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58
558화
마왕 강림을 천계에서 막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
지크가 라미엘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의 질문에 라미엘은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이를 본 지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군.”
지크는 솔로몬의 사슬을 쥐고 혼돈기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염화의 권능이 아닌 부패의 권능을 흘려 넣었다.
츠츠츠츠―
모든 것을 부패시켜 형체를 사그라들게 하는 부패의 권능이 혼돈기와 결합되어 라미엘의 영혼으로 흘러 들어갔다.
라미엘은 지크가 일으킨 부패의 권능에 당황하며 영혼을 부르르 떨었다.
육신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성좌에게는 부패라는 개념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능은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본질을 담고 있는 힘이었다.
라미엘의 영혼 속에 ‘부패’라는 개념이 흘러 들어가면서, 그는 마치 천계에 있는 본체가 흐물흐물 녹아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끄아아아아악!]고귀한 성좌로서는 견디기 힘든 치욕과 생생한 고통이 영혼을 휘감았다.
지크가 부패의 권능을 유지하며 라미엘에게 말했다.
“성좌의 영혼은 쉽게 소멸하지 않겠지. 아주 오래오래 이 상태를 유지해 주마.”
어떤 면에서는 영원이 더욱 큰 고통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라미엘은 이미 지크가 자신이 내뱉은 말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다.
그는 치욕과 고통을 애써 참아 내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라미엘이 입을 열자 지크가 잠시 권능을 멈췄다.
“무슨 조약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라.”
지크의 힘에 스스로 굴복하고만 라미엘을 치욕스러운 목소리로 신어를 내뱉었다.
[……천계의 개입을 막는 조약이 있다. 현상계에 일어나는 일이 카르마의 제약을 넘어서지 않는 한, 우리는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가 없다.]라미엘의 말에 지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천계의 성좌들이 카르마의 제약을 만든 것 아니었나. 왜 스스로 그런 제약을 만든 거지.”
지크의 새로운 물음에 침묵을 지키던 라미엘은 지크가 다시 사슬을 쥐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건…… 태초의 빛이 만들어 둔 절대 법칙이기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지크는 라미엘의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소멸한 태초의 빛이 만들어 둔 조약이 여전히 성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니.’
하지만 놀라움이 어느 정도 가시고, 지크는 새롭게 떠오르는 의문에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물었다.
“태초의 빛이 그런 조약을 걸어 두었다 하더라도 네놈들이라면 어떻게든 개입할 방법을 찾았을 텐데. 마계의 악마들도 카르마의 제약을 벗어나 현상계로 올라오고 있는데 너희들이 할 수 없다고?”
그의 질문에 라미엘이 같잖다는 목소리로 지크에게 말했다.
[하찮은 필멸자야. 답을 주었는데도 아직 모르겠느냐. 우리가 그들을 왜 방치해 두고 있는지.]지크는 라미엘의 말을 듣고 퍼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설마?’
그가 라미엘을 보며 말했다.
“마계의 악마와 마족들을 방치하는 것이 너희들이 개입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냐.”
라미엘은 지크의 말에 대답이 없었다.
순간 지크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맞춰졌다.
‘마계가 현상계를 침공하고, 마왕을 부활시키면 카르마의 제약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태초의 빛이 만들어 놓은 절대 조약에도 빈틈이 생길 수 있다.’
지크가 라미엘을 보며 말했다.
“일부러 마왕이 부활하기를 바라는구나. 그래야 네놈들의 유희에 필요한 방식대로 다시 현상계를 구성할 수 있으니까.”
현상계의 문명을 구성하고 무너뜨리는 것은 성좌들이 오랫동안 반복해 왔던 유희이자, 자신들에게 필요한 카르마를 착취하는 방법이었다.
라미엘이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라앉은 술은 저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오래 두면 술이 상할 수도 있고, 필요 없는 것들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지.]지크는 라미엘의 말을 듣고 미간을 그러모았다.
성좌들이 현상계와 그 안의 모든 존재들을 자신들의 유희거리 혹은 자원으로만 여기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크는 라미엘을 구속한 사슬을 꽉 쥐며 말했다.
“천계의 대대적인 개입을 위해 일부러 마계를 방치해 두는 것이로군. 놈들이 카르마의 제약을 흐트러뜨리기를 기다리면서.”
