다시 종장의 무대까지 설 준비를 하려면 몇백 년의 시간을 소모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선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맞았다.
하비 웨스트는 아서 드레이커 모르게 망가진 육신을 버리고 영혼체만 다른 아지트로 빠져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스르르르르륵―
영혼만 뱀처럼 은밀하게 빠져나간다면 설사 신격을 지닌 지크 드레이커라 하더라도 그 흔적을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아서 드레이커가 무감정한 눈빛으로 하비 웨스트를 보며 말했다.
“자네는 아직 나에 대해서 잘 모르나 보군.”
하비 웨스트는 자신의 영혼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특정해 바라보는 아서 드레이커의 시선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영혼이 의도한 바와는 달리 육신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서 드레이커가 여전히 차가운 눈초리로 입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워낙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니 말이야. 오기 전에 준비를 좀 했지.”
그가 손을 들자 뒤에 있던 카이시르의 호문쿨루스들이 검을 치켜들었다.
호문쿨루스들의 검이 미세하게 빛을 내고 있었는데 이와 연결된 고대의 마법진들이 아지트의 바닥과 벽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우웅!
영혼을 붙잡아 두는 고대의 마법진.
이미 현상계에서는 사라진 잊혀진 지식들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츠츠츠츠츠―
하비 웨스트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새어 나왔다.
아서 드레이커가 이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위대한 현자가 만든 최초의 드레이커의 복제판이라. 원본이 아니라서 성능이 좀 떨어지는 건가. 기대만큼은 아니군.”
하비 웨스트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아서 드레이커를 노려봤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었나? 이런.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돼서 말이야.”
무감정한 표정으로 능청스러운 말을 잘도 하는 아서 드레이커였다.
그가 하비 웨스트의 분노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뒤에 있는 호문쿨루스들에게 손짓을 했고, 그에 검을 치켜든 그들이 천천히 하비 웨스트 쪽으로 다가갔다.
쿠구구구구!
마법검의 영향권이 가까워질수록 하비 웨스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그의 영혼체를 압박했다.
아서 드레이커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하비 웨스트에게 말했다.
“아주 오래된 신전에서 발견한 것들이지. 저 검도, 호문쿨루스들도 말이야.”
그가 옆에 선 호문쿨루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도저히 깨지지 않는 얼음 속 관에 들어 있었어. 그래서 빙속 계열로 유명한 니르바나의 마도사를 비롯해 온갖 곳에 의뢰를 해서 관을 열 방법을 찾으려고 했지. 하지만 마법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군.”
하비 웨스트는 점점 더 출혈이 심해지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아서 드레이커가 말을 이었다.
“지금이야 그게 위대한 현자의 권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불가능한 시도란 걸 알지만 그때는 그런 걸 몰랐으니 말이야. 하지만 결국 방법을 찾아냈지. 용의 권능을 이용해서 풀면 되더군.”
하비 웨스트가 입술을 꽉 물었다.
용은 현상계에서 유일하게 카르마의 제재를 받지 않는 존재이며, 권능을 허락받은 유일무이한 피조물이었다.
‘설마 용의 권능을 이용해 위대한 현자의 봉인을 풀었을 줄이야.’
드레이커 가문이 용살자라는 명성을 얻었을 만큼 그 힘을 지닌 것도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한몫을 했을 터였다.
아서 드레이커가 하비 웨스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용들이 남긴 유산을 보면서 상당히 배운 것이 많아. 엘더 드래곤의 유산을 마지막까지 회수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지크 그 아이가 가지고 있으니 결국 내 손에 들어오게 되겠지.”
아서 드레이커는 이미 많은 것을 파악한 상태였다.
하비 웨스트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나 보군.”
“아무래도, 내가 애비니 그래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하비 웨스트가 조소를 지었다.
“그가 친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군.”
그러자 아서 드레이커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이런, 자네는 키운 정이 낳은 정보다 더 무섭다는 걸 모르나 보구먼. 인조 생명체라서 그런가.”
아무렇지 않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아서 드레이커였다.
그가 굳어진 얼굴의 하비 웨스트에게 말했다.
“어쨌든 서론이 길었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지.”
하비 웨스트를 내려다보는 아서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이내 황금빛 용안으로 바뀌었다.
“나와 손을 잡는 것이 어떤가. 내가 마왕의 부활을 도와주도록 하지.”
갑작스러운 아서의 제안에 하비 웨스트는 순간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 말을 나에게 믿으라는 것이냐.”
“못 믿을 것은 뭔가? 바론과 했던 거래를 그대로 나와 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물론 내 육신을 넘겨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하비 웨스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겨우 입을 열었다.
“……노란 옷의 왕이 강림하기 위해서는 육신이 필요하다. 네가 아벨 드레이커의 육신이 없애는 바람에 더 이상 그릇이 없고!”
그 말에 아서 드레이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래서 내 육신을 대신 쓰려고 했던 것이었고 말이야.”
말을 마친 아서 드레이커가 하비 웨스트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게 더 적합한 육체가 있지 않나.”
그 말에 하비 웨스트가 설마 하는표정으로 아서를 보며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를 말하는 것이냐.”
아서 드레이커가 손뼉을 치며 다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마왕이 안착하기에 가장 적합한 육신 아닌가? 그 아이의 몸에 마왕이 들어선다면 그야말로 천계를 무너뜨릴 최고의 무기가 될 것이야.”
직접 지크를 상대해 본 하비 웨스트는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결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만한 구원자의 영혼을 흡수해 마계의 군주와 같은 신격을 갖췄음은 물론 십삼 궁도의 성좌 중 하나인 사견궁의 주인마저 제압해 봉인한 그의 무위는 패왕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하비 웨스트의 표정에서 그 생각을 읽은 아서 드레이커가 웃음을 지었다.
“지크, 그 아이에게 압도되었나 보군. 그렇지 않은가, 제사장.”
아서 드레이커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그는 지크 드레이커의 한계를 잘못 측정했고, 결국 그에게 오만한 구원자의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때 아서 드레이커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하비 웨스트에게 내밀었다.
‘……저건.’
놀랍게도 아서 드레이커가 내민 것은 성룡의 드래곤 하트였다.
수천 년 이상의 시간을 살아온 성룡의 드래곤 하트는 그 어떤 광물보다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아서가 놀란 하비 웨스트에게 드래곤 하트를 건네며 말했다.
“내 신의를 보이고자 주는 선물일세. 이게 있다면 무너지고 있는 자네의 육신과 영혼을 치유할 수 있겠지.”
하비 웨스트는 달콤한 제안을 해 오는 아서 드레이커를 보며 강한 경계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것이 없다면 그의 영혼은 결국 흩어져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소멸되거나 아서 드레이커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하비 웨스트는 어떤 선택지가 최악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드레이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놈들.’
스스로가 드레이커의 시조 격이면서도 드레이커의 혈족을 혐오하는 하비 웨스트였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손을 내밀어 아서가 건네는 드래곤 하트를 받아 들었다.
이를 본 아서가 씨익 웃음 지었다.
“아주 잘 생각했네. 옳은 결정을 한 것이야.”
동시에 그가 하비 웨스트를 향해 손가락을 딱 하고 부딪혔다.
츠츠츠츠―
그러자 놀랍게도 하비 웨스트의 몸 상태가 서서히 회복되는 것이었다. 몸의 시간이 역행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라몬 지멘스의 권능?’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지니고 있던 흉신 아지타하카의 권능이었다.
아서 드레이커의 황금빛 용안은 어느새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가 드래곤 하트를 든 채 자신을 바라보는 하비 웨스트를 보며 말했다.
“하비 웨스트, 아니 이제는 그대에게 드레이커라는 이름을 내리도록 하지. 하비 드레이커. 나와 함께 최강의 마왕을 만들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