[그렇다. 그 더러운 추락자들은 자신들이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볼 땐 현상계의 피조물이나 그 더러운 패배자들이나 매한가지다.]지크의 손에 붙잡혀 있으면서도 더없이 광오한 태도를 고수하는 라미엘이었다.
그가 심각한 얼굴의 지크를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어리석고 불경한 피조물아. 지금은 네가 신을 붙잡고 능멸하고 있으니 저속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겠지만 결국 네놈의 최후는 솔로몬과 같을 것이다.]지크는 그 말에 오히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과하게 자신만만하군. 솔로몬의 힘이 두려워 그가 아끼는 백성들을 앞세워 겨우 살아남은 주제에 말이야.”
라미엘은 지크의 말에 흠칫 놀랐다.
오래전에 지워진 역사였으며 이를 기억하는 피조물은 아무도 없었다.
신들에게는 가장 치욕스러웠던 기억인데 이를 지크가 끄집어내니 라미엘은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가 지크를 보며 소리쳤다.
[네놈에게 신벌이 내릴 것이다! 그 어떤 자비도 존재하지 않을 신벌이……!]머릿속이 정리된 지크는 그런 라미엘을 무시하고 인벤토리에서 솔로몬의 반지를 꺼냈다.
반지를 본 라미엘이 당황해 악을 지르던 걸 멈췄다.
[그, 그건……?]성좌의 영혼마저도 봉인할 수 있는 신살자의 신물이 나타나자 아까와 같은 광오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지크가 그런 라미엘을 보며 말했다.
“이게 뭔지 잘 알고 있나 보군.”
라미엘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크는 솔로몬의 반지를 뒤집힌 탑에서 받은 랜덤 박스에서 얻었다.
뒤집한 탑은 엘더 드래곤이 만든 용과 용인을 위한 훈련 장소이며 성좌들이 지운 시간의 파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기에 사라진 솔로몬의 반지의 데이터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발라 시스템은 등급 외 랜덤 박스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티팩트 중 성좌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솔로몬의 반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불러온 것이었다.
지크가 솔로몬의 반지를 보이며 라미엘에게 말했다.
“아직 오만한 구원자의 영혼도 다 흡수하지 못한 상황이라 네놈의 영혼까지 흡수하면 체할 것 같단 말이지. 애초에 네 본체 자체가 모두 강림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가 라미엘을 향해 반지를 낀 손을 서서히 가지고 갔다.
그러자 라미엘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려 몸부림쳤다.
[무엇을 하려는 게냐!]지크가 솔로몬의 반지를 내밀며 라미엘을 향해 용언으로 봉인의 권능을 펼쳤다.
“사견궁의 주인, 라미엘. 그 영혼이 이 반지에 담길지어다.”
쿠구구구구구!
천사의 몸에 강림한 라미엘의 영혼이 찬란한 빛을 내며 솔로몬의 반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성좌로서의 체면은 신경 쓸 새도 없이 라미엘은 괴성을 내지르며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고 어떻게든 버티려 했다.
하지만 솔로몬의 반지에 담긴 봉인의 권능은 성좌라 하더라도 막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본체는 천계에 존재했지만, 본질이 담긴 영혼체가 솔로몬의 반지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츠츠츠츠츠―
영롱한 빛이 솔로몬의 반지에 스며들더니 표면에 사견궁을 나타내는 표식이 생겨났다.
십삼 궁도의 주인 중 하나인 라미엘의 영혼이 반지 안에 봉인된 것이었다.
그르르르륵!
라미엘의 영혼이 빠져나가자 열세 번째 파수꾼인 천사가 다시 깨어났다.
고오오오오오!
그는 괴성을 내지르며 온몸을 휘감고 있는 사슬에서 벗어나려 했다.
지크가 천사를 향해 그림자를 펼치며 중얼거렸다.
“네놈 정도는 흡수할 여력이 되지.”
그림자가 천사를 휘감으며 서서히 침식했다.
고오오오오오오!
잠시 후, 지크의 그림자 속으로 천사가 흡수되었다.
라미엘은 봉인되고, 애초에 이 고유 영역을 만들었던 천사마저 지크의 그림자에 흡수되면서 점차 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신성 도시 라오콘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갔다.
지크는 영체화의 권능을 발휘해, 차원의 틈으로 들어간 뒤 길을 잃지 않도록 라벤을 길잡이 삼아 곁에 붙어 있었다.
쿠구구구구!
차원의 틈을 넘어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꿈결처럼 도시 하나가 완전히 무너지며 하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츠츠츠츠츠츠―
고유 영역이 완전히 사라진 뒤, 차원의 틈으로 피신해 있던 지크는 다시 본래 현상계의 위치로 돌아왔다.
지멘스의 지하 미궁 최하층에 위치한 공동에서 지크와 라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치이이이이이익―
차원의 틈에서 빠져나온 지크의 몸에서 하얀 수증기와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수많은 메시지들이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오만한 구원자의 영혼을 흡수했고, 십삽 궁도 중 하나의 영혼을 봉인했으며, 열세 번째 파수꾼인 천사를 흡수했으니 시스템 메시지가 시야를 가득 채울 만도 했다.
하지만 지크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메시지는 나중에 확인해도 된다. 우선 중요한 건…….’
지크는 차원의 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감각을 열었다.
하비 웨스트가 자신과 함께 차원의 틈을 뚫고 현상계로 돌아왔을 수 있었기에 그를 잡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오만한 구원자의 영혼을 지크에게 빼앗기기는 했지만 하비 웨스트는 위대한 현자가 만들어 낸 존재였다.
게다가 이레귤러는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법칙에서 이탈되어 있는 존재였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를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신격이 높아진 지크의 감각은 미세한 변화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크가 레바테인을 쥐고 한 곳을 향해 검격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놀랍게도 그가 검격을 날린 곳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숨어 있던 하비 웨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웅!
그가 손을 들어 마력을 일으키자 지크의 검격이 마치 안개처럼 흩어졌다.
하비 웨스트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 네 녀석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그는 지크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종장으로 나아갈 자격을 갖춘 자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대 밖의 인물이라 생각했던 지크야말로 진짜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지크가 하비 웨스트를 보며 말했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의 대답에 하비 웨스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지크 드레이커 너 역시 지독한 운명의 거미줄 안에 걸린 채 발버둥 치는 비극의 등장인물 중 하나일 뿐이다.”
“매번 싸구려 연극배우 같은 말이나 지껄이는 꼴이 우습구나. 네놈을 죽이고 오늘로 나락과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어 주마.”
지크가 검을 치켜들고 하비 웨스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콰콰콰콰쾅!
보리스가 설치해 둔 폭탄이 단번에 터지며 지하 미궁을 무너뜨렸다.
쿠르르르르릉!
거대한 굉음과 함께 지하 미궁의 천장에서 낙석들이 쏟아졌다.
그 찰나의 순간, 하비 웨스트가 뒤로 물러나며 게이트를 열었다.
지크가 이를 보고서는 곧장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하비 웨스트를 향해 심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악!
지크의 검격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하비 웨스트를 베어 내려는 찰나였다.
콰드드드득!
갑자기 게이트에서 휙 하고 튀어나온 뭔가가 지크의 검격을 몸으로 막는 바람에 공격이 하비 웨스트를 완벽하게 베어 버리지를 못했다.
쿠르르르르릉!
순식간에 지크가 있던 자리에도 낙석들이 쏟아지며 지멘스의 지하 미궁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 *
우우우웅!
지멘스의 지하 미궁 근처의 지상에서 좌표를 열고 나온 지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간을 그러모은 채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온 지크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마지막 순간 몸을 던져서 자신의 공격을 막은 자.
지크가 바닥에 그를 휙 던지고서는 가려진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카이시르 사부님의 호문쿨루스.’
천사의 파편에 먹힌 호문쿨루스 말고도 다른 것들이 더 존재했던 것이다.
지크는 작동이 멈춘 호문쿨루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용의 지혜로 아카식 코드에 접속해 그 안에 남아 있는 정보들을 읽었다.
대부분의 정보는 지워져 있는 상태였지만 신격이 높아진 지크는 이전보다 더 깊은 영역에 접근할 수 있었다.
파지지지지직―
강력한 노이즈 속에서 지크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카이시르의 호문쿨루스에 남아 감춰져 있던 이미지.
그건 지크도 잘 알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아서 드레이커.’
패왕 아서 드레이커, 그가 바로 호문쿨루스에 각인되어 있는 흔적의 정체였다.